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스타 PD’의 전성시대다. 본래 방송국의 프로그램기획자로 작품 선정, 인력관리, 예산 통제 등을 담당했던 PD들의 활동 영역은 최근 들어 전에 없이 확장됐다. PD들이 프로그램의 전면에 서는 경우도 잦아졌다. 예능 PD들은 프로그램의 중심에서 ‘제3의 멤버’와 같이 활약을 펼치기도 한다.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도 “관찰자는 관찰하는 대상과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옛말이 된 지 오래다.
PD의 이름이 곧 하나의 브랜드처럼 여겨질 만큼 명확하게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한 PD들이 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각기 다른 분야에서 독창적인 색깔을 드러내며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는 이들에 시청자들의 열광 한다. 그들이 그려내는 세계가 그만큼 깊고 중독성이 강하다는 증거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소위 ‘스타 PD’라 불리는 이들은 무엇을 보고 있으며, 그들이 그려내는 세계는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려 하는 걸까.
2001년 KBS 공채 27기로 입사한 나영석 PD는 ‘해피선데이’라는 KBS의 간판 예능 프로그램을 맡아 ‘여걸식스’, ’1박2일’ 등 인기 프로그램을 연이어 배출해낸다. 특히 ’1박2일’에서는 제6의 멤버로 활약했고, 그는 스타PD 반열에 오르게 됐다.
그러다 12년 만인 2013년 KBS의 품을 떠나 케이블채널 CJ E&M으로 이적했다. 기대 반 의혹 반, 그를 향한 시선이 교차하는 가운데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 자신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이들과 함께 또 한 번의 성공을 기록한다. 바로 tvN ‘꽃보다 할배’ 그리고 ‘꽃보다 누나’다. ‘꽃보다 할배’의 경우, 실버 예능의 시작을 알렸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했다.
‘꽃보다 할배’는 오는 6월 중국 동방위성에서 중국판으로 제작, 방영을 앞두고 있는데 나영석 PD는 여러 차례 중국을 방문해 중국 제작진에 프로그램 노하우를 전수했다. 그렇게 나영석 PD의 활동반경은 또 한 번 확장되기에 이르렀다.
명실 공히 국내를 대표하는 스타PD인 나영석, 예능역사의 중심에 선 그에게 중국을 물었다.
Q. 중국판 ‘꽃보다 할배’의 경우, 앞서 중국에 진출해 엄청난 히트를 친 MBC의 ‘아빠!어디가?’와 달리(‘아빠!어디가?’는 포맷 판매 형식으로 중국에 진출했다) 공동 제작의 형태라고 들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식의 작업인지 들려달라.
나영석 PD : 해외에 방송을 수출한다고 하면 보통은 포맷 수출을 의미한다. 그야말로 공식 라이센스를 주는 형태다. 하지만 이번 ‘꽃보다 할배’의 경우, 포맷 수출은 당연히 포함되어 있는 것이고 공동제작 및 컨설팅에 관한 것들도 포함된 일종의 패키지 계약이라고 보시면 된다. 중국에서 그런 부분에 니즈가 있었다. 단순한 프로그램 설계도 공유가 아닌 직접 제작을 해본 경험자가 와서 컨설팅을 해주고 자신들의 제작 방향을 잡아줬으면 하더라. 우리로서도 중국시장 그리고 중국 필드에서의 제작 경험 등이 필요했다. 양쪽의 니즈가 맞아서 지금의 방식으로 작업하게 됐다. 내가 직접 중국판의 연출을 맡지는 않지만, CJ팀이 같이 찍고 있고 또 편집도 하고 있으니, 사실상 거의 제작을 하는 식이다.
Q. 흥미롭게 보고 있는 것이, 사실 중국에서 저작권을 이렇게까지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몰랐다는 것이다. 해적판으로 많은 프로그램이 생겨나는데도 불구하고, 정식으로 판권을 구입하고 공동 제작까지 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영석 PD : 그만큼 한국 콘텐츠의 힘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그쪽에서 우리 것을 마냥 베낀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이, 법을 잣대로 들여다본다면 굉장히 복잡하다. 소송을 건다고 하더라도 양국의 법이 다 달라 실질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효과는 없으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맷 구입을 하고 싶어하고 또 컨설팅까지도 요청하는 이유는, 한국 콘텐츠의 힘이 강하기에 ‘오리지널 제작진’이 함께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장사가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 오리지널 판권 소유라는 이유만으로 광고 단위도 달라지고 인지도 자체도 달라진다. 중국 업계 관계자들은 물론, 시청자들까지 한국을 잘 알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쉽게 말해, 누군가가 ‘무한도전’을 베낀다고 한다면 중국 시청자들 역시도 ‘한국이 오리지널이고, 저건 가짜다’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김태호 PD가 직접 와서 만들었다고 하면, ‘아, 이건 진짜구나’ 하는 것이다.
