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 장기하와 얼굴들, 프린스, 에일리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어째 오늘은 묘하게, 나른해져 재미없어, 가끔씩 나오던, 참신한 가사도 안 떠올라, 내 방은 환기가 필요해, 난 떠날 거야서태지 ‘Quiet Night’
서태지 ‘숲 속의 파이터’ 中
서태지의 정규 9집이자, 솔로로는 다섯 번째 앨범이다. 서태지의 설명을 빌자면 ‘콰이어트 나이트(Quiet Night)’ 딸 ‘삑뽁이’를 위해 만든 앨범이다. 그런 사정까지 알아줄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음악 이야기만 하자면 최근 해외에서 유행하는 일렉트로 팝의 다양한 어법들이 들어가 있다. 서태지는 5집이자 솔로 첫 앨범인 ‘서태지(Seo Tai Ji)’부터 자신의 정체성이기도 한 록을 기본으로 한 음악을 꾸준히 들려줬다. 신보에서는 록의 비중을 줄이고 멜버른 바운스, 칠스텝 등의 일렉트로니카의 하위 장르의 영향이 느껴진다. 서태지는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처럼 건반으로 노래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확실히 전처럼 기타로 나올만한 멜로디는 현저히 줄었다. 결과적으로 음악은 꽤 대중적인 어법을 지니고 있으며 오히려 솔로보다는 서태지와 아이들 때의 정서에 더 가까이 간 것 같다. ‘숲 속의 파이터’에서 노래 막판에 “진짜?”라고 속삭이는 서태지는 20대처럼 앙증맞다. ‘크리스말로윈’의 가사에 대해서는 산타를 현 정부에 비유해 비판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는데, 서태지 말대로 해석은 자유일 것이다.(CD 알판에 찍힌 산타의 모습이 무시무시하긴 하다만) 서태지는 밴드와 함께 공연하지만, 악기 편곡 및 거의 모든 작업을 혼자 해낸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차기작에서는 아이디어를 주고받는 ‘진짜 밴드’를 꾸려서 새로운 음악을 시도해봤으면 한다. 여러 명이 혼자보다는 나으니.
장기하와 얼굴들 ‘사람의 마음’
장기하와 얼굴들의 3집. 장기하와 얼굴들은 이번 앨범에 수록된 13곡을 자신들이 원하는 사운드로 만들기 위해서 하고 싶은 걸 다 해봤다고 한다. 이건 가사, 사운드에 모두 해당되는 것 같다. 일본까지 가서 멜로트론을 녹음한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도 그렇고 섹스의 과정을 은유적으로 노래한(것으로 보이는) ‘내 사람’ 등 발랄하고 의욕적인 시도들이 군데군데 나타난다. 이 앨범은 상당히 복합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다. 곰팡내 나는 표현을 쓰자면 록의 과거와 현재가 적절히 결합됐다고 할까? 본인들은 간결하다고 하지만, 그리 단순하게 들리진 않는다. 음악들이 스트레이트하게 달려가는 가운데 과거 60~70년대 영미 록의 클래식에서 보이던 장식음들이 군데군데 드러난다. 멜로트론과 같은 과거의 악기를 쓴 것 외에도 이종민의 도어즈(Doors)를 떠올리게 하는 오르간이 낭중지추처럼 톡톡 튀는데 이러한 아이디어가 곡을 살린다.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는 ‘내 사람’에서 3분 40초경에서 사운드가 폭발하는 부분은 마치 사정(射精)하는 순간을 표현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극적이다. 앨범의 종장을 드라마틱하게 장식하는 ‘착한 건 나쁜 게 아니야 pt.2’에서 전인권의 짧은 노래 후에 나오는 연주는 비장하기까지 하다. (막판의 길게 끄는 부분은 마치 비틀즈의 ‘어 데이 인 더 라이프(A Day In The Life)’를 마무리 하는 폴 매카트니의 피아노를 연상케 하더라) 장기하와 얼굴들의 최대 장점은 이러한 다양한 요소들이 장기하의 목소리 때문에 묘하게 정리가 된다는 점이다. 이 앨범을 주의 깊게 듣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서태지가 앨범 내도 욕하고 마는 세상이지만서도.
