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리, 이영애, 도지원, 송윤아, 장서희, 김서형, 수애, 고현정, 심은하(왼쪽위부터 시계방향)
악역이 탄탄해야 드라마가 산다.최근 인기 드라마에서는 악역이 주인공보다 더 큰 화제와 인기를 모으는 경우가 적지 않다. 드라마 속에서는 여전히 착한 여주인공들이 행복을 움켜 쥐지만,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때로 나쁜 여자들의 매력이 더 강하게 각인된다. 악역이라는 제한된 역할을 뛰어넘어 시청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매력적인 악녀들을 살펴봤다.
KBS2 서궁(1995) 김개시
사극 속 이영애라고 하면 단연 ‘대장금’이 떠오르지만, 그 이전에 사극 속 표독스러운 악녀 연기를 선보인 바 있다. 이영애는 광해군과 김개시(김개똥), 그리고 인목대비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렸던 드라마 ‘서궁’에서 장희빈, 장녹수, 정난정과 함께 조선 최고의 요부로 꼽히는 김개시 역할을 맡아 파격 변신을 선보였다. 특히 인목대비 이보희와 김개시의 불꽃 튀는 싸움이 긴장감을 자아냈다.
MBC 신데렐라(1997) 장혜진
‘신데렐라’는 한 남자를 둘러싼 자매의 사랑이야기를 통해 동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눈길을 모았다. 황신혜는 상류사회에 대한 동경과 성공의 욕망을 지닌 장혜진을 맡아 동생 장혜원(이승연)의 사랑을 방해했다. 다소 뻔한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동생을 괴롭히는 못된 언니를 실감나게 연기한 황신혜의 악녀 변신이 드라마의 인기를 끌어 올렸다.
SBS 미스터큐(1998) 황주리
최근 MBC ‘마마’로 컴백해 모성애 연기로 가슴을 울리고 있는 송윤아도 악역으로 이름을 알린 배우다. 송윤아는 허영만의 인기 만화를 원작으로 한 미니시리즈 ‘미스터 큐’에서 디자인 실장 황주리 역을 맡아 악역으로 열연했다. 회사 직원인 이강토(김민종)을 흠모해 연적 한해원(김희선)을 사사건건 방해하고 괴롭히지만, 실력으로 연패한 후 개과천선하는 결말을 맞았다. 당대 톱스타였던 김희선에 못잖은 미모와 톡 쏘는 악녀 연기로 시선을 모았다.
SBS 청춘의 덫(1999) 이윤희
헌신적으로 뒷바라지 한 남자에게 버림받고 딸까지 죽자 복수의 화신으로 거듭난 여자. ‘청춘의 덫’에서 윤희(심은하)가 동우(이종원)을 향해 통해낸 “당신 부숴 버릴거야”라는 대사는 아직도 명대사로 남아 있다. 60%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한 ‘청춘의 덫’의 중심에는 심은하의 섬뜩한 악녀 변신이 있었다. 자신과 딸을 버리고 돈을 선택한 남자에 대한 비정한 복수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통쾌함을 느끼게 했다.
MBC 이브의 모든 것(2000) 허영미
최근 예능에서 저질 체력과 허당 매력으로 사랑받고 있는 김소연. 많은 시청자들이 그런 모습을 의외라고 생각한 것은 김소연이 작품 속에서 똑부러지는 캐리어우먼을 주로 연기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브의 모든 것’은 김소연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작품으로, 장동건과 채림이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당대 톱스타들 사이에서 김소연은 허영미 역을 가증스럽고 악독하지만 매력있고 여성스러운 악녀로 소화해 내며 당당히 존재감을 보여줬다.
