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은호 기자]
엎친 데 덮친 격이라 했던가.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고도 했다. 짝사랑하다 차였던 대학 동기가 직장 후배가 된 날, 꿈에 그리던 정규직 전환 기회가 코앞에서 날아갔다. 설상가상으로 직장 상사와 후배 앞에서 대학 시절의 ‘흑역사’마저 까발려졌다. 흔들리지 않으며 피는 꽃은 없다고 누가 말했던가. 흔들리기는커녕 뿌리내릴 한줌 흙조차 없어 보이는 현실. 지난 26일 베일을 벗은 tvN 새 월화드라마 ‘시를 잊은 그대에게’에서 이유비가 처한 상황이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는 물리치료사·방사선사·실습생들의 일상을 시(詩)와 함께 그린다. 등장 인물들의 처지는 고만고만하다. 우보영(이유비)은 어려운 집안 사정 때문에 국문과 진학을 포기하고 물리치료학과에 들어가 병원에 취직한다. 하지만 그에게 허락된 길은 고작해야 2년제 계약직 정도다. 같은 병원에 실습생으로 들어온 대학 동기 김남우(신재하), 한 때 우보영이 짝사랑했던 신민호(장동윤)의 앞날도 빤하다. 실습을 마치면 인턴으로 일하다가 큰 병원의 계약직 혹은 작은 병원의 정규직을 택해야 한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정규직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꿈을 우보영은 처음부터 꾸지도 않는다. 병원에겐 ‘도의’보다 더 중요한 건 ‘비용’이다. 자신의 빈자리는 또 다른 계약직이 채울 것임은 너무나도 명징하다. 정규직이 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친절사원으로 뽑히는 것. 친절사원에겐 해외 연수 기회가 주어지는데, 병원이 자비를 들여 연수 보낸 직원을 내칠 리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약직이 친절사원으로 뽑힌 선례는 없다”는 병원의 방침 아래,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던 친절사원 상은 저 멀리 날아간다. 정규직 무산을 슬퍼하는 것은 차라리 사치에 가깝다. 회식 자리에서 “오늘 밤 친절사원 나야 나”를 외쳤던 우보영에겐 당장의 ‘쪽팔림’이 더 문제다.
삶은 고단하지만 그래도 살아야 한다. 작가는 무게를 잡고 청년 일자리 문제를 논하는 대신 코믹함과 서글픔을 적절하게 조화시켜 지금 이 시대의 현실을 불러온다. 성공이나 꿈의 기준을 함부로 강요하지도 않고 “아프니까 청춘”과 같은 궤변을 늘어놓지도 않는다. 다만 흔들리면서도 어떻게든 뿌리 내려 버티려는 청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1회 말미 자신이 환자에게 건네줬던 이철환의 시 ‘아픔과 슬픔도 길이 된다’를 다시 읽으며 스스로 위안을 얻는 우보영은 찡하지만 동시에 굳세다. 현실은 고되지만 작품은 현실에 주눅 들지 않는 청춘의 모습을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리고 이 메시지가 같은 현실을 살고 있는 TV 바깥의 청춘에게 도달하는 순간 위로와 연대의 힘을 생기게 한다.
다소 과장돼 보이는 이유비의 연기는 오히려 우보영이 견뎌야 하는 무게를 효과적으로 보여줬다. 신재하는 안정적인 연기로 현실성을 높였고 장동윤의 표리부동한 모습은 얄밉지만 귀엽다. 서현철·이채영·데프콘 또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재미를 높였다. 극 중반 삽입된 ‘흔들리며 피는 꽃’(도종환) ‘짝사랑’(이남일)과 같은 시는 낭만적인 정취를 더했다.
무엇보다 기대되는 건 대본을 집필한 명수현 작가의 필력이다. tvN ‘혼술남녀’ ‘막돼먹은 영애씨’ 시리즈를 통해 ‘루저’들의 분투를 사랑스럽게 그려낸 명 작가의 실력이 ‘시를 잊은 그대에게’에서 어떻게 발휘될지 기대가 쏠린다.
이은호 기자 wild37@tenasia.co.kr
‘시를 잊은 그대에게’는 물리치료사·방사선사·실습생들의 일상을 시(詩)와 함께 그린다. 등장 인물들의 처지는 고만고만하다. 우보영(이유비)은 어려운 집안 사정 때문에 국문과 진학을 포기하고 물리치료학과에 들어가 병원에 취직한다. 하지만 그에게 허락된 길은 고작해야 2년제 계약직 정도다. 같은 병원에 실습생으로 들어온 대학 동기 김남우(신재하), 한 때 우보영이 짝사랑했던 신민호(장동윤)의 앞날도 빤하다. 실습을 마치면 인턴으로 일하다가 큰 병원의 계약직 혹은 작은 병원의 정규직을 택해야 한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정규직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꿈을 우보영은 처음부터 꾸지도 않는다. 병원에겐 ‘도의’보다 더 중요한 건 ‘비용’이다. 자신의 빈자리는 또 다른 계약직이 채울 것임은 너무나도 명징하다. 정규직이 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친절사원으로 뽑히는 것. 친절사원에겐 해외 연수 기회가 주어지는데, 병원이 자비를 들여 연수 보낸 직원을 내칠 리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약직이 친절사원으로 뽑힌 선례는 없다”는 병원의 방침 아래,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던 친절사원 상은 저 멀리 날아간다. 정규직 무산을 슬퍼하는 것은 차라리 사치에 가깝다. 회식 자리에서 “오늘 밤 친절사원 나야 나”를 외쳤던 우보영에겐 당장의 ‘쪽팔림’이 더 문제다.
1회 말미 자신이 환자에게 건네줬던 이철환의 시 ‘아픔과 슬픔도 길이 된다’를 다시 읽으며 스스로 위안을 얻는 우보영은 찡하지만 동시에 굳세다. 현실은 고되지만 작품은 현실에 주눅 들지 않는 청춘의 모습을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리고 이 메시지가 같은 현실을 살고 있는 TV 바깥의 청춘에게 도달하는 순간 위로와 연대의 힘을 생기게 한다.
다소 과장돼 보이는 이유비의 연기는 오히려 우보영이 견뎌야 하는 무게를 효과적으로 보여줬다. 신재하는 안정적인 연기로 현실성을 높였고 장동윤의 표리부동한 모습은 얄밉지만 귀엽다. 서현철·이채영·데프콘 또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재미를 높였다. 극 중반 삽입된 ‘흔들리며 피는 꽃’(도종환) ‘짝사랑’(이남일)과 같은 시는 낭만적인 정취를 더했다.
무엇보다 기대되는 건 대본을 집필한 명수현 작가의 필력이다. tvN ‘혼술남녀’ ‘막돼먹은 영애씨’ 시리즈를 통해 ‘루저’들의 분투를 사랑스럽게 그려낸 명 작가의 실력이 ‘시를 잊은 그대에게’에서 어떻게 발휘될지 기대가 쏠린다.
이은호 기자 wild37@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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