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한 해’라는 연말용 클리셰는 2008년의 연예계를 설명하는데 있어서는 가장 어울리는 표현이다. 문화대통령과 월드스타가 컴백하고, 젊은 배우들은 광우병 파동에 분노의 목소리를 냈고, 연예인으로서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고난을 이겨냈던 여배우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다양하면서도 하나하나의 무게감이 만만찮은 뉴스들은 2008년 한국 엔터테인먼트의 전체 지형도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10 FOCUS’의 두 번째 연말 기획은 올 한 해를 떠들썩하게 했던 연예계 소식들을 복기하는 ‘10 NEWS’다. TV 프로그램 혹은 코너 이름을 따서 분류한 2008년 대표 뉴스들을 소개하고, 이 소식들이 생산되고 소비됐던 방식에 대해 짚어본다.다치지 않는 것이 최우선이다. 그러나 일단 다치게 되더라도 바쁜 연예인들에게 앓을 시간은 충분히 주어지지 않는다. 이승기는 손가락 골절로 깁스를 한 채 KBS <해피선데이>‘1박 2일’ 일정을 소화 했고, 박휘순은 교통사고를 당한 후 휠체어를 탄 채 KBS <개그콘서트>에 출연 했으며, 신정환은 자전거 사고를 당하고 회복되기도 전에 방송에 복귀해서 자신의 부상을 개그의 소재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tvN<맞짱>의 유건은 실신했다가 깨어나서 다시 촬영에 돌입 했고, SBS <바람의 화원>을 찍던 문근영은 우물에 빠지고 코뼈가 다치는 와중에도 부상 투혼을 발휘해야 했다. 그러나 단 한사람, 2월 19일 피습으로 귀가 찢어지고 갈비뼈가 골절된 노홍철에게 부상은 오히려 새옹지마의 출발이었다. 위급한 상황에서도 침착하고 따뜻하게 가해자에게 대처한 그의 성품을 발견한 시청자들은 돌+I 캐릭터 이면의 인간 노홍철을 신뢰하게 되었고, 그는 이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더욱 자유롭게 엽기적인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게 되었다. 노홍철은 입원 기간 동안 지병인 치루 치료에 힘써 시간 활용에 성공 했으며, 방송에 복귀하고 나서도 촬영장을 찾은 엄기영 사장에게 자신의 갈비뼈를 들이밀고, 곤란한 상황을 빠져나가는 무기로 갈비뼈를 언급하는 등 부상의 여운을 오래도록 즐겼다.
새해 첫 날부터 연예계는 할리우드식 스캔들로 떠들썩했다. 그 주인공은 현영과 김종민. 이들의 열애를 밝힌 증거는 잠입을 통해 동의 없이 이루어진 사진 촬영이었다. 이후로도 파파라치를 자처한 언론사들은 김민희와 이수혁, 지성과 이보영의 교제에 대한 증거를 포착했으며, 이들은 결국 열애 사실을 시인했다. 그러나 엄정화와 전준홍, 신민아와 빅뱅의 탑, 이효리 등은 사진 증거에도 불구하고 열애설을 부정했고, 일각에서는 과도한 사생활 침해라는 비난이 일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증권가 소식통 역시 온갖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열애설 생산에 일조했는데 이나영과 배용준, 김혜수와 유해진은 구체적인 결혼 일정까지 공개되었으나 결국 루머로 판명되었다. 사람들은 보다 쿨하고 솔직한 스타를 원한다. 그러나 공개적인 연애를 공식적으로 끝내며 시청자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김정은이나 헤어진 연인의 동생의 장례식장에서까지 취재진에 시달린 한지혜를 보면서 스타가 바라는 것이야말로 쿨하고 사려 깊은 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스타들을 한자리에서 만나기 위해서는 시상식보다 결혼식장으로 가야한다. 3월에 있었던 송일국의 결혼식에는 각계각층의 유명인사 천여명이 하객으로 참석했고, 7월에 있었던 유재석과 나경은의 결혼식에는 활동을 쉬고 있던 윤은혜부터 뇌졸중으로 거동이 불편한 조정현까지 수많은 연예인들이 참석해 축하를 보냈다. 특히 권상우와 손태영의 결혼식에는 장동건, 이병헌, 송승헌 등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는데, 이들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은 이는 두 사람을 주선한 것으로 알려진 일명 ‘소개성수’ 김성수였다. 권상우와 손태영의 결혼은 갑작스러운 발표, 혼전 임신설, 그동안 알려진 손태영의 연애사 등으로 공개되는 그 순간부터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며, 최근 권상우는 “사랑해서 결혼한 것이다. 임신 때문에 결혼하는 것으로 보이고 싶지 않아 임신 사실 숨겼다”고 밝혀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짐작케 했다. 연애 과정부터 때 이른 출산까지 모든 과정을 밝히는 ‘쏘 쿨’한 박명수와 달리 숨기고 싶은 것이 많았던 한류 스타는 ‘너무 사랑한 죄’ 때문에 충분히 축하 받을 기회를 놓쳤던 것이다.
