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은 최근 라는 독특한 콘셉트의 앨범을 내놓은 밴드 뜨거운 감자의 멤버입니다. 영화와 드라마, 이제 연극까지 오가는 배우이자,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합니다. KBS ‘1박 2일’의 유쾌한 밤과 낮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여행자이며, 제주 올레길을, 창신동 봉제공장을, 걸어서 세계 속을 안내하는 친절한 목소리입니다. ‘천하무적’을 꿈꾸는 오합지졸 야구팀을 이끌기도, 날카로운 축구 해설자가 되어 사각의 그라운드를 진단하기도 했습니다. ‘명불허전’의 다큐멘터리를 지지하는 든든한 ‘프렌드’이자, 잠 못 드는 밤 맥주가 고프다고 140자 토크박스 속에서 일상을 재잘거리는 살가운 친구이기도 합니다. 길거리에서 무심코 불렀을 때 누구나 돌아볼 평범한 호칭, 그러나 인칭대명사에 가까운 이름을 결국 자신만의 고유명사로 획득하고야만 부지런한 창작자. 백은하 편집장이 만나고, 찍고, 쓰는, 순도 100% 인터뷰, ‘인터뷰 100’의 일곱 번째 테이블 앞에는 힘 빠진 미소 속에 기묘한 다정함을 품은 남자 김C가 앉아 있습니다.100: 요즘은 담배 안 피우시나 봐요.
김C: 끊은 건 아니고, 안 피우기? 한 10년 정도만 참아보려고 결심한지 7년쯤 지났어요. 2013년까지 8월 1일까지니까, 이제 3년 남았네?
100: 얼마 전 음반이 나왔고 크고 작은 공연에, 방송출연, 앨범 프로모션만으로도 바쁠 텐데, 지난 4월 6일부터 연극까지 시작했어요.
김C: 어우, 잠을 너무 못 자가지고 눈이 너무 아파요. 아, 선글라스 써도 이해해주세요. 어제 공연 잘 끝내고 맥주 좀 마시다가 집에 들어가니까 챔피언스리그를 하더라고요. 결국 그거 보고 새벽 6시에 잠들었다가 8시에 깼어요. 그런데 리허설 할 때는 엄청 떨렸는데 막상 무대에 올라가니까 긴장이 하나도 안 되는 거예요. 대사 하나 하나, 쉼표에 마침표까지 기억이 나서 깜짝 놀랐어요.
“나를 무엇으로 바라보건 그건 그들의 몫”
100: 이번 연극 에서는 특이하게도 1인 4역을 하는 ‘멀티맨’으로 등장을 하시더라고요.
김C: 주인공 만춘(정은표, 최필립)의 선배, 와타나베의 집사, 자객 게다가 게이샤까지… 그런데 이 게이샤 분장을 하는 시간이 총 1분 20초 밖에 안돼요. 슈퍼맨처럼 갈아입는 거예요, 퇴장하면서 입고 쓰고 바르고 찍고. 그리고 교태의 화신으로 변신하는 거죠. 하하하하.
100: ‘1박 2일’에서 보여주었던 ‘산티나박’ 이후 최고의 여장이 되겠는데요? (웃음)
김C: 보통 남자 옷을 입고 대본 연습을 하면 쑥스러워 죽겠는데 그나마 옷 입고 분장하면 좀 나아져요. 역시 복장이 주는 힘이 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 같아요.
100: 그나저나 재미있어요?
김C: 이 연극이요? 무척이나! 대본을 보고 너무 재미있어서 무조건 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처음에 장항준 감독은 내가 주인공 만춘 역을 하겠다는 줄 알고, 오디션이 필요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필요하면 하겠다고, 그런데 난 사실 ‘멀티맨’을 하고 싶다, 고 말씀 드리니까. 그 자리에서 바로 캐스팅 되셨습니다, 하시던데요. (웃음)
100: 한 사람이 전혀 다른 여러 사람을 연기하는 그 역할은, 결국 김C라는 사람의 행보와도 닮아있는 것 같아요. 어쩌면 지금 김C가 사는 삶 자체가 ‘멀티맨’ 이랄까.
김C: 뭔가 한 가지만 진득하게 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는 편인데, 마침 그 쪽에서 제의가 들어오면 거부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니까.
100: 사실 직업만으로 누군가를 정의 할 수 없겠지만, 많은 이들에게 직업이 스스로를 정의하는 가장 쉽거나 혹은 유일한 방법인 경우가 있어요. 그런 면에서 김C는 한편으로는 선택 받은 사람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굳이 어려운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기도 한 것 같아요.
