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정시우 기자]인정한다. 손호준을 만나기 전, 그를 약간 오해했었다. 그 좋은 마스크와, 오랜 시간 갉고 닦은 연기력과, 다채로운 감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왜 작품으로 자신을 더 많이 말하지 않을까. 그를 만나고, 대화 나누고, 진심을 알아가며 살짝 미안해졌다. 본의 아니게 ‘예능대세’로 불리고 있는 손호준은 자신이 어느 자리에 있어야 하고, 언제 가장 행복한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인터뷰 다음 날, 그가 tvN 예능프로그램 ‘집밥 백생님’에서 하차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연기에 조금 더 집중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라고 했다. 손호준이 원하는 수식어는 ‘예능대세’가 아니라 ‘배우’다.Q. ‘응답하라 1994’(이하 ‘응사’) 이후 인생이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다.
손호준: 운이 좋았다. 정말 운 좋게 신원호 PD님과 이우정 작가님을 만나서 ‘응사’를 하게 됐고, 원호 형을 통해서 나영석 PD님을 만나게 됐다. 나PD님을 통해 또 신효정 PD님과 김대주 작가님(‘삼시세끼’)을 만날 수 있었다. 모든 게 운이 좋았던 것 같다.
Q. 100% 운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손호준: 진심으로 내가 한 건 하나도 없다. 많은 분들이 나를 보고 “답답하고 재미도 없다”고 하시는데 그 말에 100% 공감한다. 가끔은 나도 내 자신이 답답할 정도니까.(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시고, 찾아주신 건 그 분들이 만들어 주신 게 아닌가 싶은 거다.
Q. 그 말에 반대한다.(웃음) 손호준은 ‘뉴타입’의 캐릭터라고 생각되거든. 대중들에게는 당신이 낯을 가리는 모습 등이 답답하게 다가가는 게 아니라, 꾸미지 않고 성실하고 진정성 있게 보이지 않나 싶다. 손호준이니까 가능한 부분이라고 본다.
손호준: 기본적인 매너는 지켜야 한다는 게 내 나름의 지론이다. 아무리 동생이어도 말을 놓지 못한다. 선배님들에게 예의를 지켜야 하는 건 너무 당연한 거고. ‘집밥 백선생’을 할 때 순간순간 재미있는 멘트가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런데 어떤 타이밍에 들어가야 할지 모르겠다. 특히 선배님 말씀을 자르고 들어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다리고 기다리는데, 그러다보면 타이밍을 놓친다.(웃음) 속으로 ‘아, 아깝다’ 한 적도 몇 번 있다. 하지만 김구라 선배님 등은 예능이 본업이시지 않나. 거기에 내가 괜히 끼어들어서 말을 자르는 건 욕심이라고 생각한다.
Q. 연기할 때는 어떤가. 배우로서의 손호준은.
손호준: ‘난 배우야’라고 떠든다고 해서 배우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분들이 인정해 줬을 때, 그때 비로소 진짜 배우가 된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욕심이나 승부욕을 가져야한다면 연기 쪽에서 가지고 싶다. 욕심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영화나 드라마에 있어서는 욕심을 가지는 게 맞다고 보고. Q. 그렇다면 조심스러울 수 있는 질문이다. 배우로서의 욕심이 있다면, ‘응답’ 이후 예능 보다는 작품에 조금 더 집중해야 하지 않았을까. 배우로서의 연기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밀도 있는 작품에 도전할 수도 있었을 텐데, 또 그러지도 않았거든.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다.
손호준: ‘응답’ 이후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예전보다 할 수 있는 작품의 영역이 넓어졌다는 점일 게다. 그럼에도 한 번에 다작을 할 수는 없지 않나. 여러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는 재미있는 쪽으로 끌리는 것 같다. 대작이냐 작품성 있는 작품이냐를 떠나서 내가 봤을 때 재미있는 것, 공감할 수 있는 것들에 마음이 갔던 것 같다.
Q. ‘쓰리 썸머 나잇’이 그런 작품이었나 보다. 영화 속에서도 굉장히 즐거워 보였다.
손호준: 맞다.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재미있는 만화책을 한 권 읽는 느낌이었다. 혼자 키득키득 웃으면서 봤다.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김상진 감독님이 코믹물을 많이 하시지 않았나. ‘주유소 습격사건’(99) ‘신라의 달밤’(01) ‘광복절 특사’(02) 등을 재미있게 보며 자랐기에 더 큰 호감이 갔다. 감독님을 믿고 따랐다.
Q. 함께 출연한 김동욱 배우는 당신 못지않게 과묵한 걸로 안다. 임원희 배우의 경우 ‘반전이다’ 싶을 정도로 낯을 많이 가리는 분이고. 말 수 없는 세 사람이 만나 막역한 친구사이를 연기해야 했는데, 친해지기까지 시간이 꽤 필요했을 것 같다.
