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드라마에 출연할 땐 제작사의 톱스타 모시기 경쟁을 우려하는 기사가 나왔다. 두 번째 드라마 도전을 하는 지금, 아직 공중파 편성이 잡히질 않고 있다. 배우 신하균 이야기다. 물론 드라마 사전제작이 편성의 난항을 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에둘러 말하지 말자. 그는 현재 자신의 출연만으로 편성 경쟁을 일으킬 만큼의 주목을 받진 못하고 있다. MBC <좋은 사람> 출현 후 6년이 흘러 <위기일발 풍년빌라>를 찍고 있는 현재, 그의 스타 파워는 분명 예전 같지 않다. 한 때는 천재로, 또한 새로운 세대의 ‘본좌’로 유력하게 꼽히던 젊은 검객은 어느새 데뷔 10년을 넘기고 강호의 변방에서 숨을 고르고 있다. 그래서 그의 가장 화려한 시절은 과거형으로 서술될 수밖에 없다.
어지러운 강호에 등장한 젊은 천재
대중에게 실질적으로 이름을 알린 작품인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를 기준으로 할 때, 신하균의 등장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비록 소년의 얼굴은 아니지만 그보다 훨씬 앳되어 보이는 눈빛으로 북한 사투리를 능글맞게 구사하는 그의 첫인상은 <넘버 3>의 강호가 그랬던 것만큼이나 강렬한 것이었고, 박찬욱 감독과 다시 만난 <복수는 나의 것>을 통해 그의 연기력은 우연이 아니었음이 밝혀졌다. 그리고 이것은 당시 한국 영화배우의 독특한 지형도 안에서 그의 위치를 한껏 높여주었다. 사실 뒤돌아 보건데 배우의 연기력이 중요한 화두가 된 건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그 이전 세대의 연기력이 부족했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태산북두 안성기와 패왕 박중훈이 양대 산맥을 이룬 시기나 새로운 패왕 한석규가 등장했을 때에 비해 송강호, 설경구, 최민식, 정재영, 황정민 등이 군웅할거 하는 시대에 이르러 배우의 연기력은 훨씬 중요한 덕목으로 평가되었고, 이들을 놓고 사람들은 누구 연기력이 더 뛰어난지에 대해 설전을 벌였다. 이런 일종의 ‘본좌’ 논쟁을 통해 몇몇 배우는 연기파 배우의 만신전에 이름을 올렸고, 이처럼 어지러운 강호에 홀연히 신하균이라는 젊은 천재가 등장한 것이다. 정해진 초식 없이 검을 휘두르는.
“‘나’ 자체를 비워놓는” 태도로 캐릭터를 받아들이는 신하균의 연기는 그 감정적 진폭에 비해 테크니컬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대신 잔뜩 주눅 든 모습으로 취조를 받다가 갑자기 눈을 희번덕거리며 검사에게 “당신을 증오해요”라고 말하는 <박수칠 때 떠나라>의 영훈처럼 그는 한 작품 안에서도 다양한 정체성을 한계 없이 보여준다. 무초승유초(無招勝宥招), 초식 없이 초식 있는 자를 이긴다. 영화 <동방불패>의 원작 소설 <소오강호>에 나오는 이 글귀는 그가 보여준 무한한 능력에 대한 가장 적절한 설명일지 모르겠다. 말하자면 그는 어떤 모양의 컵에도 담길 수 있는 맑은 물처럼 작품마다 자신의 정체성을 바꿔갔다. 하지만 그것은 밋밋한 원통형의 컵에 담겼을 때 역시 그만큼만 보여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신하균의 출연작 중 최대 관중을 모은 <웰컴 투 동막골>을 본 장진 감독이 “독보적인 뭔가는 없는” 그의 연기에 실망하며 “현장에서 얘를 아무도 다잡아주지 못했구나”라고 생각한 건 그래서다. 이 지점에서 이 젊은 검객은 연기의 ‘본좌’에서, 아니 정확하게는 ‘본좌’라는 담론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도 <서프라이즈>나 <화성에서 온 사나이>에서의 연기는 인상적이지 못했고, 그에게서 새 시대의 연기 ‘본좌’를 기대한 사람들은 실제 이하의 박한 평가를 내렸다. 그를 영화계 중심에 올려놓은 담론이 다시 그를 베는 역설.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새로 태어나는 신하균
