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해피선데이> ‘남자의 조건’은 실생활에선 익숙하지만 예능에선 볼 수 없었던 아저씨들의 모습을 통해 리얼 버라이어티의 춘추전국시대에서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의 영토를 확보했다. 거창한 제목과 달리 출연자들은 아내에게 ‘다시 태어나도 나와 결혼하겠느냐’는 말을 못해 쩔쩔 매고, 24시간 금연 때문에 방송을 포기하다가 해병대 캠프에선 예비역이랍시고 허세를 부린다. 이런 아저씨들의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자신은 그들과 거리가 먼 듯 말하지만 “몇 년 전만 해도 가방 사고 멋 부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이젠 머리 만지는 것도 귀찮은” 신원호 PD를 만나 그와 시청자를 사로잡은 ‘아저씨의 유혹’에 대해 들어보았다.

<해피선데이>에서 ‘1박 2일’ 외의 코너가 화제가 된 건 오랜만인 것 같다. ‘1박 2일’과 비슷한 리얼 버라이어티란 것도 흥미롭고.
신원호
: 그 전에 ‘이 맛에 산다’와 ‘스쿨림픽’을 연출했었다. 그 때까진 굳이 남들 다 하는 리얼 버라이어티를 할 생각이 없었다. 그냥 웃기면 될 거라는 생각, 내가 충분히 웃겨주면 당연히 그만큼 시청자가 즐거워해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시청자들에게 외면을 받았다. 게시판에 올라온 평가 중에 가장 충격적이었던 게 촌스럽다는 거였다. 다른 프로그램들은 진짜처럼 하는데 너흰 쇼를 하고 있는 거 아니냐는 평을 보면서 내 생각과 대중의 생각이 다르다는 걸 알았다.

“‘남자의 자격’에는 ‘1박 2일’이나 ‘패밀리가 떴다’에 없는 개념을 설정했다”

리얼 버라이어티가 대세라는 걸 받아들였단 건가.
신원호
: 대세라기보다는 이제 일종의 종착역에 다다른 것 같다. 예전에는 연애가 트렌드였다가, 게임으로 트렌드가 옮겨가는 식으로 흐름이 바뀌었는데 이젠 어떤 새로운 게 나와도 리얼을 밑바탕에 깔고 갈 거라고 본다. 여태까지 온 과정을 보면 연애든 게임이든 그 안에서 스토리가 생기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그런데 결국 스토리 중 가장 볼만한 건 실화니까 스토리가 있는 리얼 버라이어티로 트렌드가 정착한 것 같다. ‘남자의 자격’이 특별히 리얼을 표방하지 않는 건 이제 그게 너무 당연하기 때문이다. 예능 프로그램이 굳이 ‘우린 예능 프로입니다’라고 표방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남들 다 하는 거라 별로 하고 싶지 않았던 리얼 버라이어티를, 그것도 이미 MBC <무한도전>, ‘1박 2일’ 등이 많은 걸 해버린 상황에서 하려 하니 힘들지 않았나? 아이디어를 짜거나 변별점을 찾는 것에 있어서.
신원호
: 사실 ‘1박 2일’이나 SBS ‘패밀리가 떴다’가 리얼이 할 수 있는 걸 종합선물세트로 보여주고 있다. 1박 2일 동안 같이 밥 먹고, 자고, 이동하고. 이걸 피할 수는 없으니 그들과는 다르게 끝이라는 개념을 설정했다. ‘1박 2일’이나 ‘패밀리가 떴다’는 어딜 다녀오는 거지, 어떤 시간제한이 있는 건 아니지 않나. 물론 나름의 기승전결은 있지만 엔딩을 향해 달려간다는 느낌은 없으니 우린 그 부분에서 차별을 두려 했다.

