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명상 기자]
최근 포털 사이트의 주요 기사에 자주 보이는 댓글이 있다. 인기 뉴스마다 “장자연 사건은 이렇게 또 묻히는 건가요?”라는 댓글이 끊이지 않고 올라오고 있다. 지금은 ‘승리 게이트’ 관련 뉴스가 포털을 점령해버렸지만 마찬가지다.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핵심은 ‘장자연 사건을 기억하자’로 요약된다.
고(故) 장자연 사건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높은 이유는 간단하다. 사건의 공소시효가 3월 말로 끝이 나기 때문이다. 15일 기준으로는 겨우 16일 남았다. 사건이 이대로 묻혀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어느 때보다도 강하다. 이에 따라 ‘공소시효를 연장하라’는 요구가 거세게 일고 있다.
장자연 문건을 유일하게 직접 목격한 배우 윤지오 씨가 진실 규명에 나선 것도 들끓는 여론에 힘을 싣고 있다. 윤 씨는 15일 “(장자연 사건이) 단순 자살이 아니라고 본다면 공소시효가 10년이 아니라 25년으로 늘어난다”고 말했다.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및 고 장자연 씨 사건 진상 규명 촉구’ 기자회견에서였다.
장자연 사건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비극이다. 장 씨는 2009년 3월 7일, 사회 유력 인사들에게 성 접대를 했다는 문건을 남기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녀가 남긴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에는 주요 언론사, 연예기획사, 방송국, 대기업·금융업 관계자 등에게 술 접대와 성 상납을 강요당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성 상납 의혹에 연루된 이들은 모두 무혐의 처분이 됐다. 2009년 당시 경찰은 20명을 수사 대상으로 하고 118명을 참고인으로 소환하는 등 떠들썩하게 수사를 벌였다. 그러나 언급된 사람들은 누구 하나 기소되지 않았고, 소속사 대표 김종승 씨와 매니저 유장호 씨만 기소되는데 그쳤다. 전형적인 용두사미 수사였다.
지금까지 장자연 사건은 검·경의 ‘부실수사’ 사례 중에서도 첫손에 꼽히고 있다. 고인의 메모가 담긴 수첩 등 자필 기록, 명함 등 장 씨의 행적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 증거는 경찰의 압수 수색과정에서 누락되기도 했다. 총체적 수사 부실이 있었지만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보완 수사를 지시하지 않았다. 사건을 재조사 중인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지난해 10월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당시 검·경의 수사가) 진실을 밝히려 했던 건지 덮으려 했던 건지 모르겠다”는 평을 내놓았을 정도였다.
그간 ‘장자연 리스트’에서 가장 논란이 된 것은 언급된 ‘조선일보 사장’이 누구냐는 것이었다. 과거사위원회는 경찰이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동생인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이 2007년 10월 장씨를 술자리에서 만났다는 진술을 확보하고도 조사하지 않은 사실을 수사 과정에서 확인했다. 또한 과거위는 방정오 전 TV조선 대표가 2008년 10월 장씨와 같은 장소에 있었다는 통신기록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직 언론사 관계자는 “조선일보 기자로부터 ‘2009년 수사 때 장자연과 방정오의 통화내역을 빼내느라 힘들었다’는 얘기를 직접 들었다”고 과거위에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처럼 많은 의혹이 남아있지만 장자연 사건의 공소시효는 3월 말로 종료된다. 이에 1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장 씨의 수사 기간 연장 및 재수사를 청원합니다’는 글이 올라왔고 3일 만에 동의 건수가 20만을 넘겼다. 엄청난 호응이 아닐 수 없다.
장자연 사건은 사회적 권력을 가진 이들이 여성을 성 노리개로 취급한 추악한 사건이다. 또한 진실을 밝혀야 할 수사기관이 권력에 굴복해 스스로 진실 규명을 포기한 굴욕의 결정판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은 양상이 좀 다르다.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고 있는 승리 게이트에도 장자연 사건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있다. 많이 본 뉴스마다 “장자연 사건은 이렇게 또 묻히는 건가요?”라는 댓글이 많은 공감과 지지를 얻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국민들은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마음과 함께, ‘우리 사회의 정의는 살아있는지’ 묻고 있다.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아이러니한 현실, 죄 없는 생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거대 권력을 처벌하지 못하는 현실을 언제까지 방치해야 하는지 묻고 있다. ‘공소시효 종료’를 이유로 장자연 사건의 모든 의혹을 묻어버릴 것인가. 장자연 사건이 남긴 숙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진실 규명의 모래시계는 결코 멈춰선 안 된다.
김명상 기자 terry@tenasia.co.kr
고(故) 장자연 사건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높은 이유는 간단하다. 사건의 공소시효가 3월 말로 끝이 나기 때문이다. 15일 기준으로는 겨우 16일 남았다. 사건이 이대로 묻혀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어느 때보다도 강하다. 이에 따라 ‘공소시효를 연장하라’는 요구가 거세게 일고 있다.
장자연 문건을 유일하게 직접 목격한 배우 윤지오 씨가 진실 규명에 나선 것도 들끓는 여론에 힘을 싣고 있다. 윤 씨는 15일 “(장자연 사건이) 단순 자살이 아니라고 본다면 공소시효가 10년이 아니라 25년으로 늘어난다”고 말했다.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및 고 장자연 씨 사건 진상 규명 촉구’ 기자회견에서였다.
그러나 성 상납 의혹에 연루된 이들은 모두 무혐의 처분이 됐다. 2009년 당시 경찰은 20명을 수사 대상으로 하고 118명을 참고인으로 소환하는 등 떠들썩하게 수사를 벌였다. 그러나 언급된 사람들은 누구 하나 기소되지 않았고, 소속사 대표 김종승 씨와 매니저 유장호 씨만 기소되는데 그쳤다. 전형적인 용두사미 수사였다.
그간 ‘장자연 리스트’에서 가장 논란이 된 것은 언급된 ‘조선일보 사장’이 누구냐는 것이었다. 과거사위원회는 경찰이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동생인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이 2007년 10월 장씨를 술자리에서 만났다는 진술을 확보하고도 조사하지 않은 사실을 수사 과정에서 확인했다. 또한 과거위는 방정오 전 TV조선 대표가 2008년 10월 장씨와 같은 장소에 있었다는 통신기록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직 언론사 관계자는 “조선일보 기자로부터 ‘2009년 수사 때 장자연과 방정오의 통화내역을 빼내느라 힘들었다’는 얘기를 직접 들었다”고 과거위에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장자연 사건은 사회적 권력을 가진 이들이 여성을 성 노리개로 취급한 추악한 사건이다. 또한 진실을 밝혀야 할 수사기관이 권력에 굴복해 스스로 진실 규명을 포기한 굴욕의 결정판이기도 하다.
김명상 기자 terry@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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