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킬미, 힐미’
MBC ‘킬미, 힐미’
MBC ‘킬미, 힐미’

[텐아시아=장서윤 기자] “기억해, 2015년 1월 7일 오후 열 시 정각, 내가 너에게 반한 시간”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성경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하는 여운을 남긴 MBC 수목드라마 ‘킬미, 힐미’가 12일 종영했다. 캐스팅 관련 논란 등으로 다소 늦은 시작을 알린 ‘킬미, 힐미’는 불안한 준비로 방송이 잘 이어질 수 있을지 우려를 남긴 채 스타트를 끊었다. ‘1인 7인격’이라는 어려운 소재가 시청자들에게 잘 다가갈 수 있을지, 안정적인 연기 표현이 가능할지도 미지수였다. 뚜껑을 연 ‘킬미 힐미’는 그러나 극 초반부터 신선한 호흡으로 안방극장을 사로잡았다. 진수완 작가의 촘촘하면서도 감성어린 대사, ‘갓지성’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만한 지성의 변화무쌍한 연기와, 이제는 안정감 있는 브라운관 여주인공으로 거듭난 황정음의 호흡은 지난 두 달간 ‘킬미, 힐미’ 신드롬이라고 할 만한 화제의 중심에 서있었다.

차도현, 그리고 신세기 안요나 페리박 안요섭 나나 미스터X

한 사람이 일곱 개의 인격을 연기한다? ‘킬미, 힐미’가 초반 숱한 캐스팅 난항을 겪은 데는 전무후무한 남자주인공 캐릭터에 있었다. 그동안 이중인격 캐릭터는 여러 드라마와 영화에서 표현된 바 있지만 여고생부터 사투리를 구사하는 40대 남성까지 무려 일곱 개의 인격이 한 인물 속에 녹아든 사례는 없었다. 어떤 배우라도 선뜻 나서기 어려운 캐릭터였음에는 분명하다. 여러 명의 고사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역할에 낙점된 지성은 그러나 ‘신의 한 수’였다. 캐스팅 난항 과정을 접하며 ‘내가 하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을 품었었다는 그는 방송 한 달 전 캐스팅이 확정되는 촉박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몫을 200% 소화했다.

지성이 분한 신세기
지성이 분한 신세기
지성이 분한 신세기

나쁜 남자 신세기부터 여고생 안요나까지 지성이 펼쳐내는 일곱 개의 인격은 하나씩 공개될 때마다 놀라움을 자아냈다. 원 인격인 차도현의 이미지에서 지나치게 과장되거나 이질감을 주면서 붕 뜨는 듯한 인상 없이 각 인물들의 포인트를 정확하게 짚어냈다. 전형적인 나쁜 남자와 여고생과 꼬마, 사투리 쓰는 아저씨와 비관적인 청소년 등 일곱 개의 인격을 같은 얼굴 속에서 모두 다른 느낌을 주며 표현해내는 그의 모습은 과연 이 드라마가 지성이 아니라면 가능했을까를 의심케 할 정도로 자연스러움으로 표현해냈다.

여기에는 중심되는 인격인 차도현과 신세기의 대립 속에 다른 캐릭터를 담아낸 명확한 ‘구조 짜기’가 동반됐다. 일명 ‘세기라이너’를 유행시키며 여성 뺨치는 아름다운 외모로도 인기를 모은 신세기는 차도현의 마음 속 ‘어두운 방’을 의미한다. 어린 시절 도현이 리진을 구하기 위해 지하실에 불을 지르고, 그 과정에서 탄생된 신세기는 도현이 가장 피하고 싶고, 감추려 한 만큼 폭발력을 지닌 인물로 형상화됐다. 더불어 여심을 자극하는 ‘마성의 매력’도 지니고 있는 신세기의 모습은 기존의 부드러운 모습의 지성의 이미지와도 상반되는 분위기를 담으며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터로 표현되기도 했다.

지성이 분한 안요나
지성이 분한 안요나
지성이 분한 안요나



그러나 연기생활 16년에 걸쳐 차분히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지성의 행보를 살펴보면 그다지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1999년 SBS 드라마 ‘카이스트’로 데뷔, ‘올인’ ‘마지막 춤을 나와 함께’ ‘태양을 삼켜라’’김수로’’로열 패밀리’ ‘보스를 지켜라’‘대풍수’등 매년 꾸준히 크고 작은 작품을 거치며 자신의 캐릭터를 다방면으로 넓혀 온 그는 “욕심을 버리니 캐릭터들이 눈에 들어오고 있다”며 이제는 어떤 역할도 소화해 낼 만한 무기를 장착한 듯 하다.

로맨틱 코미디에서 멜로까지, 공감의 아이콘

일곱가지 인격의 변화무쌍한 지성의 연기를 폭넓은 진폭 속에서 애정어리면서도 때로는 코믹하게 호흡을 맞춘 황정음은 극을 풍성하게 만들어 준 장본인이었다. 두 사람의 연기가 돋보이는 데는 서로를 향한 배려심이 큰 몫을 했다. ‘킬미, 힐미’ 제작발표회에서 황정음은“이번 드라마는 남자주인공이 빛나는 드라마인데 누가 욕심을 내면 안된다. 지성 오빠를 완전히 밀어줄 것”이라고 들려준 바 있다. 그리고 그 발언이 연기를 통해 정확히 보여지면서 황정음의 ‘영리한 선택’이 빛을 발했다.

황정음
황정음
황정음

로맨틱 코미디에서 청순하면서도 엉뚱발랄한 매력을 지닌 여주인공은 사실 흔한 설정이다. 그럼에도 황정음의 연기가 빛났던 이유는 짧은 시간 내에 코믹과 멜로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TV 드라마에 어울리는 재치를 발휘했다는 점이다. 특히 상대 배우와의 안정된 호흡에서 극대화된 감정과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 두 사람의 주고 받음은 마지막까지 흔들림이 없었다.

앞서 황정음은 텐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 “상대 배우와 온전히 공감하면서 깊이 있게 호흡하고 연결되는 연기에 대한 갈증이 있다”고 들려준 바 있다. 그런 그의 의도는 이번 작품으로 주효했다. 기존의 로맨틱 코미디 뿐 아니라 진정성 있는 멜로도 가능한 진폭을 작품을 통해 여실히 증명해 낸 것.

여기에 본연의 통통 튀는 이미지도 작품의 재미를 자아내는 데 일조했다. 말괄량이 여고생부터 엉뚱하지만 강단 있는 의사까지, 황정음 특유의 귀엽고 솔직한 매력이 고스란히 투영시키며 극을 든든하게 뒷받침했다.

텐아시아=장서윤 ciel@
사진.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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