이장혁 ‘이장혁 Vol. 3’
싱어송라이터 이장혁의 정규 3집. 90년대부터 홍대 인디 신에서 활동한 이장혁은 아무밴드로 1집 ‘이.판.을.사’를 발표하고 평단에서 호평을 받았다. (아무밴드가 궁금하면 ‘사막의 왕’을 검색해보라) 2004년에 첫 솔로앨범 ‘Vol. 1’을 발표했으니 솔로로 나선지 10년이 훌쩍 지났고 나이도 마흔이 넘었다. 지난 2012년에 3집 발매를 알리고 쇼케이스까지 열었는데 당시 앨범을 발매하지 않았다.(때문에 당시에 쓴 앨범 발매 기사는 오보가 됐다) 앨범을 미룬 것은 본인의 음악적 욕심 때문이었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앨범은 그 기다림을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는 출중한 결과물을 담고 있다. 지난 앨범에서는 모던포크에 집중된 음악을 들려줬는데 이번에는 밴드 사운드, 그리고 프로그래밍 등을 통해 풍부함을 더하고 있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악곡의 비범함이다. ‘칼집’처럼 직선적인 곡도 ‘빈집’ ‘레테’ ‘비밀’ ‘노인’ 등과 같이 청자의 ‘우울과 몽상’을 이끌어내는 곡들의 매력이 상당하다. 특히 유재인(게이트 플라워즈)의 사운드 프로그래밍이 이장혁의 곡에 다양한 색을 덧대주고 있다. 흔히 ‘인디 1세대’라 불리는 이들이 이런 고집이 느껴지는 음악을 해주는 것은 단순히 좋다는 것을 넘어서 고맙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에일리 ‘Magazine’
에일리는 이제 여성 보컬리스트 중에는 슬슬 ‘원 톱’으로 떠오른 것 같다. 기본적으로 R&B 풍의 보컬을 너끈히 소화하지만, 그보다도 마치 ‘정수라’를 연상케 하는 시원하게 내지르는 보컬이 대중에게 크게 어필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출생 가수들을 보면 가요적인 정서를 표현하는데 약점을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에일리는 예외다. 컴백에 대해서는 다이어트를 놓고 팬들의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은데, 일단 체중감소가 성량의 감소로 이어진 것 같지는 않아 다행이다. 앨범에 담긴 다섯 곡은 최근 트렌드를 그대로 반영한 듯하다. ‘손대지마’는 에일리의 강점인 파워풀한 보컬을 잘 살린 곡. 다이나믹듀오가 피처링한 ‘미치지 않고서야’는 최근에 유행하는 방식의 콜라보레이션이다. 에일리의 음색을 잘 살리고 있지만, 그 외에 전반적으로 사운드적인 측면에도 상당히 공을 들인 것으로 들린다.
라이너스의 담요 ‘Magic Moments’
최초의 홍대 여신은 연진이었다. 라이너스의 담요, 그리고 솔로에서 들려준 그녀의 살랑대는 음색은 남성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인디 신을 넘어 가요계를 통틀어 연진만큼 로맨틱한 음색을 가진 여가수가 또 있을까? 연진도 데뷔한지 14년이 흘렀다고 한다. 라이너스의 담요로는 2003년 비트볼뮤직에서 나온 데뷔작 ‘시메스터(Semester)’를 발표하고 신선한 음악으로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CJ E&M에 새둥지를 틀고 발표한 이번 앨범은 밴드가 아닌 보컬 연진의 솔로 프로젝트로 발표한 앨범이다. DJ소울스케이프가 편곡을 대부분의 맡았는데 전처럼 복고적인 감성을 지니고 있고, 비브라폰을 강조한 사운드도 여전하다. 레이블은 옮겼지만 다행히도 인디 팝의 감성은 유지하고 있다.(초기 EP를 좋아하는 팬들이라면 차이점을 느낄 수도 있으리라) 조월, 김태춘, 빌리어코스티, 주윤하, 윤석철 등이 참여했는데 역시나 음악은 기승전연진이다.
