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승리
1.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졌다고 해도 소용없느니라. 어쨌든 이겼노라!
2. 정신승리

실제 대결에서 ‘모두의 승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승리를 뜻하는 영어 victory의 어원인 ‘vict’가 정복(conquer)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은 승리는 상대방의 패배를 전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역시 승리를 의미하는 triumph의 ‘tri’또한 전쟁에서 승리하여 개선문을 통과하는 말과 마차, 마부 셋을 뜻한다고 하니 평화와 공생을 담보하는 승리란 사실상 불가능한 셈이다. 그러나 루쉰의 에 등장하는 아큐에 따르면, 두 개의 승리는 가능하다. 패배하되 패배를 단지 현실의 것으로 분리해 둔 채 자신의 마음속으로 도피한 그는 ‘싸워서 무엇하리’, ‘다른 사람을 이기면 되니까’와 같은 설득의 논리로 육신이 아닌 정신의 승리를 도모한다. 그러나 정신승리법에 의한 승리는 자축 이상의 무엇도 얻을 수 없으며, 승리가 더해질수록 현실의 참담함을 가중시킨다는 치명적인 부작용을 수반한다.

현대 네티즌들은 이러한 아큐의 방식과 유사한 자기 방어기제를 보이는 사람을 조롱하며 ‘정신승리’라는 표현을 쓴다. 주로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 토론에서 논리적 결함이나 정보의 오류에도 불구하고 끝내 의견을 철회하지 않거나 오히려 상대방의 사소한 잘못을 부풀려 지적하며 논지를 흐리는 사람들이 이에 해당된다. 심리학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에 기본적으로 긍정을 하는 셀프서빙 바이어스를 갖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합리화는 정상적인 반응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다만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혹은 감정을 다스릴 수 없다는 이유로 정신적인 승리를 무리하게 도모하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앞서 말했듯이 승리에는 패배가 수반될 수밖에 없으며, 정신승리를 고집하는 것은 다시 말해 상대방에게 패배를 종용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은 패배보다 쓰린 결과에 도달할 수 있으니 스스로 각성할 필요가 있다. 오늘의 정신승리보다는 내일의 인간승리를 위해서 말이다.
사례 연구
* 넘어져도 일어나서 재빨리 달렸다구! : 진정한 정신승리
* 싸움에 지고 벌을 섰다 : 육체와 정신이 모두 패배한 경우
* 순발력 있었으나 은폐에 실패 : 정신은 승리하였으나 육체가 위험한 경우
* 원래 뚱뚱하므로 얼굴에 영향 받지 않아! : 정신은 승리하였으나 눈에서 패배의 눈물이 흐르는 경우
* 일단 사고 나면 너의 것이다 : 정신은 패배한 척 하지만 진짜 승리자

글. 윤희성 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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