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직원도, 뉴스 앵커도, 거리의 아가씨들도, 백화점 점원도 모두가 “배용준 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한류’가 아니라 ‘욘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본을 비롯한 해외에서 배용준의 존재감은 놀라움을 넘어 기이할 정도지만 한국에서는 그 정도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지난 9월 29일과 30일 이틀에 걸쳐 일본 도쿄 돔에서 열린 애니메이션 <겨울연가~또 하나의 이야기~> 방송 기념 이벤트<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 출판 기념 이벤트는 2002년 <겨울연가> 이후 7년째 식지 않는 배용준의 뜨거운 인기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계기였다. 그리고 10월 1일 열린 DATV 개국파티 레드카펫 현장까지 ‘욘사마’의 사흘을 <10 아시아>에서 따라갔다. 그 전에 퀴즈 하나 : 다음 사진 속에 등장하는 배용준은 모두 몇 명일까?

9월 29일, 저녁 6시에 시작되는 행사까지는 두 시간 이상 남았지만 도쿄 돔으로 향하는 수이도바시 역 출구 앞은 배용준이 표지를 장식한 잡지와 배용준의 책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을 잔뜩 올려놓은 가판대에 몰린 행렬로 북새통이다. 도쿄 돔 앞은 벌써 입장 줄을 선 중년 여성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사이사이 “용준 씨 사랑합니다” “BYJ 홋카이도 오프 모임” 등 한글로 쓰인 현수막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팬들도 눈에 띈다. 멀리서 아는 얼굴을 발견하면 달려와 끌어안고 반가워하는 모습은 오랜만에 모인 여고 동창회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친근하다. 이들에게 배용준의 사진이 프린트된 부채와 쇼핑백, 행사 기념물품이 잔뜩 들어있는 비닐 봉투는 필수에, 또 다른 한류스타 박용하의 팬클럽 가방을 맨 팬도 있다. 한국보다 일본에서 훨씬 깊은 신종 플루 공포를 보여주듯 마스크를 단단히 쓰고 있지만 티셔츠 가슴에 프린트된 배용준의 사진 한 장을 방패삼아 수만 명이 모여드는 도쿄 돔까지 온 백발의 여성도 간절한 눈빛으로 시계를 들여다본다.

이튿날, 부슬비가 내려서인지 오후 4시에 시작되기로 한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 출판 기념 이벤트 장에는 전날보다 훨씬 이른 시간부터 4만 5천명의 팬들이 조용히 자리를 메웠다. 그토록 기다리던 ‘배용준 상’이 등장해도 귀를 찢을 듯한 함성 대신 박수와 경청으로 그에 대한 애정을 표시하고 서툰 발음으로 “용준 씨”를 연호하던 이 중년의 소녀들이 이성을 잃은 것은 아주 잠시, 마지막으로 배용준이 한국의 전통 가마를 타고 도쿄 돔을 한 바퀴 도는 순서에서였다. 자기 자리에서 조심조심 내려와 1층으로 몰려들었던 이들은 모든 행사가 끝나자 더없이 행복한 얼굴로 도쿄 돔을 나섰다. 배용준의 ‘가족’ 4만 5천 명이 떠난 자리에는 놀랍게도 휴지 한 조각 버려져 있지 않았다.

SG 워너비, 초신성 등 한국 연예인들이 등장할 때마다 높아지던 환호성은 마지막으로 저녁 어스름을 등진 배용준이 레드 카펫에 들어서자 절정에 이렀다. DATV에서는 가입자 가운데 2백 명을 추첨, 이 날의 레드카펫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입장권을 제공했는데, 레드카펫 생중계 카메라에 잡힌 한 중년 여성은 배용준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몇 번이고 “유메(꿈)”라고 말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 ‘꿈’이 되는 스타, 한국에도 일본에도 분명 많지는 않을 터다.

글. 도쿄=최지은 (five@10asia.co.kr)
사진. 도쿄=이진혁 (eleven@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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