안치환 ‘Complete Myself’
안치환의 음악인생 25년, 그리고 10장의 정규앨범을 정리하는 박스세트로 무려 97개의 곡이 새로운 녹음으로 담겼다. 기존 곡들을 리마스터링해서 박스세트로 발매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이렇게 새로 녹음을 다 하는 경우는 가요계에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한다. 11집으로 넘어가기 전에 이제까지 발표한 음악을 정리하고자 이번 박스세트를 기획하게 됐다고. 박스세트는 ‘사랑(Love)’ ‘삶(Life)’ ‘저항(Resistance)’ 세 개의 주제로 분류된 박스세트 중에서 가장 의미 있는 파트는 ‘저항’이 아닌가 한다. ‘저항’을 노래하는 경우는 참으로 드물고, 점점 더 드물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저항’에는 ‘빨갱이’ ‘솔아 푸르른 솔아’ ‘철의 노동자’ ‘광야에서’ 등이 담겼다. ‘빨갱이’는 이제까지 어떤 앨범에도 담기지 않았던 신곡이다. 이런 제목의 노래가 음반에 담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안치환은 “현대사에서 많은 이들에게 아픔을 준 단어이고, 지금도 그 아픔은 계속 되고 있다. 누군가는 이런 이야기를 반드시 해야 하는데 아무도 안하니까 내가 하게 되는 것 같다. 하고 싶은 말이 노래가 돼 나온 것 뿐”이라고 호탕하게 말했다. 노래로 세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일인데, 그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기에 이런 안치환의 말은 더욱 뜨겁게 다가온다.
샘 리 ‘Nomad’
기타리스트 샘 리의 네 번째 앨범. 샘 리를 설명하는데 가장 많이 쓰이는 수식어는 ‘한국을 대표하는 세션 기타리스트’다.(아마도 함춘호 다음으로 많이 하지 않았을지 예상해본다) 그는 단순히 가수가 원하는 음악을 발현시켜주는 세션연주자를 넘어서 기타를 가장 기타답게 연주하는 장인이기도 하다. 웬만한 장르는 다 연주할 수 있는 그이지만, EP ‘언딜루티드 톤(Undiluted Tone)’을 제외한 정규앨범에서는 차분하고 듣기 편안한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아마도 초절기교로 청자를 놀라게 하기보다는, 절제의 미덕을 통해 감동을 주고 싶은 것이 샘 리의 바람이 아닌가 한다. 이번 앨범에서는 특히 아르페지오를 잘 살린 슬로우 템포의 곡들이 대거 실렸다. 비교적 기교를 배제한 음악들로 어쩌면 샘 리의 앨범 중 기타 본연의 울림을 가장 잘 살린 앨범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제자 송 데이(Song Daye)가 노래를 맡은 ‘러브 이프(Love If)’에서는 샘 리의 소울풀한 코러스도 들어볼 수 있다.
티나쉬 ‘Aquarius’
섹시한 가수에도 등급이 있다. 외모만 섹시한 경우, 퍼포먼스도 섹시한 경우, 목소리까지 섹시한 경우, 그리고 내면까지 섹시한 경우. 내면까지야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지만, 앞에 세 가지는 뮤직비디오와 음반만으로 판정이 가능하다. 흑인 여가수 티나쉬(Tinashe)는 외모, 퍼포먼스, 목소리의 섹시함이 삼위일체를 이루는 아티스트다. 가히 리아나와 시아라의 뒤를 이을만한 재원이라 할까? 5인조 걸그룹 더 스터너스 출신인 티나쉬는 자신이 작사 작곡 프로듀싱을 맡은 믹스테이프 ‘인 케이스 위 다이(In Case We Die)’로 주목받는 등 다재다능한 면모를 보였다. 데뷔앨범인 ‘아쿠아리스(Aquarius)’에는 타니쉬의 음색을 잘 살린 야릇한 곡들을 비롯해 세련된 피비앨안비(PBR&B) 풍의 곡들을 들어볼 수 있다. 공연 영상을 꽤 파워풀한 노래를 들려주기도 하지만, 앨범에서만큼은 귀에 바람을 불어넣는 듯 속삭이는 듯한 노래로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드레이크, 켄드릭 라마와 작업했던 DJ 다히(DJ Dahi), 드레이크의 다수의 히트곡을 만든 보이원다, 스타게이트, 스쿨보이큐 등이 앨범 작업에 참여했다.
