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에 합류하라고 제안 받았을 때는 정말 기뻤어요. 너무 식상한 표현이지만,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올리면 되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래도 저만의 무기가 있어서 다행이었죠. 전, 라이브 첼로 연주가 가능하잖아요.” 뻔뻔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해 놓고 잠시 눈을 내리 깔더니 결국은 “으하하하”웃음을 터트려 버린다. KBS <개그콘서트>(이하 <개콘>) ‘악성 바이러스’에서 영국 애견학교 출신의 말티즈라고 본인을 소개해놓고 으르렁대던 개그우먼 신고은은 사실 웃기는 것 보다 웃는 것이 편한 쑥스러움 많고 속 보드라운 아가씨다. “황현희 선배가 예전엔 참 예뻐해 주셨는데, 요즘은 웃는 게 시끄럽다고 좀 멀리하시더라구요.” 그러면서 또 호걸처럼 웃는다. 아니, 아가씨보다는 여학생이라고 하는 편이 맞겠다.

“개그맨이 되고 나서 여자가 됐죠”

처음 등장할 때부터 신고은은 웃기는 ‘여자’였다. KBS <폭소클럽>에서 첼로를 켜면서 “브라자 유어 라이프”라며 허세를 부리거나 R&B풍으로 동요를 부를 때도 그랬고, <개콘> ‘문화 살롱’의 신마담, ‘리얼스토리 뭐’의 호랑으로 등장 했을 때도 그녀는 장난스럽지만 여성스러움을 잃지 않는 특유의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 대부분의 신인 개그우먼들이 예쁘면 그냥 ‘여자’, 못생기면 외모를 비하하는 탈여성적인 인물로 등장하는데 반해 신고은은 ‘능청스럽고 뻔뻔하면서도 충분히 여성스러운’ 특유의 캐릭터를 애초에 구축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겠는가만, 애석하게도 당시의 신고은은 자신의 재능과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한다. “개그맨이 되고 나서 여자가 됐죠. 소꿉놀이 할 때부터 남장은 늘 제 몫이었거든요. 그런데 남장도 안 하고, 독한 분장도 안 하니까 이게 웃긴 건가 싶고. 그때는 뭘 몰랐어요.” 심지어 ‘문화 살롱’이 끝나고 나서는 개그가 너무 어려워 방송을 그만둘 생각도 했단다. “방송 쉴 땐 학교 다녔고, 방학 땐 가출도 했어요. 갈 데가 없어서 기도원에 들어갔는데, 거긴 누가 죽이러 올 염려도 없잖아요. 종일 잠만 자다 나왔죠.”

속 깊은 여학생의 미래

방황하던 그녀를 잡아 준 것은 동료이자 언니인 <개콘>의 개그우먼들이었다. 일상생활에서도 항상 고민을 나눈다는 정경미와 신봉선, 개그에 대한 질문에 “아리스토텔레스를 대하는 소크라테스처럼” 해답을 준다는 강유미는 물론 방송 게스트 자리에 종종 추천해 준다는 안영미까지 언니들의 사랑과 관심 덕분에 신고은은 슬럼프를 넘기고, 위기를 극복했다. 자신보다 앞서 달리는 후배들을 보는 것도, 최근 방송 시간이 10분이나 줄어들어 더욱 경쟁이 치열해진 <개콘>의 상황도 무엇 하나 마음 편한 것은 없지만 그녀는 이제 더 이상 도망가기 보다는 맞서서 돌파하겠다는 의지로 충만해 있다. 여중, 여고, 여대를 나와 언제나 여자들과 개그를 하던 그녀가 코너의 홍일점이되어 ‘악성 바이러스’에 들어가기로 결심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어릴 때는 ‘나만의 개그를 할 거야’ 그런 생각도 있었어요. 그런데 틀이 있는 그림에서 내 롤을 만들어 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유도리가 생긴 거죠. 그리고 같이 하는 오빠들이 다 편하게 해 주세요. 특히 김준호 선배님이 워낙… 멋있는 분이시잖아요! 여자 후배들이 다 좋아하는 분이거든요.” 금세 그윽한 눈빛이 되어 선배 개그맨의 매력 포인트에 대해 열변을 토한다. 순진한 표정과 솔직한 말투, 그 와중에 장난기 넘치는 단어들은 주로 언니들의 귀여움을 받는 여학생의 전형이다.

그러나 세상이 어디 그렇게 녹록한 곳인가. 여학생의 마음만으로 살기에 세상은 험하고 인생은 치열하다. “예전엔 여우가 나쁜 거라고 생각 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여우는 지혜로운 거더라구요.” 곰 같은 자신을 바꿔보겠다는 그녀의 결심은 결코 약삭빠르게 살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성장하겠다는 다짐이다. “스무 살 때 KBS 위성 채널의 <한반도 유머총집합>에서 강유미, 정경미 선배들을 보고 팬레터를 썼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그 선배들하고 같이 개그를 하고 있잖아요. 얼마나 감사한 일이에요.” “한방에 잘되는 것도 좋지만, 저는 단계를 밟아가는 기쁨을 맛보고 싶어요. 그래서 지금 중요한 것은 이 끈을 놓지 않는 거라고 생각해요.” 높은 곳을 바라보기 전에 디디고 서 있는 땅을 잘 살피는 사람의 성장은 빠르기보다 멈추지 않음으로서 창대한 결과를 만들 것이다. 이 얼마나 기대 되는 성장인가. 속 깊은 여학생의 웃음 가득한 미래가 벌써 기다려진다.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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