하지만 미션 수행이라는 부분에서 MBC <무한도전> 같은 프로그램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진 못했을 것 같다.
신원호
: 사실 미션이란 말은 일종의 틀일뿐이고, 정말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저씨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가에 대한 것이었다. 부활한 ‘불후의 명곡’이 버텨주는 동안 새로운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케이블 TV 프로그램을 많이 봤다. 그 중 KBS드라마 <하하호호 부부유친>처럼 아저씨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이 재밌었다. 이 아저씨란 사람들이 대화하는 내용이 사실 바람직하진 않은데 한편으론 귀여웠다. 딱 예비군 같은 느낌. 남자들은 아무리 나이 먹어도 애 같다는 데 나이 드신 양반들이 철딱서니 없는 얘기 하는 모습이 귀엽더라. 그런 걸 보여주고 싶었다. 가령 이경규는 TV 나와서 허구한 날 센 척만 하는데 아내랑 전화만 하면 작아지는 거다. 연예인 이경규가 아닌,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빠인 모습을 보여주면 평소와 달리 사랑스러워 보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자막 마구 때려넣어서 캐릭터를 인위적으로 만드는 건 내 취향이 아니다”

실제로 가장 많이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 건 이경규다.
신원호
: 처음부터 생각한 건 이경규가 달라보여야 이 코너가 산단 거였다. 그래서 선생님을 데려왔다. 이 사람을 사랑스럽게 만들려면 위에 앉아서 군림하고 버럭버럭하게 하면 안 될 거 같아서 2인자로 끌어내렸다. 과거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주병진 밑에 있었던 이후 거의 20년 만에 2인자가 된 거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경규의 다른 모습도 볼 수 있고, 1인자가 아니니까 다른 사람들이 공격하기도 쉽다.

천적 김국진의 존재도 재밌지만 가장 눈에 띄는 건 이윤석의 반항이다.(웃음)
신원호
: 김국진 같은 경우는 이경규와 같이 초반 미팅 할 때 같이 의견을 나눴다. 얘기를 하다보면 이경규가 조금 뜨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럴 때마다 김국진이 중간 중간 브레이크를 걸더라. ‘형, 이건 아니지’ 그러는데 이경규는 반발을 못한다. 얘기가 쭉 가다가 그렇게 브레이크가 걸리면 그냥 접어버린다. 그건 확실히 보였다. 그래서 참 특이한 관계라 생각하고 그걸 살릴 생각이 있었다. 이윤석의 경우 사실 걱정을 안 한 건 아니다. 이경규와의 투 샷은 좀 지겹지 않나. 하지만 실제로 얘길 나눠보면 굉장히 남자다운 타입이다. 예상하듯 다정다감한 스타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거친 건 아니고 딱 부러지는 그냥 남자. 그런 모습이 발현되면 재밌을 거라 생각했는데 여기서 다른 사람들과 합세해 이경규를 공격하니 달라 보이는 거다.

몇 주 만에 다들 캐릭터가 잘 잡힌 거 같다.
신원호
: 코너 준비하는 시기부터 작가들에게 약속을 했다. 인위적으로 캐릭터 잡는 건 안 하겠다고. 사실 몇 년 전부터 예능 프로그램에서 캐릭터가 안 잡히면 살아남을 수가 없지 않나. 그런데도 불구하고 KBS PD들은 자막 넣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 실제로는 캐릭터가 안 잡혔는데 죽어라 자막 때려 넣으면서 캐릭터 만드는 거, 사실 효과는 분명히 있다. 자막을 계속 보다보면 어느새 그 캐릭터들의 관계를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나는 그걸 잘 못하니까 그냥 조급해하지 말자고 했다. ‘당신은 이런 캐릭터로 가자’는 식의 강요는 안 하기로 했다. 실제 김성민 씨 같은 경우도 원래 그 모양이다.(웃음) 누가 시킨 것처럼 보일 정도로 워낙 독특한 캐릭터지만 원래 그렇다. 너무 맑고, 에너지는 항상 ‘만땅’이고.

