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있으면 유쾌해지는 배우가 있다. 껑충한 키를 주체하지 못하는 듯 어설프게 서 있는 뒷모습이나 부리부리한 눈으로 뚫어져라 쳐다보지만 그 모습이 무섭기 보다 입 꼬리가 올라가게 만드는 배우. 그가 바로 아베 히로시다. 아베 히로시를 처음 본 작품은 2001년에 방송된 <히어로>였다. <히어로>의 주인공은 물론 키무라 타쿠야였지만 가장 눈길이 가는 배우는 시바야마 검사를 연기한 아베 히로시였다. 말쑥한 겉모습은 딱 엘리트 검사의 그것이지만 실상은 늘 사무관과 투닥 거리고 동료 검사와 웃기는 불륜을 저지르는 시바야마는 <히어로>의 활력소였다. 그리고 2006에 방송된 <결혼 못 하는 남자>는 아베 히로시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배우인지 알려 준 작품이었다. 처음 봤을 땐 ‘아니, 뭐 저런 인간이 다 있나’ 싶을 정도로 곁에 두기 불편한 괴팍한 남자, 쿠와노 신스케였지만 <결혼 못 하는 남자>의 마지막 회를 보고 나서는 그의 매력에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 수 밖에 없었다.

아베 히로시,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남자

이번 2분기 후지TV <하얀 봄>을 기대했던 이유도 바로 주연을 맡은 아베 히로시 때문이었다. 게다가 <하얀 봄>은 <결혼 못 하는 남자>의 제작진이 다시 한 번 뭉친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각본을 맡은 오자키 마사야는 2004년에 <앳 홈 대드>에서도 아베 히로시와 함께 작업한 바 있다. <특명 계장 타다노 히로시> 시리즈나 <호랑이 아내 일기> 시리즈 등의 작품도 집필한 오자키는 코미디의 완급 조절이 능한 작가다. 드라마와 코미디를 균형 있게 직조하는 오자키 작가는 일련의 작품들 속에서 아베 히로시의 매력을 120% 끄집어냈고, 특히 아베 히로시를 통해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남성 캐릭터를 그려내곤 했다. 일류 광고회사의 엘리트 샐러리맨이었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된 <앳 홈 대드>의 야마무라나 외부적인 조건은 최상이지만 편협하고 독선적인 성격에 사회성이 떨어지는 <결혼 못 하는 남자>의 시마노는 결코 통상적인 관념으로 멋진 남자는 아니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남자들이었다.

<하얀 봄>의 사쿠라 하루오(아베 히로시) 역시 마찬가지다. 전직 야쿠자였던 사쿠라 하루오(아베 히로시)는 9년간의 형기를 마치고 막 형무소에서 나왔다. 그의 죄목은 살인이었다. 사쿠라는 9년 전 동거 중이던 애인 타카무라 마리코(콘노 마히루)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조직의 명을 받아 살인을 저질렀다. 9년 만에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이 운 나쁜 남자를 기다리고 있는 세상은 가혹하기만 하다. 9년간 모은 전 재산을 출소 첫날 도둑 맞아 빈털터리가 된데다 자신의 처지 때문에 매정하게 떠나보냈지만 행복하게 살길 바랐던 마리코가 이미 죽었다는 소식이 기다리고 있다. 사실 사쿠라는 마리코를 위해 손을 씻고 조직을 나오려 했다. 그래서 조직의 명령을 받아들였다. 결국 잡혀서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조직에서 800만 엔의 사례금을 약속했기에 마리코가 그 돈으로도 병을 고치지 못하고 죽었다는 사실을 사쿠라는 받아들일 수 없다. 게다가 자신과 헤어진 뒤 마리코가 무라카미 야스시(엔도 켄이치)라는 제빵사를 만났고, 그가 9년 전 큰돈이 드는 빵집을 개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쿠라는 무라카미를 의심한다.

은퇴한 야쿠자 아빠, 성실한 제빵사 아빠

사쿠라는 무라카미의 빵집을 찾아가 행패를 부리며 주위를 맴돌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소녀, 사치(오오하시 노조미)를 만난다. 사치는 죽은 마리코의 딸이다. 병세가 악화 된 마리코가 사치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 죽은 뒤 무라카미와 마리코의 여동생인 카나코(시라이시 미호)가 함께 사치를 키웠다. 그래서 모두들 사치를 무라카미의 딸로 알고 있지만 사실 그녀는 사쿠라의 딸이었다. 사쿠라가 감옥에 들어가기 전 마리코는 사치를 임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지 못했던 사쿠라는 우연히 공원에서 만난 사치를 그저 좀 귀찮은 꼬맹이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피는 못 속인다고 했던가. 우연의 만남이 거듭되면서 사쿠라는 왜인지 사치에게 자꾸 마음이 쓰인다. 사치 역시 마찬가지다. 험상궂은 사쿠라의 모습에 모두들 그를 피하지만 그녀는 그를 ‘상냥한 아저씨’라고 부르며 따른다.

<하얀 봄>은 부성애의 드라마다. 야쿠자 조직의 말단으로 살다가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생을 낭비한 나쁘다기 보단 서투른 한 남자, 사쿠라가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한 순간, 단 하나 남아있던 소중한 것과 만나게 된 뒤 어떻게 변해갈 지를 그려가는 드라마다. 그리고 또 한 남자가 있다. 비록 친 자식은 아니지만 사랑하는 여인이 남긴 딸을 자기 자식으로 여기고 지금까지 소중하게 키워 온 무라카미 역시 사치의 행복만을 기원하는 아버지다. 괴롭힘을 당하는 딸을 위해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 진땀 흘리며 부탁하는 아버지 무라카미와 괴롭히는 아이들을 직접 협박하는 아버지 사쿠라. 이처럼 두 사람이 보여주는 다르지만 닮은 사랑의 모습이 <하얀 봄>이 이야기하는 부성애다. <하얀 봄>은 오자키 작가의 장기인 적재적소에 가미된 코미디로 따뜻하지만 식상하지 않은 휴먼 드라마를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서툴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을 보여주는 아버지를 연기하는 아베 히로시의 모습은 잔잔하게 가슴을 울린다.

글. 김희주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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