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서울살이에는 누구나 마음속에 커다란 짐 하나씩을 안고 살아간다. 뮤지컬 <빨래>는 그렇게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텨내는 현대인의 마음에 선선한 바람과 따스한 햇살을 불어넣는 작품이다. 두산아트센터에서 지난 봄을 보낸 <빨래>가 가을을 맞아 다시 대학로 소극장 무대로 돌아왔다. 지난 13일 학전 그린 소극장에서는 주인공 나영과 같은 20-30대 여성 100명을 초청해 특별한 시간을 가졌다.

보증금 300만원에 월 20만원, 하늘과 맞닿은 달동네는 서울의 삶이 하루 하루 힘겨운 사람들이 있다. 부푼 꿈을 안고 상경한 강원도 처녀, 네팔-필리핀-몽골에서 온 이주노동자가, 동대문에서 속옷을 파는 아줌마가 산다. 하루하루의 삶이 버거운 이들은 맥주 한잔, 삼겹살 한 점에 오늘의 묵은 떼를 털어내고 내일을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 무대 위의 배우들도 그 어떤 거창한 위로의 말 대신 담담히 어깨를 내어주고 손을 잡아주는 연기를 통해 행사에 참여한 또 다른 나영이들을 위로했다. 전에 비해 옥상도 다시 낮아지고, 동네엔 ‘지킬박사 약국’도 사라졌지만 <빨래>의 힘은 오히려 단단해졌다.

진짜 엄마표 물김치를 선사한 배우

공연이 끝난 후 예정되어 있던 배우와 관객의 대화는 이주노동자 솔롱고 역의 박정표가 <빨래>의 대표곡인 ‘참 예뻐요’를 부르며 시작되었다. 토크쇼 형식으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는 각박한 서울살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성토장이 되기도 했다. “생일날 인스턴트 미역국을 끓여 먹을 때 서럽다”라는 답변에는 아쉬움의 탄식이, “엄마에게 전화 왔을 때 힘들면서도 괜찮다”고 얘기할 때는 특히 많은 이들이 공감했다. 부산 출신으로 서울살이 5년차가 된 배우 박정표는 혼자서는 불가능한 아귀찜 먹기 노하우를 전수하기도 했다. 그리고 힘들 때 엄마 물김치를 그리워하던 나영 역의 조선명은 실제 엄마표 물김치를 강원도 출신 관객에게 선물해 훈훈함을 더했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뮤지컬 <빨래>는 2030 여성을 넘어 여러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작품으로 성장해왔다. “실제 빨래처럼 소박한 노동을 즐기며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는 추민주 연출가의 바람처럼 <빨래>는 대학로 학전 그린 소극장에서 오픈런으로 세상의 수많은 새로운 나영이와 솔롱고를 만날 예정이다.

사진제공_명랑씨어터 수박

글.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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