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이하 )와 KBS 은 모두 다른 의미에서 전지전능한 인물을 다루고 있다. 의 최강타(송일국)는 굴지의 기업에 투자고문으로 있는 한편 국제적인 테러리스트이기하다. 돈과 권력 육체적인 능력까지 탁월한 최강타는 자신의 복수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신에 가까운 능력을 가진 그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의 이신미(이보영) 또한 월급을 무기로 노동자들에게 권능을 휘두르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벌은, 부자는 거의 신과 같기 때문이다. 모든 것의 가치가 돈으로 다시 환원되는 세계에서 이신미의 무기인 돈은 최석봉(지현우)이 본래 지위인 재벌가의 일원이 되기 위해 갖은 수를 쓰는 가장 큰 이유다. 이들 드라마는 신과 부자가 아니면 살아 남기 힘든 세상에 대한 현실 반영일까? 최지은 기자와 윤이나 TV평론가가 신과 부자의 세계를 방문했다. /편집자주

적에게 붙잡힌 비비안(한고은)을 구하기 위해 아슬아슬한 공중 탈출을 감행한 뒤, 적진에 도착해 수많은 적들을 무찌르는 마이클 킹(송일국). 마지막 적을 베어낸 바로 그 순간, 배경은 바뀌고 마이클은 적진이 아니라 캐슬요새에 서 있다. 가상의 훈련이 끝나고 발명가인 박홍춘(정원중)이 공격의 성과에 대해 평가하며 공격이 실패한 부분을 지적하자 마이클은 대답한다. “나는 신이 아니야.” 이 첫 회의 첫 시퀀스에는 (이하, 신불사)가 앞으로 보여줄 세계와 세계관이 그대로 담겨있다. 마이클 킹의 ‘신이 되는 그 날’을 목표로 모두가 달려가는 가상의 세계. 그게 바로 의 처음이며 끝이다.

마이클 킹과 그의 명령만으로 움직이는 세계
<신불사> vs <부자의 탄생>│신과 부자만이 살아 남는다
vs <부자의 탄생>│신과 부자만이 살아 남는다" />마이클 킹이 투자고문으로 있는 캐슬사(社)는 단순한 기업이 아니라 마이클 킹의 또 다른 이름인 최강타의 복수를 위해 존재하는 돈과 권력의 총체다. 어쩌면 최강타의 미국 이름이 마이클 킹인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의 세계는 견고한 성이며, 최강타는 그 성의 왕, 곧 성주인 셈이다. 그 성 안에서는 세상을 지배하는 법칙들이 통용되지 않고, 오직 성주의 명령과 의지만이 성 안의 세계를 움직이는 동력이 된다. 그래서 의 세계에서 ‘저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묻는 일은 무의미하다. 한국인이 수염을 붙이고 선글라스만 쓰면 손쉽게 아랍인으로 변장이 가능하고, 원한다면 어떤 사람이든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들을 수 있으며, 필요하다면 언제 어느 때, 어느 곳으로도 침투할 수 있는 의 세계는, 말 그대로 최강타의 손바닥 위에 있다. 이런 세계에서 총보다 활이 빠르다든가 하는 식으로 물리적인 법칙이 위배되는 것 정도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의 배경 역시 현실의 대한민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모델로 한 가상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최강타의 4적(敵)인 황달수(이재용), 이형섭(정동환), 장용(정한용), 강태호(김용건)는 속에서는 돈으로 인해 타락한 군, 법, 자본권력을 의미하고 있지만, 그들이 대한민국 현실의 동일한 계층을 은유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들은 단지 최강타의 복수극을 위해 이미지로만 끼워 맞춰진 캐릭터에 가깝다. 그들이 가진 돈이나 권력은 자신들의 머리 꼭대기에 서 있는 최강타 앞에서 무용지물로 변해버린다. 원작 만화에서 이러한 설정은 부정적인 방법으로 권력을 획득한 자들을 응징하는 히어로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원작이 드라마로 각색되는 과정에서 단행본 350권에 이르는 내용이 최강타의 복수극으로 축소되면서, “신을 대신하여 악을 응징하는” 최강타의 모습은 거의 드러나지 않고 오직 최강타의 전지전능함을 묘사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것은, 최강타가 절대 진리가 되어버린 지극히 단순한 세계관이 위정자들의 그것과 닮아있다는 것이다. 목적의 달성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술수를 쓰는 것도 용인되며, 선악을 재단하는 기준은 오직 ‘보스’에게만 존재한다. 그래서 는 오히려 역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대한민국의 현실 사회를 바라보는 흥미로운 텍스트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개연성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 조악한 CG, 우연의 남발, 지극히 마초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여성캐릭터, 뻔한 사건 전개는 를 ‘현실성이 완벽하게 결여된 드라마’로만 바라보게 만든다.

