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현지민 기자]
최희서: 스케줄이 이렇게 많았던 적이 없어서 얼떨떨하다. 무대인사를 하는 중인데, 관객분들의 반응이 좋아서 몸이 피로하다고 느낄 새가 없다. 마음이 너무 행복하다.
10. ‘박열’의 시놉시스 회의 때부터 참여했다.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최희서: 이준익 감독님이 일본여성 가네코 후미코의 삶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 여성인 나의 생각도 듣고 싶다고 해줘서 참여하게 됐다. 시나리오를 쓰는 것도 봤고, 영화 제작을 위한 자료들도 같이 모았다. 일본 신문도 읽어봤다. 그러다 보니 ‘우리 영화’라는 마음이 강하다. 사실 그렇게 준비를 하면서도 내가 후미코 역을 연기할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 바람을 갖지 않도록 나를 컨트롤했다. 무명생활도 길었고, 캐스팅이 됐다가 엎어진 적도 있고 촬영 중에 작품이 무산된 적도 있다. 내가 바라는 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에 그냥 기다렸는데 배역이 내게 왔다.
10.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을 거다. 실화를 재현한 작품이라 고민도 많았을 것 같은데.
최희서: 캐스팅 전에 이준익 감독님의 추천으로 후미코의 자서전을 읽은 적이 있다. 캐스팅 이후엔 더 많은 서적을 찾아 읽었고 재판기록도 살펴봤다. 캐스팅이 되자마자 그 주 주말에 부모님과 문경에 있는 후미코의 산소에 갔었다. 그저 짠한 마음이 있었다. 시나리오를 다 익힌 후 크랭크인 전에 다시 한 번 갔었다. 그땐 마음이 참 아팠다. 한 달 전쯤에 또 갔었다. 가장 마음이 아팠다. 내가 후미코가 돼서 연기를 마친 후에 가니 기분이 이상하더라. 오래 알던 친구가 세상을 떠난 뒤 그를 가끔 찾아가는 느낌이었다.
10. 생각을 빼곡히 적은 대본노트를 봤다.
최희서: 매번 작품을 할 때마다 생기는 노트다. 대본을 오려 붙이고 대사에 대한 생각이나 캐릭터가 느낄 감정 등을 적어둔다. 이전엔 노트를 사도 절반을 못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번엔 노트가 부족할 정도였다.
10. 그렇게 준비한 ‘박열’이다. 완성된 영화 속 본인의 연기가 어땠나.
최희서: 많은 작품을 하면서 만족했던 적도 있고 반대로 불만족스러웠던 적도 있다. 이번엔 꽤 만족스러운 편이다. 물론 아쉬운 장면이 있긴 하지만, 내가 노력한 만큼 화면에 나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사실 내 캐릭터보단 박열이 너무 멋있어서… 시사회를 갈 때마다 옆자리의 이제훈 씨에게 ‘와 멋있다’고 계속 얘기한다.
10. 연기한 후미코는 아나키스트다. 본인의 성향과 닮은 부분이 있나?
최희서: 나와 맞닿은 부분이 많았다. 나 역시 불의를 보면 잘 못 참는다. 공평하지 않은 것도 못 참는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야 한다. 학연·지연·혈연? 딱 싫다. 후미코도 왠지 그런 걸 싫어했을 것 같다.
10. 이제훈에 대한 팬심을 수차례 드러냈다. 연기하며 부끄럽진 않았을까.
최희서: 처음에 리딩을 할 땐 눈을 마주치기가 힘들더라. 이후에 뒤풀이 자리에서 이제훈 씨가 ‘희서 씨가 나온 단편영화를 봤다’고 하더라. 스타인데도 불구하고 독립, 단편영화를 챙겨보고 숨겨진 배우들에 대해 인지한다는 게 감동적이었다. 용기를 얻었고 편안하게 촬영하기 위해 말을 놓자고 제안했다.
