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는 그 자체로 청춘들을 담아내기 훌륭한 그릇이다. 땀과 열정, 그리고 정직한 노력이 보답 받는 스포츠의 세계는 꿈을 꾸고, 부딪치며 자라나는 청춘들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의 강백호도, 의 철준(장동건)도 경기의 승패와 상관없이 치열한 게임을 한 고비씩 넘길 때마다 멋지게 성장할 수 있었다. 여기 축구를 하는 청춘들의 이야기가 있다. MBC 의 축구선수 차봉군(정윤호)과 그의 에이전트 해빈(아라)은 축구라는 치열한 세계에 사는 젊은이들이다. 그러나 은 아직까진 스포츠드라마만이 가질 수 있는 완성도나 청춘들의 성장담, 그 어느 것도 뚜렷하게 보이고 있지 않고 있다. 이미 청년실업에 시달리면서도 “보이진 않지만 내 안에선 무언가 자랐을 것”이라고 일갈하신 의 황메리 여사의 말대로 이들도 우리 눈에 보이진 않지만 조금씩 자라고 있는 것일까? 위근우 기자와 윤이나 TV평론가가 같은 드라마, 다른 청춘 관찰일지를 내놓았다. /편집자주

“멍청한 축구선수에 무능한 에이전트라, 저주받은 조합이다.” 봉군(정윤호)과 계약했다는 해빈(아라)의 말에 상민(박철민)은 씁쓸하게 중얼거린다. 이제 전반전이 끝난 MBC <맨땅에 헤딩>을 볼 때 그의 예상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듯하다. 헤딩하는 시늉만 하라는 감독의 말을 무시하고 억지로 헤딩슛을 시도하다 전술을 망치던 멍청한 축구선수는 잠시 기억을 잃어 진짜 바보가 되고, 구단 통금시간도 제대로 모른 채 별 이유 없이 선수보고 숙소에서 나오라고 하는 무능한 에이전트는 정신병원에 끌려간 자기 선수가 병원을 부수고 나올 때까지 남자친구에게 복싱을 배우고, 이미 부친을 잃은 봉군이 부친상을 당해서 훈련에 참가 못한다고 거짓말했다가 경을 치는 게 한 일의 전부다. 그들은 쉴 새 없이 움직이지만 실제로는 아무 것도 한 게 없다.

펄떡이는 청춘대신 휘청거리는 이야기

물론 박성수 감독의 전작 <네 멋대로 해라>나 <나는 달린다>가 속 시원한 성공 스토리가 아닌, 실패에 실패를 거듭해도 꿈꾸는 걸 멈추지 않는 청춘의 이야기였던 걸 떠올리면 <맨땅에 헤딩>의 봉군과 해빈이 끊임없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봉군이 FC 소울 선수가 된 이후 빙 돌아 다시 구단 연습장에 서기까지 그들의 위치를 변화시킨 건 그들 자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해빈의 첫 번째 미션이었던 봉군의 프로 입단은 결국 상민의 끼워 팔기 전략으로 가능했고, 봉군이 죽다 살아나는 건 장승우가 자기 의뢰인의 뒤통수를 쳤기 때문이다. 가장 예상할 수 없었던 정신병원 에피소드 역시 봉군이 자칭 배트맨(박휘순)과 어울리다 잡혀가면서 생긴 일이다. 그것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청춘의 활력이 아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플롯에 주인공들이 휩쓸린 것일 뿐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디론가 휩쓸리는 88만원 세대에 대한 은유로 보기에 이 둘은 너무 의욕이 넘친다. <네 멋대로 해라>의 복수(양동근)와 전경(이나영)에게 의욕을 두 배로 곱하고, 지능에서 반을 빼면 딱 현재의 봉군과 해빈이 나온다. 그래서 이들의 ‘맨땅에 헤딩’은 불완전한 청춘의 도전이라기보다는 뭐가 되든 우선 땅부터 파고 보자는 ‘삽질’에 가깝다.

게다가 축구라는 소재가 맥거핀 수준으로 전락하면서 그 의욕의 근원조차 이해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맨땅에 헤딩>은 스포츠드라마가 아니지만 봉군과 해빈, 상민, 그리고 FC 소울의 수많은 청춘들이 연결되는 고리는 결국 축구에 대한 열망이다. 그것은 스타가 되고 싶다는 욕망일수도, 먹고 살겠다는 욕망일수도 있지만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그들은 축구를 열심히, 그것도 잘해야 한다. 그것이 소홀해지는 순간 삶의 현실적 질감은 휘발되고, 그들은 개개인의 욕망과 의지를 가진 주체에서 작가의 플롯을 위해 봉사하는 장기 말로 전락한다. 하지만 홍경래(홍종현)를 비롯한 FC 소울 멤버들은 자신의 꿈 때문이 아니라 봉군을 ‘갈구기’ 위해 입단한 듯하고, 해빈에게 “나를 최고의 선수로 만들어 달라”던 봉군은 잠깐 축구에 집중하는 것 같더니 드라마 러닝 타임 한 시간이 채 지나기 전에 해빈을 벽에 몰아붙이며 “나 남자로 별로냐”는 대사를 던진다. 그들이 꿈과 현실 사이를 고민하는 청춘이 아닌, 프로팀 입단으로 인생 모든 게 끝난 것처럼 구는 한량들로 보이는 건 그래서다.

