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그리 바빴는지 올해는 서점에 거의 못 갔다. 서점에 가면 으레 음악코너를 먼저 살핀다. 버릇처럼 새로 나온 기타교본들을 먼저 둘러보고 팝, 가요 관련 서적들을 찾아본다. 음악서적도 다양하다. 음반평론서, 장르 소개서, 역사서, 에세이, 이론서, 전문서, 대중서 등등. 올해에는 유독 음악서적이 많이 나왔다. 책이 많이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그 분야에 대한 대중이 관심이 높다는 방증일 터. 당신은 올해 어떤 책들을 봤는가? 당신의 취향을 넓혀줄 올해의 음악서적을 소개한다. 아무쪼록 이 책들을 통해 좋은 음악들을 알게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Paint It Rock’ 남무성 지음
음악의 역사를 글로 읽는 것은 따분함 그 자체다. 하지만 만화라면 다르다. 재즈 칼럼니스트, 음반 프로듀서, 영화감독, 만화가 등 복잡한 자기소개서를 가지고 있는 남무성 작가가 록의 역사를 만화로 엮은 ‘페인트 잇 록(Paint It Rock)’은 기똥차게 재밌는 책이다. 남 작가는 재즈를 소재로 한 ‘재즈 잇 업’로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인기 작가다. 그는 재즈를 가지고 사람을 웃길 줄 아는 비상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재능은 ‘페인트 잇 록’에서도 빛난다. ‘페인트 잇 록’은 척 베리, 엘비스 프레슬리, 비틀즈부터 레드 제플린, 딥 퍼플을 거쳐 너바나, 라디오헤드에 이르기까지 록의 반세기 역사를 다루고 있다. 남 작가는 록에 대해 꽤 심층적으로 파고들어가면서 위트를 놓치지 않는다. 배꼽을 잡고 껄껄 웃다보면 록 역사의 흐름이 보이고, 결과적으로 음악이 듣고 싶어지는 책이다.
재즈잡지 편집장까지 지낸 그가 록을 소재로 책을 낸다고 할 때 조금 의아했다. 하지만 재즈로 가기 전에 보통 록을 거쳐 가는 법이다. 재즈 마니아들의 특징이라면 프로그레시브, 아트 록 계열에 대한 애정이 크다는 것. 남 작가는 프로그레시브 록에 상당한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다. 가장 유명한 핑크 플로이드, 킹 크림슨, 예스와 함께 제네시스, 록시 뮤직, 그리고 캔터베리 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물론, 쉽게.
개인적으로 이 책의 매력적인 부분은 예술성을 추구하는 프로그레시브 록이 상업성을 따지는 팝과 만나는 대목으로, 결국 모든 음악은 통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최근 이 책 덕분에 예전 록의 명반들을 다시 찾아듣는 중이다. 잘 모르고 넘겼던 티어스 포 피어스,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 등의 음악들도 이 기회에 차근차근 들어보고 있다. 그래서 요새 LP바 가면 ‘미드나이트 블루(Midnight Blue)’ ‘소잉 더 시즈 오브 러브(Sowing The Seeds of Love)’같은 곡을 신청하고서 좋아라한다. ‘청춘을 달리다’ 배순탁 지음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작가로 잘 알려진, 이제는 유명 평론가가 된, 어머니들도 좋아하시는 배순탁 작가의 음악에세이. 배 작가는 자신이 청년기였던 90년대에 들었던 신해철, 이승열, 015B, 크라잉넛, 윤상 등 뮤지션 열다섯 명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직업이 아닌 순수한 취향으로 절박하게 들었던 당시 음악을 자신의 삶을 빌어다 에세이 형식으로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이 책은 배순탁이라는 인물을 통해 만나보는 음악이다. 그 안에 90년대의 생생한 장면들이 있다.
이러한 음악에세이를 읽는 것은 음악을 찾아듣게 되는 또 다른 방식이 될 수 있다. 저자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넥스트의 앨범을 듣고 충격을 받았던 경험, 군대에서 자우림, 언니네이발관의 음악을 몰래 들었던 추억, 첫사랑에게 차이고, 그녀가 선물로 준 이소라 2집으로 위안 받은 일화 등을 들려주고 있다. 이러한 추억담은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다.
누구에게나 음악을 절박하게 찾아듣던 ‘시절’이 있다. 대개는 그 시절에 음악 취향이라는 것이 만들어진다. 또 그 시절은 아직 취향이라는 것이 완성되기 전으로 음악을 순수하게 좋아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다. 취향이 굳어지면 ‘꼰대’가 되는 법이니까. 배 작가의 인생을 훔쳐보며, “나는 그 음악을 어떻게 좋아하게 됐지?”라고 반추해보시길. 당신의 청년기는 어땠는가? ‘재즈와 살다’ 최규용 지음
최규용은 ‘낯선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재즈 칼럼니스트다. 그의 이름을 처음 보게 된 것은 재즈월간지 ‘MM JAZZ’와 ‘재즈피플’을 통해서였다. 그는 앨범, 연주자 소개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재즈 페스티벌을 방문한 여행기 등을 책에 싣기도 했다. 그런 그가 언젠가부터 ‘재즈피플’에 에세이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사실 재즈에 대한 글들은 대개 딱딱하기 마련이다. 대중음악과 예술, 그리고 학문 사이의 교차점에 있는 음악이기 때문일까? 때문에 최규용의 에세이는 꽤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는 마치 술 냄새가 풍기는 듯한 문장으로 과거의 추억, 열독했던 책들과 재즈를 함께 이야기했다. 그의 문장은 매우 유려해 술술 읽히고, 재즈라는 음악을 술처럼 만들어버린다.
