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유청희 기자]
‘쇼핑왕 루이'(위)와 ‘내 뒤에 테리우스’ 포스터./사진제공=MBC
‘쇼핑왕 루이'(위)와 ‘내 뒤에 테리우스’ 포스터./사진제공=MBC
‘쇼핑왕 루이'(위)와 ‘내 뒤에 테리우스’ 포스터./사진제공=MBC

그가 쓴 드라마처럼 유쾌하고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최근 종영한 MBC ‘내 뒤에 테리우스'(이하 ‘테리우스’)를 집필한 오지영 작가의 첫인상이다. 2016년 MBC ‘쇼핑왕 루이’로 막장 없고 악인 없는 ‘착한 드라마’라는 수식어를 얻으며 데뷔한 그는 올해 ‘테리우스’로 시청률과 의미를 모두 잡았다. ‘테리우스’의 세계에서는 아이들이 존중받고, 육아를 하는 주부들의 연합이 국정원(NIS)과 거대 음모 세력을 이기며 활약한다. 외로웠던 첩보 세계의 한 남자 김본(소지섭)은 아이들과 소통하면서 변화한다. 일상에서 발원한 문제를 판타지와 연결할 수 있는 마법같은 작가. 이런 드라마를 쓸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했다.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오지영 작가를 만났다.
10.테리우스 시청률 10% 넘기며 흥행했다. 소감과 함께 주위 반응도 궁금하다.

내 주위에는 아줌마들이 많다. 처음 쓸 때부터 아줌마 층을 타깃으로 썼는데, 주변 아줌마들이 확실히 좋아해줬다. 우리는 소지섭 씨와 같이 나이 들어가는 세대인 것 같다. ‘소지섭이 내 아이도 봐줬으면’ 하는 대리만족이 있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끝나고 나니 마음이 편안하다.

10. ‘쇼핑왕 루이 때와테리우스 달라진 있다면?

이번에는 사건, 사고가 더 커졌다. ‘우당탕’이 더 커진 느낌이다. 전에는 두 사람의 교감·알콩달콩·멜로 이야기만 생각하면서 쓰면 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벌인 일들이 너무 많았다. 애린(정인선)이와 본(소지섭)의 멜로가 없었던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두 사람이 너무 바빠서 만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애린이 돈을 벌러 가고 밤에만 들어오니까. ‘쇼핑왕 루이’에서는 루이(서인국)가 하는 일이 복실(남지현)을 기다리는 것밖에 없었지 않나. 그 기다림 자체를 소중히 하는 인물이기도 하고.

10. 작품 모두 남자 주인공의 성 역할이 반전되는 부분이 재미를 더한 것 같다. 드라마에서 ‘쇼핑 중독하면 흔히 여성으로 묘사되는데 루이가 쇼핑 덕후다. 이번에는 소지섭이 육아를 했다.

그러고 보니까 그렇네. 하하. 염두에 둔 건 아니다. ‘이 사람이 이걸 하면 재밌겠다’ 해서 쓴 설정인 것 같다. ‘이렇게 조합하면 더 에피소드가 많이 나올 것 같다, 더 재밌을 것 같다’하는 부분을 살리려고 노력한다.
MBC ‘내 뒤에 테리우스’ 방송 화면
MBC ‘내 뒤에 테리우스’ 방송 화면
MBC ‘내 뒤에 테리우스’ 방송 화면

10. ‘테리우스에서 육아를 끌어들여 온 흥미로웠다. 어떻게 첩보와 생각을 했나?

우연히 친구들과 수다를 하다가 나온 발상이다. 앞서 말했듯이 ‘소지섭이 우리 아이를 봐줬으면’ 하는 판타지에서 착안한 것 같다. 쓰기가 너무 힘들었다.(웃음) 코미디와 첩보는 원래 섞어 쓰기가 힘든 장르다. 이번 작업을 하면서 왜 ‘첩보 코미디’ 장르는 영화로만 나오고 16부작 드라마로는 안 나오는지를 깨닫게 됐다. 첩보는 ‘톤 앤 매너’로 끌고 나가야 하는 지점이 있는데 코미디랑 섞으니 고민이 많아졌다. 변주를 많이 줬고, 막막할 때는 ‘지섭 씨를 망가뜨려야겠다’고 생각하며 썼다.

10. 기존 첩보 세계에는 주로 있는 남성이 부각되는데, 아줌마들이 해결사로 활약하고 아이들이 등장한. 아줌마들을 이렇게 그린 이유는?

아줌마가 된 내 친구들만 봐도 그렇다. 다 능력 있던 사람들인데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들만 키우다 보니 자존감이 떨어지는 모습을 많이 지켜봤다. ‘우리 친구들이 힘을 냈으면’ 하는 마음으로 썼다. 코미디와 풍자로라도 ‘알고 보면 우리에게 이런 능력이 있어’ ‘테러리스트도 잡아’라는 판타지를 주고 싶었다. 고애린이라는 이름도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의 줄리아 로버츠가 연기한 캐릭터에서 빌려 왔다. 에린 브로코비치도 정말 힘도 세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 애린이도 그런 느낌이길 바라서 ‘에린 브로코비치 씨, 이름 좀 빌려주세요’ 하고 빌려왔다.(웃음)

10. 국정원 요원 김본은제임스 에서 따왔다고 들었다.

