츤데레 걸_ 외롭고 소심한 오타쿠 소년들의 로망대한민국이 온통 나쁜 남자들의 물결이다. 환희는 콧방귀를 끼며 개똥이를 외치고 비는 마법 작대기를 단 뱃뱃보이가 되어 관객들을 째려보고 다니며 동방신기는 넌 내 마법에 걸렸다며 숭구리당당 숭당당 주문을 외우고 다닌다. 언니들이 열광한다. 재미없는 착한 남자들 보다는 스릴 있고 카리스마 있는 나쁜 남자들이 더 매력적이란다. 억울하다. 질투 난다.
이 한 몸 평생을 착하게 살기 위해, 다른 이의 가슴에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했는데 이제는 그냥 인기 없고 고리타분한 착한 남자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또 실제로도 나는 사귀었던, 혹은 사귈 뻔 했던 많은 여인네들에게 뻥뻥 차이곤 했는데 그들의 공통된 의견은 바로 내가 너무 착해서 재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분노에 이를 갈았다. ‘훗, 나쁜 남자가 좋으시다고? 아이구 그러셔? 그러면 너희는 어디서 나타난 되 먹지 못한 놈에게 뻥뻥 차여서 안드로메다까지 날아가버려!!’ 라고 속으로만 저주를 내렸다. 하늘을 우러러보며 맹세하였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나만큼은 꼭 착한 사람만 좋아하기로.
착한 남자, 사랑에 빠지다
난 어느새 H2의 청순한 소녀(왼쪽)보다는 란마에게 발차기를 날리는 아카네에게 더 끌리게 되었다." />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렇게 착하면서도 매력적인 처자는 별로 찾아볼 수 없었고 혹시나 있다고 하더라도 나를 그리 좋아해주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점점 가상의 세계 속 연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만화와 애니를 탐닉하며 그 안의 아름다운 소녀들과 연애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때로는 H2의 한적한 동네 속으로 들어가 데이트를 즐기기도 했고 또 때로는 비디오 걸의 귀여운 소녀들과 급 만남을 가지기도 하였다. 즐거웠다. 행복했다.하지만 무엇이든 가능한 그 가상의 연애 속에서 나는 어느 샌가 착하기만 한 캐릭터 보다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 캐릭터 들에게 끌리기 시작하였다. 툭 하면 란마에게 ‘족’ 이 살아있는 날라 차기를 선사하곤 하는 아카네가 사랑스러워 보였다. 겉으로만 보면 언론사의 차갑고 완벽한 커리어 우먼이지만 알고 보면 연애에 서툴고 어리숙한 소녀와 다를 바 없는 스미레를 위하여 나도 모모가 되고 싶었다. 자신을 개똥 보듯 멸시하며 구박을 일삼는 영심이에게 목을 매다는 왕경태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심지어는 둘리에게 끊임없이 툴툴대면서도 결국엔 내다버리지 못하는 고길동 아저씨마저도 사랑스러워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미쳤나? 인터넷을 찾아 나와 같은 증상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을 들어보니 나는 ‘츤데레’ 마니아란다. 츤데레란 일본의 애니메이션 & 게임 마니아들이 유행시킨 단어로써 새침하고 퉁명스럽다는 뜻의 ‘츤츤’ (つんつん)과 부끄럽다는 뜻의 ‘데레데레’ (でれでれ)를 합친 합성어이다. 즉, 영화나 만화 속에서 등장하는 캐릭터들 중에 누군가에게 애정을 지니고 있지만 잘 표현하지 못하고 부끄러워하며 그것을 결국은 새침하고 퉁명스럽게 표현하고야 마는 성격을 일컫는 단어였던 것이다.
츤데레 마니아들이여, 세상 밖으로 나오라
그러나 역시 츤데레는 그 괴상한 이름만큼이나 비현실적인 이미지 일 뿐. 현실 속에서는 가만히 있는 나를 그렇게 좋아해 주는 사람이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니 진정 살아있는 연애를 원하고 진정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을 찾으려면 만화만 보고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자신을 더 가꾸고 사랑하자. 만화 속의 이상적인 캐릭터들보다 불완전하기에 더욱 사랑스러운 것이 진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도 나만큼이나 사랑 받고 존중 받고 싶은 인간임을 깨닫자. 그리고 나서 진짜 연애에 도전해 보자. 나도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이것들을 실천에 옮기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경험으로써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명심하자. 세상에 쉬운 일이란 하나도 없으며 어려운 것을 회피하면서 살아가기만 하는 삶의 끝에는 결국 세상과 단절된 히키코모리 (은둔형 외톨이)의 인생만이 남아있을 뿐 임을.
뽀나스~ 대한민국 TV 츤데레 베스트 5
5위 서인영_ 앙칼진 살쾡이 같은 그녀가 가끔씩 라운이 형의 든든한 팔에 기대어 애교를 부릴 때 나의 가냘픈 이두박근에도 힘이 불끈불끈 들어가곤 했다. 왜? 부러우니까!
4위 박명수_ 악마의 자식에게도 사랑의 감정은 존재하는가? 두터운 흑채와 부황 뜬 쌍꺼풀을 한 겹 벗겨낸 후 진실을 들여다 보면 어쩌면 그도 누군가를 사, 사…그냥 좋아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3위 장미희_ 오만과 편견. 하지만 나도 모르게 복종하고 싶어지는 도도하고 우아한 아름다움.그것은 섹시함의 또 다른 정의이기도 하다. 지옥의 삐짐을 선보여 주셨던 용건 아저씨와 환상의 복식조.
2위 이경규_ 아기공룡 둘리를 실사로 만든다면 고길동은 딱 이분 담당이다. 면도날 눈매, 거친 입담, 손찌검과 발찌검의 연타 속에 피어나는 애증의 드라마에 그보다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1위 김수미_ 공중파 어디에선가 방영해주었던 그녀의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그리고 나는 곧 본 적도 없는 젊은 시절의 김수미 선생님과 사랑에 빠졌다. 단순히 욕을 잘하시고 단순히 인간미가 있어서가 아니다. 구구절절 섹시하고 위험했던 그 세월 속에서 숙성 발효하시어 완성시킨 궁극의 카리스마 츤데레.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