사실 가장 의외인 멤버도, 그리고 의외의 재미를 주는 멤버도 김성민이다. 대체 어떤 계기로 섭외한 건가.
신원호
: 일단 선수는 김국진, 이경규면 충분하다. 이윤석도 있고. 여기에 다른 스타를 붙이는데 아이돌 같은 뻔한 조합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좀 괜찮고 정상적인 사람 중에서도 나이대를 확 높여야 하는데 그 마지노선이 이정진이었다. 또 하나를 찾다가 예전 ‘여걸 파이브’에 게스트로 나왔던 김성민이 생각났다. 그 때 느낌은 점잖으면서도 참 재기발랄한 정도였는데 실제로 만나니 말이 진짜 많았다.(웃음) 남의 눈에 어떻게 보이고, 무게 있어 보이는 것에 대한 권위 의식 같은 게 전혀 없다. 사실 <인어아가씨>로 등장할 때부터 스타가 됐고, 어떤 드라마에서든 중요한 역할을 맡는 사람인데 그런 마인드가 전혀 없다. 사람이 좋다. 그래서 섭외하면서 모 아니면 도라고 생각했다. 호감으로 진심을 봐주면 통하는 거고, 오버라고 생각하면 망하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반응은 좋은 거 같다.

어떻게 보면 개개인 캐릭터보단 조합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분위기가 더 중요할지 모르겠다. 금연 도전에서 담배를 안 피워서 고생 안 하는 김성민의 모습이나 방송 생각 안하고 김태원이 멍하게 있는 것도 그 안에선 재밌는 그림이 된다.
신원호
: 뭘 하든 이 사람들이 하니까 달라 보이긴 한다. 솔직히 되게 지겨운 아이템 아닌가. 리마인드 웨딩은 아침 방송에서 수십 번 했던 거고, 군대는 허구한 날 하는 아이템이다. 사실 금연할 때 침 맞는 것도 그렇고. 하지만 아저씨들이 침 맞겠답시고 앉아있는 모습은 뭔지 모르지만 다른 무언가가 있더라.

금연하는 걸 정말 어려워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기본적으로 대단한 미션은 아니지만 그게 굉장히 생활 밀착형으로 느껴지니까 미션 수행의 어려움에 공감이 간다.
신원호
: 실제로 1회 녹화 때 담배를 너무 피웠다. 리얼 버라이어티에선 30분짜리 ENG 카메라의 테이프를 갈 때마다 6㎜ 카메라가 붙어서 중간 상황을 찍어줘야 한다. 보통은 그 때 출연자들의 긴장감이 떨어져서 솔직한 토크가 나오는데 담배를 하도 피워서 찍을 수가 없는 거다. 그러다 금연 미션이 떠올랐다. 사실 걱정도 많이 했다. ‘반발하면 어쩌지?’ 사람도 많고, 진짜 골초니까. 원래는 ‘이번엔 이거 할 거예요’라고 언질을 줘야 하는데 그 땐 아예 얘기를 안 꺼냈다. 일단은 리액션 자체가 클 테니까. 어쨌든 다들 잘 받아들여줬다. 오히려 우리는 누군가 피워주길 바랐다.(웃음) 그러다 이윤석이 걸린 거지. 이경규가 답답해서 소리를 지를 때 카메라가 다 거기로 쏠렸고 그 틈에 이윤석이 쑥 내려갔다. 그걸 우리 FD 중 하나가 보고 있다가 따라가서 잡은 거다. 안 그러면 못 볼 뻔 했다. 방송 생각 안 하고 도망을 가다니.(웃음)

“리얼 버라이어티 안에서 남들이 안 한 걸 찾는 게 힘들다”

스스로도 얘기했지만 통제하는 건 어떤가. 인원도 많고 나이도 많지 않나.
신원호
: 나도 답답한 게 반말 할 수 있는 사람이 이정진과 김성민, 두 명 밖에 없다. 웬만하면 버라이어티 선수들이 30대 초중반이니까 나보다 나이 많은 건 보통 두 세 명인데 여긴 다 형들이다. 그래서 처음엔 좀 부담스러웠다. 금연 미션에선 자고 일어나니까 모두들 정말 금단현상이 와서 방송되겠나 싶을 정도로 지쳐있었다. 유산소 운동을 시켰는데 다들 멍해져서 정말 운동만 하는 거다. 이거 방송 어떻게 내냐고 했더니 담배를 못 피니 아무 생각이 없다는 거다. 다행히 침 맞으면서 이 사람들이 조금씩 살아나 분량은 나왔다.

