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은호 기자]
안재만. MBC ‘위대한 탄생3(이하 위탄)’ 출연자. 당시 그는 마이클 잭슨의 ‘빌리 진(Billy Jean)’을 어쿠스틱 기타로 편곡해 불렀다. 무대를 본 뮤지컬배우 김소현은 “노래 강약 조절, 무대 매너, 무대 시작 전 집중하는 자세 모두 좋았다”며 호평했고, 가수 김태원은 “마이클 잭슨이 자신의 억울함을 넋두리하는 걸 대신 불러주는 듯 했다”고 극찬했다.

당시 안재만은 “나만의 색깔을 섞고 싶었다”고 말했다. 안재만의 색깔, 그 안에는 포크도 있고 록도 있었다. ‘그대 내 품에’(유재하)를 부를 때에는 발라드 감성이 고개를 내밀었고, ‘누구 없소’(한영애)에서는 블루스의 냄새도 났다. 고(故) 김광석의 노래도, 바다 건너 제이슨 므라즈의 노래도, 모두 안재만의 목소리를 타고 흘렀다.

“어떻게 보면 저는 그냥 따라쟁이였던 거잖아요. 김광석 선생님이나 제이슨 므라즈처럼, 여러 가수들의 노래를 커버해 왔으니까요. 그런데 결국, 그 분들의 접점에서 제가 만들어진 것 같아요.” 이승열과 에드 시런이 섞이고, 김광석과 제이슨 므라즈가 교차하는 곳. 그곳에서 ‘싱어송라이터 안재만’이 태어났다.

안재만
안재만


Q.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안재만 : 스물세 살 안재만이다. 현재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고 있고 버스킹도 하고 있다.

Q. 많은 사람들이 위탄출연자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방송 후 어떻게 지냈나?
안재만 : 방송 후 전혜림 누나가 작곡한 디지털 싱글 앨범에 보컬로 참여했다. 그 뒤에는 바로 군대를 갔다. 전역한지는 세달 쯤 됐고, 이제 다시 활동을 시작하려고 준비 중이다.

Q. 왜 서둘러 군대에 갔나? 활동을 막 시작할 시기였을 텐데.
안재만 : 그냥 바로 가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탄’이 잘 된 것도 아니고…하하.

Q. 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제의가 많이 왔을 것 같다. 사연도 있겠다, 어느 정도 그림이 나오니까.
안재만 : 직후에는 ‘슈퍼스타K’나 ‘K팝스타’ 등에서 섭외 전화가 꽤 왔다. 그렇지만 일단 군대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활동을 열심히 할 수도 있었겠지만, 당시의 능력으로는 한계가 왔을 것 같다.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 아무런 방해 없이 좀 더 내가 자유로워지면, 그 때 더 많은 것들을 해보고 싶었다.

Q. 군대가 실력을 갈고 닦을 수 있는 곳은 아니잖아. 시간이 배로 걸리게 될 텐데.
안재만 : 맞다. 일단 ‘위탄빨’이 다 떨어졌지. 알아보는 사람도 없고. 그래도 내 노래와 실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위탄’이 끝난 뒤 바로 활동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실력이 향상됐을까? 그랬을 것 같지 않다. 군대를 갔다 온 뒤에 자유롭게 내 실력을 갈고 닦으면 좀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Q. 지금은 어떤가?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 볼 생각이 있나?
안재만 : 아직 잘 모르겠다. 주위에서는 나가보라고 얘기를 많이 하는데 잘 모르겠다. 내가 좀 더 준비가 된다면…

Q. 기획사 오디션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는 것 아닌가?
안재만 : 기획사 오디션과는 다른 것 같다. 어쨌든 많은 보는 분들이 보는 방송이지 않나. 그렇기 때문에 내가 노래하는 모습을 좀 더 멋지게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Q. 말이 나온 김에, 미스틱89 오디션을 준비 중이라며. 많은 회사들 중 미스틱89에 지원하고자 하는 이유가 있나?
안재만 : 사실 이 회사가 어떻고, 저 회사가 어떤지 잘 모른다. 다만 미스틱89에는 에디킴이나 조정치, 윤종신처럼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가수들이 많지 않은가. 싱어송라이터로서 나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서로 색깔이 맞을 것 같았다.