김C: 복 받았다고 생각해요. 운이 좋아서 사람들이 좋게 봐주는 것도 있고요. 물론 음악만큼은 누구도 나에게 가짜라고 할 순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오랜 시간을 바친 일이고. 그런데 이런 연극무대나 내레이션의 경우엔 내가 전문으로 배운 것도 아니고 깊이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저 몸의 감성 중 하나로 전문가들을 대신 할 때는 미안하다는 느낌도 들어요. 축구해설을 한 것도 백수 시절 계속 축구 보면서 나라면 저렇게 안 하겠다 했던 걸 현실화 한 것이었는데 사실 프로 해설자들에게는 미안했죠.
100: 어쩌면 대중들은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 그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위치한 ‘경계인’ 김C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김C: 딱 무엇으로 규정지어지는 건 좋지 않은 것 같아요. 흔히들 저를 보고, 그래서 당신 정체성이 뭐야? 라고 물어보는데, 예전엔 정말 고민한 적이 있었어요. 특히 활동초반에 음악인보다는 예능인으로 부각됐을 때 좀 그랬죠. 그런데 어느 날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렇다고 내가 음악을 안 하는 것도, 못하는 것도 아닌데 상대방이 나를 바라보는 모습에 내가 왜 슬퍼져야 하나 싶었어요. 뜨거운 감자를 아는 게 사는데 뭐가 해가 될까, 오히려 내가 음악 하는 사람이라는 걸 모르면 자기네가 손해지 내가 손해인가 라는 생각. 내 삶에 스스로 만족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면 남들이 생각하고 정의하려는 내 모습 때문에 슬퍼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니까 고민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어요. 예능인이건 음악 하는 사람이건 나를 무엇으로 바라보건 그건 그들의 몫이죠. 이젠 더 이상 화나지도 슬프지도 않아요.
“모두 착한 말만 하면서 살수는 없잖아요” 100: 얼마 전 예능 결방에 대해 트위터에 쓴 글이 회자되었어요. 자신의 이런 한마디가 몇 십 개의 기사로 재생산되는 현상을 보고 있으면 어떤 기분이 드나요.
김C: 흠… 그냥 나만의 공간에서 개인적인 생각을 얘기한 것뿐 인데 그냥 쟤는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하고 끝나지 않더라고요. 말이 가진, 글이 가진 힘이 무섭다 싶어요. 뭐 그렇다고 해야 할 말을 못한다거나 위축되거나 그렇지 않지만. 기자들이 직접 기사를 써야지, 인용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직업적 자존심이 있다면 말이죠. 사실 요즘 이런 저런 인터뷰를 많이 하는 시기인데 대부분 이 질문부터 시작해요. 그런데 우리 회사에 소속된 사람들이 김제동에 윤도현에 강산에… 아니면 정태춘, 박은옥이야. (웃음) 말 한마디 한마디에 너무 두드려 맞으니까 이런 부분에 대해 물으면 아예 대답을 안 했어요. 어차피 그 대답을 통해 또 말이 만들어지는 게 싫어서요. 그저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자신과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분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결국 그 사안에 대한 의견이 맞느냐 틀리냐를 떠나서 누군가 저런 생각을 할 수 있겠다고 받아들이면서 살면 되는 거거든요. 나 같은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그걸 보는 사람들이 모두 맹신하는 건 아니니까요. 남들의 의견을 인정하고 변별력을 가지면 되죠. 모두 착한 말만 하면서 살수는 없잖아요. 그렇게 산다고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사회적인 큰 파장을 남기는 걸 보니 좀 더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나의 창작기관에 테두리를 만드는 건 싫어요. 생각의 틀이 생기니까 자체 검열이 생기기도 하고요. 그러니 좀, 기사화 안하고 우리끼리 그냥 얘기하면 좋겠어요.
100: 그렇게 부정적인 기능을 제외하면 트위터가 주는 새로운 방식의 소통을 대단히 즐기는 것처럼 보여요.
김C: 예전엔 연예인과 대중들 사이의 브리지 같은 역할을 언론과 기자가 했잖아요. 그런데 가끔 그 과정에서 소통의 장애가 있었던 것 같아요. 나는 분명 1을 얘기했는데 0.5로 축소되거나 2로 과장되거나. 그런데 트위터 같은 도구는 사람들에게 내 목소리를 가감 없이 전달 할 수 있다는 점이 좋더라고요. 홈페이지 보다는 좀 더 가볍고 소통의 느낌도 강하고, 짧지만 묵직할 수도 있고.