말하자면 이번 해병대 편처럼 조교가 예비역 선배님들 달래는 모습 아닌가.(웃음) ‘1박 2일’처럼 그런 모습 자체를 카메라에 담으면 더 리얼하지 않을까?
신원호
: 우선 ‘1박 2일’과 겹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거긴 제작진이 미션을 주고 협상하는 게 프로그램을 위한 큰 장치지 않나. 그쪽과 겹치지 않으려면 우리 코너에선 제작진이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나 스스로 카메라 앞에 서는 걸 싫어한다. 어쩌다 출연자가 PD나 작가를 걸고 넘어졌는데, 그게 너무 재밌어서 날릴 수 없는 상황을 제외하면 카메라 앞에 나서는 건 안 하려고 한다. 선생님이란 장치도 제작진이 미션을 던지는 것보다 훨씬 신뢰도를 높일 수 있어서 도입한 거다. 또 ‘죽기 전에 해봐야 할 101가지’라고 하면 멘토라는 사람이 던져주는 게 시청자가 받아들이기에도 좋고.

계속해서 선생님은 그렇게 어르신으로 설정할 생각인가.
신원호
: 해병대 체험 다음은 육아인데 이번 선생님은 7살짜리 아이다. 엄마가 나와서 ‘남자들도 한 번 해봐야 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나은 거 같다. 아이가 ‘아빠들은 왜 안 봐주나’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게. 선생님이 꼭 나이 많은 분일 필요가 있는 건 아닌데 사람들이 그렇게 인식할 수 있으니 이렇게 한 번 흔들어줄 필요가 있다. 그러고 나면 선생님 자리가 편할 거 같다. 젊은 친구가 와도 되고. 오늘 할 미션에 대해 할 말이 있는 사람이면 된다고 생각한다.

101가지 중 나머지 97개도 준비됐나.(웃음)
신원호
: 매주 허덕거리면서 아이템을 준비한다. 현재는 일단 초반이라 쉬운 거, 한 번 들으면 ‘아, 그거’라는 느낌이 드는 걸로 한다. ‘리마인드 웨딩하면 결혼 하겠구나, 금연하면 담배 끊겠구나, 군대 하면 훈련 받겠구나’ 같은. 이렇게 쉬운 것만 하다 조금씩 바뀔 거 같다.

하루 시간 제한을 둔 미션만 하고 있는데 장기적 미션을 할 생각은 없나?
신원호
: 생각은 하고 있는데 요즘은 뭘 하려고 하면 다 했더라.(웃음) 게다가 PD들은 TV를 잘 안 보니까. 가령 ‘밴드하자 밴드, 다 밴드하고 싶대’ 이러면, 이미 했단다. ‘패밀리가 떴다’도 하고. <무한도전>도 하고. 사람 생각하는 게 다 비슷한 거 같다. 천재 같은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그래도 결국 새로운 걸 만들어야 하는 게 예능 PD 아닌가.
신원호
: 갈수록 힘들다. 기본적으로 노동 강도는 높았으니까 그건 그냥 접고서라도. 옛날에는 그래도 PD가 다른 걸 시도할 여지가 좀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리얼 버라이어티 안에서 남들이 안 한 빈틈을 찾아야 하니까. 솔직히 우리 이거 하고 나면 다른 사람은 뭐 하나 싶다.(웃음)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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