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줄리엣 달링(사미라 암스트롱)이면 얼마나 좋을까…. 적어도 일주일에 두세 번은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돼지갈비 냄새를 풀풀 풍기는 코트에 페브리즈를 뿌릴 때(줄리엣이라면 이틀 연속 같은 코트를 입는 일, 아니 같은 코트를 두 번 이상 입는 일조차 없을 거다), 입고 갈 옷이 마땅치 않아 점 찍어둔 남자가 올 것이 확실한 파티에 가지 못할 때(줄리엣이라면 단지 관심 가는 남자를 보기 위해 직접 휘황찬란한 파티를 열겠지), 그리고 무엇보다 큰 맘 먹고 산 머리띠를 야심 차게 하고 출근했는데 상사로부터 “너 어제 또 술 마셨냐?(그래서 머리 안 감고 온 거지?)” 라는 소리를 들을 때….

사실 줄리엣이 뭐가 대단하냐고?

사실 <더티 섹시 머니>를 본 사람이라면, 그리고 패션잡지나 요즘 쏟아져 나오는 스타일 관련 책들을 들춰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줄리엣 달링의 스타일이 그다지 칭송할만한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것이다. 트렌드와는 전혀 무관한 옷들을 자기만의 스타일대로 늘 새롭고 멋지게 소화해내는 것? 줄리엣 달링은 관심 없다. 실존 인물에 비유하자면 줄리엣은 패리스 힐튼 스타일이다. “한 번 입은 옷은 두 번 다신 입지 않아요” 라고 말하며 매번 비싸기 짝이 없는 옷을 입고 나타나지만 매일 다른 옷을 입을 수 있는 경제력을 제외하곤 그다지 대단해 보이지 않는 패리스 힐튼. 냉정하게 말해서, 단 한번의 생일 파티를 위해 수억 원의 돈을 쓸 수 있을 만큼 부자라면 누군들 줄리엣처럼 옷을 입지 못할까. 오늘은 프라다, 내일은 블루마린, 모레는 마르니 캣워크에 나왔던 옷을 사들인 다음 몸에 걸치기만 해도 줄리엣 달링보다 훨씬 더 멋질 거다. 사이즈? 디자이너들이 알아서 수선해주겠지. 몸매? 마돈나처럼 최고의 트레이너와 요리사를 고용해서 만들면 되잖아!

그럼에도 줄리엣을 볼 때마다 대단하단 생각이 드는 게 있으니, 그건 바로 머리띠 활용 능력이다. 줄리엣은 다른 옷과 마찬가지로 헤어밴드도 수백 개쯤 갖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것들을 이런 저런 머리 모양과 매치해 다양한 느낌을 만들어내는 능력만은 최고다. 지금껏 헤어밴드의 대명사는 브리짓 바르도였는데, 고데기로 정수리 부분 머리를 동그랗게 부풀린 다음 그 앞쪽에 폭이 넓은 헤어밴드를 착용함으로써 우아함을 표현한 것이 브리짓 바르도 스타일이자 1960년대 풍이라면 폭이 아주 좁은 실버나 골드 밴드를 이마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오도록 매치하는 건 줄리엣 달링 풍이다. 파티에 가는 등 특별히 멋을 부리는 날엔 이마 바로 위에 헤어밴드를 위치시켜 사랑스러운 느낌을 연출한다.

두상과 헤어밴드의 비례, 머리카락 정돈 상태의 황금비율

어떤 아이템이나 그렇지만 헤어밴드는 특히나 사소한 디테일이 전체 분위기를 좌우한다. 이마부터 헤어밴드가 위치한 곳까지의 거리, 머리 모양과 헤어밴드의 두께의 비례, 헤어밴드 아래에 놓인 머리카락의 정돈 상태, 이마 위로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의 양, 하다못해 이마와 헤어밴드 앞쪽 머리카락이 이루는 포물선의 각도에 이르기까지 사소해 보이는 모든 것들이 스타일에 영향을 미친다. 한 순간의 방심이나 실수로 잘 차려 입은 옷차림을 ‘슈퍼마켓 가는 룩’으로 전락시키는 것도 이 예민한 물건의 힘이다.

그러니 대충 머리 위로 쓱 밀어 올린 것처럼 보여도, 이마 위에 ‘다만’ 얹어둔 것처럼 보여도 저런 흘러내림, 저런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줄리엣의 개인 미용사는 매일 아침 30분간 드라이어와 ‘바비리스’를 들고 고군분투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더티 섹시 머니>를 볼 때마다 ‘돈이 너무 많은 것도 불행한 일이야’ 생각하지만 솔직히 개인 미용사가 곁에 있는 건 눈물이 날 만큼 부럽다. 그런데 개인 미용사만 집에 있다면 나도 저렇게 헤어밴드를 잘 활용할 수 있을까? 몸매야 트레이너의 도움을 받아 만들 수 있다고 해도, 머리 크기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데도? 아아, 생각하다 보니 또 우울해진다. 내가 줄리엣 달링이면 정말, 얼마나 좋을까?

심정희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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