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노팅힐>에서 윌리엄(휴 그랜트)은 세계적 스타 안나(줄리아 로버츠)와의 만남에 대해 초현실적 경험이라는 표현을 썼다. 아마 한국에서 정우성을 만나는 것 역시 비슷한 경험일 것이다. 한 손엔 향긋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시거를 들고 있는 그와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말하자면 산타클로스를 만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하지만 정말 초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은 오히려 그런 정우성이 영화를 찍기 위한 다분히 현실적인 고민을 드러내며 땅에 발을 디뎠을 때다. 그래서 다음은 현실적인 내용이라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던 대화의 기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허진호 감독과는 첫 작업이다. 그의 스타일을 좋아하는 편인가.
정우성
: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는 굉장히 좋아한다. 하지만 <외출>이랑 <행복>은 별로…

왜 별로인가?
정우성
: <외출>은 이를테면 굉장히 순진한 국어 선생이 아이들 앞에서 성교육을 하려니 뭐가 맞지 않는 그런 느낌이었다. 외설을 모르는 사람이 외설적인 느낌의 작업을 하려니 자연스럽지 않은 느낌? <행복>은 주인공이 너무 우울한 캐릭터였다.

“<호우시절>엔 사소한 일상 속 찬란한 순간이 느껴졌다”

그럼 <호우시절> 시나리오에선 당신이 좋아하던 허진호가 보인 건가.
정우성
: ‘허진호스러움’이 있었다. 사람들은 <봄날은 간다> 같은 걸 보고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같은 대사로 영화를 간직할지 모르겠는데, 나는 상우(유지태)가 소리를 모으기 위해 조용히 손을 벌리고 들판에 서있거나,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주인공들이 말없이 하드 먹고 앉아있는 모습을 좋아한다. 그냥 사소한 일상인데 찬란한 순간들 있지 않나. <호우시절>에선 그런 것들이 느껴졌다.

현재 그런 일상적인 걸 누리기 어려워서 더 마음이 움직이진 않았나.
정우성
: 그런 것 같다. 애초에 내가 그런 것들을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이다. 길을 걷거나 멍하니 사람들 구경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데 스타가 되고 정우성이 되면서 그런 게 어려워졌다. 사람들이 규격화한 정우성의 이미지에 나를 한정하는 것에 대해 나 스스로는 상관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나도 모르게 그것 때문에 외향적인 정서나 일상이 단순화됐다. 돌이켜 보면 가는 곳만 가고, 만나는 사람만 만난다. 길을 걷는 건 언젠가부터 포기했다. 그런 일상이 없어졌다.

그럼 이번 연기를 통해 그런 결핍을 충족했다고 봐도 될까?
정우성
: 그럴 수도 있겠지. 시나리오를 통해 전달되는 그런 일상의 순간들과 감정들을 느꼈다. 극적인 걸 위해서 강요하는 그런 감정들보다는 일상에서 툭툭 던지는 사소한 감정들이 오히려 극대화되는 그런 느낌을 맛보는 거다.

기자시사회 때 “허진호 만나면 개고생”이라고 말했는데 그런 감정을 끌어내는 허진호의 방법론에 어려움을 느낀 건가.
정우성
: 일상을 끄집어내는 그의 방법론인지는 모르겠고, 어쨌든 여태 내가 경험한 것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이었다. 내 전작들은 액션도 많고 컷 수도 되게 많아서 하루에 몇 컷을 찍는다고 하면 그걸 하루에 다 찍어야 했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가 한 테이크라고 하면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모두 다 촬영하고. 굉장히 스피디하다. 그럴 땐 내가 계산적이지 않은 연기를 한다고 해도 쪼개진 컷 안에서 보여줘야 할 표정과 감정을 정해놓는다. 그러다 보니 명확해야 한다. 뭐가 모자라고 뭐가 필요한지, 여기서 NG인데 뭐가 NG인지 그런 판단이 명확해야 한다. 한 마디로 계산 아닌 계산이 들어간다. 그런데 허진호 감독은 그렇지 않다. 카메라와 인물을 펼쳐놓고 끊임없는 물음표를 던진다. 여기서 우리가 진짜로 찍어야 하는 게 뭐야? 그러니 ‘지금 이 사람이 나 데리고 뭐하자는 거지? 촬영하자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한 달이란 기간 안에 촬영을 끝내야 하는 입장에선 갑갑한 거지. 그런데 돌아보면서 나도 모르게 스스로 규율 안에 갇혀지는 걸 싫어하면서도 어느새 방법론적인 방식에 갇혀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허진호 감독의 경우 디렉션이 딱딱 이뤄지는 타입은 아닌가보다.
정우성
: 그렇다. 컷 수도 어디부터 어디까지 찍어야할지 정하질 않으니까.