특히 기억에 남는 글은 ‘길 위에서’의 저자 잭 케루악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이 소설을 비밥 시대의 사운드트랙이라고 부르고 싶다”는 문장을 읽고 이 책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최규용의 글에 따르면 잭 케루악이 비밥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육성트랙과 함께 ‘길 위에서’에 등장하는 연주자의 곡을 정리한 앨범 ‘더 재즈 오브 비트 제네레이션(The Jazz of Beat Generation)’이 있다고 하는데, 이러한 이야기들은 재즈에 대한 판타지(긍정적인 의미에서)를 안겨주기도 한다. 그 외에도 영화 ‘제리 맥과이어’에 등장한 미지의 테이프를 찾다가 찰스 밍거스의 앨범 ‘더 클라운(The Clown)’에 도달하게 되는 일화 등이 너무나, 너무나 재즈적이다. ‘뛰는 개가 행복하다’ 신대철 김철영 지음
이 책은 라디오 PD 김철영이 신대철을 인터뷰한 인터뷰집이다. 올해 신대철은 뮤지션보다는 활동가로서 삶을 살았다. 지난 4월 신대철이 SNS에 올린 불합리한 한국 음원유통구조에 대한 글이 일파만파 퍼졌고, 이는 그 대안이라 할 수 있는 바름음원 협동조합(이하 바음협)의 출범으로 이어졌다. 이 책은 신대철의 어린 시절부터 최근 바음협 출범에 이르기까지 신대철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신대철의 인생이 곧 한국 대중음악의 한 단면이다. 그가 어린 시절 아버지 신중현과 함께 김추자, 김정미, 박인수, 이남이 등을 본 이야기부터 시나위 시절에 다양한 뮤지션들과 얽히고설켰던 일화들이 무척 흥미롭다. 인터뷰어인 김철영이 워낙에 이야기를 잘 받아주다 보니 가요계 이런저런 야사들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솔직하게 다 이야기하는 신대철의 직언은 통쾌하기까지 하다.
글을 읽다보면 활동가로서 ‘바음협’을 만들게 된 신대철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시나위, 록을 하기 위해 가요계의 굴절된 상황들과 싸울 수밖에 없었던 신대철. 그는 머리말에서 “나는 엄청난 성공을 거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실패와 친하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는다. 하고 싶은 것 실컷 했으니 된 거 아닌가”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신대철 덕분에 우리 가요계의 지형도가 꽤 변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행보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것도. ‘재즈,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음악’ 에릭 홉스봄 지음, 황덕호 옮김
이 책은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저서 ‘비범한 사람들(Uncommon People)’ 중 일부인 ‘재즈’ 챕터를 따로 떼어 옮긴 글이다. 저자는 시드니 베셰, 듀크 엘링턴, 카운트 베이시, 빌리 홀리데이와 같은 재즈 거장들에 대한 이야기와 또 재즈가 대중에게 전파된 역사적 상황을 사회학적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 책은 기존에 국내에 소개된 재즈개론서, 재즈에세이, 역사서, 평전 등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글로 이루어져 있다. 이 위대한 아티스트들을 다룸에서 있어서 무조건적인 칭찬을 던지지 않고 그들의 치부를 끄집어낸다. 하지만 그 안에서 재즈와 사회에 대한 무서운 통찰력이 느껴진다. 글을 읽다보면 에릭 홉스봄의 재즈에 대한 굉장한 사랑도 느껴진다. 재즈 평론가 황덕호는 홉스봄의 냉철하고 날카로운 문장들을 비교적 이해하기 쉽게 번역했다.
재즈 페스티벌은 많지만, 재즈 팬은 많지 않은 우리나라에 이런 책이 번역됐다는 것이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다행스럽다. 재즈에 대해 이렇게까지 심층적으로 파고든 책을 원서가 아닌 번역서로 만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내 가요계에 이렇게 비판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책도 한 권쯤 나와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가요, 케이팝 그리고 그 너머’ 신현준 지음
대중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신현준이 쓴 책 한 권 정도는 읽어봤을 것이다. 신현준은 20여년 넘게 글을 써온 음악평론가로 현재 성공회대 동아시아 연구소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 책은 가요, 케이팝, 인디음악 등이란 명칭으로 분류되곤 하는 한국 대중음악 전반을 연구한 책이다.
대중음악을 학문으로 다루는 것은 아직도 낯선 풍경이다. 언론도, 대중도 가요를 볼 때에는 매출액 등의 각종 숫자, 그리고 가십에 관심이 더 있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대중음악이 점점 산업화, 거대화되면서 이를 학문적으로 다루려 하는 움직임은 커져가고 있는 모양새다. 저자는 책에서 한류/케이팝의 짧은 역사와 함께 케이팝 이전의 한국가요계, 그리고 홍대 인디 신 등을 당시 사회, 정치적 상황에 비추어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왜 가요, 케이팝 그리고 그 너머를 들여다보게 됐을까? 그는 책에 실린 후기에서 “거칠게 말해서 1950~1960년대 영미 팝, 1970~1980년대 유로 팝, 1990~2000년대 아시안 팝 등 가장 상업적인 대중음악이 각각 어떻게 생산괴고 순환되었는지, 그들 사이의 상호작용은 어떠했는지 진지하고 체계적으로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 대충 아는 것으로 끝낼 일은 아닐 것 같다”며 “나는 팝의 역사와 지리에 대한 연구가 문화권력, 자본의 배치 및 그 이동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라고 밝혔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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