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야구의 계절이다. 지난 4월에 개막한 프로야구 2009 시즌은 뜨거워지는 여름처럼 점점 더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더욱이 전국민적인 야구의 인기는 각 구장을 넘어 드라마와 예능의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 20여년 만에 돌아온 MBC <2009 외인구단>과 KBS <천하무적 토요일> ‘천하무적 야구단’은 모두 야구를 위해 뭉친 남자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이 남자들은 야구라는 공통분모를 제외하면 모든 것이 다르다. 실미도를 연상시키는 지옥훈련을 받는 외인구단은 자못 비장하기까지 하지만 내야수, 외야수도 모르고 ‘쓰리번트’의 뜻을 맞춘 기쁨에 춤을 추는 주장이 이끄는 야구단은 무적이 되기엔 힘들어 보인다. 각본 없는 드라마이자 인생의 축소판인 야구의 재미에 도전장을 내민 ‘천하무적 야구단’과 <2009 외인구단>을 <10 아시아> 위근우 기자와 김교석 TV평론가가 중계 했다. /편집자주
글. 김교석 (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MBC <2009 외인구단>의 장르는 스포츠 드라마가 아니다. 이것은 이 드라마가 혜성과 엄지의 사랑을 그린 멜로드라마나 혜성과 두산의 우정을 그린 버디드라마라는 걸 뜻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해 혜성과 동탁은 야구를 하고, 두 남자는 엄지를 사랑한다 말하지만 그 모든 행동과 말은 공허할 뿐, 그것들이 의미를 가질 수 있는 현실적 맥락은 모두 휘발되었다. 때문에 이 드라마는 그 무엇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야구와 사랑, 승리에 대한 의미를 모르는 인물들
혜성과 동탁이 엄지에게, 현지가 혜성에게 사랑을 느끼는 과정은 단순하다. 학교에서 처음으로 따뜻하게 말을 걸어준 친구라는 것만으로 혜성은 엄지에게 종교와도 같은 사랑을 바치고, 현지 역시 자신을 달리는 자동차로부터 구해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십여 년 지나 혜성을 못 알아봤다고 혼자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린다. 마동탁은 그마저도 불분명한 채 “너여야 해, 최엄지. 내 옆에는”이라는 대사를 일방통행으로 내뱉을 뿐이다. 야구를 하는 이유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혜성은 엄지가 추천해줘서, 동탁은 혜성을 이기고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야구를 한다. 팀플레이와 디테일이 가장 중요한 종목인 야구가 두 주인공의 승부를 위한 장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은 주인공들의, 더 정확하게는 제작진의 인식이 단순하다 못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보여준다. 80년대 만화가 원작이란 사실이 운명적 사랑과 승부라는, 고루한 설정의 면죄부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비슷한 설정의 청춘만화에서 히로가 야구 안에서 투수와 타자의 일 대 일 승부라는 건 말이 안 된다며 9회 히데오의 마지막 타석에서 승부를 걸었던 모습은 드라마의 엉성한 디테일을 역으로 보여준다.
대사와 행동을 뒷받침해줄 현실이 없는 상황에서 등장인물들의 욕망은 강박의 형태를 갖게 된다. 숙명의 대결이라는 플롯에 봉사하기 위해 두 남자는 이유도 모른 채 사랑하고, 의미 없이 승부하고, 결국 강박적으로 강해지려 한다. 엄지는 “오빠는 세상에서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어야 하길 동탁에게 강요하고, 오직 엄지와 야구를 위해 공이 아닌 자신을 내던졌던 혜성이 당도한 곳은 외인구단의 다른 멤버들이 오직 강해지는 것만을 목표로 뛰는 무인도다. 이 가치의 정점에는 외인구단 손병호 감독이 있다. 혜성과 두산을 비롯한 외인구단 멤버들은 약하기 때문에 패배했고, 그 패배를 되돌리기 위해 강해져야 한다. 그것이 손 감독의 신념이다. 그 신념 안에서는 엄지에게 혜성의 사망신고서를 보내며 훈련에 방해되는 모든 인간관계를 잘라내는 손 감독의 행동이 정당화된다.
2009년에 만들었다고 2009년작은 아니다
하지만 “진짜 강한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바란다”는 손 감독의 격려처럼 그 신념은 격정적이지만 역시 알맹이 없이 공허하다. 때문에 외인구단의 지옥훈련은 무조건적인 노력의 이미지를 구체화할 뿐 그 훈련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개개인의 트라우마에 집중하진 않는다. 이 지점에서 외인구단의 이야기는 원작만화에 깔린 7, 80년대의 신화적 서사, 즉 성공신화의 서사를 반복한다. 성공 자체의 의미는 따지지 않은 채 오직 자신을 버린 채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을 반복하는 그런 신화를.