10. 이준익 감독과는 ‘동주’ 이후 두 번째 만남이다. 어땠나.
최희서: ‘동주’ 때는 내 촬영 분량이 워낙 적었다. 촬영이 없는 날도 현장에 자주 갔지만, 그래도 나는 작은 조연배우일 뿐이고 감독님은 거장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때문에 나 스스로 벽을 쌓았던 것 같다. 하지만 ‘동주’ 홍보차 자주 만나게 되며 얘길 많이 나눴다. ‘다음에 다시 만난다면 동지처럼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곧바로 ‘박열’을 하게 된 거다. 감독님은 누군가를 나이나 경력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사람 그 자체의 매력을 보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더 가까워졌다. ‘이준익 감독의 뮤즈’라는 수식어? 마냥 감사할 따름이다.
10. 후미코는 20대 초반에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역사적 일을 한 인물이다. 최희서의 20대 초반은 어땠을까.
최희서: 철이 많이 없었다. 대학생 때 연극동아리 활동을 하던 때라 밤새 연극만 했다. 다음날 수업도 잘 안 갔다. 날이 좋으면 자체휴강도 했다.(웃음) 학점은 안 나와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는 마음이 더 컸다.
10. 어릴 때부터 유학생활을 했고, 연세대를 졸업했다. 소위 ‘엄친딸’ 아닌가. 배우로서 성장하는 데 수식어가 걸림돌이 되진 않을까.
최희서: 아마 내게 그런 수식어가 붙은 건, 대표작도 없고 특징도 없는 배우이기 때문일 거다. 그렇다 보니 내 학교와 외국어가 유일한 특징인 거다. 지우고 싶은 수식어다. 그래서 본명 최문경이 학구적인 이미지가 있어서 예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러다 일본인 전문배우가 되는 건 아닐까?(웃음) 믿고 보는 연기파 배우이고 싶다.
10. 연극을 시작으로 다수의 작품에서 열연했다. 하지만 대중들의 눈에 띄진 않았다. 무명이 꽤 길었다.
최희서: 불안한 마음도 컸다. 아무리 작품을 해도 몰라주고 나를 찾지 않는 거다. 하지만 마냥 기다릴 순 없었다. 내 나름대로의 대책은 ‘더 연기를 하자’였다. 불안할 땐 일단 연기를 했다. 그러다가 지하철에서 ‘동주’를 제작한 신연식 감독의 눈에 띄었고 지금 이 자리에도 서게 됐다. 아직도 신기하다. 무대인사를 가는 것도 신기한데, 내 옆에 이준익 감독님이 과자를 먹으며 핸드폰을 보고 이제훈 씨가 수다를 떠는 거다. 하루에도 몇 번씩 ‘어쩜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10. 이번 작품을 통해 소위 확 뜨면 어떨까. 초심을 잃는 건 아닐까.
최희서: 내가 만약 나이가 어렸다면 스타병을 유발하는 나쁜 유혹이 있을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난 10년을 무명으로 살았다. 많은 사람들이 날 알아봐주고 찾아준다고 하더라도 변할 것 같지 않다.
10. 대중의 관심이 높아진다는 건, 그만큼 경계해야할 것도 많아진다는 뜻 아닐까. 악플은 읽나?
최희서: 주변에서 보지 말라고 말리던데 난 다 본다. 아직까지 엄청나게 상처가 될 악플은 없다. 제훈 씨 옆에 서있는 사진 아래에 키가 작다는 댓글이 있었다. 그 밑에 댓글을 달고 싶었다. ‘최희서입니다. 연기는 연습해서 늘 수 있지만 키는 늘일 수가 없습니다’라고.(웃음) 친구가 말려서 못 했다. 나중에 연기적인 비판의 글이 있다면 그냥 웃으며 지나치진 못할 것 같다. 날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아야지.