100: 얼마 전 발표한 신보 의 경우 가상의 영화에 대한 O.S.T.를 만든다는 독특한 발상으로 만들어진 앨범이에요. 이 작지만 놀라운 생각은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김C: 예전에 OCN 영화 프로그램 진행하면서 친해진 용이 감독과 한잔하다가 나온 아이디어였어요. 그걸 스스로 어쨌든 현실화시켰고요. 몸이 뜨겁게! 안 그래도 어제 용이 감독과 ‘시소’ 작업에 참여해준 (배)두나 양이 공연을 보러 왔어요. 같이 술도 한잔 하고, 이런 공연 처음 보나 봐요.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하물며 나더러 잘 생겨 보이기까지 하더라는 말도 전하고 (웃음)
100: 안 그래도 의 최 모 기자는 “요즘 김C는 강동원 급 미모”라는 말을 하던데요.
김C: 가끔 그렇게 정신 나간 여자 분들이 있더라고요. (웃음) 근데 뭐 어떻게 해. 생긴 건 주관적인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 거죠.
100: 뜨거운 감자의 정규앨범과 달리 는 영화의 배경음악이라는 콘셉트만큼이나 드라마틱한 노래들로 채워져 있더라고요. ‘고백’은 달아서 계속 듣게 되고 ‘빈방’은 쌉싸름해서 계속 듣게 되고.
김C: 기존에 했던 뜨거운 감자의 음악과는 스타일 면에서 다르죠. 그래서 어떤 분들은 실망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말 그대로 이건 비정규 앨범이고, 실재하지 않지만 엄연히 영상을 위해 만들어진, 그 테마에 맞춰서 만든 앨범이거든요. 여기서는 좀 더 개인적인 성향을 드러내고 싶었고.
100: 앨범 전체가 아닌 개별 싱글에 대한 소비만 이루어지는 세태에 대한 역행 혹은 반발 같기도 해요.
김C: 만약 누군가 이문세 4집중에 ‘그녀의 웃음소리’만 알고 나머지는 모른다면 얼마나 안타까워요. 앨범은 연결된 몇 년간의 기록을 담은 거고 그것이 소중한 건데 오직 한 곡만을 소비하기 위해 만든 게 아니거든요. 그러면 아예 그 때 그 때 싱글을 내야겠죠. 그래서 이번 앨범은 기승전결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어요. 현대인들이 사고하기가 너무 어려운 세상이잖아요. 일어나, 일해, 회식이야, 먹어, 자. 그저 책꽂이에는 몇 년 안에 몇 억 벌기 같은 책이나, 처세서 혹은 소비적인 요소의 책만 있어요. 저는 이 세상이 조금만 더 낭만적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사운드트랙과 함께 나만의 영화를 만들었고요. 우리 어릴 때는 청각을 통해 시각을 느낄 수 있던 시간이 분명히 있었거든요. 음악을 듣고 있으면 눈 에 주인공이 풀밭을 걷고 있고 바람에 갈대밭이 흔들리고 별을 보고 눈물이 쏟아지고. 여기, 우리가 사운드트랙을 만들어 줄 테니 다른 이들 역시 이 음악을 듣고 가슴에 한 편씩 영화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었던 거죠.
“예능프로그램은 아직까지도 부담스럽고 어려운 종목” 100: 그나저나 김C가 쓰는 영화라니 막연히 특이하고 괴상할거라 생각할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요. 예를 들자면 같은 류의. 그런데 시나리오를 쓴 의 감성도 그렇고 이번 김태우와 배두나가 등장한 러브스토리 도 그렇고 의외로 가장 통속적인 멜로드라마를 선택했어요.
김C: 물론 제가 써놓은 시나리오 중에는 , 같은 것도 있지만 이런 작품을 가지고 음악을 만들면 너무 많이 나가야 하니까. (웃음) 통속적이고 보편적 이야기를 선택하게 된 거죠. 아무래도 감정의 기승전결이 있어야 되는 작업이었으니까요.
100: 그런데 진짜 낭만은 종종 이런 통속과 클리셰 속에서 발견되곤 하잖아요.
