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뢰 감독은 굉장히 바빴다. 다른 드라마와 달리 거의 사전 제작에 가까운 제작 일정으로 드라마를 찍어 조금은 여유가 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그는 촬영이 없는 날이면 하루 종일 드라마의 후반 작업에 정성을 기울이고 있었다. 황인뢰 감독은 MBC <돌아온 일지매>의 촬영을 2월말까지 모두 끝내고 나면 후반 작업을 통해 드라마의 완성도를 최대한 올려놓을 생각이다. 어쩌면 황인뢰 감독은 우리에게 후반으로 갈수록 드라마의 완성도가 좋아지는 기이한 경험을 시켜줄지도 모른다. 황인뢰 감독의 귀한 시간을 뺏어 <돌아온 일지매>에 대한 그 스스로의 중간 평가를 들었다.

“드라마를 대사 위주로 찍는 게 싫었던 것 같다”

6회까지 방송됐다. 스스로 보기에 어떤 생각이 드나.
황인뢰
: ‘책녀’의 나레이션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생각보다 많이 나와서 내 생각하고 반응이 조금 다른 것 같다. 나는 나름대로 관찰자 시점으로 그린다고 생각했는데, 시청자들은 몰입이 잘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 같다. 드라마 마다 나름의 방식 같은 것이 있다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

나레이션은 따로 쓰는 작가가 있는 걸로 알고 있다.
황인뢰
: MBC <출발 비디오 여행>에 원고를 썼던 한동원 씨에게 부탁하고 있다. 원작에 있는 말들을 나레이션에 쓰는데 아무래도 30년 전의 멘트다 보니까 약간의 현대적인 감각이 필요하다. 특히 해학 같은 걸 살리다 보니까 옛날 문장을 완전히 그대로 쓸 수는 없더라. 그래서 조금 더 재밌게 고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공개된 <돌아온 일지매>는 스토리뿐만 아니라 표현 방식에서도 원작과 상당히 비슷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특별히 그렇게 한 이유가 있나.
황인뢰
: 원작에는 그 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모습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400년 전에도 있었는데, 누군가 어떤 생을 살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런 생들이 쌓여서 결국 우리에게까지 이어지는 거니까, 그런 부분을 알게 모르게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한국 드라마들은 대사 위주이지 않나. 개인적으로 드라마를 그렇게 찍는 게 싫었던 것 같다. 그래서 원작의 나레이션이나 구성 방식을 가져오게 된 거고.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그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보통은 드라마의 주인공과 동일시해야 이야기에 빠지는데, <돌아온 일지매>는 일지매가 어떻게 일지매가 됐는가를 보여주고 싶은 거니까.

특히 조연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자세히 이야기해주는 방식은 부담이 되지 않나. 보통 드라마에서는 선택하기 어려운 방식인데.
황인뢰
: 지금도 솔직히 염려는 된다. 보통 드라마들은 메인 주인공이 있으면 보조 캐릭터들이 있고, 그 사람들 가지고 끝까지 끌고 가면서 3각, 4각 갈등을 주는 식이다. 그런데 <돌아온 일지매>는 일지매의 행동 반경에서 벗어나 있으면 스토리의 흐름에서 빠지게 된다. 그렇다고 보통 드라마 하는 대로 하면 원작의 상당 부분을 버려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시도지만 한 번 해보자고 생각했다. 솔직히 시청률 측면에서는 걱정이 된다. 하지만 중반 이후에 이야기를 제대로 끌고 가려면 그런 작업이 필요하고. 그리고 다른 얘기지만 일지매가 원작에서는 살생을 많이 하는 걸로 나와서 캐릭터 잡는 것도 고민이다.

“배경이 쌍문동 쪽이면, 일부러 도봉산 밑에서 찍기도 했다”

차돌과 배선달은 원작에 없는 캐릭터인데 집어넣었다. 굉장히 캐릭터가 많은 드라마인데 새로운 캐릭터를 넣은 이유가 있는지.
황인뢰
: 우리가 하고 있는 드라마라는 게 예전에는 차돌이 같은 사람이 길거리에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 전하는 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것들을 잘 살려서 차돌이 같은 캐릭터를 넣고 싶었다. 시청자들이 옛날이야기를 듣는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남긴 이야기가 여덟 권의 책으로 남아 우리 곁에 일지매가 돌아오게 만드는 자기장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 부분도 있고. 그래서 일지매는 이 이야기를 통해 여전히 현실이라는 걸 전달하고 싶었다.