손호준: 처음에 만났을 때 놀랐다. 임원희 선배님, 너무 조용하시고. 동욱이 형, 너무 과묵하고. 윤제문 선배님도 진중하시고. 나도 조용조용하고.(웃음) 그런데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술! 다들 술을 좋아한다. 술 덕분에 조금 더 빨리 가까워질 수 있었다.
Q. 지방 로케이션 촬영 때, ‘방술’ 많이 마셨겠다.
손호준: 정말 많이 마셨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감독님이 그러셨다. “술 좋아해?” “네. 좋아합니다!” “잘 마셔?” “네. 잘 마십니다!” 다 같이 모여서 마시는데… 나는 술을 좋아하는 거지, 잘 마시는 건 아닌 걸로 정리됐다.(웃음) 어유, 다들 너무 잘 드시니까. 앞으로 잘 먹는다는 얘기는 하면 안 되겠다 싶었다.
Q. 주량을 안 물어볼 수 없겠다.
손호준: 소주로 따지면 2병. 그런데 나는 ‘소맥’파다. ‘소맥’이 좋아.(웃음) Q. ‘꽃보다 청춘’에서 바로(B1A4)-유연석과, ‘삼시세끼’에서는 유해진-차승원과 함께 했다. 이번 작품에서는 김동욱-임원희와 함께 했고. 남자 셋으로 뭉치는 경우가 많은데, 남자 셋이 모이면 당신은 어떤 위치에 있는 편인가.
손호준: 항상 가운데에 있으려고 하는 것 같다. 나는 승부욕이 별로 없다. 가령 볼링을 친다고 가정하자. 그 중에 승부욕이 강한 친구가 있어. 그럼 나는 항상 그 친구의 반대편에 선다. 그래야 게임에서 져 줄 수가 있으니까. 그러면 승부욕 강한 친구는 이겨서 기분 좋고, 나는 다 같이 즐거워서 기분 좋고. 나는 모두가 즐거운 게 좋거든.
Q.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승부욕이 자극된다, 싶은 건?
손호준: 역시, 연기다. 연기에서만큼은 승부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직 많이 배워가는 단계다. 욕심을 가져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Q. ‘쓰리 썸머 나잇’은 어떤 판타지가 깔린 영화다. 여행길 어느 모퉁이에서 익명의 연인을 만나보고 싶은 여행의 판타지.(웃음) 그런 희망, 품은 적 있나.
손호준: 있었던 것 같다.(웃음) 고향이 광주다. 광주와 서울을 오갈 때 버스를 주로 이용했다. 그럴 때마다 ‘혹시 옆자리에 예쁜 이상형이 앉지 않을까’란 기대를 했었다. 그런데 그런 기대감은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 싶다.
Q. 기대가 현실이 된 적은?
손호준: (재빨리)단 한 번도 없었다!(일동 웃음) 대부분이 아주머니나 할머니, 할아버지. 하하하. 힘들었던 적은 운동부와 앉았을 때. 건장한 남자 세 명이 버스에 올라타더라. 좌석을 평행으로 세 사람이 딱.딱.딱. 그리고 나! 그렇게 앉아서 서울에 올라왔던 기억이 난다.(웃음)
Q. 우울한 이야기다.(웃음) 만약 이상형을 만났다면, 당신은 적극적이었을까.
손호준: 성격상 그러지는 못했을 거다. 그냥 속으로만 ‘좋다~’ 정도?
Q. 방송에서 유노윤호(동방신기), 바로 칭찬을 많이 한다. 유연석이 출연한 드라마 ‘맨도롱 또?’에 우정출연도 했고. 친구들을 잘 챙기는 것 같다.
손호준: 사실 그 친구들이 나를 챙겨주는 게 더 많다. 사랑을 받으면 돌려주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라디오에서 DJ가 “좋아하는 노래 추천해 주세요!”하면 항상 바로나 윤호 음악을 선곡했는데, 최근에는 너무 친구들 음악만 추천한다고 뭐라 하더라. 하하하. 그래서 얼마 전에는 김범수 선배님 노래를 추천했다. Q. 어떤 노래?
손호준: ‘사랑의 시작은 고백에서부터’
Q. 사랑은 정말 고백에서부터 시작될까.
손호준: 그건 맞는 것 같다. 고백을 해야 시작이라도 하지.
Q. 최근 고백은…
손호준: 많은 분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나. ‘시간이 없어서~’ 그 말이 너무 공감 가는 게, 정말 하루를 못 쉬었다. 쉬는 날이 있을 때는 또 정말로 쉬고 싶고.
Q. 이런. 예능을 줄여서 어서 연애를~
손호준: 하하.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고백을 하고, 사랑을 해야지.