때문에 <2009 외인구단>이 제목을 배신하고 2009년의 현실과 원작 서사의 접점을 포기한 채 보여주는 최종적인 강박은 낡은 서사에 대한 강박이다. 즉 지금 이 순간 벌어지는 사랑과 야구, 성공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사랑 이야기와 야구 만화, 성공신화처럼 이미 만들어진 서사의 찌꺼기를 순서에 맞게 배열할 뿐이다. 그것은 오마주도 뭣도 아닌 시대착오 혹은 게으름일 뿐이다. 드디어 외인구단이 훈련을 마치고 등장할 때가 됐지만 전혀 기대가 되지 않는 것은 그래서다. 인물들 스스로도 그 의미를 모르는 것 같은 말과 행동에 시청자가 공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글 위근우
KBS <천하무적 야구단>은 수많은 텍스트를 품고 있다. 임창정이 말했듯 기본 골격은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가지고 왔다. 개성 강한 멤버들이 하나둘 모이면서 또 다른 스펙트럼을 만들어가는 것과 <외야의 천사들>처럼 고난을 딛고 밑바닥부터 시작해 성공과 승리를 훈훈한 감동으로 맞바꾸는 것은 디즈니 홈드라마 풍의 스포츠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컨벤션이다. 웃음을 위해서는 <벤치워머스>의 출연진 같은 무시당하는 게 당연한 덜떨어진 인물들이 필요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리얼 버라이어티의 캐릭터들이 ‘모자람’을 추구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니까 2009년 얼치기 외인구단의 탄생이다.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스토리가 있는 리얼 버라이어티의 등장
여기서 재밌는 것은 다른 리얼 버라이어티들이 모두 일회성 특집이나 2주에 하나의 에피소드가 시작되고 끝나는 반면, <천하무적 야구단>은 스토리가 있는 리얼 버라이어티다. 주축인 이하늘, 임창정, 김창렬 등이 야구단을 만드는 과정, 그리고 앞으로 사회인 야구 무대에서 그들의 활약까지 이어질 것이다. 출연진이 제작비가 싸다고 여기저기 하소연하며, 직접 멤버 섭외에 나선다. 즉 ‘기획과정부터 리얼’이다. 어떻게 하다 보니 멤버 수도 얼추 갖춰졌고, 심지어 몇 주에 걸쳐 안재모, 이광기, 원투, 노라조, 이승윤, 윌리 등 다양한 분야의 많은 연예인들이 참가해 공개오디션을 봤다. 그리고 그 한편에서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훈련을 뒤로 하고 동서고금 스포츠물의 기본 상식인 극한 환경에서 정신수양과 운동능력과 의지를 기른다. 훈련보단 수련에 중점을 둔 동양적 사고방식. 이것은 뼈대로 삼고 있는 외인구단과 같다.
회를 거듭할수록 캐릭터가 구축되고 오합지졸이던 팀은 서서히 친분과 신뢰를 만들어간다. 합숙소에서의 첫날밤 어울리지도 않은 잘 자라는 인사를 남기기도 하고, ‘난니기모할’로 대표되는 자신들만의 정서도 만들어 가고 있다. 그것이 시청자가 보기에 재밌고 친밀감이 느껴져 교감이 형성되는 것이 리얼 버라이티의 초석이 아니던가. 클럽하우스 만들기는 완전한 리얼의 경지를 보여줬다. 전혀 팔리지 않을 폐교가 팔리는 바람에 일주일 만에 합숙소를 떠나게 되고, 출연료를 샐러리캡처럼 인식해 임창정이 좀 덜 받으면 좋은 선수 모실 수 있을 텐데 하고 수다를 떠는 것. 진짜 가난한 야구단이란 설정에 리얼하게 와 닿는다. 이제 오합지졸이 다윗이 되어 골리앗을 이기거나 최선을 다하는, 감동을 자아내는 승부만 있으면 된다. 그런데 ‘리얼’이다. 한 편의 경기가 아니기에 리얼에만 맡길 수 없는 드라마가 필요하다. 일반적인 스포츠물의 동력인 골리앗 혹은 절대 악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래야 이 스토리가 이어진다. 그런 점에서 두 번째 상대팀으로 등장한 조기축구회의 부진과 같은 변수는 제작진에게 뼈아팠을 것이다.
<날아라 슛돌이>를 벤치마킹 하라
문제는 <천하무적 야구단>의 리얼이 스토리라면 버라이어티는 쇼다. 시트콤처럼 ‘야구단’을 극화하는 것을 이처럼 ‘리얼’이란 이름으로 끌고 간다면, 그 안을 채우는 것은 버라이어티의 요소인 쇼다. 주장 마르코를 위한 퀴즈는 시청자들에게도 야구 상식을 전달해주고 이경필 코치를 초빙해 나름 체계적인 훈련모습도 보여준다. 그러나 재미를 위해서 누가 더 슬라이딩을 멀리하는지, 고무 타이어 멀리던지기나 쳐서 멀리 보내기 등의 몸개그 대결을 펼친다. 오디션에서도 기존 멤버와 탁구나 유연성 대결 등의 쇼를 가미한다.
그런데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복합명사에 스토리가 들어오면서 충돌이 빚어진다. 냉소적으로 말하면 할 수 있는 설정이 정해져 있다. 그리고 대부분 벌써 했다. 팀을 만들었고, 선수를 영입했고, 훈련을 한다. 경기 외적인 요소는 여기까지다. 이걸 벗어나는 것은 야구 경기장 안에서의 무엇인가다. 이제 야구에서 뭔가를 뽑아낼 때다. 배명중과의 야구 경기는 그런 점에서 희망이 보였다. 콜드 게임으로 어이없이 지긴 했지만 몸개그 측면에서나 야구를 배우는 입장에서 많은 걸 보여주었다. 어차피 경기는 KBS <날아라 슛돌이> 같은 것이다. 정교함보다는 감동이고 감동보다는 아직 재미와 귀여움을 자아내는 데 노력해야 한다. 억지로 시민과 함께 하는 지하철 버스 타기 같은 시도는 큰 재미가 없다. 그건 스토리와 상관없는 리얼 버라이어티의 궤적만 쫓을 뿐이니까.
글 김교석
글. 김교석 (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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