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수경 기자]
윤여정: 연령층이 다양하다면 좋은 일이지. ‘죽여주는 여자’는 법적으로 금지되어 터부시해오던 ‘성매매’라는 문제를 이재용 감독이 건드린 영화다. 어려운 선택이었을 거다. 내 친구만 해도 처음 내가 이 영화에 출연한다고 하니 하지 말라고 말렸다. 제목부터 그게 뭐냐며, 곱게 늙으라고.(웃음) 하지만 VIP 시사회 때 영화를 보고 나더니 잘 만들었고 잘 봤다고 하더라. 가치 있는 일을 했으니까 이재용 감독도 응원해주라고도 말했다. 그 친구의 응원이 가장 큰 응원이었다.
10. 죽음, 조력 자살에 관한 이야기라 출연 결정을 선뜻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윤여정: 일을 할 때는 결국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재용 감독과 몇 번 합을 맞춰봤으니 내게도 믿음 같은 게 있었겠지. 영화에 나오는 모든 이야기는 이미 세상에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영화적으로 풀어내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재용 감독은 문제들을 자극적이거나 극단적으로 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10. 처음 건네 받은 시나리오에 ‘박카스 할머니’의 ‘서비스’ 행위들이 꺼려지지는 않았나.
윤여정: 설마 그런 행위들을 일일이 다 시킬까 싶었다. 지나가는 스케치 정도로만 표현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내가 그렇게 속으면서도 산다.(웃음) 인간이 참 신기하지.
10. 이재용 감독이 그 ‘서비스’ 행위를 찍는 현장에서 디테일을 매우 중요시했다던데 의견을 제시하지는 않았는지.
윤여정: 촬영 현장에서는 빨리 가라는 방향으로 가고 끝을 내는 것이 내 미션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렇게 디테일을 요구할지 몰랐다. 세 번까지 찍다가 정말 죽겠어서 소리지른 기억은 난다. 상대 남자 배우가 태어나서 여자가 그렇게 소리지르는 건 처음 봤다고 하더라. 충청도 양반이었는데.(웃음) 내가 소리를 지르니까 더 이상 테이크를 가지 않았다. 진작 지를걸 그랬어.(웃음)
10. 죽음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윤여정: 개인적으로 오래 전부터 죽음에 관해서 생각했었다. 꽃이 피고 지는 것처럼 사람이 죽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인데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고민이 돼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책도 읽었다. 정답은 찾지 못했지만, 책 속에서 인상 깊었던 사연이 있다. 암에 걸려 죽음 직전까지 가게 된 어떤 음대 교수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물었더니 집에서 피아노 레슨을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했다. 자기 몸도 잘 못 추스리는 상태임에도 그 시간을 제일 즐거워하다가 갔다고 하는데 참 짠했다. 그처럼 자기가 살면서 했던 일을 하면서 죽는 것이 제일 행복하게 죽는 것이라고 한다.
10. 이 영화를 찍기 전과 후, 변한 것이 있었나.
윤여정: 우울증이 왔다. 박카스 할머니도 누군가의 소중한 딸로 태어났을 것 아닌가. 하지만 뭐라도 해서 돈은 벌어야겠고, 결국 법적으로 금지되고 손가락질 받는 일을 하게 될 때까지 내몰리게 된 사람들이다. 이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이처럼 세상이 불공정하고 불공평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런 현장을 맞닥뜨리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연기를 하고 디테일한 것까지 표현해내다 보니 엄청난 우울에 빠지게 되더라.
10. 소영은 ‘연애’하러 갈 때 항상 청재킷과 나팔 바지를 입고 나온다.
윤여정: 이재용 감독의 디테일이다. 청재킷과 ‘빤따롱’에 대해서 감독과도 이야기를 나눴었다. 감독은 이 여자는 젊었을 때, 그러니까 70년대쯤 동두천에서 일했던 여자인데 아이까지 낳았던 것을 보면 그 여자에게도 희망이 있지 않았겠냐고 하더라. 사랑하는 남자와 아이를 낳고 어디론가 떠나 정착한다든지. 그래서 자기에게도 희망이 있었던 시절, 자기가 제일 예뻤을 때의 옷을 고수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거라고. 나는 좀 다르게 봤다. 소영은 어쩌면 ‘나는 다른 ‘박카스 할머니’랑은 다르다’는 자신의 비루한 자존심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지 않았을까.
10. 소외된 사람들이 하나의 가족처럼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간다는 것이 참 따뜻하게 다가왔다.
윤여정: 내가 이재용 감독을 믿는 부분이다. 소영이 길에서 아이를 데려온 첫날 같이 사는 이들에게 “길에서 줏어왔어”라고 설명하고 끝이다. TV였다면 두 세시간 나갈 방송 분량인데.(웃음) 아름답고 따뜻한 장면이라 좋았다. 다들 너무 아픔을 갖고 소외된 상태로 살아가기 때문에 남들도 다 자신만큼의 아픔이 있겠거니 하고 이해하는 거다.
⇒인터뷰②에서 계속
김수경 기자 ksk@tenasia.co.kr
세상에는 죽기 전까지 ‘몰라도 되는 일’들이 존재한다. ‘불편한 현실’이기에 아무도 쳐다보려 하지 않는 불공정하고 가슴 아픈 세상의 이면에는 삶의 끝자락까지 내몰린 사람들이 살고 있다. 배우 윤여정이 영화 ‘죽여주는 여자'(감독 이재용)에서 연기한 소영처럼. 소영은 6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종로 탑골 공원에서 노인들을 상대로 몸을 팔아 먹고 사는 이른바 ‘박카스 할머니’다. 윤여정은 소영을 연기하며 조력 자살, 비주류의 삶, 웰다잉 등의 묵직한 문제들을 스크린 위에 펼쳐냈다. 영화가 끝난 후에는 우울증이 올 정도로 쉽지 않은 역할이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세상을 좋게 변화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털어놓은 윤여정을 만나 ‘이미 오래 전에 죽고 싶었던 여자’로 살았던 순간에 대해 들었다.10.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들이 시사회를 찾았다. 영화 개봉을 앞둔 소감이 어떤가.
