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률, 김사월 X 김해원, 페퍼톤스, 윤덕원
우리 서로 사랑했던 그 시절엔, 뭐가 그리 설레고 또 좋았었는지, 세상을 다 가진 양 들떠 있던 내 모습이, 너 없이 그려지지가 않는 게, 그게 나야김동률 ‘동행’
김동률 ‘그게 나야’ 中
지금 이 앨범에 대한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음원, 판매량, 티켓 예매 등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는 것에 미루어 ‘역시 김동률’이라는 반응, 그리고 김동률의 음악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하다는 반응. 뭐가 부족하다는 것일까? 김동률의 발라드는 ‘기억의 습작’부터 달랐다. 언뜻 듣기에 편안한 멜로디가 흐르지만 매우 복잡한 화성 진행으로 이루어진 이 곡처럼 김동률, 그리고 전람회의 음악은 국내 발라드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 유재하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동행’에 담긴 곡들은 기존 김동률의 음악에 비해 조금 단순한 편이다. 뻔한 멜로디(자이언티 노래를 말하는 게 아니다)라고 할 만한 곡들이 늘었다고 할까? 이리저리 꼰 음악들이 꼭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여기에 대해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찬찬히 들어보면 세심함이 느껴진다. 타이틀곡 ‘그게 나야’는 노랫말을 넘기는 호흡 하나 하나가 매우 세심하게 진행된다. 감정적인 피아노 연주와 풍성한 오케스트레이션, 그리고 절묘한 전조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김동률의 그 사운드다. 이를 동어반복이라고 하면, 동어반복일 테고, 예전의 그 김동률이라고 하면, 그 김동률일 것이다. 여성들은 이 가사를 들으면 눈물이 나온다는데, 그것까지는 내가 모르겠다.
김사월 X 김해원 ‘비밀’
아무런 정보 없이 이들의 공연을 보러 갔다. 노컨트롤의 황경하가 올린 김사월 X 김해원의 티저 영상이 환상적으로 들렸기 때문. 단편선과 선원들, 꿈에 카메라를 가져올걸의 뒤를 이어 무대에 나온 김해원과 김사월은 마치 세르주 갱스부르와 제인 버킨을 보는 듯했다. 외모는 전혀 안 닮았지만, 왠지 모르게 불길한 매력이 비슷하다고 할까? 세르주 갱스부르가 제인 버킨을 범하는 느낌이라면, 김해원은 김사월을 살포시 안아주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김사월은 솔로로 활동하다가 자신의 공연에 세션으로 참여한 김해원과 만나 듀오를 결성하게 됐다고 한다. 김사월 솔로 시절의 곡을 들어봐도 묘하게 야릇한 맛이 있는데, 김해원을 만나면서 그러한 색은 더욱 진해진 것 같다. ‘비밀’에 담긴 곡들에서는 샹송이 가진 프렌치 멜로디와 질감이 강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이 음악의 매혹은 단지 샹송이라는 단어로만은 설명할 수 없다. 이들의 음악은 뚜렷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가령 ‘사막 part 1’을 듣고 있으면 황량한 길을 터벅터벅 걷는 듯한 기분이 든다. 비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둘이 속삭이는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그 농밀함이 부러워진다. ‘누구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을 말할게 누구도 이해 못하는 너에게만 말할게 이해한다면 그건 유령이 되는 거야’와 같은 이들의 가사 말이다.
페퍼톤스 ‘High Five’
페퍼톤스의 5집. 페퍼톤스가 데뷔한지도 벌써 10년이 다 돼 간다. 지난 2005년 ‘레디, 겟 셋, 고(Ready, GetSet, Go!)’를 처음 라디오에서 들었던 순간을 기억한다. 마치 일본 만화 주제가 같았던 이 곡은 기존의 인디 신에서 전혀 들어볼 수 없었던 감성으로, 마치 새로운 시대를 여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당시 신해철이 진행하던 ‘고스트네이션 - 인디차트’에서 꽤 오래 1등을 했다) 페퍼톤스의 강점은 특정 장르를 추구하기보다 음악을 캔버스 삼아 자신들의 재기발랄한 감성을 마음껏 뿌려댄다는 점이었다. ‘하이파이브’도 마찬가지다. ‘굿모닝 샌드위치 맨’과 ‘솔라 시스템 슈퍼 스타스(Solar System Super Stars)’를 들으면 페퍼톤스가 이제 강한 록을 하는구나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이어지는 곡들을 들어보면 역시나 다채로운 사운드로 자유분방한 감성을 펼치고 있다. ‘뉴 찬스(New Chance)’와 같은 악기 편곡 아이디어는 참으로 기발하다. ‘패스트(Fast)’의 도입부는 올해 들었던 기타리프 중 단연 ‘쿨’한 연주다. 페퍼톤스는 원래 창의적이었는데, 이번 앨범에서는 그 창의성이 기타리프와 같은 연주로 이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노래도 늘은 것 같다.
