진상도 캔디도 아닌 우리 공주님!
진상도 캔디도 아닌 우리 공주님!
진상도 캔디도 아닌 우리 공주님!
진상도 캔디도 아닌 우리 공주님!
MBC 첫 회 때 이설(김태희) 양이 친구가 일하는 백화점 가방 매장 진열대에 올라가 갖가지 포즈로 셀카를 찍는 등 민폐를 서슴지 않는 걸 보고 또 밉상 캐릭터 하나 등장했구나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오다가다 만난 박해영(송승헌)이란 남자에게 백화점 행사 상품권을 탈 욕심에 영수증을 얻어내는 구걸 아닌 구걸까지 하지 뭐에요. 어디 과년한 처자가 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를 쫓아 인적 드문 지하 주차장까지 따라간답니까? 그뿐인가요. 돈 좀 있다 싶은 그가 어머니(임예진)가 운영하시는 펜션에 들르자 바가지를 옴팡지게 씌우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죠. 그 모든 게 먹고 살기 어려운 절박한 사정 때문이 아니라 단지 이집트 여행을 가기위해서였으니 어이없을 밖에요. 이건 뭐 캔디 스타일도 아니고 한 마디로 진상이구나 싶었던 거예요.

또 염치없는 민폐 캐릭터가 등장한 줄 알았지요
진상도 캔디도 아닌 우리 공주님!
진상도 캔디도 아닌 우리 공주님!
제가 워낙 민폐 캐릭터라면 질색을 하거든요. 그런 인물들은 늘 주변 사람에게 신세를 지며 살아가지만 특히 남자 주인공들에게는 극심한 폐를 끼치곤 하죠. 추운 날 옷 얇게 입고 나와 벌벌 떨어 남자 윗도리 벗게 만들고, 만날 깨고, 엎고, 사고 쳐서 이 사람 저 사람 불러내질 않나, 애매한 태도를 취해서 결국엔 남자들끼리 치고 박고 싸움박질 하게 만드는 정 안 가는 여자 주인공들, 이설 양도 아마 문득 떠오르는 인물 몇 있을 겁니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면 남자 차가 마치 제 차인 양 얻어 타고 다니고, 옷도 아무렇지 않게 얻어 입게 되고, 차차 덩치 큰 규모의 경제적 도움까지 받게 되는, 자존심을 버린 행동들을 하기 마련이잖아요. 어차피 사랑하는 사인데 그 정도를 가지고 무에 타박이냐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게 바로 신데렐라 스토리의 매력이지 뭘 그러느냐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딸 키우는 제 입장에서는 그런 행동들이 그렇게 꼴불견일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제 아무리 김태희라 해도, 천하에 다시없을 양귀비라 해도 저 꼴은 차마 용납 못하겠다며 가위표를 했었죠. 그런데 말이에요. 놀랍게도 제가 혀를 끌끌 찼던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인공 이설 양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는 거 아닙니까.

헬리콥터 프로펠러가 일으키는 거센 바람 속에서 어릴 적 아버지와의 추억 한 조각을 겨우 되살려낸 이설 양을 보고 있자니 눈물이 절로 솟더라고요. 그 어린 나이에 엄마도 없이 아버지와 공사장을 전전하던 시절, 아버지에게는 딸이, 딸에게는 아버지가 유일한 위안이요 세상 전부였겠죠. 그랬던 아버지가 “잠깐만 기다려. 아빠 금방 올게”라는 말만 남기고, 손가락 걸며 약속까지 하고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으니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매섭게 추운 겨울 밤 깜깜한 골목길에서 혼자 울고 있었을 이설 양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미어집니다. 태어나서부터 타지를 떠돌며 부평초처럼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도 한 점 혈육 이설 양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나시며 아마 피눈물을 흘리셨을 겁니다.

아버님의 불명예를 꼭 회복시키리라 믿어요
진상도 캔디도 아닌 우리 공주님!
진상도 캔디도 아닌 우리 공주님!
“전 회장님 절대 용서 못할 것 같습니다. 평생 무슨 일이 있어도 회장님 기쁘게 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겠습니다. 그게 설사 제 아버지 무덤에 인사드리는 일이라도요”라는 이설 양의 박동재(이순재) 회장을 향한 피 맺힌 절규, 백번 공감이 가요. 이설 양의 아버지가 황세손이라는 신분을 잃고 살아가게 된 까닭도 실은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전달하고 황세손의 안위를 보살피라는 밀명을 받았던 박 회장이 군자금을 들고 도망쳤기 때문이고, 의도치 않은 사고이긴 하나 아버지의 죽음 역시 박 회장이 책임을 면키 어려우니까요. 그 보답이, 하나로도 시원치 않아 두 사람의 삶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보답이 황실 재건이라고 하대요? 적어도 본인의 의사는 물어보고 재건을 하든 말든 해야 할 거 아닌가요? 황세손이었던 이설 양 아버지도 더 이상 세상의 이목을 받고 싶지 않다며 불편해 하셨는데, 이설 양 본인도 내켜 하지 않는데 왜 혼자 고집을 피우시는지 알 수가 없는 노릇입니다. 결국 아버지가 뒤집어 쓴 오명을 씻고자 이설 양이 입궁을 하게 되나 본데, 아버지의 불명예 역시 원인은 ‘황실 재건’에 있는 거 아니냐고요. 황실 재건이 정치적 논쟁에 휘말리는 바람에 아버지가 괜한 희생양이 되신 거니까요.

더 어이없는 일은 박회장의 손자 박해영과 비서실장 오기택(맹상훈) 씨의 딸 오윤주(박예진)의 반응입니다. 전 재산 헌납이라니, 대한그룹의 유일한 상속자인 박해영으로서야 이게 웬 마른하늘의 날벼락인가 싶을 수 있어요. 하지만 자초지종을 다 듣고 난 후에도 재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건 온당치 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 같으면 너무나 미안하고 죄스러워 이설 양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할 것 같은데 말이죠. 오윤주의 경우는 더 기가 막히죠. 아무리 자신의 아버지가 가정보다는 일이 앞서는 사람이었고, 아버지의 과한 충성심으로 인해 가족은 뒷전이었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박 회장이 왜 오윤주 본인에게 재산 상속으로 보은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원. 어쨌든 주방 총각(이기광) 말고는 딱히 믿을 사람 없어 보이는 궁 안에서 그나마 다행인 건 이설 양이 남의 감언이설에 혹하지도, 그렇다고 모함과 술수에도 쉽게 넘어가지 않을 기지를 갖췄다는 사실이겠지요.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고 이설 양이 새롭게 재건된 황실의 공주로서의 지위를 계속 유지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물론 명예조차 버리지는 않겠지만 박 회장의 재산 헌납으로 인한 부가가치를 누리지는 않으리라 믿어요. 아버님이 불명예를 회복하는 그날까지 이설 공주님, 평안하세요.
진상도 캔디도 아닌 우리 공주님!
진상도 캔디도 아닌 우리 공주님!
사진제공. MBC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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