김C: 저도 사실은 이라던지 , 같은 작품을 좋아해요. 가끔은 찌르고 베고 이런 거도 멍하니 좋을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가슴 시리고 눈물이 주렁주렁 날 것 같은 영화가 좋아요.
100: 어디선가 는 “낭만 유지법을 찾고 있는 앨범” 이라는 이야기를 했던데 김C 머리속에 있는 낭만의 풍경은 무엇일까요?
김C: 음… 낭만… 비빔밥을 먹을 때 고추장 그릇을 앞에 있는 그녀에게 먼저 건네주는 것, 그런 게 낭만 아닐까 싶어요. 나보다 먼저 그 사람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소한 배려. 낭만적이어야 가능한 일이니까요.
100: 어린 시절부터 영화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 기억의 첫 장은 어디에서 시작되나요?
김C: 역시 죠. 물론 저는 마징가가 싫었어요. 착한 척 힘세고 맨날 이기고. 스토리가 매일 같았으니까. 대신 마징가를 괴롭히는 악당이 좋았어요. 그렇다고 주인공이 싫은 건 아닌데 너무 정의로운 건 좀 안 맞아요. 같은 영화를 보고 있으면 어휴, 저런 연기를 진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죠.
100: 시나리오도 꾸준히 써온 걸로 알고 있어요. 혼자 몰래 써서 간직해두는 편인가요?
김C: 아뇨, 주변 친구들에게 이메일로 연재를 하는 식으로 써요. 그러면 어느 순간 왜 다음 편 안 쓰냐고 독촉이 들어오거든요. 결국 강제로 라도 쓸 수밖에 없어져요. (웃음) 독자는 … 2명 정도?
100: 2007년 10월 28일 밀양 편부터 합류한 ‘1박 2일’도 벌써 3년 째 접어들었어요. 기본으로 자고 오는 출장이 끊이지 않는 직장인으로 꽤 오래 살았네요.
김C: ‘1박 2일’을 찍다 보면 정말 한 달이 빨리 간다는 걸 느껴요. 한번 가면 2주치를 하니까, 두 번 찍으면 한 달이거든요. 정말 훅훅 지나가요. 그 사이사이 앨범도 만들어야 하고. ‘1박 2일’ 촬영이 있는 주는 월요일부터 경직돼요. 나만 그러는 게 아니고 다들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하기 싫어서라기보다는 대본이 없으니까 여전히 부담감이 커요. 워낙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프로그램이기도 하고.
100: 하지만 처음 도전하는 연극에서 떨지 않을 수 있고 순발력을 발휘 할 수 있었던 것도 다년 간 리얼리티 쇼에서 단련된 긴장감이 도움이 되었을 것 같긴 해요.
김C: 예, 알게 모르게 트레이닝이 되었겠죠? 원래 울렁증이 되게 심해요. 혼자 노래할 때는 내가 생각해도 명창이다 싶을 때가 있는데 (웃음) 무대에 올라가면 항상 50, 60%밖에 못 보여주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창피한 것을 떨쳐내기 위해 한잔할 때도 있고.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요, 혼자 하듯 누군가 앞에서 보여줄 수 있다면 다들 대단한 거예요.
100: 그래도 3년간 카메라 앞에서 먹고 자다 보니 조금씩 변하는 부분도 있나요?
김C: 예능프로그램은 아직까지도 부담스럽고 어려운 종목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사실 기복이 없어야 프로인데 저는 기복이 되게 심하거든요. 어떤 날은 가만히 서있다 오기도 하고. 어떤 날은 수동적이라도 재미를 줄 때가 있고. 근데 진짜 프로는 자기가 끌고 나가더라고요. 그런데 전 아직 아닌 거죠. 강호동씨처럼 주변에서 도와줘서 이만큼 하는 거예요. 김C 먹어, 김C 뛰어, 스스로는 잘 못해요.
100: 다른 분야에는 욕심을 내기 시작하면 한정 없이 능동적인 사람인데 말이죠.
김C: 여전히 어렵더라고요. 내가 뭘 해야 될지 아직도 나에게 물어봐요.
“사회가 좀 더 어른스러웠으면, 좀 크게 놀았으면 좋겠어요” 100: 그나저나 최근 오랫동안 준비했던 남극행이 불발되어서 속상하시겠어요.