윤덕원 ‘흐린 길’
브로콜리너마저의 베이스와 보컬을 맡고 있는 윤덕원의 첫 솔로앨범. 브로콜리너마저는 밴드 멤버들의 결혼 등으로 휴지기를 맡고 있다. 윤덕원의 목소리는 ‘보편적인 노래’ ‘졸업’ ‘춤’ 등을 통해 팬들에게 익숙하다. ‘흐린 길’에서 위 노래들과 같은 감성을 굳이 찾으려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 앨범은 브로콜리너마저와는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브로콜리너마저의 음악에는 뭐랄까? 캠퍼스를 거니는 듯한 감성이 있었고, 그래서 아마추어리즘이 담긴 연주가 오히려 매력으로 다가왔다.(서툰 연주를 상쇄할 만큼 곡이 좋았다는 말도 된다) 이 앨범의 곡들은 캠퍼스가 아닌 화사한 도시를 걷는 느낌이다. 이는 더 클래식의 박용준, 건반연주자 고경천을 비롯해 최고의 세션맨들인 이기태(드럼), 민재현(베이스) 등이 참여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윤덕원이 만든 곡 자체가 블로콜리너마저의 감성과 사뭇 다르다. 80~90년대 가요를 듣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드는데, 특히 ‘신기루’와 같은 곡은 일부러 그런 복고를 지향한 것처럼 들린다. ‘별이 빛나는 밤’은 어떤날의 감성이 느껴지는 곡. 즉, 이 앨범은 윤덕원 본인이 좋아한 가요에 대한 헌사가 아닐까.
타니모션 ‘Tan + Emotion’
타니모션의 정규 1집. 잠비나이 이후 퓨전국악에 대한 관점이 변하고 있다. 기존의 퓨전국악이 국악의 미감을 지키면서 단지 양악을 도입하는 정도에 불과했다면, 이제는 국악기로 뭔 짓을 해도, 어떤 음악을 연주해도 된다는 파격이 각광받기 시작했다고 할까? 타니모션 역시 잠비나이처럼 기존의 국악을 해체한 자유분방한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퉁겨서 울림을 낸다는 ‘탄(彈)’과 이모션이 만난 팀 이름의 어원을 들으면 퓨전국악그룹일 것 같은데, 사실 타니모션의 음악은 퓨전국악으로 한정하기에 국악의 요소가 매우 약하다. 타니모션의 리더로 눈뜨고코베인의 멤버이자 영화음악을 만들기도 한 연리목은 우연히 생황, 아쟁과 같은 국악기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직접 국악의 재해석을 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들의 음악은 국악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국악기로 서양의 음악을 연주한다는 인상이 강하게 느껴진다. 다양한 리듬과 장르가 국악기를 통해 표현되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다. 헌데 음악 자체가 그리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물론, 이것은 취향의 문제일 것이다.
Various Artists ‘해녀, 이름을 잇다’
무형문화유산인 해녀를 기리기 위한 헌정앨범. 정훈희, 한동준, 윤영배, 프롬, 김목인, 한소현, 강아솔, 데빌이소마르코, 에브리싱글데이, 로큰롤라디오, 여창가객 이기쁨, 배우 윤희석, 기타리스트 정성하 등이 해녀를 위해 만든 곡을 실었으며, 신예 작가들과 협업을 통해 일러스트, 단편소설, 캘리그래피, 사진도 음반에 담겼다. 처음 앨범을 받았을 때에는 책인 줄 알았다. 책(아니 음반)을 열어보니 노래 가사들 외에 뮤지션들의 곡을 만든 소회도 담겼다. “내가 하고 있는 전통음악을 박물관의 박제품처럼 취급하듯, 사람들은 해녀 역시 옛날이야기로 느끼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이기쁨의 말처럼 해녀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다. 헌데 음악을 들으며 글을 읽어보니 해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더라. 김목인은 ‘해녀와 바다’라는 곡을 만들기 위해 여러 문헌을 찾았고, 그러면서 해녀들의 삶에 경의를 표하게 됐다고 한다. 그가 찾은 문헌처럼, 이 음반도 해녀에게 다가가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요새 관광 차 제주도에 많이들 간다고 하는데, 짬을 내서 이 음반을 들어보는 것도 좋을 듯.
재즈오텍 ‘Don’t You Know That’
재즈오텍의 3집. 재즈오텍은 프로듀서 이태원의 원 맨 프로젝트 밴드다. 재즈오텍은 지난 2003년 프로듀서의 앨범이라는 게 국내에 낯설 무렵에 재즈오텍의 1집 ‘하드웨이(Hardway)’를 발매됐다. 실연자가 아닌 ‘프로듀서의 앨범’이라는 아직도 국내에서는 매우 드물다. 설명하자면 프로듀서가 작사 작곡을 하고 밴드 멤버를 조직해 연주하게 하는 것으로 웬만한 인기가수 앨범보다 많이 팔린 퀸시 존스의 ‘듀드(Dude)’ ‘백 온 더 블락(Back on The Block)’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재즈오텍은 음악적으로 R&B에 기반을 둔 스무드재즈를 추구한다. 국내에는 포플레이로 상징되는 장르이기도 한데, 이번 앨범에는 포플레이의 원년멤버인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리 릿나워를 비롯해 제프 로버, 알렉스 알 등 미국의 정상급 연주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미국의 최고 연주자들이 모여 미국의 스무드재즈를 연주했으니 완성도야 나무랄 데가 없다. 가령 미국 최고의 세션맨인 폴 잭슨 주니어 등의 앨범과 비교해 봐도 사운드 면에서 크게 뒤지지 않는다. “이게 한국 재즈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이 앨범의 목적 자체가 한국적인 무언가를 찾는 것이 아니라, 미국 스무드재즈의 어법을 구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등의 문제는 없어 보인다.