언제나 상상 이상을 보여주는
어릴 적 눈앞에서 아버지가 살해당하고 어머니가 불에 타 죽는 악몽 같은 경험을 한 입양아 최강타와, 과거가 알려지지 않은 캐슬사의 투자 고문 마이클 킹, 누구도 정체를 알지 못하는 국제 테러리스트 피터팬은 최강타의 강인한 몸 안에서 충돌하지 않고 완벽한 삼위일체로 녹아있다. 는 바로 그런 최강타를 위한, 최강타에 의한, 최강타의 세계다. 이 단순 무구한 최강타의 세계에 미묘한 균열을 냄으로서 를 드라마로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 바로 진보배(한채영)의 역할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오래 전에 최강타의 마성에 빠져버린 상태다. 모든 것이 최강타의 뜻대로 이루어지면서 는 최강타가 미션을 수행하는 게임처럼 변했다. 하지만 이 게임이 시시한 것은 누구도 최강타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극적인 순간이면 언제나 는 “상상 그 이상”을 보여준다. 상상 이상으로 나쁘다. 한 사람을 신으로 만들기 위해서 재창조해낸 세계라고 하기엔 의 세계가 너무나 허술하게 구축되어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 의문을 제기하면 최강타는 대답할 것이다. “Why not?” 이 반문은 를 향한 어떤 의문도 모조리 튕겨낼 수 있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최강타는 대체 언제 ‘세상에는 안 되는 것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까. 하지만 속의 최강타가 그 사실을 깨달을 날이 오기란 요원해 보인다. 그렇다. 바로 그래서 안 되는 것이다.
글 윤이나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 재벌 부모와의 재회를 꿈꾼다. 그러나 그것이 꼭 현재의 부모에 대한 불만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그보다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지금보다 앞선 출발선에서 시작하고 싶다는 욕망의 발현에 가까운 상상이다. 나 하나의 힘만으로는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이 첩첩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로또 1등 당첨이나 먼 친척으로부터의 유산 상속, 재벌 친부모와의 상봉처럼 기적에 가까운 우연들은 꿈이 되고 신화가 된다. KBS 은 그 신화에 관한 이야기다. 재벌가의 일원이었던 남자는 우연히 만난 서민 여성과 하룻밤을 보낸 뒤 피치 못할 사정으로 헤어졌지만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최석봉(지현우)은 출신에 대한 강한 자긍심을 지닌 채 자라서 친부를 찾아 나선다.

신의 아들을 증명하기 위한 미션 클리어의 나열
<신불사> vs <부자의 탄생>│신과 부자만이 살아 남는다
vs <부자의 탄생>│신과 부자만이 살아 남는다" />존재를 인지 받지 못하던 자식이 성장 후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표식을 가지고 부모를 찾아가 혈통을 인정받는 스토리는 고구려의 유리왕이나 그리스 신화의 테세우스처럼 많은 신화 속 주인공들이 거쳤던 과정이다. 아버지가 남긴 목걸이 외에는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호텔 직원 최석봉이 까다로운 성미의 ‘진짜’ 재벌 2세 이신미(이보영)와 파트너가 되어 미션을 수행해나가는 것 역시 그가 ‘신의 아들’임을 증명하기 위한 통과 의례라고 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신미와 최석봉의 대결, 혹은 이신미와 또 다른 재벌 2세 부태희(이시영)의 대결이 완결성을 지닌 스토리의 일부라기보다는 각각의 장에서 분절된 과제를 제시하는 자기계발서에 가깝다는 점이다. 호텔 부지를 매입하기 위한 패션 디자인 승부에서 이긴 다음에는 광고 모델의 스캔들을 막아야 하고, 커피 사업을 수렁에서 건지고 난 뒤에는 돈에 인색한 지방 유지에게 보험 상품을 판매해야 하는 식이다. 그리고 대학 시절 주식투자대회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둔 비즈니스 감각과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심성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최석봉은 재벌 아들이라는 후광 대신 ‘능력’을 인정받는다. 물론 주어진 과제의 무게에 비해 해결 방식이 “부자가 되고 싶으면 부자가 사는 대로 살아보라”는 최석봉의 공허한 조언만큼이나 어설프고 단순하다는 사실은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이신미를 중심으로 하는 ‘좋은 부자’의 케이스가 자본과 노동, 시장에 대한 통찰 없이 개인의 성격 차 정도로 그려진다는 한계도 뚜렷하다. 대신 친자확인과 목걸이 분실, 새로운 인물의 등장 등 최석봉 아버지의 정체를 둘러싼 비밀은 성공적인 미스터리 구조를 만들며 궁금증을 자아내고 매회 후반 등장하는 반전 역시 다음 회를 보게 만드는 힘을 갖는다.

에 이은 이 의미하는 것
그래서 이 수많은 시험을 통과한 최석봉이 특채로 오성 그룹에 입사하게 된다는 사실은 어쩐지 의미심장하다. 청년실업 수백만 시대에 아무 것도 물려받아 가진 게 없는 이들에게 마지막 신분상승의 수단은 사실 존재하는지 확인할 길조차 없는 재벌 부모를 찾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비록 노동자와 사노비의 개념을 구분하지 못하는 오너의 자식 밑에서 일하게 된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2010년 KBS가 에 이어 을 내놓았으며 이 두 작품이 일정 이상의 흥행에 성공했다는 사실은 지금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최상의 가치가 학벌과 자산임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킨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주었던 책 의 주인공처럼 당장 고급 레스토랑에 갈 수 없어도 부자들의 테이블 매너를 공부하며 “언젠간 나도 그들과 똑같이 살 운명”이라 자신하던 최석봉은 과연 재벌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더라도 그렇게 살 수 있을까.
글 최지은

글. 윤이나(TV평론가)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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