힘들었겠지만 스스로의 가능성과 의견을 좀 더 펼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겠다.
정우성
: 가령 메이의 머리에 붙은 꽃잎을 떼어줄 때 원래는 이 타이밍인데 연기하다가 그 타이밍을 놓고 그 다음에 뗐다. 감독이 던진 물음표에 대해 이게 답인가, 저게 답인가 하는 과정에서 그런 게 더 많이 펼쳐졌던 거 같다. 마찬가지로 그렇게 답을 찾는 몸부림 속에서 자연스레 동하에 빠져들 수 있었고.

그러면서 자연스러운 연기가 나왔다. 메이가 결혼했다고 했을 때 감정을 확 드러내진 않지만 안에서 뭔가 무너지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정우성
: 그 때의 감정이 굉장히 재밌는 감정이다. 사실 가장 먼저 물었어야 하는 질문 아닌가. “혹시 남자친구 있니? 애인 있어? 결혼했니?” 그래야 했는데 전혀 묻질 않았다. 묻고 싶지 않았던 거지. 다만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다면 그녀가 먼저 얘기할 거라 생각하고, 스킨십을 통해 그 선을 넘었는데 그 이후 갑자기 그런 얘길 하니까 묘한 실망과 상대를 지탄할 수 없는 원망이 생긴 거다. 그 신을 촬영할 때도 촬영 시간에 비해 굉장히 긴 시간을 허진호 감독과 토론하고 이견을 좁혀가면서 동하와 메이가 거기서 왜 그런 감정이 생기는지 찾아갔다. 연기를 하면서 그 때 토론하며 생겼던 감정들이 묻어나오지 않았나 싶다.

“어릴 적엔 거부했지만, 나이를 먹으며 이미지에 대해 분명히 인식했다”

그런 것들이 과거 <비트>나 <무사> 등에서 본 남자다운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동하 역을 맡는 것이 잘하는 것보다 잘하고 싶은 것에 대한 도전인 건가.
정우성
: 그런 건 아니다. 내가 잘하거나, 잘하고 싶은 건 분명히 있겠지. 하지만 배우가 거기에 한계를 두거나 스스로를 규정짓고 연기하진 않는다. 물론 대중이 바라는 정우성의 이미지, 그건 분명히 인식을 해야 한다. 어린 시절엔 그런 인식을 거부했다. 그냥 나는 나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 되는 거라고. 마치 20대의 사랑처럼. 그땐 사랑이란 내 사랑을 얘기하고 사랑을 주는 거라고 착각하는데 사랑은 상대방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받아야 하는 거다. 상대의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 관찰할 줄도 알아야 하고. 점점 나이를 먹으며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나를 되짚어 볼 수 있게 됐다. 그러면서 대중이 원하는 이미지는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고. 사실 그 이미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정확히 말하면 규정되고 싶지 않아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한 건데 그 타이밍이 안 좋았다. 대중이 내게 바라는 이미지는 확고했으니까. 멋진 정우성, 이런 거. 그러니 <똥개> 같은 작품을 할 때는 시각적인 오류가 생기는 거다. 자신들 머릿속에서 생각하고 있는 정우성과 다르니까. 그런 것들을 돌이켜보면서 대중이 바라는 게 이런 것이니 그 안에서 화법의 다양함을 주면서 대중에게 나란 사람의 약간 변형된 이미지를 자연스레 전달하는 방법을 생각한다.

