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극단적인 목소리라고도 했지만 그렇게 당신의 목소리와 호흡에 맞추면서 일종의 극단적 음악이 나온 게 아닌가 싶다. 이게 한국 음악의 새로운 한 지점을 열었다고 할 때 당신의 음악은 좀 더 거시적인 지형도 안에서 받아들여진다.
루시드폴: 그럴 수 있는데 내가 그걸 의식하던 의식하지 않던 보질 못한다. 예를 들어 인터뷰를 할 때 기자가 음반 잘 나가서 좋겠다고 말해도 나는 체감이 잘 안 된다. 당신의 음악을 우리는 이렇게 받아들인다고 해도 잘 모르겠고. 지금 4집까지 냈지만 아직까지도 그런 면에서 좋게 말하면 순진하고 나쁘게 말하면 어리다. 출발점도 인디였고 중간에 다른 일도 했기 때문에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이 음악계라는 곳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떤 사람들은 자기 포지션을 잘 보고 자기 강점이 뭔지 단점이 뭔지 잘 알고 전략적으로 갈 길을 찾는데 나는 좀 어리바리하다.

“최근엔 내가 변했다는 얘기를 듣는다”
루시드폴│“과연 어떤 가사가 좋은 걸까?” -2
루시드폴│“과연 어떤 가사가 좋은 걸까?” -2
비록 본인이 잘 느끼지 못하더라도 전체 그림 안에서의 포지션 변화는 결과적으로 당신의 음악이나 행동에 대한 사람들의 해석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다.
루시드폴: 사실 최근에 연세대에서 공연을 하면서 스태프에게 변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서울에선 최초로 900석 짜리 공연이었고 세션도 두 배로 늘어난 터라 4년 만에 티켓 가격도 2만 2천 원 올려 받았다. 무대에 섰더니 1800개의 눈이 나를 바라보는데 그 수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담감이 생긴 거지. 그러다보니 스태프들이 좀 더 최선을 다해줬으면 싶은 생각이 드는 거다. 물론 그분들도 열심히 했겠지만 내 눈에는 계속 아쉬운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시쳇말로 조금 까칠하게 굴었다. 그런데 그게 어떤 분들에겐 안 좋아보였는지 왜 전처럼 여유롭지 않느냐, 왜 변했느냐는 얘기를 들었다. 솔직히 지금도 많이 서운하다. 최선을 다하고 싶어서 싫은 소리를 할 수도 있는 건데 몇 년이나 같이 일한 사람에게 그런 얘기를 들으니까.

당신의 가사에 대한 호불호의 편차가 커지는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치유의 음악이라는 타이틀이 붙으면서 한 뮤지션의 자유로운 단상으로만 받아들여지지 않는 거 같다.
루시드폴: 어떤 분이 그런 얘기 하시더라. 가사에 대해서 좋다 나쁘다는 얘기가 종종 나오는 건 어쨌든 가사가 이슈가 되는 거니까 만족하라고. 그런데 과연 어떤 가사가 좋은 걸까. 항상 고민하는 숙제다.

말하자면 앞서 말한 광화문 광장이나 자본주의적 사회에 대한 아쉬움들을 좀 더 직설적으로 해주길 바라는 게 아닐까? 디지털 싱글인 ‘물고기 마음’에서 ‘당신의 목소리 되어 내가 이렇게 노래하려 해’라는 구절도 있지만 당신의 이 동시대의 불쌍한 사람들을 대변하는 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루시드폴: 이번 앨범에서 말하는 불쌍한 사람들이 특정 계급을 가리키는 건 아니다.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멀쩡해 보이는 사람을 봐도 알고 보면 안됐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좋은 직장 다니고 가정을 꾸리는 아는 형을 봐도 같이 소주 한 잔 마시다 어느 순간 보면 어깨가 처져 보인다. 그런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음반이다.

