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수로 6년. 김미화가 MBC라디오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을 진행한 시간이다. 이 6년은 방송계에서 작은 센세이션이 일어난 시간이기도 하다. 20세기의 ‘순악질 여사’가 21세기에는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다니. 누군가는 방송사가 관심을 끌기 위한 1회성 전략이라고 폄하했고, 금새 퇴출당할 거라고 호언장담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방송사들은 “김미화처럼 친근하고 따뜻한” 진행자를 구하려고 노력한다. MBC 라디오 <시선집중>의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는 “청취자의 눈높이에 맞춰 친절하게 진행하는 것이 좋다”며 김미화를 가장 좋아하는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로 꼽기도 했다. 냉철한 진행으로 청취자의 정신마저 번쩍 들게 하는 <시선집중>이 아침을 열면,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은 업무에 지친 시민들의 어깨를 부드럽게 다독여준다. 이 대조적인 풍경은 한국 시사 프로그램의 두 가지 방향이자, 사람을 웃기는 일로 20년을 보낸 김미화가 개척해낸 새로운 시사 프로그램의 모습이다.

“따뜻한 뉴스를 전달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안 좋은 소식도 전달해야 하지만, 그것도 다르게 표현할 수 있잖아요. 누가 죽었다고 하면 일단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죽었습니다’처럼 딱딱한 용어를 쓰는 대신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다’고 말해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생활이 너무 메마르지 않겠어요?” 하지만 김미화는 요즘 그의 마음처럼 ‘따뜻한 프로그램’을 끌고 나가기가 쉽지 않다. “경기 불황이 심해지니까 다들 너무 힘들어하시더라구요. 저한테 언제쯤 경제가 풀릴지 물어보는 분들도 많구요. 그래서 제가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만난 경제 전문가들한테 들은 대로 한동안은 어려울 거라고 하면 다들 힘들어 하세요.” 그래서 김미화의 플레이리스트로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음악들’을 부탁했다. 김미화가 슬픈 소식마저도 따뜻하게 전달하듯, 우리도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견뎌나갈 수 있는 따뜻함을 가질 수 있길 바라면서.




1. 심수봉의 <심수봉 제1집>
김미화가 처음으로 꼽은 앨범은 심수봉의 1집이다. 이 앨범은 대학 가요제에서 보기 드물게 트롯을 부르며 데뷔, 나이에 걸맞지 않은 놀라운 작곡과 노래 실력을 가진 심수봉의 등장을 화려하게 알렸다. 특히 ‘그 때 그 사람’과 ‘사랑밖엔 난 몰라’ 등은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애창되는 고전. 김미화는 이 앨범에서도 ‘사랑밖엔 난 몰라’를 가장 좋아한다. 그가 노래 제목대로 ‘사랑밖에 모르는’ 남편에게 부르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남편이 음악을 워낙 좋아해서 프리즘이라는 라틴 재즈 밴드를 만들었는데, 그 밴드의 쇼케이스 때 제가 깜짝 게스트로 등장해서 이 노래를 불렀어요 하하. 그 뒤로 노래방에 가거나 하면 남편 앞에서 이 노래를 불러요. 사실 나는 남편이 내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는 하찮은 존재였다고 생각하거든요. 남편이 있어서 내가 힘든 세상을 살면서도 위로를 받는다고 느껴요. 그래서 남편에 대한 고마움을 이런 노래로 표현해요.”



2.
김미화의 남편에 대한 사랑은 계속 이어졌다. 그는 영화 <브리짓존스의 일기> OST에 수록된 ‘All by myself’를 두 번째 곡으로 추천했다. 브리짓 존스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부른 노래로, 국내에서 이를 패러디한 CF가 등장할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브리짓존스가 혼자 있기 싫다면서 부르는 노래잖아요. 그런데 남편이 딱 그랬어요. 결혼할 무렵이었는데, 남편이 더 이상 혼자 있기 싫다면서 ‘All by myself~ All by myself~’를 목이 터져라 부르는 거에요. 정말 절규더라고 (웃음) 그만큼 나한테 함께 있자, 더 이상 혼자 있기는 싫다는 감정을 전달한 거죠. 피아노를 치면서 그렇게 노래를 열창하는데 어찌나 감격스러운지, 남편과의 결혼 뒤로 내 인생도 바뀌었으니까, 어떻게 보면 내 인생의 노래인 거죠. 브리짓 존스야 다시 듣기 싫은 노래겠지만, 나는 듣기만 하면 그때가 떠올라서 행복해요. 솔로들한테 염장인가? 하하”