Q. 현재 중국의 예능은 어떤 수준이라고 보는가.
나영석 PD : 예능이라는 개념자체가 정립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리얼리티쇼나 퀴즈쇼 등이 갑자기 우후죽순 생기는 빅뱅시기다. 그래서 이런 류의 예능에 대한 제작 경험이 있는 PD들이 많지 않다. 다 처음이라 더 외부 전문가들의 티칭을 받고 싶어 한다.
Q. 나영석 PD 개인에게도 중국 인맥 형성은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는데, 이를 바탕으로 중국 시장에서 연출까지 해보려는 계획은 혹시 없나.
나영석 PD : 크게 없다. 아무래도 예능이라는 것은 현장에서의 스킨십이 중요한데 내가 중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니 말이다. 다만 시장에 대한 인식은 하고 있다. 직접 가서 연출을 해야겠다까진 아니더라도, ‘꽃보다 할배’가 대만이나 중국에서 그렇게 큰 인기를 끄는 것을 보고 중국시장을 인지하며 만들게 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한국시장에서 히트하는 것이 우선이다. 차이라고 하면, 과거에는 한국 시장 다음이 없었는데 이제 중국이나 대만이라는 다음이 생긴 것 정도다. 그리고 요즘과 같은 경우에는 또 중국만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 동남아나 미국, 유럽 등 정말 경계가 없는 것 같다.
Q. 중국판 ‘꽃보다 할배’가 현지에서 어느 정도의 반응을 이끌 것이라 예상하고 있나. 중국 현지에서 거는 기대는 꽤 큰 것 같다.
나영석 PD : 잘 모르겠다. 워낙에 변수들이 많으니까. 하지만 어느 정도는 반응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아빠!어디가?’나 ‘꽃보다 할배’나, 또 최근에는 ’1박2일’까지도 수출이 됐었는데 한중일 아시아 쪽 정서가 비슷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이에 대한 무한한 애정, 어른에 대한 공경 등 공통 정서가 있어 어느 정도의 만듦새만 있다면 기본적인 결과는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최근에 한국 콘텐츠들이 너무 많이 중국으로 진출하다보니 중국 정부에서 일종의 규제조치를 취했다. 프라임 타임에 외국 포맷 프로그램 방송을 제한한다거나 하는 식의 룰이 적용되고 있는데, 따라서 그 하나의 외국 포맷 프로그램을 신경 써서 수입해가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동방위성이 ‘꽃보다 할배’를 선택했다는 것은 그만큼 기대를 걸고 있기 때문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Q. 중국 제작진과 컨설팅을 하는 과정에서 한국식 예능 문법에 낯설어 한 점은 없었나.
나영석 PD : 이서진 씨 몰카 부분이 그랬다. 한국이니까 가능한 특수한 상황이기도 하고, 나와 이서진 씨, 그리고 이서진 씨 소속사 관계가 빚어낸 특수한 상황이기도 했다. 중국 쪽에서는 이 부분이 재미는 있는데 엄두를 낼 수가 없다고 하더라. 그래서 뺄 것은 빼고 하라고 했다. 또 우리의 경우, 누군가를 미팅할 때도 카메라를 설치해놓고 촬영을 하는데 중국은 아직은 리얼리티 쇼에 익숙하지 않아 그 부분 역시 낯설어한다. 우리의 경우, 앵글이 흔들려도 리얼리티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면 그 쪽은 아직은 예쁜 원샷, 드라마 식의 연출을 생각한다.
Q. 중국에서 한국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꽤 높은데, 역으로 중국 콘텐츠에 대한 한국의 관심도는 어떤가.
나영석 PD : 없다. 중국을 무시한다는 뜻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격차는 존재하는 것 같다. 마치 반도체 시장에서 이미 16메가를 만들고 있는데 ’4메가에는 관심이 없으세요’라고 물어보는 것과 같다. 예능에도 일종의 발전단계가 있는데, 우리가 이미 지나온 것을 중국이 지금 거쳐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중국 사람들이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즐기느냐하는 대목은 궁금해진다. 기회가 있으면 더 들여다보려고 하고 있다.