Q. 그나저나 동종업계에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서 든든하겠다.
손호준: 정말 그렇다. 비연예인 친구들은 직장생활을 하니까, 10시-11시가 되면 자야 한다.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그런데 우리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으니까. 늦은 시간에 연락을 해도 서로 이해해준다. 얼마 전에도 새벽 3시에 윤호 전화가 왔길래 만났다. 3일 전에는 남양주에서 뮤직비디오를 찍고 있다길래, 찾아갔다. 가서 뮤직비디오 찍는 거 보면서 놀고 그랬다.
Q. 그런 윤호가 곧 군대를 간다.
손호준: 그러니까. 연석이가 쉬고 윤호가 공연을 하면 연석이랑 놀았다. 연석이가 작품에 들어가고 윤호가 공연에서 돌아오면 또 윤호랑 놀았고.(웃음). 그런데 윤호가 21일에 입대를 해서 걱정이긴 하다. 입대 날 직접 배웅할 생각이다. 회사에는 미리 얘기해서 시간을 비워뒀다. Q. 여자 친구가 따로 없다.
손호준: 하하하. 군대를 다녀와 보니 언제 꼭 가줘야 하는지 알겠더라고. 입대할 때, 훈련병 시기가 지났을 때. 그때 면회를 가주면 좋다.
Q. 손호준 하면 ‘착한 청년’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것이 대중이 손호준을 바라보는 시선이고, 원하는 부분이기도 할 게다. 하지만 살다보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지 않나. 인간이기에 실수도 할 수 있고. 대중의 기대를 배반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없나.
손호준: 아니. 전혀. 일단 ‘내가 잘못해서 나중에 이렇게 되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 자체를 잘 안 한다. ‘착한 사람’이라고 얘기해 주는 게 부끄러울 뿐이다. 나도 화를 낼 때가 있다. 똑같은 사람인데 너무들 좋게만 봐 주셔서 부끄럽다.
Q. 아무리 생각해도 ‘착한 청년’은 맞는 것 같은데. 아까 말한 ‘배려심’. 누구나 그럴 수 있는 건 아니다.
손호준: 그건 그냥 내 취향인 것 같다. 그냥 그게 좋은 거다. 그리고 계속 양보만 하겠다는 건 아니다. “내가 저번에 양보를 했으니, 이번에는 네가 양보를 해 줘” 한다. 그러니까 ‘먼저’ 양보하고 ‘먼저’ 배려를 할 뿐이지 무조건 물러서지는 않는다.
Q. 최근 관찰예능이 대세인데, 그런 면에서 시대를 참 잘 타고 났다는 생각도 든다. 이전처럼 토크가 유행인 시대였다면, 과연 사람들에게 손호준의 진면목을 알릴 수 있었을까 싶거든.
손호준: 하하하. 그래서 내가 운이 좋다고 말하는 거다. 진짜로. 예능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얼마 없다니까. 현장에 가서도 ‘뭘 해야 하지?’ ‘어떻게 하지? 이런다.(웃음) 그걸 좋게 만들어 주시는 분들께 정말 감사하다.
Q. 요리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자취생활을 했으니, 잘 하는 음식 한 두 개 정도는 있겠지?
손호준: 처음에는 요리가 ‘어렵다’고만 생각했다. 뭔가가 거창해야 요리라고 봤다. 그런데 백(종원) 선생님으로부터 ‘요리는 어려운 게 아니’라는 걸 들은 후, 재미있게 하고 있다. 백선생님이 알려주신 대로라면, 라면 하나 끓이는 것도 요리다. 그런데 예전에는 그게 요리라는 생각을 안 했다. 요리 즐기는 방법을 몰랐던 거다. Q. 밥을 맛있게 잘 해 주는 여자와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잘 먹어주는 여자가 있다면 어느 쪽에 끌릴까.
손호준: 배려가 있는 여자. 내가 해 준 요리가 맛이 없을지언정 정성을 알아봐 주는 여자. 그리고 요리 실력은 없지만 정성껏 요리를 해 줄 수 있는 여자.
Q. 그나저나 오늘 저녁에는 뭘 먹을 생각인가.
손호준: 오늘 저녁은 다이어트?
Q. 아니, 왜? 딱 좋아 보이는데.
손호준: 드라마 ‘미세스 캅’이 곧 들어가는데, 캐릭터에 맞춰서 살을 좀 빼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얼굴이 잘 붓는 체질이라.(웃음)
Q. 3년 전 손호준은 2015년의 손호준이 이렇게 사랑 받을 줄 알았을까. 그런 희망이 있었을까.
손호준: 희망을 가지고 일을 하지는 않았다. 연기 자체가 재미있었을 뿐이다. 조그마한 역할이라도 1년에 한 두 작품은 했던 것 같다. 그 순간이 1년을 버틸 수 있게 해줬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내가 어땠으면 좋겠다보나, 그냥 이 일 자체를 즐기자는 마음이다.
Q. 그럼 반대로 연기가 재미없어지면? 그럼 어떻게 하나.
손호준: 음. 아직까지는 재미있고…앞으로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웃음)
정시우 siwoorain@
사진. 구혜정 photo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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