프린스 ‘Art Official Age’
프린스의 서른세 번째 솔로앨범. 프린스는 최근 이 앨범과 3인조 여성 록밴드 써드아이걸과 함께 발표한 ‘플렉트럼일렉트럼(PlectrumElectrum)’을 동시에 발표했다. 천재 중의 천재 프린스의 앨범을 두 장이나 들어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여태껏 프린스의 행실을 욕하는 사람은 많이 봤지만 그의 음악을 까는 사람도, 기사도 본 적이 없다. 마이클 잭슨도 프린스의 재능을 질투했고, 대중음악계에서 역사상 콧대 높다 할 수 있는 마일스 데이비스조차도 프린스에게 찬사를 보냈다. 잡설은 차치하고, 음악을 이야기하자면 프린스는 지난 40여 년간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인 (R&B, 록(더 정확히는 제임스 브라운과 지미 헨드릭스)의 혈통을 크게 벗어난 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신의 아이콘으로 회자되는 이유는 그 일정한 음악 안에서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아이디어들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아트 오피셜 에이지(Art Official Age)’는 가사상태에서 깨어난 뒤 자신이 45년 후의 완전히 달라진 미래 세계에 와 있음을 깨달은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은 콘셉트 앨범으로 소울, R&B를 기반에 두고 현대적인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오르가즘이 느껴질 정도로 섹시한 사운드(3초만에 죽여주는 ‘펑큰롤(FUNKNROLL)’을 비롯해 전곡 그렇다)를 듣다보면, 이게 과연 58년 개띠의 음반이 맞는지 의심해보게 된다. 이 앨범 전까지 소울 앨범 중 가장 진보적인 음반은 아마도 자넬 모네의 ‘더 아치안드로이드(The ArchAndroid)’라 할 수 있을 텐데, 아마도 프린스는 그것을 의식하고 이번 콘셉트 앨범을 SF적인 느낌으로 만든 것이 아닐까 예상해본다.
프린스 & 써드아이걸 ‘PlectrumElectrum’
프린스가 자신의 백밴드 써드아이걸(3RDEYEGIRL)과 함께 록밴드 체제로 함께 발표한 앨범. 프린스의 또 다른 매력이라면 밴드의 프론트맨으로 마치 지미 헨드릭스처럼 난폭하게 기타를 학대하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프린스는 작년 새로운 백밴드 써드아이걸(한나 포드, 도나 그랜티스, 아이다 닐슨)과 투어를 돌며 솔로앨범과 밴드 앨범 작업을 병행했다고 한다. ‘아트 오피셜 에이지(Art Official Age)’가 프린스의 머릿속에 있는 세계를 구현했다면, ‘플렉트럼일렉트럼(PlectrumElectrum)’은 밴드와의 화학작용을 담았다 볼 수 있다. 록밴드의 앨범이기에 온갖 아이디어가 난무하는 ‘아트 오피셜 에이지’에 비해서는 단순명쾌한 편이다. 군더더기가 없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밴드 멤버들이 질펀하게 몸을 섞었을 때 가능한 ‘살아있는’ 그루브 위로 프린스의 기타와 목소리가 춤춘다. 솔로앨범이 ‘혁신’이라면 이 앨범은 그야말로 연주를 즐기는 모습이 잘 담겨 있다. 라이브 영상을 보면 프린스가 왜 써드아이걸을 간택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쉰이 넘은 나이에도 이렇게 살벌한 여성들과 함께 ‘보이트러블(Boytrouble)’, ‘프레츨바디로직(PretzelBodyLogic)’과 같은 곡을 연주를 한다는 것이 부럽기도 하다. 하긴, 그는 왕자님이니까.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변지은 인턴기자 qus1228@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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