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과 2NE1의 ‘롤리팝’은 음원이 공개되자마자 주요 온라인 차트에서 1위를 석권했다. 아직 컴백 무대를 갖지도 않은 2PM의 ‘Again & again’ 역시 음원 차트에서 상위권이다. 손담비의 ‘토요일 밤에’나 슈퍼주니어의 ‘Sorry Sorry’ 역시 비슷한 과정으로 인기를 얻었다. 어떻게 그들은 그토록 빨리 정상의 인기를 얻을 수 있을까. 이는 달라진 음악 시장의 환경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생존하는 작곡가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형 소속사의 기획과 마케팅의 힘이 어느 때보다 강해지고 ‘트렌드’라는 말이 ‘장르’보다 더 자연스럽게 쓰이는 지금, 작곡가들은 어떻게 곡을 만들고 어떤 방식으로 가수들에게 곡을 주는가.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들이 생각하는 작곡가의 모습이란 무엇인가. 가요계가 다시 서서히 달아오르는 지금, 가 그들의 가장 중요한 무기를 만들어내는 작곡가들의 이야기를 포커스로 준비했다. ‘롤리팝’을 작곡한 원타임 출신의 프로듀서 테디의 인터뷰와 한 곡의 노래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지금 한국의 메인스트림 음악계를 이끄는 7명의 작곡가의 현재도 담았다.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후크송’은 사실 장르가 아니다. 한 가지 기법이다. 그것은 몇 년 전 SG워너비를 비롯한 몇몇 가수들의 노래가 ‘미디엄 R&B 혹은 한국식 R&B’라 명명된 것과 비슷하다. ‘미디엄 R&B’가 R&B의 한 장르가 아니라 미디엄 템포에 ‘소몰이 창법’을 더한 한 가지 창작 패턴이듯, ‘후크송’도 귀에 잘 들어오는 짧은 멜로디를 곡의 도입부부터 반복하는 한 가지 기법이다. 원더걸스의 ‘Nobody’와 손담비의 ‘미쳤어’는 전혀 다른 노래지만, 한국에서는 이 기법적인 유사성 때문에 모두 ‘후크송’이 됐다. ‘후크송’에서 주목할 것은 이것의 장르적 성격이 아니라 작곡의 기법 하나가 가요계 전체에 퍼져 장르처럼 받아들여지는 현상 자체다. ‘미디엄 R&B’의 대표주자였던 작곡가 조영수는 지난해 ‘One more time’이라는 멜로디가 귀를 때리는 씨야의 ‘Hot girl’을 작곡했다. 용감한 형제는 손담비의 ‘미쳤어’,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어쩌다’, 다시 손담비의 ‘토요일 밤에’로 ‘후크송 3연타’를 때렸다.
곡을 주문하는 회사와 공정에 따라 만들어내는 작곡가
모든 나라에는 유행하는 음악이 있다. 하지만 한국처럼 한 가지 기법이 시장 전체에 영향을 주는 경우는 드물다. 이는 한국 대중음악시장과 그 중심에서 일하는 작곡가들의 변화를 보여준다. 과거에 전업 작곡가란 자신의 감성을 끄집어내서 그 곡에 어울리는 가수를 찾는 직업이었다. 하지만 요즘 작곡가들은 기획사의 콘셉트와, 마케팅 전략과, 홍보 기획에 최적화된 곡을 만들어낸다. 故이영훈이 이문세를 만나 한국 가요사를 다시 쓰거나, 김태원이 몇 년 만에 ‘사랑할수록’의 멜로디를 떠올려 인생역전을 하는 일은 없다. 대신 박진영이 원더걸스에게 ‘Tell me – So hot – Nobody’를 주고, 그것을 레트로 3부작이라는 콘셉트로 묶어 성공시킬 수는 있다. JYP엔터테인먼트(이하 JYP)의 관계자는 “요즘 기획사는 작곡가에게 소속사 가수에게 최대한 맞는 콘셉트의 곡을 만들 것을 요구한다. 자신이 원하는 곡을 만들어서 그 노래를 부를 가수를 찾는 시대는 실질적으로 지났다”고 말했다.
