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아 유 레디?(Are You Ready?)’. 지난 1996년 데뷔 직후부터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남성듀오 클론(Clon)의 첫 번째 음반 타이틀이다. ‘준비됐느냐’고 물으며 세상에 나온 두 남자는 단숨에 가요계를 장악했다.
타이틀곡 ‘꿍따리 샤바라’는 발표하자마자 ‘가요톱텐’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뜨거웠다. 당시 클론이 정상을 찍는 바람에 김건모가 5주 연속 1위에 실패하는 파격적인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도입부는 지금 들어도 어깨를 들썩일 정도로 신이 나고, 강원래와 구준엽의 시원한 목소리와 또 현란한 춤 솜씨에는 전에 없던 ‘특별함’이 있었다.
1년 뒤 ‘도시 탈출’로 돌아온 클론은 단 두 번 만에 ‘여름’ 하면 떠오르는 그룹으로 자리매김했다. ‘꿍따리 샤바라’에 버금가는 가슴이 뻥 뚫리는 노래로 대중들을 시원하게 했다.
댄스곡만 사랑받은 건 아니다. 클론의 묘한 매력을 더욱 빛나게 해준 건 사실 첫 번째 음반에 담긴 ‘난’과 또 두 번째 음반에 실린 ‘빙빙빙’과 같은 노래 덕분이었다.
2000년 ‘초련’으로는 ‘원조 한류’를 이끌기도 했다. 물론 클론의 두 사람은 “다른 가수들도 속속 해외로 나가고 있던 시점이었다”고 겸손의 말을 덧붙였지만, 대만 등 중화권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는 것은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해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충격적인 사고가 있었다. 2000년 11월,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강원래는 불법 유턴을 하는 자동차와 충돌해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다.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었다. 현란하게 발을 움직이고, 두 다리로 무대를 종횡무진하던 클론의 강원래가 평생 걸을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참담함을 감히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강원래는 주저앉지 않았다. 재활 훈련을 받으며 이겨내기 위해 애썼다. 고통의 연속이었고 좌절의 순간도 맛봤지만, 워낙 가만히 있지를 못 하는 사람이다. 늘 도전하는 남편 강원래를 두고 아내 김송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해야 하는 사람이다. 아마 가만히 있으라고 했으면 더 아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5년이 흘러 ‘내 사랑 송이’란 곡이 나왔다. 강원래는 휠체어를 탄 채 구준엽과 안무를 맞췄다. 무대 위 클론은 여전했고, 오히려 전에 없던 벅찬 감동까지 안겨줬다. ‘할 수 있다’는 걸 몸소 보여준 강원래는 2006년 라디오의 단독 DJ 자리도 꿰찼다.
병상에 있을 때부터 꿈꿔온 라디오 DJ. 스스로 앉아서 무얼 할 수 있을까, 떠올렸을 때 퍼뜩 뇌리를 스친 것이 라디오 DJ였다. 그렇게 ‘강원래 노래선물’의 원래DJ가 됐고, 벌써 10년이 흘렀다.
매일 낮 12시, “클론의 원래, 원래 강원래입니다”를 외치며 청취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오늘도 꿍따리 샤바라 힘나는 하루 보내세요”라고 응원하길 10년.
머릿속 그렸던 것과 달라, 초반 삐걱거림도 있었지만 이젠 습관이 돼 버렸다. 오전 9시 즈음 채비를 시작하고 10시를 조금 넘긴 시간 김송이 손수 싼 도시락을 들고 여의도 KBS 본관을 나서길 10년.
시작할 때 30대의 강원래는 마흔을 훌쩍 넘겼고, 한 아이의 아빠도 됐다. 오는 27일이면 꼭 10주년이 되는, KBS3 라디오 ‘강원래의 노래선물'(104.9MHz)이 열살 생일을 맞았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타이틀곡 ‘꿍따리 샤바라’는 발표하자마자 ‘가요톱텐’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뜨거웠다. 당시 클론이 정상을 찍는 바람에 김건모가 5주 연속 1위에 실패하는 파격적인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도입부는 지금 들어도 어깨를 들썩일 정도로 신이 나고, 강원래와 구준엽의 시원한 목소리와 또 현란한 춤 솜씨에는 전에 없던 ‘특별함’이 있었다.
1년 뒤 ‘도시 탈출’로 돌아온 클론은 단 두 번 만에 ‘여름’ 하면 떠오르는 그룹으로 자리매김했다. ‘꿍따리 샤바라’에 버금가는 가슴이 뻥 뚫리는 노래로 대중들을 시원하게 했다.
댄스곡만 사랑받은 건 아니다. 클론의 묘한 매력을 더욱 빛나게 해준 건 사실 첫 번째 음반에 담긴 ‘난’과 또 두 번째 음반에 실린 ‘빙빙빙’과 같은 노래 덕분이었다.
2000년 ‘초련’으로는 ‘원조 한류’를 이끌기도 했다. 물론 클론의 두 사람은 “다른 가수들도 속속 해외로 나가고 있던 시점이었다”고 겸손의 말을 덧붙였지만, 대만 등 중화권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는 것은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해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충격적인 사고가 있었다. 2000년 11월,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강원래는 불법 유턴을 하는 자동차와 충돌해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다.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었다. 현란하게 발을 움직이고, 두 다리로 무대를 종횡무진하던 클론의 강원래가 평생 걸을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참담함을 감히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강원래는 주저앉지 않았다. 재활 훈련을 받으며 이겨내기 위해 애썼다. 고통의 연속이었고 좌절의 순간도 맛봤지만, 워낙 가만히 있지를 못 하는 사람이다. 늘 도전하는 남편 강원래를 두고 아내 김송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해야 하는 사람이다. 아마 가만히 있으라고 했으면 더 아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병상에 있을 때부터 꿈꿔온 라디오 DJ. 스스로 앉아서 무얼 할 수 있을까, 떠올렸을 때 퍼뜩 뇌리를 스친 것이 라디오 DJ였다. 그렇게 ‘강원래 노래선물’의 원래DJ가 됐고, 벌써 10년이 흘렀다.
매일 낮 12시, “클론의 원래, 원래 강원래입니다”를 외치며 청취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오늘도 꿍따리 샤바라 힘나는 하루 보내세요”라고 응원하길 10년.
머릿속 그렸던 것과 달라, 초반 삐걱거림도 있었지만 이젠 습관이 돼 버렸다. 오전 9시 즈음 채비를 시작하고 10시를 조금 넘긴 시간 김송이 손수 싼 도시락을 들고 여의도 KBS 본관을 나서길 10년.
시작할 때 30대의 강원래는 마흔을 훌쩍 넘겼고, 한 아이의 아빠도 됐다. 오는 27일이면 꼭 10주년이 되는, KBS3 라디오 ‘강원래의 노래선물'(104.9MHz)이 열살 생일을 맞았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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