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 동안 토요일 저녁 6시 30분은 MBC <무한도전>의 시간이었다. 최근에는 여기에 일반인들의 장기자랑을 콘셉트로 나름의 시청자층을 확보한 SBS <스타킹>도 가세했다. 이런 시간대에 새 리얼 버라이어티 쇼가 경쟁하는 건 가능한 일일까. KBS <천하무적 토요일>의 ‘천하무적 야구단’이 불가능한 도전에 나섰다. 유재석과 강호동 없이 <무한도전>에 맞선 이 프로그램은 최근 코너 시청률이 10%를 넘기는 등 선전 중이다. 이 프로그램은 WBC 야구팀처럼 불가능한 도전을 ‘위대한 도전’으로 완결할 수 있을까. 과거 ‘날아라 슛돌이’로 스포츠 버라이어티 쇼의 매력을 보여준 최재형 PD에게 그 가능성에 대해 물었다.

‘천하무적 야구단’은 ‘날아라 슛돌이’ 때에 비해 반응이 늦는 편인데, 좀 답답하기도 하겠다.
최재형 PD
: ‘날아라 슛돌이’는 3주 만에 시청률이 뛰었다. 그런데 ‘천하무적 야구단’은 네 달째에도 못 일어서니까. (웃음) 예전에는 신생 프로그램도 재밌으면 본방송으로 보고, 소문이 나면 바로 시청률 1위 프로그램하고 경합이 됐는데, 지금은 모든 프로그램을 다 볼 수 있으니까 가장 좋아하는 것만 본방송으로 본다. 요즘 리얼 버라이어티 쇼 환경이 바뀌긴 했나보다 싶기도 하고.

그런데 왜 <무한도전>이 있는 시간대에 리얼 버라이어티 쇼를 만들게 된 건가.
최재형 PD
: 예능국 내부에서 토요일 시간대에 버라이어티를 부활시키자는 얘기가 꽤 있었다. 그래서 아이템을 생각하다 김창렬과 이하늘, 임창정이 야구에 대한 걸 하고 싶다는 얘기를 들었다.

“처음 아이디어를 낸 건 김창렬, 이하늘, 임창정”

아이디어를 낸 게 그 세 사람이란 건가.
최재형 PD
: 그렇다. 문제는 정말 야구로 리얼 버라이어티 쇼를 만들 정신 나간 PD가 있느냐는 거였다. (웃음)

왜 정신 나간 일을 벌였나. 베이징 올림픽이나 WBC 붐 때문이었나?
최재형 PD
: WBC하고는 상관없다. ‘천하무적 야구단’은 베이징 올림픽 끝날 쯤에 기획을 시작했고, 첫 촬영은 WBC에서 한국이 일본에게 콜드게임으로 진 이틀 뒤였다. 이렇게 길게 보고 가야할 프로그램은 단기적인 붐만 생각할 수는 없다. 처음에는 이하늘 등 3인방이 매력이 있을 거 같다고 생각해서 시작했다.

‘천하무적 야구단’에서 한물 간 취급받는 3인방과 김준이나 오지호 같은 ‘에이스’의 대립 구도를 처음부터 염두에 둔건가.
최재형 PD
: 그런 구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세 사람으로 프로그램을 시작하지만, 이 사람들만으로 프로그램이 될 리는 없다. 그들은 나머지 사람들을 끌어줄 축이고,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밟기도 하고 의지하기도 하는 구도를 생각했다. 그래서 오지호나 김준이 아니라도 그들과 반대 위치에 있을 사람들이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세 사람이 반발하기를 기대했는데, 다들 너무 착해졌다. (웃음)

김준과 오지호는 어떻게 섭외했나. 모시기 힘든 에이스들인데.
최재형 PD
: 오지호는 원래 야구를 좋아하기도 했고, 이하늘이 오지호를 만났을 때가 <내조의 여왕> 시작 전이었다. 그 때는 <내조의 여왕>이 그렇게 잘 될 줄 몰랐지. (웃음) 그래서 드라마 촬영 중이니까 일단 일주일에 하루만 나와 달라고 했다. 그리고 김준은 운동을 굉장히 좋아한다며 선뜻 하겠다고 했다. 김준은 요즘 평소에도 야구 장비를 차에 넣고 다닌다. 조만간 크게 한 건 할 거다.