하지만 ‘외톨이’나 ‘고등어’ 같은 곡에서 어떤 계급적 비교를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꽃등심과 고등어의 비교도 그렇고.
루시드폴: 우선 ‘외톨이’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아이들은 예외적인 경우라고 본다. 일단은 약자고 무조건적으로 보호해야 할 존재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못한 대우를 받는 아이들이 너무 많으니까. 아이들의 1년은 커서의 10년을 지배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얘길 하고 싶었다. 그리고 고등어는… 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긴 한데 그렇다고 꽃등심을 비롯한 비싼 거 먹는 사람을 미워하자는 얘긴 아니다. 비싼 거 못 먹는 사람이 소중하다는 것도 아니고.

그럼 과연 고등어가 환기하는 건 무엇일까.
루시드폴: 싸기도 하지만 염장을 해서 전국적으로 먹은 생선이지 않나. 그러다 보니 고등어는 보편적으로 먹는 음식의 이미지가 있다. 심지어 스위스에서도 가장 싸서 먹었던 게 고등어였고. 이 노래를 싼 걸 먹는 약자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중산층 가정 밥상에 흔히 올라오는 반찬으로서의 고등어로 받아들이면 좀 더 보편적 이야기로 들을 수도 거다.

“그냥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면 되는 거 같다”
루시드폴│“과연 어떤 가사가 좋은 걸까?” -2
루시드폴│“과연 어떤 가사가 좋은 걸까?” -2
루시드폴│“과연 어떤 가사가 좋은 걸까?” -2
루시드폴│“과연 어떤 가사가 좋은 걸까?” -2
즉 일종의 메타포인 건데 너무 즉물적으로 한 손에 얼마짜리인 실제 고등어로 치환하면서 오류가 생길 수도 있겠다.
루시드폴: 어쩌면 이면수가 될 수도 있고, 꽁치가 될 수도 있고. 사실 꽁치가 좋긴 한데 노래 제목으로는 좀… (웃음)

가사의 내용만큼이나 형식미를 좀 따지는 거 같다. 시처럼.
루시드폴: 시와 가사는 다른 것 같다. 예전에는 시 같은 가사를 쓰고 싶다고 했었는데 시간이 흐르니 생각이 바뀌었다. 두 개의 영역은 다른 것 같다. 좋은 시가 꼭 좋은 가사가 되거나 좋은 가사가 좋은 시가 되는 건 아니더라. 독자적인 게 아닐까.

아예 다른 장르라는 건가.
루시드폴: 귀로 듣는 거니까. 운율이나 그런 걸 말하는 건 아니다. 귀를 통해 사람들 머리에 쉽게 들어갈 수 있는 내용과 형태가 있는 것 같다. 예전에 가사를 객관적으로 고민해서 쓴 게 하나 있고, 하나는 정말 쉽게 대화하듯 썼는데 그 중 첫 곡을 친구에게 불러주니 가사가 안 들리니 따로 써달라는 거다. 그런데 두 번째 곡은 가사가 들린다고 했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노래를 통해 들릴 수 있는 것도 중요하지 않나.

그런 면에서 당신이 음악을 하고 싶다고 할 때 그 의미가 다층적인 것 같다. 작곡을 하고 싶다는 건가,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건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는 건가.
루시드폴: 나라는 존재 중심으로 살아왔지만 음악을 하는 방식이 굉장히 여러 가지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나는 컨덕터도 아니고 프로듀서도 아니다. 프로듀서는 정말 다양하게 음악을 알고 이론적 배경이 있어야 한다. 왜냐면 다른 연주인들과 커뮤니케이션해야 하니까. 예를 들어 유희열 씨는 프로듀서지. 그런데 나는 아니더라고. 지금의 나는 노트에다가 볼펜이나 연필로 가사를 쓰면서 코드를 짚는 싱어송라이터다. 내가 생각하는 싱어송라이터는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방만한 생각일 수 있지만 노래를 조금 못 부르고 악기를 못 다루더라도 이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귀를 기울이게 할 수 있는 사람.

그 이야기가 청자에게 어떤 의미였으면 좋겠나.
루시드폴: 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청자를 위해 무언가를 해준다는 생각을 하고 쓰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다. 위로하는 곡을 써야지, 뭔가 비판하는 곡을 써야지 이런 생각을 하면 헛힘이 들어갈 거 같다. 쓰고 싶은 이야기 쓰면 되는 거지,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이상의 생각을 하진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게 맞는 거 같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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