Q. 중국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규제다. 한류가 불을 지피려고 하면 중국 정부의 규제가 발목을 붙잡는다는 점이 늘 장애로 작용한다.
나영석 PD : 그렇다. 규제가 너무 많다. 하지만 또 10년 전과 비교하면 새로운 세상이다. 할리우드 영화가 중국시장에 들어간 것도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사람들이 청계천가서 일본 음악을 들으니까 허용을 하게 됐다. 중국 역시 같다. 나라라는 것은 결국 국민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공산주의 국가이다 보니 그 속도가 더디기는 하지만, 결국 국민의 욕망을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10년 후에는 얼마나 더 열리게 될까. 예측은 쉽지 않지만 그 때를 대비해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협력하고 스킨십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중국 시장을 대하는 우리나라의 많은 분들이 시장이 열렸다고 하면 당장 가서 일확천금을 벌어야겠다며 공격적으로 접근을 하는데, 외화벌이는 물론 중요하지만 문화상품이라는 것은 일방적으로 팔아 돈을 요구할 수 있는 단순한 작업은 아니다. 그렇게 시작한 비즈니스는 오래갈 수도 없다. 상황이 무르익을 때까지 교류와 협력을 하고 서로를 알아가며 스킨십을 하는 것이 중?다. 적절한 상황이 됐을 때 이룩한 인프라를 가지고 같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Q. 분명한 결과물이 나오기까지의 시간은 더디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중국쪽에만 너무 많은 것을 빼앗긴다는 시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나영석 PD : 돈 얼마 준다고 가서 우리 노하우만 더 빼앗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은 있다. 하지만 문화와 콘텐츠는 그렇게 카피해서 가져갈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할리우드를 예를 들면, 그들의 작업공정이나 노하우는 다 오픈되어 있다. 배워올 수 있는 방법도 수천가지다. 하지만 할리우드 만한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파트너와 양질의 콘텐츠를 목표로 같이 발전을 시켜나가고, 거기서 싱크로가 맞아야 부가적인 이익, 부가사업 계기들이 생겨난다. 보다 길게 내다보고 교류 협력을 해야 하는데, 자꾸만 비싼 값에 받아 돈 벌고 나가야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결국 한류에 찬물 끼얹는 것과 같다. 예컨대, 우리도 미국의 유명 제작사들이 와서 웰메이드 드라마 만들어 방영하고 돈 빼먹고 가버리면 얼마나 기분 나쁜가. 가르쳐줄 것은 가르쳐주고, 문화를 위해 기여할 것은 기여하고 그런 형태로 차츰차츰 가는 것이 바로 문화산업이다.
물론 리스크는 있다. 중국 사람들이 처음에는 막대한 자본으로 끌어들인 뒤에 다 빼먹었다 여기면 버린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내가 겪어보지는 못했지만, 그런 생각들도 있다는 것을 안다. 당연히 조심해야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더더욱 중요한 것이 지속적인 교류와 스킨십이 아닐까 생각한다. 중국에는 사기꾼도 정직한 사람도 다 있지만, 좋은 선례를 만들고 좋은 구조들을 만들어나가야 리스크 확률이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시간 내에 효과를 보는 판에서는 반드시 사고가 생기기도 하고.
Q. 최근에는 중국시장에는 한국 파트너들에 대한 불만도 상당하다고 들었다.
나영석 PD : 일본은 한류가 거의 끝났다. 한류가 얼어붙었다고들 한다. 이후에 열린 중국시장에 다 몰려가는 형국인데, 이 시점에서 왜 일본에서의 한류가 위기인지 고민해야한다. 어떤 부분이 잘못의 시작이었는지 전략적인 지도를 짜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지도를 만들어 중국이라는 시장에 예민하게 접근해야한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그런 부분에 대한 반성이 부족하다. 국가적 교류에서는 늘 외국에 대해 배타적일 수밖에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 한국 배우가 중국으로 가서 재화를 창출해서 가져가는데 우리에게 해준 것은 뭐냐고 물어볼 수밖에 없다. 그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있어야 한다. 연예인이 가서 팬미팅을 여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일정 부분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어떤 문화적인 기여를 해야할까를 고민하는 것이 바로 사업이다.
Q. 끝으로, 혹시 나영석 PD의 프로그램에 중국 연예인이 출연하게 될 가능성은 없을까.
나영석 PD : 지금 당장은 없다. 아직은 한국 방송에 출연할 만한 인지도를 갖춘 중국 연예인이 그리 많지 않고, 유명한 이들의 몸값은 또 어마어마하게 높다. 아직은 서로의 싱크로를 맞추는 것이 급선무다. 다만, 한국의 할배들은 중국판 ‘꽃보다 할배’에 출연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6월 방송에는 할배들의 인사 메시지가 들어갈 예정이며, 중국 할배들이 첫 여행은 프랑스와 스위스로 갔지만 다음 여행은 중국으로 올 가능성도 매우 높다. 그 방송을 접한 중국인들이 한국의 설악산, 동해를 찾게 된다면 거기에서 오는 파급효과는 방송 교류 이상의 결과를 줄 것이라 기대한다.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제공. 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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