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 공항소풍
소요시간: 3시간 ~ ∞
비용: 교통비+커피값+α
BGM: 하림 ‘출국’
준비물: 카메라, 뮤직 플레이어, 소설책 혹은 노트북, 굶주린 여행욕구

‘여행’이 기대 속에 약간의 두려움 안고 있다면, ‘소풍’은 설렘 속에 안전함을 내포한 단어다. 홀연히 떨쳐 일어나 여행을 떠날 시간과 자금이 허락되지 않을 때, 삶은 이 짧은 소풍이 안겨주는 기운만으로도 어느 정도 버텨나갈 힘을 얻게 된다. 일상에서 잠시 탈출하지만 언제라도 일상으로 돌아 갈 수 있다는 안도감.

가까운 공원, 한강, 혹은 놀이공원으로 떠날 수도 있지만 나에게 가장 친근하고 또 언제나 설레는 소풍장소는 공항이다. 어릴 때는 김포로 지금은 인천으로, 짧게는 3시간 길게는 반 나절짜리 ‘공항소풍’은 삶에서 빠질 수 없는 행사다. 출발시간에 늦을까 급박한 마음을 가질 필요가 없다. 평소라면 1분이라도 빨리 강변북로로 진입하는 급행버스를 타겠지만, 소풍을 위해서는 오히려 서울을 휘휘 돌아가는 버스가 낫다. 잠시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이 도시는 꽤 낯설지만 흥미로운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리고 1시간, 버스 안에서 인천의 풍경들, 도로변에 핀 꽃들을 보고, 준비해간 음악을 듣고, 때론 나른한 낮잠을 잔다.

공항 3층 출국장에 내려 시시각각 변하는 비행 리스트를 보며 잠시 마음만 비행기에 태워 보내기도 하고, 4층의 라운지에 있는 조약돌 모양의 소파에서 널브러져 출국 전 사람들의 바쁜 발걸음을 느껴보는 것도 묘한 즐거움이다. 일이 있는 주말이면 노트북을 들고 가 밀린 일을 하거나, 여유가 있는 날에는 느리게 커피를 마시고 천천히 소설을 읽는다. 그 사이 눈 앞에서는 수많은 비행기가 뜨고 지고 옆으로는 수많은 드라마가 피고 진다. 여행을 떠나는 순간의 주체적인 즐거움은 없지만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 속에서 나른한 여유를 부려보는 시간. 단 돌아오는 버스에서는 마치 1년짜리 세계여행을 마친 여행자의 귀환마냥 지친 기분이 드는 것은 이 소풍의 치명적인 부작용이다.

글ㆍ사진. 백은하 (on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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