하지만, 그래서 신하균이다. “연기하는 모든 이가 연기파”라고 말하는 그에게 연기파 배우라는 분류 자체는 애초에 무의미한 것이었을지 모른다. 강호에는 꾸준히 정상을 지키는 강자도 있지만 눈부신 승리와 비루한 패배를 오가며 자신의 존재를 이어오는 비운의 무사도 있는 법이다. 확실한 건 적어도 자신에 대해 “잘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그의 검 끝이 자만심 혹은 자의식 때문에 무뎌진 적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전작의 성격과 흥행, 평가에 상관없이 언제나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영점의 상태로 회귀해 다시 한 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 앞서 말한 <좋은 사람>과 <위기일발 풍년빌라> 사이의 6년만 확인해도 그렇다. 스테레오 타입의 모범생을 연기했다가(<우리 형>) 별다른 평가 없이 잊히기도 했지만 그 후엔 800만 관객의 흥행작(<웰컴 투 동막골>)의 주인공이 됐고, 마니악한 기운이 느껴지는 킬러 영화(<예의 없는 것들>)에선 마음속 독백과 표정만으로 혀가 짧아 슬픈 ‘킬라’를 제법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비록 최근작인 <박쥐>에선 다른 두 주연에 비해 주목받진 못했지만 병약함과 마초성이 공존하는 강우라는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 배우로 신하균 외의 다른 사람을 떠올리긴 쉽지 않다. 이처럼 어떤 단일한 궤적으로 나타낼 수 없는 활동을 보여주기 때문에 과연 그가 다음번엔 어떤 좌표에 발자국을 남길지 도무지 예상할 수 없다.
때문에 현재 굉장한 스타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가장 화려했던 시기가 과거형으로 서술된다고 해도 그의 현재를 쉽게 얕볼 수는 없는 일이다. 자신에게 엄청난 유산이 상속된 걸 모르는, 그래서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다는 것도 모르는 <위기일발 풍년빌라>의 순박한 삼류 배우 오복규를 연기하던, 지독하게 아픈 사랑에 대한 이야기인 영화 <카페 느와르>의 영수를 연기하던, 숨을 고르며 손끝은 칼자루에 가 있는 그의 다음 초식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날아올지 우리는 예상하기 어렵다. 그 가늠할 수 없는 긴장감은 아마 기대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어지러운 강호에 등장한 젊은 천재
대중에게 실질적으로 이름을 알린 작품인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를 기준으로 할 때, 신하균의 등장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비록 소년의 얼굴은 아니지만 그보다 훨씬 앳되어 보이는 눈빛으로 북한 사투리를 능글맞게 구사하는 그의 첫인상은 <넘버 3>의 강호가 그랬던 것만큼이나 강렬한 것이었고, 박찬욱 감독과 다시 만난 <복수는 나의 것>을 통해 그의 연기력은 우연이 아니었음이 밝혀졌다. 그리고 이것은 당시 한국 영화배우의 독특한 지형도 안에서 그의 위치를 한껏 높여주었다. 사실 뒤돌아 보건데 배우의 연기력이 중요한 화두가 된 건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그 이전 세대의 연기력이 부족했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태산북두 안성기와 패왕 박중훈이 양대 산맥을 이룬 시기나 새로운 패왕 한석규가 등장했을 때에 비해 송강호, 설경구, 최민식, 정재영, 황정민 등이 군웅할거 하는 시대에 이르러 배우의 연기력은 훨씬 중요한 덕목으로 평가되었고, 이들을 놓고 사람들은 누구 연기력이 더 뛰어난지에 대해 설전을 벌였다. 이런 일종의 ‘본좌’ 논쟁을 통해 몇몇 배우는 연기파 배우의 만신전에 이름을 올렸고, 이처럼 어지러운 강호에 홀연히 신하균이라는 젊은 천재가 등장한 것이다. 정해진 초식 없이 검을 휘두르는.
