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첫 편을 방송한데 이어, 지난 3일부터 본격적인 방영을 시작한 KBS <누들로드>는 한국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형식을 실험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다. 누구나 먹는 국수를 다큐멘터리의 소재로 선택한 것은 물론, 컴퓨터 그래픽의 사용과 다양한 영상 효과, 윤상의 음악 등이 사용된 <누들로드>는 다큐멘터리가 무겁고 진지하기만 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선입견을 깨기에 충분했다. 기획안을 낼 당시 “이런 황당한 기획은 처음이다”라는 말까지 들었다는 <누들로드>를 만든 이욱정 PD는 어떻게 국수를 통해서 세계의 문명사를 바라볼 생각을 했을까. 인터뷰가 끝난 뒤 파스타를 먹게 할 만큼 국수에 대한 사랑을 북돋았던 그의 국수와 다큐멘터리 이야기.

<누들로드>의 하이라이트 격인 첫 편이 나갔다. 어떤 반응이던가.
이욱정
: 관점에 따라 반응이 엇갈린다. 원래도 <누들로드>는 일반적인 다큐멘터리 보다 빠르고 감각적인 편인데 분량까지 압축하면서 진행속도가 더 빨라졌다. 그래서 다큐는 원래 느리고 재미없는 건 줄 알았는데 이건 재밌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실 한국에서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시청자들의 80%는 유장하고, 거대하고, 웅장한 걸 좋아한다. 감각적이고 빠른 걸 좋아하는 분들은 다큐보다는 영화를 좋아하고. 그런 부분에 대한 고민은 지금도 있다.

“지적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고 싶었다”

방영 전부터 8개국에 해외 수출된 걸로 안다. 그들은 <누들로드>에 대해 어떻게 말하던가.
이욱정
: 유럽 다큐멘터리 네트워크 이사회 멤버인 스티븐 사이덴버그가 얼마 전 한국에 왔을 때 <누들로드>를 보고 “스토리가 좋고, 영상미가 뛰어나서 무척 큰 감동을 받았다. 외국에 내놓아도 괜찮겠다”고 말했던 걸로 알고 있다. 내 입장에서는 굉장히 고마운 말인데, 실제로 내가 신경 쓴 부분도 그런데 있기 때문이다. 영상에서는 컴퓨터 그래픽 합성, 재연을 많이 써서 최대한 감각적으로 가려고 했고, 그것을 구성하는 방식에서는 이야기의 전달이라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요리 연구가 켄 홈을 프리젠터로 캐스팅해서 이야기꾼처럼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도 생각했고. 어느 정도 내 의도가 맞아 떨어진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국수라는 소재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 많이 고민한 것 같다. 국수는 정적일 수밖에 없는데, 최대한 다양한 영상 기법을 통해서 시각적으로 의미를 전달한 것 같았다. 국수를 만드는 장면을 역동적인 느낌으로 찍은 것도 인상적이었다.
이욱정
: 예를 들어 여러 나라의 국수를 기행하면서 맛보는 형식은 많다. 하지만 <누들로드>는 국수를 통해 문명사나 문화적인 측면을 보는 다큐다. 이런 작품에서 기존의 방식대로 제작을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책이나 옷은 남아있는 것들이 있어도 음식이 몇 천년동안 남아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국수를 만들고 먹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도 계속 반복되면 지루해지고. 그래서 뭔가 다르게 표현하는 걸 생각했다. 자유로운 형식을 좋아하는 분들은 더 그렇게 가라고도 하시는데, 내가 독립 다큐를 찍는 것도 아니어서 시청자들의 일반적인 눈높이를 맞추는 게 힘들었다.

