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에헤헤헤헤헤!” 익숙한 웃음소리가 스튜디오에 울려 퍼진다. 얼음장 같은 청계천에 뛰어들어 반지가 든 공을 찾아오고, ‘Eres Tu’(그게 바로 너야)를 목청껏 부르며 서툰 마음을 고백하던 남자. MBC ‘우리 결혼했어요’ 속 ‘마르코’의 모습이 정말 멋져 보였다고 하자, 우리 눈앞의 마르코는 쑥스러워 어쩔 줄 몰라 하더니 결국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리고야 만다. “어휴 물에 다-시 안 들어가요. 정말 너-무 추웠어요. 요즘 몸 안 좋아요”라고 능청거리는 모습이나 “그 노래 내가 고른 건데. 정말 열심히 연습했어요”라고 너스레를 떠는 모습도 상상하던 마르코의 모습, 딱 그대로다.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마르코가, 진짜 마르코예요. 대본 없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그냥 하는 거예요.” 그러나 이 말에 속지말자. ‘우리 결혼했어요’ 속의 그 남자는 마르코의 수많은 진짜 모습 중 하나 일 뿐, 그의 전부는 아니다.

조각같은 몸매의 모델은 어쩌다 철없는 남편이 되었나

아르헨티나 이민 3세인 그는 모국어를 배우기 위해 한국에 왔다가 모델이 되었다. 남자치고는 유난히 작은 얼굴, 전체적으로 남성적이지만 결코 강퍅해 보이지 않는 이목구비. 쌍꺼풀 없이 긴 눈매 때문에 동양적인 반면 이국적인 느낌 역시 풍기던 그는 수많은 광고에 출연하며 모델로서 입지를 다졌다. 성실하게 공들여 가꾼 몸매는 그를 대체 불가능한 인물로 만들었고, 촬영 현장에서 발휘되는 진지하고 예민하기까지 한 집중력은 한동안 그의 명성을 유지하는 기반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 결혼했어요’ 속 마르코의 모습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낯선 동시에 어색한 것이었다. 밝고 솔직하지만 산만하고 고집 센 이면을 본 오랜 지인들은 “내가 알던 마르코가 아니다, 왜 이렇게 망가지느냐”고 물어오기도 했다. 하긴, “씻어내지 못할 두려움은 없다”는 카피로 유명한 흑맥주 광고 속에서 진흙이 흘러내리던 조각 같은 근육질의 몸매가, 앞섶을 풀어 헤치고 여인을 유혹하던 디지털 카메라 광고 속의 그 눈빛이, 사실은 “죽어, 죽어!”를 연발하며 걸핏하면 무릎을 꿇는 남자의 것이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여전히 이방인으로 남아있는 남자

물론 눈치 채지 못했을 뿐, 마르코에 대한 단서들은 오래 전부터 조금씩 우리 앞에 공개되고 있었다. 연기자로 전업하는 동료 모델들을 보면서 배우의 꿈을 키운 그는 2003년, 인터넷 영화 <내방네방 : 402호 이야기>에 마르코라는 인물로 출연했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어깨 너머의 연인>, 올해 방영된 MBC 시트콤 <코끼리>에서도 그의 역할은 마르코였다. 본인은 그저 대본을 보고 연기 했으니 각기 다른 인물을 보여 준 것이라고 하지만, <내방네방>의 영화 보기를 무작정 좋아하던 마르코와 <어깨 너머의 연인>의 다정하지만 마음 한 켠에 외로움을 간직한 마르코, 그리고 <코끼리>에서 어눌한 한국말로 제 몫을 챙기는 모습이 귀엽던 마르코가 진짜 마르코의 조각들임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그 모든 마르코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이방인’의 정취는 이 남자가 가진 매력의 핵심이다. 밝지만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모습은 아무리 철부지처럼 굴어도 미워할 수 없고, 때로는 모성애를 자극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런 이방인으로서의 정체성은 매력인 동시에 극복해야 할 한계이기도 하다.

그래, 그 모습이 바로 마르코!

“진짜로 진짜로 열-심히 노력해야 해요” 일주일에 6일을 꼬박 운동을 하며 몸을 만들 듯, 사랑을 입증하기 위해 찬 물에 뛰어 들고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노래를 하듯, 이 한계에 대처하는 마르코의 해결책은 언제나 ‘정직한 노력’뿐이다. 답답하도록 당연한 해답이지만, “어쩔 수 없어요”라고 어깨를 으쓱 하는 마르코의 눈빛은 당황스러울 만큼 확고하다. 인터뷰가 끝나고 카메라 앞에 서자 잠시 심각했던 그의 얼굴이 다시 밝아진다. 편하게 몸을 풀던 마르코에게 사진 찍는 게 더 쉽냐고 물었더니 또 한 번 그 특유의 웃음이 스튜디오를 흔든다. “으에헤헤헤헤헤, 당연하죠!” 지금껏 모아온 그의 조각에 방금 본 웃음을 더한다. 참으로 변화무쌍한 사람, Eres tu.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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