10. 힘든 역할을 줄곧 해왔다. 평범한 역할에 대한 갈망이 있을 것 같다.
최희서: 정말 해보고 싶다. 하지만 내가 어떤 작품이나 캐릭터를 특정해서 하고 싶다고 말할 포지션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연달아서 일본인 캐릭터를 하는 건 피해야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욕심을 내자면 형사물이나 법정 수사극. ‘비밀의 숲’에 푹 빠져있거든. ‘시그널’도 재미있게 봤다. ‘시그널2’가 나온다면 제훈 씨와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도 있다. 한국말로 대화할 수 있을테니.
10. 충무로를 이끌 차세대 배우다. 잃고 싶지 않은 신념이 있다면.
최희서: 교환학생 당시 스승님이 ‘성스러운 불만족’이라는 말을 해줬다. 예술가들이 어떤 작업을 할 때, 만족하지 못하니 계속해서 새로운 걸 창조한다는 거다. 불만족의 과정이 발전을 위한 계기가 된다고. 나는 내 연기에 불만족을 가진 배우다. 그게 내 원동력이다. 더 잘 할 순 없을까 고민하면서 100%와 가까워지는 배우가 되고 싶다.
영화 ‘동주’에서 윤동주를 사랑하는 일본여성으로 등장해 눈길을 끌었고, ‘박열’에서 또 다시 일본여성을 연기했다. 배우 최희서는 “일본인 아닌가”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완벽한 일본어 실력은 물론, 어눌한 한국어 연기까지 선보이며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의 진가는 외국어에서 그치지 않았다. 최희서는 캐릭터에 완벽하게 동화된, 동화되기 위해 노력하는 열정으로 10년 무명세월을 청산하고 뭍으로 나왔다.10. 첫 주연작 ‘박열’ 홍보를 위해 바쁜 일정을 소화 중이다. 이전과 달라짐을 느끼나.
첫 주연작으로 ‘박열’을 만난 최희서는 기쁨보다 걱정이 앞섰다. 실존인물인 가네코 후미코를 제대로 표현해내기 위해 그의 자서전 및 평전을 읽었고, 그의 묘지에도 수차례 방문했다. 점차 후미코 역에 몰입한 그는 묘지 앞에서 묘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박열’ 속 최희서는 후미코 그 자체였다. 생각이 맞아 사랑하게 된 박열에게 “동거하자”고 제안할 만큼 당돌했고, 옥중 투쟁을 하면서도 신념과 여유를 잃지 않았다. 조선을 통해 자신의 아픔을 봤고, 때문에 자신의 조국인 일본의 제국주의에 강하게 저항했다. 씩씩하다는 말론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아나키스트였다. 실제로 만난 최희서에게서 후미코의 기개가 엿보였다. 그가 말하는 #박열 #이제훈 #10년무명
최희서: 스케줄이 이렇게 많았던 적이 없어서 얼떨떨하다. 무대인사를 하는 중인데, 관객분들의 반응이 좋아서 몸이 피로하다고 느낄 새가 없다. 마음이 너무 행복하다.
10. ‘박열’의 시놉시스 회의 때부터 참여했다.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최희서: 이준익 감독님이 일본여성 가네코 후미코의 삶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 여성인 나의 생각도 듣고 싶다고 해줘서 참여하게 됐다. 시나리오를 쓰는 것도 봤고, 영화 제작을 위한 자료들도 같이 모았다. 일본 신문도 읽어봤다. 그러다 보니 ‘우리 영화’라는 마음이 강하다. 사실 그렇게 준비를 하면서도 내가 후미코 역을 연기할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 바람을 갖지 않도록 나를 컨트롤했다. 무명생활도 길었고, 캐스팅이 됐다가 엎어진 적도 있고 촬영 중에 작품이 무산된 적도 있다. 내가 바라는 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에 그냥 기다렸는데 배역이 내게 왔다.