그런 구성방식에서 국수의 역사를 과거부터 현재까지 훑는 대신 마치 ‘네버엔딩 스토리’처럼 국수를 매개로 여러 문명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게 흥미로웠다. 꼭 이야기꾼이 계속 궁금증을 유발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욱정
: 1편을 본 사람들이 왜 궁금하게만 하냐고 하기도 하더라. (웃음) 실질적으로 하이라이트 편이라서 그런 거였는데, 나는 다큐멘터리가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책을 읽을 때보다 이야기를 들려줄 때 더 이해하기 쉽고. 그래서 켄 홈을 프리젠터로 쓰기도 한 거고. 나는 TV 다큐멘터리로 기존의 생각의 틀을 깨주고 싶었다. 우리가 국수에 대해 평소에는 진지하게 생각할 일이 없다. 하지만 국수가 문명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아는 순간 생각의 폭이 달라진다. 지적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인지 <누들로드>는 다큐멘터리라기보다는 영상으로 만든 인문 교양서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정보를 다양한 방식으로 알려주면서 이해를 돕는.
이욱정
: 그렇다. 사실 한국은 사람을 감성적으로 다루는 휴먼 다큐나 좋은 영상을 보여주는 <차마고도>같은 다큐들이 대세다. 하지만 나는 다큐멘터리의 또 다른 영역이 지적인 것을 다루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TV 다큐멘터리라면 지적 호기심을 불러일으켜서 창의적인 생각을 하도록 이끌어내야 한다.

“자료가 잘 정리되어 있는 일본 학자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런 점에서 <누들로드>는 보다 젊은 세대를 위한 다큐멘터리같다. 음식을 단지 끼니를 때우는 것으로만 생각하지도 않고, 윤상의 음악이나 컴퓨터 그래픽 합성에도 익숙한 세대를 위한.
이욱정
: 그렇다. 나는 문화 인류학을 공부하기도 했고, 먹는 것에도 관심이 많다. 음식이라는 게 인간에게는 표현의 수단이기도 하고, 집단의 정체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종교마다 먹지 말라고 하는 음식이 있지 않은가. 한국에서는 음식 문화 자체에 대한 연구가 많이 없지만, 음식은 문화를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영화를 볼 때 <서편제>도 있지만 <올드보이>나 <놈놈놈>도 있다는 걸 안다. <누들로드>도 다큐에서 그런 작품이 되고 싶었다. 물론 <차마고도>같은 전통적인 다큐는 영원히 만들어질 것이지만, 그 외에도 새로운 형식의 다큐멘터리가 있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누들로드>에 다른 분위기를 부여하는 요소 중 하나가 켄 홈의 진행과 윤상의 음악이다. 그들은 어떻게 섭외했나.
이욱정
: 해외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다큐에서 프리젠터를 써서 몰입감을 높인다. 그래서 우리도 해보고 싶었는데, 한국의 교수님들은 보통 딱딱한 편이고, 연예인은 전문가가 아니다. 그래서 아예 해외에서도 쉽게 통할 수 있는 프리젠터를 써보자는 생각으로 켄 홈을 생각했다. 해외에 나가면 BBC에서 낸 책을 많이 보는데, 거기서 자주 본 것이 켄 홈의 책이다. 그래서 일단 우리 기획안을 보냈는데, 국수를 역사적으로 접근하는 건 처음이었다면서 흥미를 보였다. 덕분에 굉장히 좋은 조건으로 협상을 했었다. 사실 워낙 비싼데다 서구권에서 일하는 게 익숙한 사람이라 막 굴릴 수 없는 사람인데 우리는 막 굴렸다. (웃음) 그리고 윤상은 내가 앨범을 굉장히 좋아했다. 일렉트로니카 음악과 오케스트라 양쪽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라 우리 음악에도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다.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에서 예상할만한 음악을 만들지 말아달라고 했는데, 너무 열정적으로 해줬다.

그런 감각을 보여주는데 가장 중요했던 요소가 컴퓨터 그래픽 합성이었을 것 같다. 해외 촬영과 그 후 후반작업을 한 작품 안에서 한 건데, 어려운 점은 없었나.
이욱정
: 한마디로 피곤했다. 10개국이 넘는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촬영을 한 뒤에 다시 재연이나 컴퓨터 그래픽 합성을 또 작업해야 했으니까. 이미 찍은 영상에 컴퓨터 그래픽을 입히는 건 처음 해보는 일이라 합성이 얼마나 잘 될지 궁금했다. 거기다 켄 홈을 프리젠터로 쓰면서 모든 대화를 영어로 해야 한다는 것도 문제였고.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PD가 영수증 챙기는 것까지 다 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그래서 ‘다시는 이렇게 하지 말아야지’하는 생각도 했다. (웃음) 무엇보다 철저한 프리 프로덕션 단계가 필요하다. 한국은 사전 답사라는 게 생긴 것 자체가 얼마 안 됐다. 그리고 해외 촬영도 많이 하지 못했고. 그러다 보니까 이런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는 문제가 생긴다. 프리 프로덕션을 통해 완벽한 콘티를 짜야한다는 걸 실감했다.