그렇다. 우리나라에서는 국정원 직원이라고 하면 살갗에 안 다가온다. 본은 영화 속에 사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현실 육아 세계로 온다. 영화 속에 살던 한 남자가 전쟁터 같은 육아 세계에 오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영화 속의 인물이 땅에 발을 딛는 현실적인 인간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소지섭 씨는 너무 멋진 분인데 코믹하게 그려질 때가 많았다. ‘안 해주면 어떡하지?’ 걱정했는데 너무 잘해주셔서 항상 감사했다.

10. 아이들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대본 같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스티커를 나눠준다는 점으로 서스펜스를 만들어내더라.

아이들이 스티커에 엄청나게 집착하는 시기가 있다. 준이가 스티커를 막 가지고 다니는데 본의 커다란 손에 공주 스티커 하나를 붙여놓으면 참 재밌겠다 싶었다. 그런데 거기에 도청장치가 들어 있어서 아파트 단지에 다 퍼진다면 정말 재밌는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킬러 또한 영화 속에 사는 인물인데, 도청장치로 아파트의 생생한 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황당할까 했다. 스티커로 도청장치를 만들어서 아파트 전체에 붙이게 됐을 때, 이를 막기 위해 본이 분투하는 미션도 주고 싶었다. 사람들과 섞이기 싫어하는 본이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이 사는 집에 찾아가게 되는 거니까.
MBC ‘내 뒤에 테리우스’ 방송 화면
MBC ‘내 뒤에 테리우스’ 방송 화면
MBC ‘내 뒤에 테리우스’ 방송 화면

10. 그런 맥락에서 ‘코코’도 인상적이었다. 아이들한테 하는 코코를 남녀 성인 주인공들이 하면서 묘한 설렘을 준 것 같다.

코코도 실제로 우리 아이와 자주 하는 거다. 아이들이 정말 ‘까르르’하면서 좋아한다. 애린과 본이 코코를 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쓰긴 썼는데, 거기에 슬로우가 걸릴 줄은 몰랐다.(웃음) 강기영 씨와 소지섭 씨의 코코는 사실 대본에 없었다. CP님이 ‘그래도 마지막 회 쯤에는 코코가 한 번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무리 찾아봐도 애린과 본이 붙을 부분은 없어서 강기영 씨와 하게 됐다. 강기영 씨가 기절하는데 너무 재밌었다.

10. 시즌2를 연상하게 하면서 끝이 났는데.

시즌2 얘기를 많이해주셔서 정말 놀랐다. 애린이도, 본에게도 미션을 주고 싶었다. 새로운 시작을 하게 하면서 끝났으면 했다. ‘그렇게 가보고 싶어했던 남산타워에서 모히또 한 잔을 마시고 끝낸다’. 이게 처음부터 생각해뒀던 엔딩이었다. 처음 시놉대로 잘 끝났다. (웃음)

10. 그래서 결론적으로 육아가 어려운 걸까, 첩보가 어려운 걸까?

육아다. 끝이 없다. 매일매일 반복된다. 첩보도 끝이 없나? 그럴 수 있겠다.(웃음) 본 또한 외로운 첩보의 세계에서 끝없이 일어나는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니까. 어쩌면 본은 육아 세계를 통해 새로운 즐거움을 받았을 수 있지 않나 한다. 우리 집 첫째가 열 다섯이고, 둘째가 다섯 살이다. 첫째가 다 컸을 때 둘째를 낳아서 모든 게 다시 시작되고 있는 느낌이다. 많이 힘들지만 그래도 아이들을 기르는 것이 주는 힘과 즐거움이 분명히 있다. 본도 그렇게 변화했다고 생각한다.
‘내 뒤에 테리우스’ 포스터/사진제공=MBC
‘내 뒤에 테리우스’ 포스터/사진제공=MBC
‘내 뒤에 테리우스’ 포스터/사진제공=MBC

10. 영향받은 드라마나 좋아하는 드라마가 있다면?

‘도깨비'(tvN)도 재밌게 봤고, ‘대장금'(MBC) ‘발리에서 생긴 일'(SBS)을 정말 좋아했다. 첫째를 낳고 우울해하고 있는데 드라마를 보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 자연스럽게 작가의 꿈을 키운 것 같다. 사실 나는 아침·저녁 드라마부터 장르물까지 모든 장르의 드라마를 좋아한다. 요즘은 드라마가 너무 많아서 다 못 보는 게 아쉽다. 나는 그냥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어렸을 때, 드라마 때문에 잠 못 자고 설레서 공부 못한 적이 있지 않나. 드라마를 통한 즐거움도 삶의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은 어려워도 드라마로 힘을 받았으면 한다.

10. 드라마 작가가 되겠다고 생각한 결정적인 계기는?

