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는 살인적인 업무량은 나에게 ‘닥본사’의 꿈을 접게 한지 오래다. 모든 프로그램은 인터넷 다시보기나 IPTV로 보는 데 익숙해진 나는 ‘세바퀴’에 동방신기가 나왔을 때도, ‘패밀리가 떴다’에 빅뱅이 나왔을 때도 마음을 비웠다. 하지만 지난 주 MBC <100분 토론> 400회 특집 “2008 대한민국을 말한다”를 생방송으로 보지 못한 것은 역시 억울했다. 신해철, 유시민, 진중권(이상 가나다순) 트리플 조합이라니 H.O.T. 재결성만큼이나 성사되기 어렵고 파바로티, 도밍고, 카레라스의 합동 공연만큼이나 화려한 무대가 아닌가!

결국 황금 같은 주말, 두 시간을 꼬박 바쳐 본 <100분 토론>은 ‘토론쇼’라는 부제에 적절하게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캐릭터 리얼 버라이어티였다. 비록 올해의 주요 뉴스를 맞추지 못하는 패널에게 <야심만만>처럼 바람을 맞히는 벌칙을 주지는 않았지만 과거의 적은 오늘의 커플이 되어 김연아 앞에 대동단결하고, 믿었던 패널은 엑스맨으로 돌변해 ‘이쪽 편’의 수장을 향해 “헛발질하고 있다”고 일갈하는 돌발 상황은 그 자체로 흥미진진한 쇼였으며 다양한 어록도 남겼다. 이 날 방송에서는 하도 악플과 욕에 시달린 나머지 “영생의 길”에 도달해 가고 있다는 신해철의 자기고백도 있었지만, 역시 <100분 토론>의 마력은 이미 영생의 삶을 살고 있는 듯 한 진행자 손석희(53세)로부터 나온다는 것도 실감하게 했다. 처음 나와 긴장한 출연자에게는 공통 화제를 꺼내 배려해주고, 이쪽에서 장군을 부르면 저쪽에서 멍군을 외칠 수 있는 상대에게 마이크를 넘기며, 토론이 여의도 공성전을 향해 달려가면 “여기서 끝!”이라고 단호하게 선언하는 그는 역시 유재석의 자상함과 강호동의 카리스마를 겸비한 진행자였다. 그러니 새해에도 <100분 토론> 시청률이 400회 특집만 같기를. 가능하면 시간은 좀 앞으로 당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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