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조현주 기자]
배우 한상진이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이승현 기자lsh87@
배우 한상진이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이승현 기자lsh87@
“‘써클’은 연기 인생에 다시 한 번 채찍질을 할 수 있게 해준 작품입니다. 데뷔한지 20년이 지났는데 도전을 할 수 있어서 큰 복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이 행운이 그저 행운으로 끝나지 않게 제 자신을 돌이켜보고 긴장도 해야겠죠.”

배우 한상진은 꽤나 감격한 모습이었다. 그는 지난달 종영한 tvN ‘써클: 이어진 두 세계’에서 휴먼비 회장 박동건 역으로 강렬한 반전을 선사했다. 2017년과 2037년을 오가는 드라마에서 신경과학과 부교수부터 과학경제부 장관 그리고 휴먼비 회장까지, 다양한 캐릭터 변화를 심도 있게 그려내며 ‘한상진의 재발견’을 이뤘다. 데뷔 20년차 배우에게 찾아온 쉽지 않은 기회였다.

“4년 만에 포털사이트 메인에 제 이름이 있더라고요. 사실 4년 동안 쉰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왜 그랬을까 싶었죠. 이번에는 조금 더 치열했습니다. 채찍질을 했죠. ‘육룡이 나르샤’ 촬영 때 김명민 선배님이 ‘배우는 사람들이 알아줄 때가 있고 아닐 때가 있다. 그걸 다 겪어내면 저력을 갖게 된다. 넌 저력을 갖고 있는 배우다’라고 말해줬어요. 사실 잘 몰랐는데, ‘써클’을 통해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죠.”

한상진은 “가슴이 허하다”고 말했다. 모든 걸 쏟아내고 소진한 만큼 허탈하다는 것. 그는 대본을 보자마자 ‘써클’에 빠져들었다. 한상진은 “올해 초에 네 권의 대본을 받았다. 굉장한 밀도를 가지고 있었다. SF인데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철학도 있고 사람도 보였다”면서 “이렇게 좋은 작품인데 왜 나를 선택했지? 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민진기 감독님이 박동건 역할에 처음부터 저를 생각했다고 말하더라고요. 처음에는 거짓말을 하는 건가 싶었어요. 그런데 얘기를 나눌수록 신뢰가 가더라고요. 일단 본인이 솔직했어요. 자신은 정통으로 드라마를 연출했던 PD가 아니고, 처음 하는 시도지만 집중력을 가지고 잘 만들 수 있다고요. 자신감이 보였죠. 행여나 잘 안 되더라도 첫 발자국을 만들었던 사람이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거기에 쏙 빨려 들어갔죠. 첫 촬영 후 믿어도 되겠다는 신뢰가 생겼어요. 그 분은 한 마디로 요물이죠!(웃음)”

‘써클’은 2017년 미지의 존재로 인해 벌어진 의문의 살인사건을 쫓는 ‘파트1: 베타프로젝트’와 감정이 통제된 2037년 미래사회 ‘파트2: 멋진 신세계’를 배경으로 두 남자가 미스터리한 사건을 추적해가는 과정을 그렸다. 한국형 SF추적극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방영 내내 2%(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기준)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높은 수치는 아니지만 뜨거운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방송 종영 이후 시즌2 제작에 대한 요청이 빗발치고 있다. 그러나 박동건은 욕망을 좇다가 결국 파멸했다. 한상진이 시즌2에 나올 확률은 적다.

배우 한상진이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이승현 기자lsh87@
배우 한상진이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이승현 기자lsh87@
“시즌2가 제작될지, 또 제가 나올지는 알 수가 없죠. 다만 ‘써클’에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많이 나왔어요. 시즌2가 제작돼서 그분들에게 또 다른 기회가 제공됐으면 하는 바람은 있어요. 드라마를 많이 찍었는데, 몇 명만 주목을 받거든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그리기 때문이죠. 그런데 ‘써클’은 모든 인물들이 얘기를 했어요. 그 이야기가 모여서 하나의 세계관이 완성됐고요. 감독님과 작가님이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가줬어요. 그게 고맙더라고요. 아주 작은 배역의 친구들도 다 챙겨줬어요. ‘써클’은 배우들이 많이 얻어갈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한상진은 8회에서 2037년 기억 조작 시스템을 진두지휘한 휴먼비 회장으로 드러나 충격을 안겼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인물이였기에 이를 지켜보던 시청자들 모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한상진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너무 좋은 캐릭터였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면서 “사실 ‘써클’ 대본에는 허술함이 없었다. 짜임새가 있었다. 그래서 고민이 컸다. 첫 촬영을 앞두고 심장이 막 설레서 잠도 못 잤다. 치열하게 잘 해내고 싶었다”고 웃었다.

“휴식시간에 배우들끼리 모이면 휴먼비 회장이 누구일지 토론을 했어요. 여진구도 나왔고, 진구 아빠로 나온 김중기(김규철 역)도 거론됐죠. 아무도 저라는 상상은 못하더라고요. 사실 저는 현장에서 사람들과 교류나 소통을 자주하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최대한 제 자신을 많이 다운시켰어요. 민진기 감독님한테도 계속 질문하고 물어봤고요. 아직 연기를 쌓아올리는 입장에서 어려운 부분들이 많았는데, 신뢰할 수 있는 연출자를 만났죠.”

한상진은 벌써 차기작을 검토 중이다. 물론 급한 건 아니다. 그간 자신에게 한계를 두고 의심을 많이 했다면, ‘써클’을 통해 신인의 마음으로 돌아갔다. 자신도 몰랐던 부분을 발견했다. 이제 도전이 두렵지 않게 됐다.

“연기를 하고 있는데 ‘요즘 왜 안 나와’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때 내가 배우로서 소진이 됐나 싶었죠. 고민이 많을 때 ‘써클’을 만났어요. 속된말로 죽어가던 배우에게 물을 줬어요. 시들어가던 배우가 물을 먹고 다시 살아나게 됐네요. 나도 몰랐던 가능성을 찾았죠. 감독님과 작가님한테 108배, 3000배라도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웃음)”

조현주 기자 jhjdh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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