토니 베넷 & 레이디 가가 ‘Cheek To Cheek’
토니 베넷과 레이디 가가가 함께 한 재즈 앨범. 둘의 만남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로빈 후드 재단의 갈라 쇼에서 레이디 가가가 냇 킹 콜의 ‘오렌지 컬러드 스카이(Orange Colored Sky)’를 부른 걸 토니 베넷이 보고 함께 재즈 앨범을 만들 것을 권한 것. 같은 해 발매된 토니 베넷의 앨범 ‘듀엣 II(Duets II)’에서 둘은 ‘더 레이디 이즈 어 트램프(The Lady Is A Tramp)’를 정말 맛깔나게 불렀다. 국내에서는 레이디 가가를 그저 퍼포먼스를 잘하는 가수로 인식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기본적으로 발성이 제대로 된 가수다. 능히 재즈 스탠더드까지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이다.(재즈를 할 줄 아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은 정말 큰 차이다) 60살 차이가 나는 할아버지와 손녀뻘의 협연이지만, 세월의 간극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흔 살 가까이 된 토니 베넷의 건재한 보컬도 놀랍지만 그보다 더 대단하게 느껴지는 것은 재즈 보컬리스트로써 가가의 노래다. ‘에브리타임 위 세이 굿바이(Everytime We Say Goodbye)’를 소화하는 모습은 50~60년대의 블론드 재즈 보컬리스트라고 해도 속아 넘어갈 만하다.
아리아나 그란데 ‘My Everything’
새롭게 팝계의 요정으로 떠오른 아리아나 그란데의 정규 2집. 이제 갓 스무 살을 넘긴 아리아나 그란데는 작년 데뷔한 신인들 중 최대어로 꼽혔다. 인기로 치면 우리나라의 아이유와 비슷하다고 할까? 귀여운 외모에 폭발적인 성량을 자랑하는 그란데. 휘트니 휴스턴, 머라이어 캐리를 닮고 싶어 해 특히 R&B 창법에 강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미국의 전형적인 디바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번 앨범에서는 대세 여성 래퍼 이기 아젤리아가 피쳐링한 ‘프라블럼(Problem)’이 올해 상반기 최고의 히트곡으로 떠오르며 그 인기를 확인시켰다. 전작은 베이비페이스가 프로듀서를 맡아 정통 R&B의 색이 강했던 반면 이번에는 맥스 마틴, 제드, 위켄드 등의 참여로 음악적으로 보다 다채로워졌다. 제드가 만든 ‘브레이크 프리(Break Free)’ 등과 같이 최근 트렌드를 따라간 어법이 엿보인다. PBR&Bd의 강자 위켄드가 피처링한 ‘러브 미 하더(Love Me Harder)’도 무난하게 어울린다.
레너드 코헨 ‘Popular Problem’
레너드 코헨의 13집. 영어를 잘 못하는 나 자신이 가장 불만스러울 때 중 하나가 레너드 코헨, 밥 딜런과 같은 이들의 노래를 들을 때다. 팝을 좋아하는 많은 이들이 “음악만 들어도 좋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레너드 코헨을 들을 때에는 절반을 놓치는 기분이 든다. 앨범의 부클릿을 보니 그가 구두를 닦는 모습이 보인다. 이유가 궁금해 속지를 읽어보니 첫 곡 ‘슬로우(Slow)’에 나오는 가사 ‘구두끈을 졸라매고 있지만, 뛰고 싶진 않아’라는 가사와 관계가 있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다. 자, 이제 음악을 들어보자. 여든의 코헨의 음색은 여전히 지성적이면서도 어두운 취향이 잘 나타난다. 수록곡들은 음반 프로듀서를 맡은 패트릭 레너드와 함께 공돋으로 만들었다. 코헨은 음악은 낡기는커녕 꽤 현대적인 스타일을 들려주고 있다. 다행히도 속지에는 전곡의 가사가 한글로 번역돼 있다. ‘내 심장이 썩는 것을 막으려고 심장을 얼게 놔뒀어요’라고 노래하는 ‘올모스트 라이크 더 블루스(Almost Like The Blues)’와 같은 노래 가사를 읽어보는 것 자체만으로 숙연해진다. 노년에도 세상을 냉철하게 바라보는 거장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얼마나 큰 축복인가.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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