회사를 그만 두고 드라마를 보는데 TV에서 ‘방송작가교육원에서 교육생을 모집합니다’라는 자막이 흘러갔다. 그 띠를 보고 ‘아, 나 드라마 좋아하는데. 배워보고 싶어’라는 생각이 들어 찾아갔다. 서른 살이었다. 그때 면접관이 노희경 선생님이어서 너무 놀랐다. 질문을 하셨는데 뭐라고 대답했는지도 모르겠다. 창작반 갈 때까지 3년 동안 계속 공부했다. 그때는 마냥 좋아서 시작했지만, 이 길이 이렇게 힘들 줄은…(웃음) 칼 뺐는데 무는 썰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계속 쓰고 보조작가도 되고, 공부도 하면서 공모전 당선으로 이 길에 들어왔다.

10. 원래는 무슨 일을 했나?

핸드폰에 들어가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프로그래머. 전자공학과를 나왔다.

10. 문과도 아니고 이과인데, 직장 경험이 드라마를 쓰는 데 도움이 되나?

많이 된다. 16부작을 써보니까 더 알겠더라. 드라마가 건축 같은 느낌이다. 글쓰기의 구성을 ‘건축한다’고 표현하는 것처럼, 이과 출신이 도움이 됐다. 직장생활을 아니까 오피스물에 대한 욕심도 있다. 그런데 내 오피스물에는 일단 무조건 코미디가 들어갈 것 같다. 힘든 현실을 보여주면서도 드라마를 통해 즐거움이 생길 수 있었으면 한다.

10. 요즘민폐 여주인공논란이 많은데쇼핑왕 루이테리우스 여주인공들이 잘하고 현명하다. 이번에 아줌마를 타깃으로 했으니 다음에는 어떤 타깃을 그릴지 궁금하다.

여고생?(웃음) 아, 우리 엄마 세대에 대해 그리고 싶다. 아주 고생을 많이 한 세대라고 생각한다. 그 세대에 대해서 수고했다고, 칭찬해주는 드라마를 써보고 싶다.
MBC ‘내 뒤에 테리우스’ 방송 화면
MBC ‘내 뒤에 테리우스’ 방송 화면
MBC ‘내 뒤에 테리우스’ 방송 화면

10. 브로맨스를 그리는 같다. 워맨스에 도전해 볼 생각은?

사실 워맨스를 되게 좋아한다. 다음 드라마에는 쓸 수도 있다. 딸만 셋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여자들만의 이야기에 자신 있다. 아마 가족극을 쓰게 되면 여자들이 우르르르 나와서 무슨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을까.

10. 차기작 계획은?

써놓은 걸 발전시킬지 새롭게 시작할지 고민 중이다. 항상 지금 시대에 맞는 걸 하고 싶다고 느낀다. 요즘은 ‘테리우스’를 쓰느라 사회 경향 조사는 많이 못했지만, 트렌디하면서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게 무엇이든 유쾌해서 보기에 편한 드라마였으면 좋겠다.

10. 유쾌한 극만 쓸 건가?

유쾌한 걸 주로 쓰고 무서운 것도 쓰고 싶다. 이전에 단막극으로 장르물도 많이 써봤다. 그런데 쓰다 보면 캐릭터들이 자꾸 개그를 하더라. 개그를 아예 빼버리면 무거워지니까 의도적으로 첨가되는 경우도 있고. 나는 악역을 그리는 게 너무 무섭다. 사람이 죽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한다.(웃음) 이와는 별개로 공포물에도 꼭 도전하고 싶다.

10. 오늘 집에 가서 뭐할 건가?

육아다. 아이를 돌봐야 한다. 그래도 엄마와 시어머니의 도움을 많이 받는 편이다. 지금 당장의 내 소원은 혼자 어디 가서 쉴 수 있었으면 한다는 거다. 비워낸 걸 채울 수 있게. 그냥 휴식 말고 ‘혼자의 휴식’으로. 가족들이 항상 옆에 있으니까 혼자만의 시간이 소중하다는 걸 느낀다. 평소에 가족들이 모두 잘 때 혼자 빈 방으로 가서 음악을 듣곤 한다. 글은 혼자서 깊이 생각해야 써지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다. 혼자 멍 때리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런 얘기 해볼까?’하면서 다가오는 것들이 소중하다.

10. ‘테리우스’처럼 육아와 현실이 글쓰기에 도움이 될 때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 그래서 균형이 중요한 것 같다. 그런 현실적인 부분이 에피소드를 쓸 때는 큰 무기가 된다. 아이템을 몸에서 막 꺼내는 느낌이다. 그럴 때는 이 많은 경험들이 도움이 된다고 느낀다. 회사를 다녀본 것도, 글쓰기와 상관없는 다른 일을 해본 것도. 결혼을 해본 것도 잘한 거고, 아이를 낳아본 것도. ‘내가 왜 이 길을 갔을까’ 하고 힘들게 고민했던 시간들을 지금의 성취로 하나씩 칭찬해줘야 하는 것 같다. 더 열심히 써야겠다고 늘 다짐한다.

유청희 기자 chungvsky@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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