“‘나’ 자체를 비워놓는” 태도로 캐릭터를 받아들이는 신하균의 연기는 그 감정적 진폭에 비해 테크니컬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대신 잔뜩 주눅 든 모습으로 취조를 받다가 갑자기 눈을 희번덕거리며 검사에게 “당신을 증오해요”라고 말하는 <박수칠 때 떠나라>의 영훈처럼 그는 한 작품 안에서도 다양한 정체성을 한계 없이 보여준다. 무초승유초(無招勝宥招), 초식 없이 초식 있는 자를 이긴다. 영화 <동방불패>의 원작 소설 <소오강호>에 나오는 이 글귀는 그가 보여준 무한한 능력에 대한 가장 적절한 설명일지 모르겠다. 말하자면 그는 어떤 모양의 컵에도 담길 수 있는 맑은 물처럼 작품마다 자신의 정체성을 바꿔갔다. 하지만 그것은 밋밋한 원통형의 컵에 담겼을 때 역시 그만큼만 보여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신하균의 출연작 중 최대 관중을 모은 <웰컴 투 동막골>을 본 장진 감독이 “독보적인 뭔가는 없는” 그의 연기에 실망하며 “현장에서 얘를 아무도 다잡아주지 못했구나”라고 생각한 건 그래서다. 이 지점에서 이 젊은 검객은 연기의 ‘본좌’에서, 아니 정확하게는 ‘본좌’라는 담론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도 <서프라이즈>나 <화성에서 온 사나이>에서의 연기는 인상적이지 못했고, 그에게서 새 시대의 연기 ‘본좌’를 기대한 사람들은 실제 이하의 박한 평가를 내렸다. 그를 영화계 중심에 올려놓은 담론이 다시 그를 베는 역설.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새로 태어나는 신하균
하지만, 그래서 신하균이다. “연기하는 모든 이가 연기파”라고 말하는 그에게 연기파 배우라는 분류 자체는 애초에 무의미한 것이었을지 모른다. 강호에는 꾸준히 정상을 지키는 강자도 있지만 눈부신 승리와 비루한 패배를 오가며 자신의 존재를 이어오는 비운의 무사도 있는 법이다. 확실한 건 적어도 자신에 대해 “잘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그의 검 끝이 자만심 혹은 자의식 때문에 무뎌진 적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전작의 성격과 흥행, 평가에 상관없이 언제나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영점의 상태로 회귀해 다시 한 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 앞서 말한 <좋은 사람>과 <위기일발 풍년빌라> 사이의 6년만 확인해도 그렇다. 스테레오 타입의 모범생을 연기했다가(<우리 형>) 별다른 평가 없이 잊히기도 했지만 그 후엔 800만 관객의 흥행작(<웰컴 투 동막골>)의 주인공이 됐고, 마니악한 기운이 느껴지는 킬러 영화(<예의 없는 것들>)에선 마음속 독백과 표정만으로 혀가 짧아 슬픈 ‘킬라’를 제법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비록 최근작인 <박쥐>에선 다른 두 주연에 비해 주목받진 못했지만 병약함과 마초성이 공존하는 강우라는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 배우로 신하균 외의 다른 사람을 떠올리긴 쉽지 않다. 이처럼 어떤 단일한 궤적으로 나타낼 수 없는 활동을 보여주기 때문에 과연 그가 다음번엔 어떤 좌표에 발자국을 남길지 도무지 예상할 수 없다.
때문에 현재 굉장한 스타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가장 화려했던 시기가 과거형으로 서술된다고 해도 그의 현재를 쉽게 얕볼 수는 없는 일이다. 자신에게 엄청난 유산이 상속된 걸 모르는, 그래서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다는 것도 모르는 <위기일발 풍년빌라>의 순박한 삼류 배우 오복규를 연기하던, 지독하게 아픈 사랑에 대한 이야기인 영화 <카페 느와르>의 영수를 연기하던, 숨을 고르며 손끝은 칼자루에 가 있는 그의 다음 초식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날아올지 우리는 예상하기 어렵다. 그 가늠할 수 없는 긴장감은 아마 기대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