그렇게 예측할 수 없는 사람들을 모아 출연자가 10명이 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어떻게 풀어나가려고 했나.
최재형 PD
: ‘천하무적 야구단’은 MC도 없고, 출연자는 떼거지로 많다. (웃음) 그래서 일단 누구의 캐릭터가 잘 드러날 수 있는지부터 생각했다. 마르코는 다혈질이니까 그걸 보여주려고 마르코 퀴즈를 기획하는 식이다. 룰을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르코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게 먼저다. 이하늘이 김준을 섭외하는 것도 섭외 이전에 혼자 섭외를 하면 어떤 모습이 나올까 싶어서 이하늘만 따로 스케줄을 뺀 거였다. 캐릭터를 살리고 싶었으니까. 그런 식으로 눈에 띄는 사람의 캐릭터부터 잡는 게 중요했다.

“유재석, 강호동 없이도 성공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했다”

특히 이하늘을 부각시킨 이유가 있나.
최재형 PD
: 이하늘은 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처음 만났는데, 되게 거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언행이 전혀 정제되지 않아서 이 사람의 말 중에 몇 퍼센트나 살릴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 와중에 귀여운 모습이 있어서, 더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들었다. 그래서 욕하면 벌점을 주는 품행 점수를 만들었다. 그런 걸 하면 백이면 백 이하늘이 가장 먼저 걸릴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웃음)

캐릭터가 중요한데 왜 메인 MC를 쓰지 않았나. MC가 있으면 멤버들의 캐릭터를 잡아주는 역할을 했을 텐데.
최재형 PD
: 유재석과 강호동은 정말 열심히 하면서 다른 사람을 돋보이게 한다. 우리는 그런 두 사람이 최선을 다하는 프로그램과 경쟁해야 한다. 그런데 같은 방식으로 맞붙어야 할까? 프로그램의 개성을 살리려면 오히려 MC가 없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초반에는 직접 프로그램에 개입하기도 했다. 김준이 새로 들어오면 김준에만 주목해서 다른 멤버들을 슬슬 약올리기도 하고.

요즘에는 김C가 그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경기 해설을 하며 선수들 캐릭터를 잡아주더라.
최재형 PD
: 김C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 경기 흐름을 설명하면서 선수의 특성을 굉장히 잘 잡아낸다. 이하늘의 ‘늙은 사자’도 김C가 붙인 별명이고.

세 명으로 시작한 야구팀이 은근슬쩍 단장과 감독까지 생겼다. 이런 흐름을 처음부터 생각한 건가.
최재형 PD
: 감독까지는 구상하지 않았지만 이런 식으로 팀을 만들어가는 건 제일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김C는 자연 발생적으로 감독이 됐다. 경기 중에 김창렬이 “형이 감독 좀 해 달라”는 부탁을 했고, 김C도 계속 경기를 보니까 스스로 근질근질해져서 코치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계속 설득해서 감독 취임 에피소드를 촬영하기 전 날 김C가 감독을 하기로 결정했다. 백지영도 멤버들이 요즘 너무 야구에만 열중해서 (웃음) 선수단을 휘저을 사람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스포츠 만화에 나오는 청순가련형 소녀를 생각했는데, 이렇게 사람 많은 프로그램에서 말 한마디 못하는 출연자보다는 적극적인 여자가 있는 게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멤버들이 훈련을 열심히 하긴 하는 거 같더라. 4개월 만에 첫 승을 거둘 만큼 실력이 늘었다.
최재형 PD
: 일단 운동신경이 좋은 사람들을 뽑았다. 한민관은 운동 잘한다는 얘기만 듣고 마른 친구가 의외로 운동을 잘하면 재밌을 거 같아서 뽑았는데, 야구를 한 번도 안한 상태에서 제일 배팅을 잘했다. 요즘엔 소속사 직원들까지도 야구를 한다고 하더라. 그리고 마리오, 동호, 김준은 방송은 안됐지만 카메라를 따로 붙여서 개인 훈련을 받았다. 특히 마리오는 별 훈련을 다 받았다. (웃음)

“플레이보이즈와 경기할 생각은 없다”

야구팬들은 마르코가 공 던지는 걸 보고 놀랐다고 하더라. 운동신경 없는 사람은 평생 던져도 저렇게 못할 거라고.
최재형 PD
: 마르코가 공은 제일 빠르다. 그런데 컨트롤이 안 된다. (웃음) 야구 하는 사람들 말이 흥분을 잘하는 성격이라 투수는 힘들 거라고 한다.