Q. 자. 면접을 본다고 생각하고, 왜 회사가 안재만을 뽑아야 할까?
안재만 : 정말 열심히 살고 있다. 스물세 살, 적지 않은 나이긴 하지만 난 군대를 다녀왔다. 강원도 철원으로 자원입대 했고, 거기에 자부심을 느낀다. 하하. 군대 안에서 행사도 많이 했다. 심지어 위문열차 공연에서 게스트로 무대에 오른 적도 있다. 열심히 하는 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열정 넘친다. 또 회사의 색깔과 내가 서로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내 색깔을 살리는 것에 도움을 주신다면, 내가 회사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거라…나 지금 무슨 말 하는 거지? 하하하.

안재만
안재만


Q. 안재만에 대한 정보가 많이 없어서, 호구조사를 진행하겠다. 먼저 성장 과정을 알려 달라.
안재만 : 1993년생으로 노원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음악을 하셨다. 아버지가 일선에 있을 때는 집도 꽤 잘 살았는데, 일을 그만두시고 집안 환경도 어려워졌다. 이후에 대전으로 내려가 10년 정도를 살다가, 스무 살 때 혼자 서울로 올라왔다.

Q. 아버지 덕분에 음악에는 자연스레 노출됐겠다.
안재만 : 그렇지. 어렸을 때부터 항상 집에 음악소리가 들렸다. 마침 집에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쓰시던 기타가 있었거든. 중학생 때 우연히 그 기타를 치게 됐다. 독학이 어려워 아버지에게 물어봤더니, 세 개의 코드를 알려줬다. 이 세 개의 코드만 알면 동요 ‘꼬부랑 할머니’를 칠 수 있다더라. 아버지가 ‘꼬부랑 할머니’를 연주하며 노래를 하는데, 무척 매력적이었다. 열심히 연습해서 마스터했지. ‘이제 다른 거 가르쳐주세요’ 했더니, 아버지가 하는 말이 ‘다른 게 어디 있냐. 선생님은 네이버다’ 였다. 그 때부터 독학을 시작했다.

Q. 음악을 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나?
안재만 : 어머니가 반대를 하셨다. 다른 어머니들처럼, 기술을 배우거나 좋은 대학교에 진학해 판검사, 변호사를 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아버지의 반응은? ‘해라. 그렇지만 난 너한테 줄 돈 없다.’

Q. 서울로 오게 된 과정을 좀 더 듣고 싶다.
안재만 : 대전에서도 음악을 하고 있었다. 남들보다는 조금 늦게, 열아홉 살 10월에 시작했다. 당시 김필 형이나 김현지 누나한테서 3개월 정도 노래를 배웠다. 아니, 배웠다기보다는 따라다녔지. 그러다가 서울로 올라간 거다. 오라는 분들도 계셨고 나 역시도 서울로 가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전은 나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하하. 농담이다. 서울에 사는 친구도 있겠다, 모아둔 돈을 들고 서울에 갔다.

Q. 모아둔 돈?
안재만 : 음악을 하고 싶어서 모아둔 돈이 있었다. 중학생 때부터 일을 했거든. 웬만한 아르바이트는 다 해봤다.

Q. 그러면 중학생부터 가수가 되겠다고 생각한 건가?
안재만 : 열아홉 살 전까지는 그냥 기타만 치는 학생이었다. 가수가 되겠다는 구체적인 꿈은 없었다. 단순히 음악이 좋아서 하던 시절이었다.

Q. 그런데 돈까지 모았다고?
안재만 : 그냥 음악을 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뭘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피아노도 배우고 싶었고, 여러 음악적인 부분을 배워야 할 것 같았다.

Q. 구체적으로 가수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 계기가 있었나?
안재만 : 처음 기타를 치기 시작했던 건, 기타에서 음악이 들린다는 것 자체가 너무 신기해서였다. 기타는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다양한 소리가 나잖아. 아름답고 놀라웠다. 기타를 치는 영상도 많이 봤는데, 보는 순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는, ‘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과 ‘해야겠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노래는 기타를 치면서 자연스럽게 같이 부르게 됐다. 사실 처음에는 기타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어느 날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노래를 하고 있구나. 그리고 내가 이걸 사랑하고 있구나’라는 답이 떠올랐다. 그래서 생각했다. ‘그래? 그럼 이걸 하면 되겠네!’