“금슬 좋기로 소문난 연예인 부부, 하지만 그들의 부부 관계는 실질적으로 끝난 지 오래다. 남편과의 불화를 견디지 못한 아내는 불륜을 저지르는데….” KBS <사랑과 전쟁>에 쓰일법한 이야기. 하지만 그것이 현실로 드러났을 때의 충격은 컸다. 옥소리의 불륜에 대한 박철의 간통 고소로 시작된 그들의 ‘전쟁’은 박철이 가정의 경제를 전혀 책임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가 수많은 접대부와 ‘2차’를 나갔다는 옥소리의 맞대응으로 이어졌고, 여기에 옥소리의 간통죄 위헌 소송은 간통죄의 법적 문제를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르게 만들기도 했다. 현재 간통죄 위헌 소송은 취하됐고, 옥소리는 간통죄로 재판을 받고 있으며, 박철은 옥소리의 주장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어쨌든 부부 사이에 더 이상 살아야할 이유가 없다면 터뜨릴 건 터뜨리면서 각자의 삶을 준비해야 하겠지만, 그들의 풋풋했던 청춘스타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씁쓸해질 수밖에 없다.
최근 SBS <인기가요>는 3주 연속 시청률 10%대를 기록했다. 다른 인기 오락 프로그램에 비하면 저조한 수치일 수도 있지만, 최근 가요 프로그램 시청률로는 최고 수준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3주 동안 서태지, 비, 동방신기, 빅뱅 등 현재 한국 가요계의 톱스타들이 모두 등장했기 때문이다. 4년 만에 컴백한 서태지, 2년여의 해외 활동 만에 돌아온 비와 동방신기, 역시 2년여의 공익 요원 복무생활을 마친 김종국이 지난해와 올해 급부상한 빅뱅과 원더걸스와 함께 하반기에 모두 돌아온 것은 말 그대로 ‘그랜드 크로스’였다. 매주 가요 프로그램 방송이 연말 시상식을 방불케 할 정도였고, 엔딩 무대는 마치 순번을 정해서 하듯 돌아가며 했다. 여기에 장기하와 얼굴들이나 요조 같은 홍대 인디 신의 신성들이 대중에게 알려지면서 올 해 가요계는 최근 몇 년 새 볼 수 없는 풍년을 이뤘다. 그러나 가수들의 빅쇼와 상관없이 올 연말 시상식은 여전히 썰렁할 듯하다. 인기 가수들의 퍼포먼스는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겠지만, 대부분의 방송사는 시상식 자체를 폐지했고,
‘매직스틱’의 정체는 무엇일까. ‘under my skin’을 해석하면? 2008년 말, 가요 관계자들은 영어 사전을 뒤적여야 했다. 비의 노래 ‘Rainism’과 동방신기의 ‘주문-Mirotic’의 가사 중 영어 표현이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청소년보호위원회로부터 유해 매체라는 판정을 받은 것. 이로 인해 이들의 앨범에는 ‘19금’딱지가 붙었고, 동방신기는 ‘10대에게 앨범을 팔 수 없는 아이돌’ 그룹이 됐다. 물론 청소년의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사들에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은 가사에 대해서도 자의적인 해석을 통해 선정적이라는 결론을 내린 청소년보호위원회의 결정은 앞으로도 수많은 작품에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동방신기가 ‘under my skin’으로는 공연을 할 수 없어 ‘under my sky’로 가사를 바꾼 것은 청소년보호위원회의 결정이 어떤 해프닝을 일으킬 수 있을지 보여준 예. 여기에 보건복지가족부는 청소년보호법에 19세 이하 아동청소년이 볼 수 있는 국내외 모든 영화에 음주와 흡연 장면을 넣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을 신설하려는 중이다. 이쯤 되면 앞으로 <스킨스>나 <가십걸>은 한국에서 트리플 엑스 등급의 하드코어 영상물로 분류될지도 모를 일. 글쎄, 그렇게 청소년의 정서적 악영향이 걱정된다면 거짓말하고 사기 치는 정치가들부터 ‘유해 인간’으로 분류해야 하지 않을까.
어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MBC <커피프린스 1호점>의 사진을 봤다. 그 사진 속에서는 이언이 여전히 밝게 웃고 있었다. 사람의 죽음은 때론 한 순간에 일어나지만, 살아있는 사람들은 그 충격을 평생안고 살아간다. 그룹 거북이의 터틀맨, 이언, 안재환, 최진실 등으로 이어졌던 연예인들의 죽음은 그들의 주변인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큰 충격을 남겼다. 특히 안재환의 자살과 그에 이은 최진실의 자살, 그리고 그에 이어진 수많은 이슈들은 한국 사회의 단면들을 한꺼번에 드러냈다. 안재환을 생전에 괴롭힌 것은 사채 빚이었고, 최진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인터넷의 무책임한 루머였으며, 몇몇 매체들은 실신한 정선희에게 마저 카메라를 들이댔다. 사람들은 그들의 죽음에 애도를 표했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 그들의 죽음으로부터 무언가 깨달은 것이 있을까.
좋은 얘기만 하자. 최진실은 그렇게 하기에도 지면이 모자란 당대의 스타다. 최진실은 1990년대 트렌디 드라마의 스타였고, 귀여운 여인과 주부, 액션과 코미디까지 모두 넘나드는 연기를 할 수 있는 연기자였으며, 한국에서 여배우가 험난한 가정사에도 불구하고 ‘연기력’으로 재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최진실은 1990년대 이후 연예산업의 성장기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었고, 톱스타이자 좋은 연기자였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나이든 모습을 애써 부정하지 않고 거기에 순응하며 좋은 연기자로 변신했다. 우리가 잘못한 것은 최진실에게 루머를 뒤집어 씌웠다는 것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최진실이 떠난 다음에야, 지난 20여년 동안 끊임없이 우리 곁에 있기 위해 안쓰러울 정도로 애쓴 톱스타의 가치를 깨달았다는 점이다. 최진실 단 한 명의 죽음이 우리 사회에 일으킨 파장은 시대를 함께한 톱스타가 대중에게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지 확인시켜주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에게 단 한 마디의 말을 하는 것 뿐이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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