10.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을 거다. 실화를 재현한 작품이라 고민도 많았을 것 같은데.
최희서: 캐스팅 전에 이준익 감독님의 추천으로 후미코의 자서전을 읽은 적이 있다. 캐스팅 이후엔 더 많은 서적을 찾아 읽었고 재판기록도 살펴봤다. 캐스팅이 되자마자 그 주 주말에 부모님과 문경에 있는 후미코의 산소에 갔었다. 그저 짠한 마음이 있었다. 시나리오를 다 익힌 후 크랭크인 전에 다시 한 번 갔었다. 그땐 마음이 참 아팠다. 한 달 전쯤에 또 갔었다. 가장 마음이 아팠다. 내가 후미코가 돼서 연기를 마친 후에 가니 기분이 이상하더라. 오래 알던 친구가 세상을 떠난 뒤 그를 가끔 찾아가는 느낌이었다.
10. 생각을 빼곡히 적은 대본노트를 봤다.
최희서: 매번 작품을 할 때마다 생기는 노트다. 대본을 오려 붙이고 대사에 대한 생각이나 캐릭터가 느낄 감정 등을 적어둔다. 이전엔 노트를 사도 절반을 못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번엔 노트가 부족할 정도였다.
10. 그렇게 준비한 ‘박열’이다. 완성된 영화 속 본인의 연기가 어땠나.
최희서: 많은 작품을 하면서 만족했던 적도 있고 반대로 불만족스러웠던 적도 있다. 이번엔 꽤 만족스러운 편이다. 물론 아쉬운 장면이 있긴 하지만, 내가 노력한 만큼 화면에 나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사실 내 캐릭터보단 박열이 너무 멋있어서… 시사회를 갈 때마다 옆자리의 이제훈 씨에게 ‘와 멋있다’고 계속 얘기한다.
10. 연기한 후미코는 아나키스트다. 본인의 성향과 닮은 부분이 있나?
최희서: 나와 맞닿은 부분이 많았다. 나 역시 불의를 보면 잘 못 참는다. 공평하지 않은 것도 못 참는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야 한다. 학연·지연·혈연? 딱 싫다. 후미코도 왠지 그런 걸 싫어했을 것 같다.
최희서: 처음에 리딩을 할 땐 눈을 마주치기가 힘들더라. 이후에 뒤풀이 자리에서 이제훈 씨가 ‘희서 씨가 나온 단편영화를 봤다’고 하더라. 스타인데도 불구하고 독립, 단편영화를 챙겨보고 숨겨진 배우들에 대해 인지한다는 게 감동적이었다. 용기를 얻었고 편안하게 촬영하기 위해 말을 놓자고 제안했다.
10. 이준익 감독과는 ‘동주’ 이후 두 번째 만남이다. 어땠나.
최희서: ‘동주’ 때는 내 촬영 분량이 워낙 적었다. 촬영이 없는 날도 현장에 자주 갔지만, 그래도 나는 작은 조연배우일 뿐이고 감독님은 거장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때문에 나 스스로 벽을 쌓았던 것 같다. 하지만 ‘동주’ 홍보차 자주 만나게 되며 얘길 많이 나눴다. ‘다음에 다시 만난다면 동지처럼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곧바로 ‘박열’을 하게 된 거다. 감독님은 누군가를 나이나 경력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사람 그 자체의 매력을 보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더 가까워졌다. ‘이준익 감독의 뮤즈’라는 수식어? 마냥 감사할 따름이다.
10. 후미코는 20대 초반에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역사적 일을 한 인물이다. 최희서의 20대 초반은 어땠을까.
최희서: 철이 많이 없었다. 대학생 때 연극동아리 활동을 하던 때라 밤새 연극만 했다. 다음날 수업도 잘 안 갔다. 날이 좋으면 자체휴강도 했다.(웃음) 학점은 안 나와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는 마음이 더 컸다.
