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니 하룻밤 사이에 스타가 되었다는 진부한 묘사는 사실 현실에서 쉽게 실현될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진심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웃음이라는 결과물을 내놓아야 하는 예능계에서 벼락스타가 되기란 하늘의 별을 따기보다 어렵다. 그러나 예능 프로그램의 특성을 알고 그에 맞는 훈련을 잘 거친 사람은 결국 시청자들을 유혹하는데 성공하고, 제작진의 신임을 얻어 고정 출연자의 자리를 얻는다. 다음의 8단계는 그러한 과정을 요약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거꾸로 말하자면 결국 성공이라는 열매를 맛본 어느 예능인의 ‘한살이’라 할 수도 있는 기록이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선호하는 게스트 군은 크게 둘로 나뉜다. 첫 번째는 홍보가 필요한 배우, 혹은 가수들로 이들은 주로 신작 발표에 맞춰 주목도를 높이고자 방송 출연을 감행한다. 두 번째는 프로그램에 활기와 재미를 불어 넣어 줄 수 있는 출연자다. 게스트들은 방송의 재미와 화제성을 지키기 위해 사전 회의를 통해 ‘에피소드’를 준비하는데, 출연 자체만으로도 이슈가 되는 전자와 달리 후자의 경우에는 에피소드의 견고함과 파급력이 더욱 많이 요구된다. 웃음을 목적으로 한 게스트들은 대부분 일회의 출연을 프로그램에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기회로 만들고자 하는 욕망을 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들은 스스로 연대를 조직해 이미지를 상품화 하거나 미리 연습한 개인기를 통해 인상을 남기고자 노력 한다. 그러나 이에 앞서 초보 게스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남다른 리액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방송의 꽃은 홍보성 이벤트라 할지라도, 편집의 꽃은 반드시 훌륭한 리액션이다. 한번이라도 카메라에 더 잡히는 자가 다음 한 발을 내딛을 수 있는 법이다.

실전사례
MBC ‘라디오스타’에서 ‘군필 연예인’이라는 패키지 게스트로 등장해 유키스의 안무를 패러디하고 개인사를 무차별 공개하며 자신들의 컴백을 알리며 이 프로그램 전, 후로 거의 모든 예능 게스트를 섭렵한 김종민, 천명훈, 노유민.

명절 특집으로 방송되는 예능 프로그램이 특히 선호하는 출연자로는 젊고 인기 있는 트로트 가수, 그리고 시청자들에게 낯이 익은 연예인의 가족, 한복 입기를 꺼려하지 않는 외국인 방송인 등이 있다. 이와 같은 출연군을 명절 고정이라 분류하며, 이들은 설과 추석, 두 번에 걸쳐 예능 프로그램의 주요 출연자로 섭외되는 행운을 누릴 수 있다. 물론, 이 기회를 잘 살린다면 보다 넓은 예능의 기회가 제공된다. 일반 남성과 결혼한 외국인 며느리가 명절맞이 외국인 노래 경연대회에 출연한 뒤 준 예능에 해당되는 아침 방송이나 케이블 리포터로 활약하는 케이스가 가장 빈번하다.

실전사례
지난해 추석 특집 MBC 에 출연해 테니스 라켓 통과하기 묘기를 선보였으며, 올해 설 특집 에 다시 출연해 노홍철이 자신을 부르는 애칭이 “(강)아지야”라고 밝힌 장윤정.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인상을 남기더라도 그 활약이 반드시 고정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에피소드는 금방 고갈되며, 개인기 역시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제작진은 경험을 통해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가능성이 엿보이나 부족함을 간과할 수 없는 출연자는 때때로 게스트들의 면면이 허전하거나, 긴급한 사정으로 대신 자리를 채워줄 사람이 필요할 때 출장 고정으로 방송에 투입돼 갑작스러운 테스트를 받고는 한다. 이러한 기회를 잡았을 때, 당사자는 일반 게스트의 몫을 해내면서도 그 이상의 노련함과 센스를 발휘할 필요가 있으며 특히 중요한 것은 사전 준비를 능가하는 캐릭터의 완성도를 강력하게 어필하는 것이다. 붐, 김나영과 같이 마이너리그에서 이미 캐릭터와 순발력을 갖춘 방송인들이 출고시기를 거쳐 금방 고정 대열에 합류했으며, 최근에는 데니 안이 이러한 길을 걷고 있다.

실전사례
MBC , KBS 에 가끔 출연하지만 언제나 쉽게 탈골되는 허약한 이미지, 곱게 자란 귀한 외동아들의 과거, 소심하고 조심스럽지만 빈약한 준비성으로 점철된 캐릭터를 유지하는 박휘순.
2010 인간시장│반고부터 MC까지, 레귤러가 되리
2010 인간시장│반고부터 MC까지, 레귤러가 되리
캐릭터를 만들고, 경력을 쌓아 흐름을 읽는 눈을 갖게 되었다 하더라도 결정적인 매력 포인트가 부족하다면 아직도 고정의 길은 요원하다. 특히 특정 프로그램에 아주 빈번히 출연하고는 있지만 다음 회 출연이 늘 불안한 반 고정의 상태라면 보다 정신을 바싹 차려야 한다. 준비해 온 에피소드나 개인기에 의존하기에는 그 웃음의 정도가 균일하지 못하며, 캐릭터 자체는 방송 전반에 녹아들어 다른 출연자들과 시너지를 일으키는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빠진 자리에는 분명 흔적이 남기에 제작진이 그 다음번에 다시 섭외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다. 문제를 빨리 파악하고 수리하는 것만이 살아남는 방법이다.

