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 변지은
서태지, 변지은
“서태지 공연 보러 가지 않을래?”

친구가 물었다. 때는 지금으로부터 약 14년 전인 2000년 11월경 서태지의 ‘울트라맨이야’가 한창 열풍을 일으키던 시절이었다. 서태지 팬클럽이었던 친구가 서태지 공연을 보러가자고 제안했다. 딱히 서태지 팬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뿌리치기 힘든 제안이었다. 서태지의 공연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니, 이건 굉장한 일이었다. 그때는 서태지의 공항 패션, 헤어스타일 하나하나가 영화 패러디 소재로 쓰일 정도로 그 위상이 대단했던 때였으니까. 호기심이 생겼다.

친구가 보러 가자고 한 공연은 그해 11월 7일 광장동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MBC ‘음악캠프’ 사전녹화였다. 서태지가 공연을 하는데 ‘슬래머’(록 공연장에서 격렬하게 헤드뱅잉 등을 하는 관객들)가 필요하다고 했다. 서태지가 자신의 밴드를 꾸리고 뉴 메탈(당시 서태지는 ‘핌프 록’이라 소개했다) 장르를 가지고 나왔는데 기존 팬들의 경우 풍선을 흔들며 공연을 보기 때문에 그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음악캠프’ 녹화를 위해 록 공연을 즐길 줄 아는 관객들이 필요하다는 거였다.

서태지 팬클럽인 친구가 나에게 제안을 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 기자는 한창 록밴드를 하고 있었을 때라 머리가 길어서 가슴까지 내려왔다. TV가 원하는 관객 모습으로는 제격이었을 것이다. 같이 밴드를 하던 드럼 치는 친구가 합류했고, 우리 셋은 워커힐호텔로 향했다.

현장에는 우리처럼 슬래머를 하러 온 수백 명의 관객들이 번호표를 받고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레게머리를 했거나 피어싱을 하고 청바지에 체인을 박은 무시무시한 모습들도 보였다. 몇 시간을 서서 기다렸을까? 우리는 워커힐호텔 수영장으로 안내됐다. 관객들이 물을 뺀 수영장 안으로 들어가 바로 옆에 마련된 서태지의 공연을 올려다보는 무대였다. 지금 생각해봐도 꽤 멋진 공연 연출이었다. 우리는 물이 빠진 수영장으로 들어가 서태지가 나오길 기다렸다. 저 멀리에 별도로 마련된 객석에는 플래카드를 든 서태지 팬들이 보였다.
cats
cats
1
1
cats
cats
서태지와 탑(기타), 록(기타), 몽키(베이스) 등이 무대에 나오자 관객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빨간 레게머리를 머리띠로 질근 묶고 나온 서태지가 머리끈을 풀어 객석(수영장)에 던지는 것을 신호로 ‘울트라맨이야’의 연주가 시작됐다. 관객들은 헤드뱅잉과 모씽(몸을 부딪치는 액션)을 하기 시작했다. 서태지가 인중과 턱의 수염자국이 보일 정도로 가까이 있었다. 솔직히 큰 기대를 한 공연은 아니었다. 하지만 서태지는 록 보컬리스트로서 상당한 카리스마를 선보였다. 양 옆의 탑, 록, 몽키는 뉴 메탈 특유의 허리를 굽혔다 펴는 액션을 하며 육중한 연주를 들려줬다. 그들이 연주를 하면서 보여준 퍼포먼스는 웬만한 댄서들보다 훨씬 강렬했다. 영상으로만 보던 콘, 림프 비즈킷의 해외 공연이 떠오를 정도로 멋졌다.

서태지 밴드는 이날 ‘울트라맨이야’에 이어 ‘인터넷전쟁’ ‘대경성’ 등을 연주해줬다. 노래가 이어지자 관객들은 거의 이성을 잃을 정도로 분기탱천했다. 엄청나게 몸을 흔들며 부딪쳐대는 바람에 겁이 나기까지 했다. 옆에 있던 친구는 몰려드는 사람들을 두 팔로 밀어내기 바빴다. 수영장 안에 빠져 있던 터라 어딜 도망갈 수도 없고, 죽을 노릇이었다. 하지만 재밌었다. 미친 듯이 공연을 즐기고, 워커힐호텔을 나설 때쯤 난 서태지(아니 서태지 밴드)의 팬이 돼 있었다. 서태지는 예상했던 것보다 라이브를 꽤 잘 했고, 관객들을 빨아들이는 힘이 있었다.

당시로서 그러한 특설 무대를 마련한 것은 서태지이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개인 콘서트가 아닌 TV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그림의 무대를 시청자들에게 보여준 것이었다. 서태지컴퍼니의 한 관계자는 “서태지가 자신의 팬들에게는 낯설었던 록 공연의 문화를 보여주고자 기획했던 무대”라고 설명했다. 일종의 ‘문화권력’이었던 서태지이기에 가능했던 무대이기도 했다.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는 “그때까지 텔레비전이 가수를 연출했다면 서태지는 스스로를 연출했고, 텔레비전은 카메라를 열어두는 수동적 위치에 놓이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 텐아시아 포토DB, MBC ‘음악캠프’ 사진캡쳐

[SNS DRAMA][텐아시아 뉴스스탠드 바로가기]
[EVENT] 뮤지컬, 연극, 영화등 텐아시아 독자를 위해 준비한 다양한 이벤트!! 클릭!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