3. 김추자의
김미화는 지금 남편과 행복한 순간들에 이어 김추자의 노래를 부르며 즐거워하던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김미화는 김추자, 정확하게 말하면 ‘신중현 작곡 김추자 노래’에 대한 열렬한 팬이었다. “그 때는 어렸으니까 가사가 담고 있는 의미는 잘 몰랐죠. 그런데 우리 시대에 김추자 노래를 부르는 건 되게 끼 많고 열심히 노래 부르고 그런다는 거거든요. 나도 그렇게 노래 부르고 싶은 애였어요. 그래서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나 ‘님은 먼 곳에’ 같은 노래를 즐겨 불렀죠. 그러다 어느 날엔가 애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게 된 거에요. 그냥 친구들 앞에서가 아니라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부를 상황이었는데, 그 때 김추자의 노래들을 불렀어요. 그 때 이후로 애들이 나한테 주는 시선이 달라지더라구요. 그리고 내가 무대 위에 서고 싶어 한다는 걸 알게 됐고. 어린 시절엔 작은 걸로도 꿈이 결정될 수 있잖아요. 이 노래가 저한테는 그랬어요. 그 때의 어린아이에게는 정말 큰 노래였던 거죠.”



4. 김장훈의 <1998 Ballads For Tears>
“김장훈씨는 사람 자체로 참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잖아요? 한 사람이 그렇게 많은 일을 하고, 많은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건 세상에 아직 희망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김미화는 김장훈에 대해 말하며 <1998 Ballads for Tears>를 선택했다. 김장훈은 이 앨범에서 정제되지 않은 목소리로 ‘나와 같다면’ 등의 노래를 불러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특히 그녀는 이 앨범에서 ‘사노라면’을 좋아한다. 김장훈은 리메이크곡인 ‘사노라면’을 이소라, 이승환, 리아, 윤도현 등과 함께 부르면서 원곡보다 밝고 힘차게 ‘사노라면’을 해석했다. “내일은 해가 뜬다라는 가사가 참 단순한데, 여러 가수들이 모여서 계속 부르니까 굉장히 마음에 와닿더라구요. 정말 이 노래를 흥얼거리다 보면 안 되는 일도 잘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냥 ‘잘 될 거야’라고 하는 것보다 내일은 해가 뜨니까 다시 한 번 잘 해보자는 게 더 현실적인 것 같기도 하고. 지금 우리가 가져야할 건 그런 마음인거 같아요.”



5. 권진원의 <살다보면>
김미화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노래는 권진원의 ‘살다보면’이다.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불리는 스테디셀러로,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대표적인 노래다. “정말 ‘살다보면’인 거잖아요. 별별일이 다 생기죠. 하지만 그래도 잘 살아봐야죠. 다들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데, 용기를 가지고 이겨나가야할 것 같아요. 살면서 늘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들을 하고, 그만큼 좌절하는 일도 많았지만 용기를 가지고 살다보면 어떻게든 되더라구요. 이 노래를 들으면 그렇게 사는 것에 대한 힘이 생기기도 하고, 다 털고 훌쩍 떠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정말로 떠날 순 없지만, 잠깐이라도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좋아요. 다들 괴로운 일이 있다면 이 노래 들으면서 잠시라도 즐거운 상상 하셨으면 좋겠어요.”


“매일 사람들과 진심을 나눌 수 있는 일, 축복이죠.”



“저는 언제든지 할 준비가 돼 있어요. 그런데 민폐를 끼칠 수는 없으니까요. 라디오 진행을 하려면 매일 네 시 반부터 준비를 해야 하는데 이 일을 하면서 TV 출연을 하려면 다른 분들이 제 스케줄에 맞추는 일이 생기니까요. 그래도 1년에 한 번이라도 버라이어티 쇼나 코미디 프로그램에 나가려고 해요.” 혹시 다시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냐는 질문에 김미화는 코미디에 대한 아쉬움과 라디오에 대한 애정을 동시에 드러냈다. 이미 그에게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의 진행은 생활의 일부가 됐다. “라디오라는 매체는 얼굴을 볼 수 없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진심을 전달할 수 있는 매체라고 생각해요. 매일 사람들과 세상사는 이야기를 하며 진심을 나눌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죠.” 아마 그가 ‘따뜻한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 건, 그리고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는 음악을 선뜻 고를 수 있었던 것은 지금 그가 이렇게 스스로의 행복을 찾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김미화가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행복을 나누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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