실전사례
에 출연해 롤러스케이트 개그, PD공책 등 준비해 온 것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지만 때때로 ‘하바야’를 외치는 김정렬에게도 방송 분량이 밀리는 등 평균 점수에서 아직 부족한 김현철.
2010 인간시장│반고부터 MC까지, 레귤러가 되리
2010 인간시장│반고부터 MC까지, 레귤러가 되리
평균 이상의 재치와 고유의 캐릭터를 인정받은 방송인들은 예능프로그램에 매주 출연하는 고정의 영광을 누리게 된다. 고정은 단지 안정적인 섭외를 의미하는 것 뿐 아니라, 장기간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함으로서 시청자들에게 친숙해 질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장점 또한 포함한다. 이에 더해 프로그램 안에서 고정 출연자들은 자신만의 역할과 캐릭터를 더욱 구체적으로 개발할 수 있으므로 하나의 고정은 또 다른 고정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이영자, 홍진경, 최화정과 패키지 게스트로 활약하다 SBS 에서 고정 출연자의 역할을 부여받은 후 다수의 방송에서 고정으로 활약하는 김영철의 예는 그러한 과정을 특히 잘 보여준다.

실전사례
KBS , , MBC every1 를 통해 남자 배우, 아이돌에게 들이대면서도 망가질 때는 철저한 준비와 거리낌 없는 용기를 보여주어 부담스러우면서도 밉지 않은 특유의 이미지를 만들어낸 덕분에 일회성 출연에서도 이러한 캐릭터가 이어져 오고 있는 정주리.
2010 인간시장│반고부터 MC까지, 레귤러가 되리
2010 인간시장│반고부터 MC까지, 레귤러가 되리
고정 출연이 확정되었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레벨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의 이특처럼 고정적으로 출연하는 동시에 프로그램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코너를 전담하고 있는 독보적인 고정만이 개편을 앞두고도 여유로울 수 있다. 독고가 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전체의 판을 읽는 눈썰미다. 특별한 장기를 선보이기보다는 흐름에 어울리는, 혹은 흐름을 깨는 한마디로 분위기를 자신의 것으로 몰아오는 촌철살인의 능력이야말로 독고에게 가장 요구되는 자질이다. 또한 독고의 반열에 오른 이들은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자신의 이미지를 메이킹 한다. MBC 에 출연해 “강유미와의 열애설을 일부러 유도했다”고 고백한 유세윤의 예는 다른 출연자와의 관계 형성을 통해 쉽게 지워낼 수 없는 자리를 확보하고자 하는 천부적인 고정 감각이라 할 수 있다.

실전사례
에서는 벨라인의 감독관이자 수정이 잡는 명탐정으로, 에서는 임예진과의 엉뚱한 러브라인을 통해 자신의 인상을 확실히 심어주고 있는 김태현.
2010 인간시장│반고부터 MC까지, 레귤러가 되리
2010 인간시장│반고부터 MC까지, 레귤러가 되리
진행자는 전지전능하지 않다. 그러므로 진행자에게도 자신의 빈틈을 메워주고, 위기의 상황에 기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소파에 앉은 듯 편안하게 자신의 위치를 즐기는 소파 고정은 그런 점에서 진행자의 서브이자, 방송의 대들보와 같은 역할을 한다. 자신의 관계 형성은 물론, 나아가 다른 출연자의 이미지를 포착하고 그들의 관계를 발견해 주는 것으로 진행의 묘를 더하는 것이다. 또한 진행자가 차마 언급할 수 없는 디테일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것 역시 소파 고정의 몫이다. 프로그램 전체의 그림을 파악하고 있으며, 게스트들이 순간의 눈치 싸움에 집중할 때 다음 수를 생각해야 하는 소파 고정의 역할 범위는 실상 진행자와 크게 다르지 않으며, 실제로 박미선의 경우와 같이 이러한 자리를 거쳐 진행자로 성장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실전사례
, 스토리온 를 비롯해 다수의 프로그램에서 진행자의 보좌로 활약하고 있으며 SBS 에서는 실제로 소파에 앉아서 진행자보다 오래된 고정 출연자의 위엄을 뽐내더니 결국은 공동 진행자로 승격 된 조형기.
2010 인간시장│반고부터 MC까지, 레귤러가 되리
2010 인간시장│반고부터 MC까지, 레귤러가 되리
예능에 발을 내딛은 사람은 누구나 고정 출연을 꿈꾼다. 그리고 모든 고정은 진행자를 꿈꾼다. 그러나 진행자에도 1, 2, 3인자의 구분이 있으며 부진이 거듭될 경우 다시 게스트 중의 하나로 강등당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긴장을 늦출 수는 없다. 결국 방송이란 매 순간 집중력을 발휘하고, 그러면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유머를 소화하며, 준비된 자세로 보여줄 무엇인가를 마련해야 하는 종합적인 출연자를 원하는 것이다. 문제는 평범한 인간이 이러한 경지에 도달하기는 어려우며, 더 큰 문제는 어떤 인간은 이러한 지점에 도달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산이 있어 산에 오르는 심정으로 오늘도 예능 초보들은 궁극의 진행자가 되기 위해 더욱 매진해야 할 것이다.

실전사례
혜성처럼 나타난 강호동, 타고난 입담가 신동엽, 서포트를 받아 완성되는 이휘재, 프로그램을 자신만의 색깔로 장악하는 이경규만큼의 카리스마와 천재성을 갖추지 못했을지는 몰라도 게스트, 고정 출연을 거쳐 진행자가 되기까지 누구보다 길고 지루한 계단을 하나하나 밟으며 성장한 유재석.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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