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팍타크로라고 알어?”라고 슬쩍 묻더니 용의자에게 사과를 물리고 발차기를 한다. 놀라는 것도 잠시, 기본 동작이랍시고 쭈욱 엉덩이를 뒤로 뺀다. 도대체, 봉준호 감독은 어디서 저런 배우를 찾아낸 걸까. 영화 의 형사 홍조는 새로운 인물이다. 사투리를 쓰면서 껄렁하게 현장을 배회하는 형사는 어느 영화에나 등장하지만,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면서도 은근히 이죽거리는 말투의 리듬감이나 지으려다 만 것 같은 표정의 모호함은 그 낯설음만큼 신선한 기억으로 남는다. 그리고, 의 엔딩 크레딧을 본 사람이라면 그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커졌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남자의 이름은 송새벽이다.

군기가 바짝 잡힌 진지한 세팍타크로 형사

“길에 다녀도 아무도 못 알아봐요. 속으로는 한 명 정도는 좀 알아봐 줬으면 좋겠는데. 하하하.” 농담이 아니다. 송새벽을 마주하고 그에게서 <마더>를 떠올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해사해 보일 정도로 차분한 얼굴, 점잖고 수줍은 말투에 킥킥대는 홍조는 없다. 봉준호 감독과의 첫 만남에 대해 “키도 크시고 그래서 제가 굉장히 위축되어 있었어요. 출연 제의 받고 정말 영광이었죠. 어떤 배우라도 그럴 겁니다”라고 자못 진지하게 회상하더니 “아유, 제가 말을 재미없게 하나요?”하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영화를 찍을 때도 “제작진에게 누가 되지 않기 위해서” NG를 내지 않으려는 강박이 있었다더니, 인터뷰에서도 그는 상대방이 원하는 대답은 모두 들려주겠다는 듯 질문 하나 허투루 넘기는 법이 없다. 심지어 영화를 찍으면서 좀 더 가능성이 열렸다는 이야기를 할 때는 “영화 쪽 페이가 연극에 비할 바가 아니죠. 아시면서”라고 솔직한 속내를 털어 놓기도 한다.

‘군기’에 비견될 정도로 바싹 긴장한 모습이 첫 영화를 끝낸 신인다워 보이지만, 연극배우로서 송새벽의 이력은 결코 가볍지 않다. 송강호, 김뢰하를 비롯해 “라면을 정말 끝내주게 끓이시는” 강신일 등 많은 배우를 배출해 낸 극단 연우에 소속된 그는 다양한 연극무대를 경험 했다. 봉준호 감독이 그를 발견한 것도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동식으로 출연한 연극 <해무>의 무대였다. 매일 아침 콘티를 받아들고, 조금 더 입에 붙기 쉽게 고쳐진 대본을 두어 번 리딩 한 후 촬영을 하는 일은 연습 끝에 완성된 극을 공개하는 연극과 분명히 달랐다. 그러나 그는 곧 그 상황을 받아들였고, “카메라가 관객이라고 생각” 하는 순간 ‘영화배우’로서 송새벽은 한발 더 나아갈 수 있었다. “상상력과 약속으로 통제되는 무대와 달리 세트와 배경이 충분하게 도움을 주는” 영화 환경에 적응하자 원빈, 진구 등 또래 배우들과도 친해질 수 있었다.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영광”인 김혜자와 호흡을 맞춘다는 사실도 실감이 났다.

“봉 감독님이 제 옆에 계신 게 아직 믿겨지지 않아요”

그러나 아직 그에게 <마더>의 경험들은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꿈의 조각들 같은가 보다. “엊그제 감독님이랑 같이 공연을 봤는데, 한참 보다가 고개를 돌리니까 봉준호 감독님이 박수를 치고 계신 거예요. ‘어, 감독님이시네!’하고 놀랐어요. 아직 믿겨지지 않는달까.” 그리고 웃는 얼굴은 겨드랑이쪽으로 한참이나 숙어져 있다. 그 내성적이고 조심스러운 성격이 새삼스럽지만, “연극을 하지 않을 때는 연극을 봐요. 일주일에 다섯 편 정도”라고 말하는 일편단심을 생각하면 타고난 성격을 극복하고서 역할에 몰입하는 열정의 크기가 얼핏 짐작이 되기도 한다. 그 단단한 마음과 더불어 그의 얼굴을 다시 확인하자.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돌아왔을 때, 한 눈에 알아보기 위해서다. 물론, 또 한 번 엔딩 크레딧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의 변신에 무릎을 칠 가능성이 훨씬 커 보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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