<박중훈 쇼>에서도 버티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을 한다고 했는데 정말 스스로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하는 것 같다. 스타로서, 배우로서.
정우성
: 스타라는 것보다는 그냥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물론 작품 선택하고 그럴 땐 다분히 정우성의 입장에서 하지만 그건 일인 거고, 그걸로는 충족시키지 못하는 나라는 게 있지 않나. 그 자아라는 것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한다. 인생을 살면서 지향점이 필요한데 자아란 결국 내 삶과 인생과 결부되어 있는 거니까. 그것과 비교하면 일을 어떻게 하고 이런 것들은 오히려 덧없는 생각들이지. 내 위치에 대해 굳이 생각하지 않고 내가 지금 하는 것에 대해 최선을 다하면 내 위치는 지켜지게 되어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참 자아에 대한 이야기인 거 같다.
정우성
: 그렇다. 불교에서 말하는 참된 자아, 태어났을 때부터 완전했고 온전한 우주로서의 자아. 그런데 우리는 그 무한의 자아를 규정짓지 않나. 점점 작게 만들고. 그런 거 생각하면 재밌지 않나? (웃음)

그런 진지함과 외모, 연기 등등이 모여 ‘The 정우성’이라는 어떤 고유명사로서의 존재가 됐다. 그런 반응을 스스로도 그런 걸 느끼나.
정우성
: 그럼. 그런 것들을 어느 순간부터 알고 느끼고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거다. 그건 결국에 내가 연기를 할 때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이미지이지 않나. 아까 말했듯 관객이 내게 바라는 이미지이고. 이번 작품에서 허진호는 동하가 좀 더 한국식 서툰 영어를 하면 좋겠다고 요구했지만 나는 다른 의견이었다. 분명 관객들이 처음 동하에 감정이입하기 전에 정우성으로 본다. 그러면 ‘정우성이 영어하네? 그런데 쟤 영어하는 거 이상하네?’ 이렇게 받아들인다. 그러면 캐릭터에 대한 이입을 유보하고 계속 내 영어실력을 평가하려는 레이더가 서는 거다. 그러면 영화에 감정이입이고 뭐고 없는 거지.

방금 얘기한 것처럼 ‘The 정우성’이기 때문인 건데 그 때문에 배우로서의 고민이 많아질 것 같다.
정우성
: 그 정도까지만 고민한다. 영어라는 건 현실에서 굉장히 중요하고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거니까 영화를 보고서 저건 바로 정우성의 영어 실력이라는 공식이 나오는 거다. 딱 그런 것까지만 우려하고 그 다음에는 캐릭터를 연구할 수밖에 없다. 나를 통해 영화감상을 하는데 걸림돌이 될 만 한 건 없애놓고 그 다음에 영화가 괜찮으면 관객이 빨려들겠지.

그냥 눈앞의 것만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고, 전체적인 맥락을 살피며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는데 후자 타입인 것 같다. 나이를 먹고 시야가 넓어진 건가.
정우성
: 어릴 때부터 전체적 판의 흐름을 관망하는 성격이 있었다. 영화로 데뷔할 때부터 내 역할만 생각하진 않았다. 가장 눈에 들어온 건 스태프들의 노고였다. 각자 현장에서 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이 커져서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애정을 가질 수 있었고, 덕분에 현장에서 영화 만드는 걸 배울 수도 있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 스태프들이 생각하고 있는 영화 산업 안에서의 문제점에 대해 같이 생각하게 되지 않나. 애정이 생기니까. 그러면서 전체를 보는 시각이 생기는 것 같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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