Q. 그 순간, ‘해야겠다는 생각이 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을 넘어선 건가?
안재만 : 글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은 지금도 안고 있다.

Q. 해보니 어떤가? 더 어려워지나, 아니면 불안이 작아지나?
안재만 :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너무 많다. 그 분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정말 궁금하다. 내 스스로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정답이 가까워지는 게 무슨 느낌일지 궁금하다. 그 느낌을 아는 분이 계실까?

안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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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기타의 매력은 뭘까?
안재만 : 기타는 아무것도 없이, 혼자서 연주될 수 있는 악기다. 게다가 언제 어디서든 가지고 다닐 수도 있고. 그게 기타의 장점이다. 그리고 나는 외로움이나 슬픔 같은 정서를 기타에게서 느꼈다. 내 감정을 가장 잘 표현해줄 수 있는 악기 같다.

Q. 기타는 물론이고, 음악 자체가 감정을 잘 토해낼 수 있는 창구라고 생각한다. 가수나 연주자 입장에서 느끼는 카타르시스도 엄청날 텐데.
안재만 : 그렇지. 내가 노래를 통해 들려주고 싶은 느낌이 있을 것 아닌가. 그 느낌이 확실히 전달됐다는 기분이 들었을 때, 내가 오히려 감동을 받는 것 같다. 그게 기쁨이 됐건, 슬픔이나 외로움이 됐건, 내 감정과 느낌을 고스란히 전해드리고 싶다.

Q. 그러면 버스킹의 매력은 무엇인가?
안재만 : 버스킹은 굉장히 자유롭다. 공연장에서 하는 공연은, 관객들이 일부러 찾아가는 것 아닌가. 그러다보니 어느 정도 서로 간의 매너가 있다. 반면 버스킹은 그냥 지나가다 듣는 거니까, 더 자유롭다. 덕분에 가장 가까이에서 관객과 소통할 수 있다. 노래를 하다가도 얼마든지 말을 건네고. 그런 자유로움이 좋다.

Q. 버스킹을 하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나?
안재만 : 믿어도 되는 건지 아직 나도 잘 모르겠지만, 정말 영화 같은 일이 있었다. 예전에 의정부에서 버스킹을 한 적이 있다. 시간이 늦어져서 모여 있던 사람들이 빠지기 시작할 때 쯤, 계속 울고 계신 분이 눈에 띄었다. 그 뒤로 지인들을 만나 술 한 잔 하고, 다시 시내에 나와 버스킹을 했는데 아까 그 분이 또 계신 거다. 공연이 끝나고 그 분이 말하길,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심하고 우울증도 심해서 사실 그날 자살을 결심했단다. 그런데 우연히 버스킹을 보고, 계속 눈물이 났대. 노래를 듣고 힐링이 됐다며 너무 고맙다고 했다. 그러면서 또 울더라. 내가 오히려 더 감사했다. “안 죽어서 고마워요” 그랬지. 만약 그 때 내가 조금만 더 취해있었다면 아마 둘이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을지도 모른다.

Q. 그 사건이 가수로서 방향성을 잡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포인트가 됐을 것 같다.
안재만 : 많은 분들이 내 노래를 들어줬으면 좋겠다고만 생각했는데, 그 후로는 내 노래를 듣고 감동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희망을 얻고, 울고 웃고…그랬으면 좋겠다.

Q, 엄청 짜릿했겠다. 어쩌면 가장 짜릿한 경험이었을지도.
안재만 : 사실 공연을 할 때는 매번 짜릿하다. 관객들이 내 노래를 따라해 주고 내가 원하는 호응을 해줄 때. 내 노래를 누군가가 듣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매번 좋다.