김C: 선택 받은 사람들만이 갈수 있는 제한적인 곳인데 못 가게 된 건 정말 아쉽죠. 하지만 어찌됐건 한 나라가 경험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는데 안전도 안전이지만 우리 욕심만 부릴 수는 없으니까요. 정말 자연 앞에서는 까불면 안 된다는 걸 느꼈어요. 스태프들이 오래 노력한 것들이 모두 수포로 돌아간 건 안타깝지만 완전 포기 아니고 연기니까 언젠가 또 가게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죽도록 아쉽지는 않아요. 신을 믿는 건 아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던 거겠죠.
100: 나 혹은 몇몇 스페셜 다큐멘터리에서 나레이터로서 활동이 활발한데 미성이기도 하거니와 굉장히 설득력이 있는 목소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C: 원래 제가 나오는 방송은 거의 안 보는데 은 한두 번 정도 본 것 같아요. 는 너무 이른 시간이라 못보고. (웃음) 주로 슬프고 우울하고 찌질하고 눅눅할 이야기 할 때만 저를 부르시더라고요. 산뜻하고 보송보송한 건 안 시켜요. (웃음)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다큐를 좋아해서 따라 보다가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녹음을 할 때는 나부터 재미있어야 하니까 안보고 그냥 들어가는 편인데 이상하게도 잘 안 틀리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그것도 재주인가 봐요. 목소리 쪽으로는 장동건 씨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분이 스스로 잘생겼다고 생각 안 합니다, 그런 것처럼. 저 역시 목소리가 좋아요, 라고 했을 때 이해를 못하겠어요. (웃음)
100: 얼마 전 개봉한 다큐멘터리영화 의 경우에 ‘다큐 프렌즈’를 자청해 적극적으로 홍보에 참여하기도 했잖아요.
김C: 어렵게 열심히 만든 작품인데 사람들이 많이 볼 가능성은 없지만 그래도 소수라도 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돕는 거죠. 그것 때문에 어떤 집단에서는 나를 안 좋게 볼 거라는 계산보다는 나를 통해 이런 영화를 봐서 후회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그냥 고! 가는 거죠.
100: 같은 회사에 있는 김제동 씨에게 가해지는 일련의 사태들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드세요?
김C: 방송하고 진행하는 것이 그 사람 직업인데 직업을 빼앗는다는 게 어떤 걸까, 말하자면 회사에서 해고당하는 것과 같은 거잖아요. 그런데 아이러니는 일을 못해서 그런 건 아닌 거라는 거죠. 한 사람에게만 큰 책임을 지우려는 게 너무 안타까워요. 나랑 생각이 다르니까 놀기 싫어, 일종의 왕따 같은 거잖아요. 사회가 좀 더 어른스러웠으면, 좀 크게 놀았으면 좋겠어요.
100: 혹시 본인의 이런 저런 외부활동 역시 세상의 주류세력에게는 모난 돌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은 없어요?
김C: 그러게요. 난 왜 그런 거에 대한 두려움이 없지? 내가 그 사람들보다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을 텐데. 아마도 전 영향력이 없나 봐요. 아! 그러고 보니, 나 무시당했네. 허허, 이거 은근히 섭섭한데요. (웃음)
100: 바로 다음 앨범작업에 들어가나요?
김C: 마스터링 끝내고 돌아오는 날 (고)범준과 둘이 앉아서 다음 앨범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일정수준의 나이가 지나면 자꾸 과거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아지거든요. 내가 스무 살 땐 말야, 우리가 옛날엔 말야 하는 속에서 미래가 없어져요. 그런데 범준이랑 있으면 과거 이야기를 안 해요. 앞으로 뭘 할지 이야기 하는 것만으로도 바빠요. 이제 겨우 공연매진이란 걸 해봤고, 다음 달이면 더 큰 공연장에서 공연을 할 계획이고, 음악적으로도 과거를 답습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뜨거운 감자는 성장 판이 안 닫힌 40대 밴드인 거죠. 창작에 관해서는 끊임없이 치열하고 싶고, 치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나의 원동력이었으면 좋겠고. 캬아- 우리가 2집 땐 죽였는데? 가 아니라 계속 더 죽이는 걸 하고 싶어요.
100: 그렇게 죽이는 뜨거운 감자 5집은 어떤 맛일지 약간만이라도 알려주세요.
김C: 굉장히 마초적인 음악을 해보자, 라는 말을 했어요. 껌 좀 씹으면서, 침 좀 뱉으면서 하는, 내일은 없을 듯한 음악들. 다 닥치라 그래, 하는 그런 음악. (웃음)
글, 사진. 백은하 one@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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