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매특허 ‘버럭 개그’에 즉흥적이고 거침없는 입담을 보여줄 것만 같은 장동민은 없었다. 케이블TV tvN 예능 프로그램 ‘더 지니어스 3’의 예상 외의 우승자로 등극한 그는 진중하고, 자신의 인생과 주변 사람들에 대해 사려깊은 배려를 아끼지 않는 모습이었다. 가끔씩 튀어나오는 비속어가 섞인 솔직한 단어들은 TV 속 개그맨 장동민임을 확인시켜줬지만, 그를 감싸고 있는 공기는 ‘버럭 개그’보다는 무심한 표정 뒤에 따뜻함이 감춰져있는 재미있는 동네 형, 오빠같은 분위기가 묻어났다. 이제는 인생의 동지가 된 유세윤, 유상무와 KBS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지 올해로 꼭 10년, 꾸준함이 빛을 보듯 그는 서른 여섯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Q. 늘 ‘버럭하는’ 장동민의 모습만 보다 ‘더 지니어스 3’를 통해 뛰어난 책략가에 과감한 행동력이 빛나는 장동민의 영민함을 재발견했다는 시청자들의 평가가 이어졌다.
장동민: 대부분의 경우 화내는 장동민이 맞다. 그게 장동민이다. 그런데 난 워낙 승부욕이 강해 지고는 못 사는 사람이기도 하다. 승리를 위해 내 아마도 시청자들이 나에 대한 기대치가 워낙 없었기 때문에, ‘그저 소리나 지르겠지’란 예상을 하다 내가 조금만 보여줘도 ‘대단하다’는 반응을 보였던 것 같다.
Q. 게임을 하면서 가장 큰 라이벌은 누구였나
장동민: 진부하게 들릴 수 있지만 가장 큰 라이벌은 자기 자신이었다는 걸 모두 느낄 거다. 다들 남들이 아닌 본인의 실수때문에 떨어졌다. ‘누가 너무 잘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흔들릴 때 떨어졌다. 자신을 컨트롤하지 못한다면 세상에서도 그렇겠구나라는 걸 모두 느꼈을 것 같다. 인생이 그렇다. 스스로를 컨트롤하지 못할 때 그 순간이 가장 위기인 것 같다.
Q. 판을 읽고 구조를 짜는 전략가다운 모습도 많이 보였다.
장동민: 그간 방송에서는 그런 모습을 드러낼 일이 별로 없었다. 원래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우승할 줄 알았다는 얘기를 하더라. 그런 면에서 나도 이번에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좋았다. 만일 내가 사랑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에 나간다면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겠지. 진짜 내 모습이었다는 게. 정말로 사랑을 하는 프로그램이라면 또 다른 내 모습이 있겠지.
Q. ‘지니어스’에 참가해 볼 것을 추천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나?
장동민: 유상무.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게임을 얍삽하게 하는 사람이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물불가리지 않고 질주한다. 유세윤은 정말 추천하고 싶지 않다. 어떤 게임을 하든 김빠지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Q. ‘지니어스’ 멤버 중 가장 잘 맞았던 사람을 꼽는다면
장동민: 유수진 누나는 나와 가장 비슷한 성향의 사람이다. 한번 믿으면 끝까지 믿고 뒤가 없다. 의심도 없고. 그런 성향이 드러나다보니 먼저 떨어진 것 같다.
Q. 식상한 얘기지만 우승비결이 뭘까
장동민: 자기 자신을 100% 믿어야 한다. 모든 행동에 ‘그냥 했는데’란 건 없다. 어떤 행동이든 이유가 있다. 예를 들어 ‘누가 날 배신하면 어떡하지’란 두려움은 ‘나는 약체에요’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 심리가 강해 보이는 사람에게는 잘 덤비지 않는다. 승부가 들어왔을 ?는 빼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맞서야 한다.
Q. 인생의 교훈을 많이 얻었나보다
장동민: 가장 크게 얻은 건 내가 인생을 잘못 살지 않았고, 내 판단이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살면서 내 주변을 돌보는 게 좋았다. 부모님은 ‘네 인생을 챙겨라’라는 얘기를 가장 많이 하시지만 잘 모르겠다. 난 지금까지 살면서 한번도 혼자 외롭게 싸워본 적이 없다. 항상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건 내가 괜찮을 때 주위 사람들을 챙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게임에서도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 인생같구나란 생각을 했다.