Q. 공연 레퍼토리는 어떻게 되나?
안재만 : 자작곡도 하고 커버곡도 한다. 자작곡은 네 곡 정도 한다.

Q. 자작곡의 스타일은 어떤가?
안재만 : 다양하다. 신나는 곡도 있고 서정적인 느낌의 곡도 있다. (Q, 장르는 포크록인가?) 포크는 아니고, 음… 이승열이라는 선배님이 계시다. 그 분의 노래 ‘기다림’을 고등학생 때 처음 들었다. 듣고는 펑펑 울었지. ‘어떻게 이런 곡이 있을 수 있지?’라고 생각했다. 그런 분위기의 노래를 좋아한다. 반대로 에드 시런 같은 느낌도 좋아하고, 제이슨 므라즈도 좋다.

Q. 가수는 다양한 느낌의 노래들을 모두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하잖아. 그런데 그 자기화()’라는 게 도대체 뭘까?
안재만 : 나에게도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안재만화(化) 시킨다는 거. 어떻게 보면 나는 그냥 따라쟁이였던 거잖아. 많은 가수들의 노래를 커버했으니까. 그런데 제이슨 므라즈과 김광석처럼 반대의 느낌이 나는 뮤지션들을 따라하다 보니, 그 접점에서 내가 만들어진 것 같다. 만들어졌다? 아냐. 사실 내가 다 만들어진 건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더 발전을 해가야지.

Q. 요즘엔 대중 가수도 버스킹을 많이 한다. 일종의 프로모션 전략인 거지. 상대적 박탈감이 느껴질 것도 같은데?
안재만 : 버스킹을 시작했을 때에는 누가 내 노래를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장 강한 것 같다. 어쨌든 그들도 소통에 대한 열망, 무대와 노래에 대한 갈망에서 시작한 거잖아. 박탈감 같은 건 없다. 그리고 사실, 나도 ‘위탄’ 방송 후 ‘위탄빨’을 사용했기 때문에 할 말이 없다. 하하. “안녕하세요, ‘위대한 탄생’에 나온 안재만입니다” 그랬었지. 하하하.

안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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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앞으로는 활동을 어떻게 할 생각인가? 버스킹은 계속 하는 건가?
안재만 : 사실 요즘에는 버스킹을 잘 하지 않는다. 공연을 하다 보면, 신나는 곡 위주로 커버를 하게 된다. 특히 홍대는 혈기왕성한 사람들도 많고 워낙 시끄럽기도 해서, 신나는 곡을 하지 않으면 사람이 안 몰린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뭐가 되려는 거지? 이렇게 버스킹만 하는 사람이 될 건가?’라는 회의가 생기더라.

Q.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 사람들의 반응에만 신경을 쓰게 되니까.
안재만 : 그렇지. 그래서 그 때부터는 작곡에 주력하고 있다. 곡 쓴 걸 여기저기 보여주며 조언도 얻고 있다. 어떤 형은 “이 곡 내 앨범에 싣자”고 한 적도 있다. 앞으로 세 달에 한 곡 정도는 디지털 싱글도 낼 생각이다.

Q. 이제 인터뷰를 마치면 무엇을 하는가?
안재만 :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 선교 목적으로 뮤지컬 제작을 한단다. 나를 토대로 캐릭터를 만들고 싶다고 하셔서 그 인터뷰를 하러 간다. 교훈을 줄 수 있는 캐릭터가 될 것 같다. 사실 우리 교회에 음악을 하고 싶다는 중, 고등학생들이 많거든. 그 친구들에게 고민 상담을 많이 해줬다. 난 이런 길을 걸어왔고, 이렇게 음악을 해왔다고, 왜 너는 안 될 거라고 생각하느냐고. 부담? 전혀 안 된다! 그 아이들이 나름대로는 굉장히 절박한 상태다. 나도 그랬고. 그래서 내가 뭔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나로서는 무척 기쁠 뿐이다.

Q. 좋다. 마지막으로, 혹시라도 이 글을 보게 될 가요 관계자 혹은 대중에게 선전포고를 해보자.
안재만 : 아직 많은 사람들이 나를 모르고 내 노래를 많이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는 잡아먹도록 하겠다. 내 노래와 내 이름을 절대 안 잊었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좋은 노래로 찾아뵐 테니 기다려 달라.

이은호 기자 wild37@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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