10. 어릴 때부터 유학생활을 했고, 연세대를 졸업했다. 소위 ‘엄친딸’ 아닌가. 배우로서 성장하는 데 수식어가 걸림돌이 되진 않을까.
최희서: 아마 내게 그런 수식어가 붙은 건, 대표작도 없고 특징도 없는 배우이기 때문일 거다. 그렇다 보니 내 학교와 외국어가 유일한 특징인 거다. 지우고 싶은 수식어다. 그래서 본명 최문경이 학구적인 이미지가 있어서 예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러다 일본인 전문배우가 되는 건 아닐까?(웃음) 믿고 보는 연기파 배우이고 싶다.
10. 연극을 시작으로 다수의 작품에서 열연했다. 하지만 대중들의 눈에 띄진 않았다. 무명이 꽤 길었다.
최희서: 불안한 마음도 컸다. 아무리 작품을 해도 몰라주고 나를 찾지 않는 거다. 하지만 마냥 기다릴 순 없었다. 내 나름대로의 대책은 ‘더 연기를 하자’였다. 불안할 땐 일단 연기를 했다. 그러다가 지하철에서 ‘동주’를 제작한 신연식 감독의 눈에 띄었고 지금 이 자리에도 서게 됐다. 아직도 신기하다. 무대인사를 가는 것도 신기한데, 내 옆에 이준익 감독님이 과자를 먹으며 핸드폰을 보고 이제훈 씨가 수다를 떠는 거다. 하루에도 몇 번씩 ‘어쩜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10. 이번 작품을 통해 소위 확 뜨면 어떨까. 초심을 잃는 건 아닐까.
최희서: 내가 만약 나이가 어렸다면 스타병을 유발하는 나쁜 유혹이 있을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난 10년을 무명으로 살았다. 많은 사람들이 날 알아봐주고 찾아준다고 하더라도 변할 것 같지 않다.
10. 대중의 관심이 높아진다는 건, 그만큼 경계해야할 것도 많아진다는 뜻 아닐까. 악플은 읽나?
최희서: 주변에서 보지 말라고 말리던데 난 다 본다. 아직까지 엄청나게 상처가 될 악플은 없다. 제훈 씨 옆에 서있는 사진 아래에 키가 작다는 댓글이 있었다. 그 밑에 댓글을 달고 싶었다. ‘최희서입니다. 연기는 연습해서 늘 수 있지만 키는 늘일 수가 없습니다’라고.(웃음) 친구가 말려서 못 했다. 나중에 연기적인 비판의 글이 있다면 그냥 웃으며 지나치진 못할 것 같다. 날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아야지.
10. 힘든 역할을 줄곧 해왔다. 평범한 역할에 대한 갈망이 있을 것 같다.
최희서: 정말 해보고 싶다. 하지만 내가 어떤 작품이나 캐릭터를 특정해서 하고 싶다고 말할 포지션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연달아서 일본인 캐릭터를 하는 건 피해야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욕심을 내자면 형사물이나 법정 수사극. ‘비밀의 숲’에 푹 빠져있거든. ‘시그널’도 재미있게 봤다. ‘시그널2’가 나온다면 제훈 씨와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도 있다. 한국말로 대화할 수 있을테니.
10. 충무로를 이끌 차세대 배우다. 잃고 싶지 않은 신념이 있다면.
최희서: 교환학생 당시 스승님이 ‘성스러운 불만족’이라는 말을 해줬다. 예술가들이 어떤 작업을 할 때, 만족하지 못하니 계속해서 새로운 걸 창조한다는 거다. 불만족의 과정이 발전을 위한 계기가 된다고. 나는 내 연기에 불만족을 가진 배우다. 그게 내 원동력이다. 더 잘 할 순 없을까 고민하면서 100%와 가까워지는 배우가 되고 싶다.
사진=이승현 기자lsh87@" />
현지민 기자 hhyun418@tenasia.co.kr©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