윤여정: 연령층이 다양하다면 좋은 일이지. ‘죽여주는 여자’는 법적으로 금지되어 터부시해오던 ‘성매매’라는 문제를 이재용 감독이 건드린 영화다. 어려운 선택이었을 거다. 내 친구만 해도 처음 내가 이 영화에 출연한다고 하니 하지 말라고 말렸다. 제목부터 그게 뭐냐며, 곱게 늙으라고.(웃음) 하지만 VIP 시사회 때 영화를 보고 나더니 잘 만들었고 잘 봤다고 하더라. 가치 있는 일을 했으니까 이재용 감독도 응원해주라고도 말했다. 그 친구의 응원이 가장 큰 응원이었다.
10. 죽음, 조력 자살에 관한 이야기라 출연 결정을 선뜻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윤여정: 일을 할 때는 결국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재용 감독과 몇 번 합을 맞춰봤으니 내게도 믿음 같은 게 있었겠지. 영화에 나오는 모든 이야기는 이미 세상에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영화적으로 풀어내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재용 감독은 문제들을 자극적이거나 극단적으로 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10. 처음 건네 받은 시나리오에 ‘박카스 할머니’의 ‘서비스’ 행위들이 꺼려지지는 않았나.
윤여정: 설마 그런 행위들을 일일이 다 시킬까 싶었다. 지나가는 스케치 정도로만 표현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내가 그렇게 속으면서도 산다.(웃음) 인간이 참 신기하지.
10. 이재용 감독이 그 ‘서비스’ 행위를 찍는 현장에서 디테일을 매우 중요시했다던데 의견을 제시하지는 않았는지.
윤여정: 촬영 현장에서는 빨리 가라는 방향으로 가고 끝을 내는 것이 내 미션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렇게 디테일을 요구할지 몰랐다. 세 번까지 찍다가 정말 죽겠어서 소리지른 기억은 난다. 상대 남자 배우가 태어나서 여자가 그렇게 소리지르는 건 처음 봤다고 하더라. 충청도 양반이었는데.(웃음) 내가 소리를 지르니까 더 이상 테이크를 가지 않았다. 진작 지를걸 그랬어.(웃음)
윤여정: 개인적으로 오래 전부터 죽음에 관해서 생각했었다. 꽃이 피고 지는 것처럼 사람이 죽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인데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고민이 돼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책도 읽었다. 정답은 찾지 못했지만, 책 속에서 인상 깊었던 사연이 있다. 암에 걸려 죽음 직전까지 가게 된 어떤 음대 교수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물었더니 집에서 피아노 레슨을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했다. 자기 몸도 잘 못 추스리는 상태임에도 그 시간을 제일 즐거워하다가 갔다고 하는데 참 짠했다. 그처럼 자기가 살면서 했던 일을 하면서 죽는 것이 제일 행복하게 죽는 것이라고 한다.
10. 이 영화를 찍기 전과 후, 변한 것이 있었나.
윤여정: 우울증이 왔다. 박카스 할머니도 누군가의 소중한 딸로 태어났을 것 아닌가. 하지만 뭐라도 해서 돈은 벌어야겠고, 결국 법적으로 금지되고 손가락질 받는 일을 하게 될 때까지 내몰리게 된 사람들이다. 이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이처럼 세상이 불공정하고 불공평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런 현장을 맞닥뜨리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연기를 하고 디테일한 것까지 표현해내다 보니 엄청난 우울에 빠지게 되더라.
10. 소영은 ‘연애’하러 갈 때 항상 청재킷과 나팔 바지를 입고 나온다.
윤여정: 이재용 감독의 디테일이다. 청재킷과 ‘빤따롱’에 대해서 감독과도 이야기를 나눴었다. 감독은 이 여자는 젊었을 때, 그러니까 70년대쯤 동두천에서 일했던 여자인데 아이까지 낳았던 것을 보면 그 여자에게도 희망이 있지 않았겠냐고 하더라. 사랑하는 남자와 아이를 낳고 어디론가 떠나 정착한다든지. 그래서 자기에게도 희망이 있었던 시절, 자기가 제일 예뻤을 때의 옷을 고수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거라고. 나는 좀 다르게 봤다. 소영은 어쩌면 ‘나는 다른 ‘박카스 할머니’랑은 다르다’는 자신의 비루한 자존심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지 않았을까.
10. 소외된 사람들이 하나의 가족처럼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간다는 것이 참 따뜻하게 다가왔다.
윤여정: 내가 이재용 감독을 믿는 부분이다. 소영이 길에서 아이를 데려온 첫날 같이 사는 이들에게 “길에서 줏어왔어”라고 설명하고 끝이다. TV였다면 두 세시간 나갈 방송 분량인데.(웃음) 아름답고 따뜻한 장면이라 좋았다. 다들 너무 아픔을 갖고 소외된 상태로 살아가기 때문에 남들도 다 자신만큼의 아픔이 있겠거니 하고 이해하는 거다.
⇒인터뷰②에서 계속
김수경 기자 ksk@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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