훈련 과정을 보면 기초 체력 훈련에서 세부적인 기술 훈련으로 단계를 밟아 나가는 것 같다. 의도한 건가.
최재형 PD
: ‘날아라 슛돌이’를 끝내고 나서 축구팀을 만들어본 적이 있는데, 스포츠 팀의 훈련은 공통된 흐름이 있는 것 같다. 그런 부분을 생각하면서 계획을 짰고, 인터넷에 있는 특이한 야구 훈련들을 참고했다. 젓가락으로 탁구공을 치는 건 이병훈 해설가도 추천했던 거고. 실행하기 전에 일단 전문가에게 자문을 받고, 오락적인 걸로 갈 수 있다 싶으면 실제로 한다.

야구의 특성상 다른 스포츠 버라이어티에 비해 어려운 부분이 있을 것 같다.
최재형 PD
: 일단 내야수를 시킬 사람이 너무 없어서 너무 고민했다. 그리고 규칙도 어렵고, 촬영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야구는 공이 있지 않은 곳에서도 활발한 움직임이 있다. 주자라도 나가면 그쪽도 주목해야 한다. 지금도 그런 부분을 다 못 담아내는 게 아쉽다. 정말 야구는 참 어렵다. (웃음) 하지만 반대로 야구는 ‘조이는 매력’이 크다. 승부처에서 투수와 타자가 붙고, 공을 던지고, 치고, 수비를 하는 과정에서 네 번씩 조인다. 그렇게 긴장을 높이는 부분이 많다는 건 큰 장점이다.

그런데 자리가 잡힌 뒤에는 빠르게 실력이 늘고 있다. 이러다 너무 잘하면 어쩌나. (웃음)
최재형 PD
: 그럴 일은 없다. (웃음) 한국에 사회인 야구가 3부 리그까지 있는데, ‘천하무적 야구단’은 지금 3부 리그에서 선수 출신 멤버를 뺀 팀과 시합하면 막상막하일 정도다. 만약 그 팀들을 이기면 그 때부터는 선수 출신들을 넣으면 된다. 선수 출신이 끼면 경기가 확 달라진다. 만약 그래도 이기면 2부 리그로 가면 되고. 아직 한참 멀었다.

연예인 야구팀하고도 계속 경기는 할 생각인가.
최재형 PD
: 연예인 야구팀은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때만 하려고 한다. ‘알바트로스’도 원래 하려던 팀이 펑크가 나서 한 거다. 오지호가 원래 알바트로스 소속이기도 했고. 그런데 시합을 하니까 김성수는 타석에 서면 꼭 영화 같은 분위기가 날 만큼 그림이 좋았다. 그러고 나서 한 팀 더 한 정도다. 앞으로는 전국의 사회인 야구 3부 리그 팀들과 경기를 할 계획이다.

결국 목표는 사회인 야구리그 최강이 되는 건가.
최재형 PD
: 일단 그게 목표이긴 한데, 그렇게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전국대회에도 참가할 계획이고. 전국대회 나갔다 떨어질까봐 걱정이다. (웃음) 그리고 앞으로는 경기뿐만 아니라 캐릭터들이 뭔가를 만들어나가는 얘기들을 담을 생각이다. 처음에는 그런 게 불가능했는데, 이제는 될 것 같다.

마지막 질문이다. 혹시 그림이 되는 선수들이 많은 플레이보이즈(장동건과 정우성 등이 있는 연예인 야구단)와 시합할 생각은 없나. (웃음)
최재형 PD
: 없다. (웃음)

글. 강명석 (two@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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