음식, 그것도 국수에 대해서만 다루는 다큐멘터리라 자료를 찾기도 힘들었을 것 같다.
이욱정
: 사실 음식은 과거에는 의학서적이나 백과사전의 한 부분 정도로 취급됐었다. 그래서 자료를 구하기 어려웠는데, 일본에 있는 자료들을 보면서 <누들로드>를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일본은 워낙 국수를 좋아하기도 하고, 기록이 잘 돼 있어서 국수 연구가 매우 체계적으로 정리 돼 있었다. 그 곳의 학자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국수는 가장 본능을 드러내는 음식”

사실 따지고 보면 만들기는 힘들고, 기존 다큐멘터리 시청자들은 적응하기 쉽지 않은 작품이기도 한데 굳이 국수를 소재로 다큐멘터리를 만든 이유는 뭔가. (웃음)
이욱정
: 개인적으로는 아버지가 이북 분이라 어려서부터 국수를 먹는 걸 워낙 좋아했다. 그리고 어느 날인가 암스테르담에서 수많은 인종들이 다 같이 누들 바에서 국수를 먹는데, 그 장면을 보면서 국수가 인간에게 어떤 음식인지 궁금해졌다. 물론 처음 기획안을 냈을 때는 “내가 본 것 중 가장 황당한 기획”이라고 했던 선배도 있었다. (웃음) 하지만 다른 것들과 다르게 음식은 몸에 직접 흡수된다. 그만큼 인간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건 사업적인 측면과 관계된 것이기도 한데, BBC는 음식 다큐멘터리로 굉장히 큰 돈을 벌었다. BBC의 음식 다큐멘터리가 성공하면서 관련 책자가 나오고, 제이미 올리버 같은 스타 요리사가 탄생했다. 공영 방송이 다른 걸 해서 돈을 벌기 어렵지만, 음식과 요리에 관한 것은 공익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 나는 <누들로드>같은 다큐멘터리가 다큐멘터리의 경쟁력에 분명히 필요한 존재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국수의 매력은 무엇인가.
이욱정
: 사람들은 처음에 밀로 빵을 만들었다. 그러다 밀이 아시아지역으로 들어왔는데, 아시아는 탕과 찜을 해먹는 문화다. 밀가루에 탕과 찜이 결합하면서 국수가 만들어졌다. 물론 이 과정에서 많은 시도가 있었을 거다. 그런데 유독 국수가 인기를 얻은 건 빨리 익혀서 먹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그 식감 때문이었을 거다. 국수는 수많은 조합을 통해 다양한 맛을 낼 수 있고, 면 한 가닥이 몸속으로 그대로 빨려 들어갈 때의 독특한 느낌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메밀 국수는 찰지면서도 매끈하며, 그 디자인이 주는 감각적인 쾌감이 있다. 그래서 국수는 도시 문화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도시는 외식문화가 발달하고, 미각도 함께 발달한다. 국수는 그런 도시 생활에 가장 어울리는 요리다. 무엇보다 대량 생산도 가능하고. 이런 여러 요소가 겹쳐있는 게 국수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국수란 무엇인가. (웃음)
이욱정
: 쾌감을 위해 만든 음식. 국수는 인류가 만든 것 중 가장 오래 살아남은 요리고, 탄생부터 요리를 위해 만들어진 음식이다. 맨 밥은 있어도 맨 국수라는 건 없다. 국수는 만들 때부터 잉여시간을 들여 요리를 하기 위해 만들어낸 음식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국수만이 줄 수 있는 쾌감이 있다. 탕면 같은 경우는 마음껏 소리를 내면서 먹을 수 있지 않나. 그만큼 가장 본능을 드러내는 음식이다. <누들로드>도 그런 국수 같은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한다. 국수처럼 경쾌하고 감각적이고, 도시적인 느낌을 그대로 담고 싶었다.

글. 강명석 (two@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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