노래는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노래가 가수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것도 아니다. 그룹 2PM은 ‘Again & again’을 발표하기 전 그들의 새로운 모습이 담긴 티저 광고를 두 차례에 걸쳐 보여준 뒤, 컴백을 알리는 독특한 거리 퍼포먼스를 했다. 노래는 기획사의 이런 마케팅 계획을 완성시키는 마지막 퍼즐 조각이다. 이젠 팬들도 티저 공개와 음원 공개, 무대 컴백의 일정이 다르다는 것을 안다. 최근 대형 기획사의 가수들의 노래가 엄청난 속도로 차트 정상에 오르는 것은 이런 마케팅이 정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곡가는 회사를 만족시킬 때까지 끊임없이 회사와 의견을 교환해야 한다. 한 작곡가는 “요즘은 회사의 A&R(Artist & Repertory : 회사에 필요한 곡을 쓸 뮤지션을 찾고, 그 제작 과정 전반을 관리하는 부서)에게 잘 보여야 곡을 팔 수 있다는 말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음악 시장의 쏠림 현상은 이런 현상을 가속화시킨다. 과거 한국의 작곡가들은 곡을 알리는데 그나마 공평한 기회를 부여 받았다. 대중이 TV 음악 프로그램과 라디오를 통해 음악을 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악을 클릭해서 듣는 요즘, 대중은 더 많은 곡을 선택할 수 있는 대신 그만큼 눈에 띄는 가수의 노래들만 선택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손담비의 소속사는 그의 복귀전부터 ‘복고’와 ‘김완선’이라는 단어로 손담비의 무대 콘셉트를 설명했고, ‘토요일 밤에’의 발표 뒤에는 끊임없는 보도자료를 통해 인터넷 어디서든 손담비의 기사를 읽을 수 있게 했다. YG의 신인 그룹 2NE1은 LG사이언의 마케팅과 같은 회사의 그룹 빅뱅이라는 로케트 엔진을 달고 순식간에 각종 음원차트 1위를 석권했다. 대박을 결정하는 건 여전히 작곡가의 감각이지만, 그 곡을 밀어 올릴 프로모션의 키는 회사가 쥐고 있다. 그만큼 작곡가가 움직일 수 있는 여지는 줄어들었다. 게다가 디지털 음원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된 뒤, 작곡가들의 수입은 더욱 떨어졌다. 대부분의 온라인 음원 사이트가 정액제 다운로드를 실시하면서, 작곡가들은 음원 사이트의 회원들이 낸 회비 내에서 인세를 나눠 갖기 때문이다. 한 작곡가는 “한국은 아이튠즈처럼 곡당 얼마씩 곡을 팔아서 작곡가의 수입을 보장해주지도 않고, 저작권 협회는 작곡가들이 매달 어디서 얼마를 벌었는지조차 설명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히트곡 하나 써서 몇 년씩 여유 있게 보내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
“작곡가나 편곡가라는 개념은 지금 시대에 맞지 않는다”
이는 한국의 작곡가들이 어느 때보다 트렌드를 중요하게 여기게 된 이유 중 하나다. 박진영처럼 CEO가 되거나, ‘롤리팝’을 만든 테디처럼 한 회사의 전속 프로듀서로 일하지 않는 한, 시장의 작곡가들은 여러 회사가 바로 지금 원하는 콘셉트에 충실한 곡을 끊임없이 만들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작곡가와 회사 모두의 최선의 선택은 트렌드를 선점해 시장의 대세가 되는 것이다. ‘후크송’을 한국적 상황이 낳은 비극적인 혹은 희극적인 장르라고 할 수 있다면, 지난 2년여 동안 주류 작곡가들은 눈부실 정도로 이 기법을 변화시켰다. 박진영과 용감한 형제가 유행의 붐을 일으켰던 것이 E- tribe의 ‘Gee’와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이사인 유영진의 ‘Sorry Sorry’로, 다시 테디의 ‘롤리팝’으로 바뀌었다. 이 곡들은 국내에서 ‘후크송’으로 묶이지만, 사실상 작곡가의 특징에 따라 전혀 다를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다만 도입부에 강한 훅이 제시돼야 한다는 현재의 트렌드를 반영했을 뿐이다.
작곡가가 장르 이상으로 트렌드에 신경써야할 상황이 되면서, 작곡가는 과거와 다른 모습이 된다. 과거 작곡가들은 악상이 떠오를 때까지 건반 앞에 앉아 고민하곤 했다. 반면 E- tribe과 용감한 형제는 데뷔 전부터 클럽에서 댄서와 DJ 등으로 활동하며 지금 클럽의 트렌드를 몸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작곡가들에게 작곡은 어떤 멜로디를 떠올리느냐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때론 비트부터, 때론 어떤 사운드부터 떠올린다. 슈퍼주니어의 ‘Sorry Sorry’를 지배하는 건 멜로디가 아니라 앞부분에 등장하는 강한 전자음이다. 테디는 “작곡가나 편곡가라는 개념은 지금 시대에 맞지 않는다. 지금 같은 곡 작업 형태에서는 작곡가보다는 프로듀서라는 말이 더 정확하다”고 말했다.
10년 뒤에도 유희열이 탄생할 수 있을까
물론 지금도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으로 작곡을 하고, 가수에게 곡을 주는 작곡가들도 있다. 또한 유희열이나 이적 같은 1990년대의 싱어 송 라이터는 여전히 훌륭한 곡들을 만들어내고, 대중적인 지지도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음악 시장이 이런 작곡가들을 10년 뒤에도 배출해낼 수 있는가는 미지수다. 특히 헤게모니를 쥔 기획사들이 천차만별의 방식으로 움직인다는 점은 시장의 불안요소다. SM, YG, JYP는 각자의 A&R 시스템이 있지만, 기획사 중에는 아예 A&R의 개념조차 불분명한 곳도 많다. 시장은 불안하고, 시스템은 정립되지 않았으며, 작곡가들은 미국의 트렌드와 거의 동시대를 사는 경우부터 바뀐 트렌드에 대처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잊혀지는 경우까지 극과 극이다.
그래서 지금 작곡가들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각자의 생존방식을 찾는다. 테디의 ‘롤리팝’과 방시혁의 ‘30분전’은 이 혼란의 시대에서 작곡가가 선택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다. ‘롤리팝’은 메인스트림 중의 메인스트림 싱글이다. 빅뱅이라는 최고의 스타가 노래를 불렀고, LG 사이언이 기획과 마케팅을 담당했으며, 곡은 만들어진 즉시 한국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거의 모든 매체로 퍼져나갔다. 테디는 이 화려한 자본과 마케팅과 홍보를 바탕으로 음악은 물론, 가수들의 패션과 뮤직비디오의 비주얼 콘셉트까지 총괄했다. ‘롤리팝’은 작곡이 더 이상 곡을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면 방시혁은 자신이 만든 ‘30분전’을 홈페이지에 공개하면서 이 노래를 부를 가수를 찾았다. 그는 자신의 곡 자체를 하나의 마케팅 포인트로 삼으면서, 오히려 곡이 부각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이들의 음악에 대한 접근방식은 마치 정반대처럼 보인다. 하지만 두 사람이 가리키는 것은 분명하다. 더 이상 작곡가는 앉아서 작곡만 할 수 없다. 그들은 마치 정글의 동물들처럼 자신의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서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글. 강명석 (two@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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