Q. 최근 ‘버럭개그’의 1인자로 등극했는데, 50대의 이경규, 40대의 김구라 박명수의 ‘버럭’과 장동민과의 차이점은 뭘까
장동민: 이경규 선배는 자신의 사람에 대한 화를 표현한다. 녹화 시간이 길다든지, 환경이 맘에 안든다든지 하는 것에 대한 화다. 김구라 선배는 아는 게 많은 사람이다. 그런 분들은 자신의 지식과 부합되지 않은 상황을 만나면 짜증을 낸다. 박명수 선배는 본연의 화가 아니다. 화를 내면 웃길 거라는 판단을 깔고 있는 인위적인 화다. 원래 화가 많은 사람은 아니다. 나는 그야말로 순수한 화다.
Q. 그런데 사실 ‘버럭개그’라는 게 수위를 잘 타야 하는 부분이 있다.
장동민: 보통 사람들은 내가 아무 때나 화내고 욕하는 줄 안다. 그런데 사실 욕을 해서 웃기는 타이밍을 잡는 건 정말 어렵다. 일단 욕이라는 게 어찌됐든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는 건데 그걸 재밌게 하려면 여러 포인트가 필요하다. 우선 공감대가 필요하다. 같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사람에게 버럭할 수 있는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언어선택도 굉장히 잘 해야 한다. 욕을 듣는 사람이 기분이 나빠지면 안된다. 이 사람이 좋아하는 어휘나 어투가 어떨지 여러 고민을 한 후에 화를 내야 한다. 실제로 녹화를 한 회 하면 화를 내는 포인트는 한두 번 정도다. 그걸 잘 잡아야 한다. 나름의 구조와 포인트가 필요하다.
Q. 올해로 꼭 데뷔 10년이다. 스스로를 돌아봤을 때 20대 때와는 많이 달라진 모습도 엿보이나
장동민: 2003년 KBS 개그맨 공채 시험을 처음 봤을 때, 사실 유상무를 도와준다는 생각에서 같이 봤다. ‘떨어지면 어떡하지’가 아니라, 난 사실 개그맨을 할 생각이 없는데 붙을거란 확신이 들어 ‘붙으면 어쩌지’란 고민을 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똑 떨어져서 화가 많이 났다. ‘감히 날 떨어뜨려?’란 생각에 모든 걸 접고 1년간 개그맨 시험에 올인했다.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 어떻게든 붙어야겠다는 생각만 있었고 다음해에 붙었다. 그런 불같은 구석이 많았다.
Q. 보통 인생에 승부욕이 많은 이들은 주변 사람들보다는 자신의 앞만 보고 가는 경향이 있지 않나
장동민: 내가 지닌 건 또다른 승부욕인 것 같다. 인생에 대한 승부욕이랄까.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고, 주변 사람들이 나로 인해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일도 더 열심히 한다. 그게 내 인생엔 잘 맞는 것 같다.
Q. 지난해부터 큰 상승기를 맞고 있다.
장동민: 이제 조금씩 내가 익숙해지지 않았나 싶다. 10년 동안 내 방식의 개그를 하고 나니 받아주시는 게 아닐까 싶다. 사실 내가 달라지진 않았다. 나는 10년 전에도 웃기려고 성질내고 때리고 그랬다. 그런데 방송국에 있는 사람들이 못 받아줬다. 그 때는 혼도 많이 났다. ‘이렇게 방송하면 안 된다’고 바꾸라고 했다. 그 때 생각했던 게 ‘내가 지금은 어려서 그렇지 30대 중반만 되면 내 세상이 올거야’ 란 막연한 확신이 있었다. 물론 중간에 힘든 적도 많았지만, 뭐든 10년 하면 되는구나 싶다. 성질도 10년 부리니 웃어주는구나, 하는.
Q. 인간 장동민은 굉장히 낙천적인 사람이라는 느낌이 읽힌다.
장동민: 가끔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냐는 질문을 받는데 스트레스는 죽을 때까지 있을 거다. 그리고 그건 본인 스스로 만드는 거다. ‘무엇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할 때 그게 사라지면 스트레스가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또 다른 게 나타난다. ‘나 스트레스 때문에 미치겠어’라고 생각하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라는 얘기다. 스트레스는 푸는 게 아니라 받지 말아야 한다.
Q. 올해 크리스마스와 새해 계획이 궁금하다
장동민: 아마도 일을 할 것 같다. 언제부터인지 크리스마스 때 사람들과 만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제대로 못 보냈다는 생각이 든다. 내년에는 오프라인 공간에서 팬들과 좀더 편안하게 만나는 자리를 많이 만들고 싶다. 방송에서는 할 수 없는 좀더 풀어진 상태의 얘기를 나누고 싶다.
글. 장서윤 ciel@tenasia.co.kr
사진. 코엔스타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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