SBS 여인천하(2001) 경빈
이전까지 사극 속 악녀라고 하면 장희빈이 대표적이었지만, 2000년대 사극에서 단연 두드러진 악녀는 ‘연인천하’의 경빈 박 씨다. 강수연과 전인화의 활약이야 이미 점쳐진 바였으나 경빈 도지원의 활약은 시청자의 허를 찌른 ‘신의 한 수’였다. 강수연과 전인화 등 ‘기 센 여자’들 사이에서 결코 지지 않는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뭬야?”를 외치던 경빈은 시청자들의 미움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MBC 대장금(2003) 최상궁
흥행돌풍을 일으켰던 ‘대장금’의 시청 포인트는 주인공 장금이가 위기의 순간을 어떻게 지혜롭게 헤쳐 나가느냐에 있었고, 이를 위해선 주인공을 위협하는 악역 최상궁이 있어야 했다. 견미리는 이 보다 더 독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표독스러운 연기로 ‘대장금’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가업을 잇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친구를 죽인 과거, 이를 덮기 위한 악독한 음모와 온갖 권모술수. 그럼에도 막을 수 없는 정의의 심판을 받기까지 처절한 악행을 보여준 최상궁은 ‘대장금’의 숨겨진 인기 주역이다.
MBC 인어아가씨(2002) 은아리영
장서희는 MBC ‘인어아가씨’에서 조강지처를 버리고 간 아버지 때문에 충격으로 장님이 된 어머니와 동생을 잃은 복수심으로 배다른 동생의 애인을 뺏는다는 줄거리는 당시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드라마 작가가 된 아리영은 배우인 심수정을 남편에게 버림받는 여자 역할로 캐스팅 해 자신과 어머니가 느꼈을 심정들을 대신 읽게 함으로써 처절한 복수심을 보여줬다. 특히 아리영이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심수정과 서로 따귀를 때리는 장면은 엄청난 화제가 됐다.
SBS 아내의 유혹(2009) 신애리
SBS 드라마 ‘아내의 유혹’ 신애리 역을 맡은 김서형은 ‘버럭애리’라는 별칭과 함께 2008년 악녀 전성시대를 열었다. ‘아내의 유혹’은 지고지순한 여주인공이 친구 신애리와 남편에게 배신 당한 뒤 얼굴에 점을 찍고 신분을 세탁해 복수하는 내용. 김서형은 처절하게 복수 당하는 신애리가 악에 받쳐 패악을 부리는 모습으로 통쾌함을 더했다. 김서형은 에너지를 쏟아 붇는 열연으로 캐릭터의 매력을 200% 높였으며, 목이 쉴 정도로 소리를 지르는 김서형의 연기가 시청자들을 압도했다.
MBC ‘선덕여왕'(2009) 미실
‘선덕여왕’은 또 하나 전설적인 사극 속 악녀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미실은 ‘선덕여왕’의 모든 캐릭터와 연결돼 영향을 발휘하며 이야기의 중시이 됐다. 권력에 대한 욕망 이전에 신라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신라를 차지하려는 행보를 설득력있게 그려냈고, 고현정은 카리스마와 아름다움을 동시에 뿜어내며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SBS 야왕(2013) 주다해
청순미의 대표주자였던 수애는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SBS ‘야왕’에서 불우한 어린시절을 벗어나 영부인이 되는 주다해 역할을 맡아 새로운 악녀의 아이콘으로 거듭났다. 주다해는 자신의 살인누명까지 대신 뒤집어 쓴고 모든 것을 희생한 남자 하류(권상우)를 버리고 딸까지 죽게 만든 뒤 재벌2세 백도훈(정윤호)와 결혼했다. 끝내 백도훈까지 죽음으로 몰아 넣고 대통령 후보 석태일을 이용해 영부인이 되는 등 자신의 야망을 위해 물불을 아끼지 않는 악행으로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다.
MBC 왔다 장보리(2014) 연민정
올해 안방극장에는 마침내 드라마 속 악녀의 완전체라 불리는 연민정이 등장했다. 멀쩡히 살아있는 생모를 죽었다고 거짓말을 한 것부터 시작해, 장보리(오연서)의 정체를 알면서 숨기고, 애인과 아이를 버리고, 비술채를 차지하기 위해 온갖 협박과 비겁한 술수를 동원하고, 급기야 살인미수에 이르는 등 악행 종합세트로 ‘암 유발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유리는 소름끼치는 악녀 역할을 통해 데뷔 이래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으며 주인공보다 사랑받은 악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글. 최보란 orchid85a@tenasia.co.kr
사진. 드라마 방송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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