서사도 서사지만 영상 위주로 드라마를 끌고 간 것도 모험 아니었나. 인물보다 풍경 중심으로 드라마를 끌고 가는 게 인상적이었다.
황인뢰
: 그건 내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것 같다. 정확한 제목은 기억이 안 나지만, 예전에 외국의 한 여자 지리학자가 구한말 고종 시대에 대해 쓴 책이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게 우리나라에서 나온 책보다 훨씬 더 재미있게 읽혔다. 왜 그 서양학자가 쓴 조선시대의 풍속사가 더 잘 읽혔을까. 그거에 대해서 계속 생각을 했는데, 그 책이 그 시대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시대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를 돕는 내용이었다. <돌아온 일지매>에서도 어떤 욕심을 냈다면 그런 거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400년 전의 시대로 돌아가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사이의 혼란 같은 걸 볼 수 있다면 좋겠다. 개개인의 이야기를 따라 그 시대를 이해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시대를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첫 회에 현재의 서울을 등장시킨 것도 <돌아온 일지매> 속의 시대와 현재 시대와의 연관성을 보여주기 위해서인가.
황인뢰
: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과 그들이 살았던 서울이 같은 공간이니까. 사람 사는 것도 똑같고. 그리고 나레이터가 현재의 시점에 있는 것으로 설정했으니까 나레이터의 정체성을 이해 시켜주는 게 좋을 거 같아서 넣은 부분도 있다. 가능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의 풍경을 많이 보여주고 싶다. 예를 들어 일지매가 도망 다니면서 닭을 훔쳐 먹었던 동네는 예전의 쌍문동 쪽인데, 그래서 일부러 도봉산 밑에서 촬영하기도 했다. 찍다가 아파트촌 같은 게 있으면 CG로 지우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불필요한 공을 들였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거기에 나름의 미학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드라마 앞부분에 현재 서울의 모습이 옛날 모습으로 변하는 장면이 있으니까 그 전에 서울 장면을 넣어서 자연스럽게 바뀌도록 만들었다.

“일지매는 불쌍한 놈이지만, 그 시대에서는 필요한 인물”

일지매라는 캐릭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황인뢰
: 불쌍한 놈이지 뭐. (웃음) 한 개인으로 볼 때는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시대를 만나서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으니까. 개인으로는 불행한 친구지만, 그 시대에서는 필요한 인물이 됐던 거다. 원작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 일지매 같은 캐릭터를 끌고 가는 방식이라고 본다. 원래 참 차갑고 슬픈 이야기인데, 만화를 보다보면 그런 느낌이 안 든다. 감정을 쥐어짜지 않고, 꼭 슬픈 이야기를 낄낄거리듯이 하기도 하고. 한국 문학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부분이 해학이라고 하던데, 고우영 씨는 확실히 해학 쪽에서 강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 일지매가 사는 인조의 시대는 어떻다고 생각하나.
황인뢰
: 조선 역사 중에서도 최악 중 하나다. 리더 하나 잘 못 만나서 엄청 고생했더라. 인조는 쿠데타를 일으켜서 권력을 잡은 사람인데, 권력을 잡으면 안 될 사람이었던 것 같다.

앞으로 진행될 이야기에서 무엇을 담고 싶나.
황인뢰
: 우선 원작은 열린 결말로 끝나있는데, 우리는 후일담이 설정이 돼 있다. 원작을 새로 잇는 내용들이라서, 왜 일지매의 이야기가 오늘날까지 남게 되는가, 일지매는 청나라에서 돌아오는가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다. 그런 걸 기대해줬으면 한다. 그리고 이 드라마를 하면서 설교하거나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일지매라는 한 사람의 인생사를 따라가면서 사람의 인생살이에 대해 이해가 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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