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텐아시아가 ‘영평(영화평론가협회)이 추천하는 이 작품’이라는 코너를 통해 영화를 소개합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나 곧 개봉할 영화를 영화평론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 선보입니다. [편집자주]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자칫하면 흥미로운 소재 이상을 보여주지 못 하고 끝나버리게 된다. ‘유리정원’의 강점은 “나무에서 태어났고, 몸 속에 초록의 피가 흐르는” 자신을 상상하는 재연이라는 여성과, 이를 다시 가공하여 소설 속 ‘나무 여인’으로 재창조하는 지훈이라는 인물들이 실감나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이런 강점의 근원에는 신수원 감독의 꼼꼼한 각본이 가장 앞장에 놓일 것이고, 그 뒤로는 자기 색을 찾아 캐릭터를 살린 배우들의 노력이 있을 것이다. 국민여동생에서 한동안 표류하는 것처럼 보이던 문근영은 아마 이 작품으로 배우로서 느끼던 정체성의 불안을 덜어냈으리라 보인다.
김태훈은 최근 몇 년 드라마에서 주로 보여준 센 느낌의 악역보다는 ‘설행’(김희정, 2016)의 세상 끝으로 밀려난 알콜중독자나, 인정받지 못하고 주변인으로 떠도는 이번 영화의 작가가 더 잘 어울린다.
“순수한 것은 오염되기 쉬워”라는 정 교수의 대사는 ‘유리정원’ 전체를 가장 잘 표현하는 구절이다. ‘순수한 존재’인 재연은 영화 전반에는 정교수와, 후반에는 지훈과 교감한다. 정 교수와 지훈은 재연이 갖고 있는 자질을 알아보고 현실에다 응용하는 사람들이다. 재연을 가운데 두고 서로 다른 방법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순수한 것’과 세상은 타협하기 어렵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일 뿐이다. 다시 말해 정 교수도 지훈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재연을 아끼고 사랑했다.
‘유리정원’은 상징이 많은 영화다. 자라지 않는 재연의 발이 성적 콤플렉스를 표현한다면, 안면 근육 마비 현상을 겪고 있는 지훈의 질환은 창작자로서의 고뇌를 신체적으로 치환한 것이다.
“나무에서 태어난 아이” “나무가 되어 가는 인간”이라는 개념이 주는 강렬한 인상과, 화면에 담긴 깊고 푸른 숲의 모습은 다른 사연을 다 걷어내고도 남게 되는 이미지다. 다소 늦은 나이에 고군분투한 감독 입봉기 ‘레인보우’(2009)로 장편영화에 데뷔한 신수원 감독은 굉장히 부지런히 달려왔다. ‘명왕성’(2012), ‘마돈나’(2014) 등 데뷔 이후 쉴 틈 없이 작업했다. 시나리오도 직접 쓴다는 점을 생각하면 정말 빠른 행보다.
‘마돈나’의 미나(권소현)는 “전 잘 하는 게 아무 것도 없어요”라며 미안해한다. 신 감독 영화의 여성 주인공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미나와 엇비슷한 태도를 보인다. 아마 오랜 감독 준비 기간 중에 신 감독이 느꼈던 중요한 감정이 투사된 대사일 것이다.
그러나 대사와 달리 신 감독은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고, 하고 싶은 걸 열심히 하는 감독이라는 사실을 ‘유리정원’은 다시 한 번 보여줬다.
이현경(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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