후반전의 골 세레모니를 볼 수 있을까

때문에 <맨땅에 헤딩>은 공감가지 않는 청춘드라마다. 그것은 정확히 말해 이 드라마가 청춘드라마가 아니라는 말과 같다. 그저 루저, 찌질함, 불완전함, 도전 등, 청춘을 수식하는 몇몇 요소들을, 그것이 왜 청춘을 수식하는지 고민하지 않은 채 드라마 안에 벌여놓는 청춘드라마 놀이일 뿐이다. 물론 이 드라마가 그토록 되뇌던 ‘한 방’이 남은 후반전 안에 터질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축구가 그렇듯 승패보다 중요한 건 납득할 수 있는 경기다. 후반에 한 방이 터지든, 두 방이 터지든 전반전이 엉망이었단 사실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글 위근우

꿈이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박지성과 함께 뛰는 멋진 축구선수가 되는 것. 하지만 현실은 도무지 녹록치가 않다. 그나마 월급 겨우 받던 실업팀에서도 잘렸는데 동생은 자꾸 아프다. 당장의 현실 앞에서 꿈은 사치일 뿐, 닭꼬치나 팔면서 생계를 유지해 보려던 이 불쌍한 청춘에게 짠 하고 나타난 공주님. 그녀의 정체는 ‘너에겐 한 방이 있다’며 다시 축구를 시작해 보자는 에이전트다.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그를 설득하고 백방으로 뛰어다닌 끝에 둘은 K리그 입성이라는 꿈의 1단계를 이루어낸다. 여기까지가 MBC <맨땅에 헤딩> 2회까지의 내용이다. 그러고 나서 구단에 적응을 하겠다고 열심히 연습도 하고, 데뷔 경기도 하나 싶더니 <맨땅의 헤딩>은 갑자기 궤도를 틀어 예상을 벗어난 방향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한다.

‘안 될 거야, 아마’의 청춘, 눈을 뜨다

해빈을 구한 뒤 한강에 빠지게 되는 드라마의 첫 장면으로 다시 돌아온 5회부터, <맨땅에 헤딩>은 그럭저럭 청춘드라마의 외피를 쓰고 있던 이전과 전혀 다른 드라마가 된다. 봉군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사실 FC 소울에 입단한 뒤에도 딱히 변한 것 없이 살아가던 봉군은, 그 사건이 아니었다면 자신을 위해서라면 한강에도 뛰어드는 연이(이윤지)의 사랑과 지지를 받으며, 피가 안 섞여도 따뜻하게 감싸주는 가족 안에서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사실 언제나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었음에도 제 마음의 진심은 ‘살고 싶었다’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바로 그 순간, 죽음 직전을 경험하고 나서 봉군의 세상은 바뀐다. 꿈이 있지만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구체적인 노력은 하나도 하지 않았고, 밝고 건강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삶 속에 주어지는 도전의 기회 앞에서 쉽게 포기했던 청춘이,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이대로 그냥 죽어있는 거나 마찬가지인 상태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맨땅에 헤딩>은 봉군의 그 깨달음이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를 자신의 존재가 모조리 부정되는 정신병원에 밀어 넣는다. 기억을 잃었기 때문에 자신이 차봉군임을 증명하지 못하는 봉군은, 자신이 정신이상자가 아니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필사적으로 자신이 누구인가를 기억해 내야만 한다. 자그마치 3회 분량을 할애한 ‘행복한 요양원’ 에피소드는 봉군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지극히 철학적인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다. 이렇게 지난한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자신의 삶을 망가뜨려 버린 사람이 눈앞에 있어도 순간적인 분노에 멱살을 잡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던 봉군이 ‘죽지 않았기 때문에’ 꿈틀 하는 순간이 오게 된다. 이 극단적이고 뜬금없는 성장의 플롯은 <맨땅에 헤딩>을 4차원 드라마로 만들었지만, 전혀 다른 사람이 된 봉군이 앞으로 해나갈 일들에 대해 “왜?”라는 질문은 던지지 않아도 되게 해주었다.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지금 이대로’에 머물러 있던 봉군은, 좋든 싫든 지금의 이 상황을 바꾸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리고 그 일이 승우(이상윤)를 향한 복수로 시작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꼬이고 꼬여버린 인생의 줄은, 첫 매듭부터 풀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맨땅에 헤딩>은 늦었지만 8회에 이르러 다시 시작한다.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분명히 <맨땅에 헤딩>을 잘 만든 드라마라고 말 할 수는 없다. 사소하게는 출연자들이 겨울옷을 입고 있는데 배경에는 짙푸른 녹음이 펼쳐져 있는 식의 소소한 만듦새에서부터, 호흡을 조절하지 못하고 한없이 늘어졌다 갑자기 서두르는 걸 반복하는 이야기, 봉군 이외의 캐릭터에게는 힘을 싣지 못한 부분 등은 <맨땅에 헤딩>이 반응 없는 조용한 드라마가 되게 하는 데 일조했다. 특히 봉군의 조력자이면서 함께 ‘같은’ 꿈을 이뤄나가야 했던 해빈이 영양제 갖다 주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무능한 에이전트 이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맨땅에 헤딩>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스스로도 아무 것도 아니었던 청춘이 자신이 살아있다고 소리치는, 그 찰나의 ‘꿈틀’이 있다. 이게 바로 선수로서의 수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봉군의 ‘한 방’을 믿었던 해빈이 그러했듯, <맨땅에 헤딩>의 ‘한 방’을 참을성 있게 기다려보는 이유다.
글 윤이나

글. 윤이나 (TV평론가)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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