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많은 기대가 쏠렸다.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부터 기대작이었다. ‘다모’ ‘베토벤 바이러스’ 등을 연출한 스타 PD 이재규 감독의 첫 스크린 연출작, 현빈의 군 제대 후 첫 복귀작 그리고 정재영, 조재현, 한지민, 조정석, 박성웅, 김성령, 정은채 등 화려한 캐스팅까지 어느 것 하나 부족함 없었다. ‘역린’은 이렇게 날로 기대가 커져만 갔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언론 시사회 이후 언론과 평단의 혹평을 들어야만 했다.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별다른 홍보 활동을 못하면서 이 같은 혹평은 더욱 눈에 띄었다. 감독 입장에선 당혹스러웠다. ‘역린’을 통해 하고 싶었던, 관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다소 묻힐 수밖에 없었다. 물론 혹평과는 별개로 관객의 발걸음은 매서웠다. 이재규 감독은 안도했다. 그리고 믿었다. ‘역린’이 지닌 본질을 느낀 관객이 많았을 거라고. 이재규 감독을 만나 그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경청했다.

Q. 우선 흥행에 있어 걱정을 많이 했을 것 같다. 현재 흥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이재규 감독 : 손익분기점을 넘었다는 문자를 받고 나서 한시름 놓긴 했다. 처음 혹평이 쏟아졌을 땐 당혹스러웠다. 같은 어구와 말들이 반복되는데 그 표현 수위는 점점 높아지더라. 수일 지나 차분히 글을 읽어보면서는 시선이 다르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리고 관객들은 어차피 여러 관점에서 바라볼 테니 영화의 장점이나 존재 이유를 아시는 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 영화를 믿었다. 영화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역린’을 즐길 수 있고, 같이 호흡할 수 있는 관객이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다. 그런 관객들로부터 위안을 얻은 것 같다.

Q. 혹평에 관해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솔직히 그중 해명하고 싶은 혹평이 있을까.
이재규 감독 :
관점이 다르고, 표피적으로 바라본 것 같다.

Q. 사실 이 때문에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묻히는 듯하다.
이재규 감독 :
그게 팔자라고 생각한다. 한쪽 견해가 너무 커져서 마치 그게 전부인 것처럼 보여서 속상하긴 했다. 하지만 영화의 본질은 완전히 왜곡될 순 없다고 생각한다. 성공, 실패를 말할 순 있지만, ‘역린’이 가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Q. 제작에 들어간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부터 ‘역린’은 기대작이었다. 이 때문에 촬영 중간중간 불안하기도 했을 거고, ‘잘 만들어야 한다’는 주위의 말도 압박으로 느껴졌을 것 같다.
이재규 감독 :
제작사나 투자사에서는 한 번도 그런 뉘앙스를 비추진 않았다. 내가 불안해하면 오히려 나를 위로해줬다. 물론 내 판단은 있지만, 설레고 두려울 수밖에 없다. 영화를 못 만들진 않았다고 확신하다가도 어느 순간 불안해할 수밖에 없었다. 촬영, 편집 마치면서부터 조금씩 마음이 편해졌다.

Q. 원래 역사에 관심이 많았나.
이재규 감독 :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다. 클래식도 썩 잘 알지 못한다. 다만 뭔지 모르지만 (클래식을) 많이 듣기 했다. 역사적 인물을 알면서 호기심이 들었던 인물 중 하나가 정조였다. 삶의 순간을 드라마나 영화로 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조의 그 날 하루를 이야기하면서 그 이면의 것들이 아주 강하게 다가왔다.

Q. 드라마 PD로 명성을 얻었다. 작품성과 대중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어쩌면 안정적인 드라마 PD를 놓고 영화를 선택하게 된 셈인데, 그 이유가 궁금하다.
이재규 감독 :
계속 드라마를 하면서도 영화에 대한 향수가 있었다. 더 나이 들기 전에 한 번 해봐야지 하다가도 드라마에 빠져 있으면 그런 생각이 약해진다. 그러다가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할 때 다시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토벤 바이러스’ 시놉시스에 기형도 시인의 ‘먼지투성이 푸른 종이’란 시를 얹었다. ‘베토벤 바이러스’를 기획하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굉장한 모티브가 됐던 시다. 그러면서 ‘베토벤 바이러스’ 캐릭터들이 그랬던 것처럼, 내가 잊었던 건 뭐가 없나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후 시나리오를 받아 보기도 했고, 예전부터 생각하던 것을 개발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역린’을 만나게 됐다. 지나고 나서 보면 ‘베토벤 바이러스’가 인생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안 하는 짓을 해봐야 재미를 느끼는 것 같은 게 이유다. 항상 뭔가 새로운 걸 하다 보면 얻는 것도 있고, 반성도 하게 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Q. ‘베토벤 바이러스’ 이후 영화를 생각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역린’을 만나게 됐다고 했는데 연출을 맡기까지 과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들려 달라.
이재규 감독 :
내가 가지고 있는 아이템 3~4개를 개발하려고 했고, 원작 검토도 예닐곱 편 됐다. 또 20~30편의 시나리오를 받았다. 그 가운데 ‘역린’을 선택하게 된 건 첫 시놉시스였는데도 강하게 잡아당겼다. 감정적으로 절제된 상태에서 이야기를 끌고 간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극 전체를 관통하는 비극성이 아주 좋았다. 작가가 당시 사회를 천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좋아하는 이야기 아이템이 버디 성향의 이야기다. 정조와 갑수, 갑수와 을수, 을수와 월혜 등 모두 공통된 트라우마를 지녔다. 그런 지점들이 좋았다. 이처럼 여러 면에서 내가 연출해보고 싶은 최적의 시나리오였다. 표현할 수 있겠느냔 두려움은 있었지만, 해보고 싶은 욕구는 강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영화사 대표님께 초고를 진행하자고 했고, 작가님이 한 달 만에 초고를 완성했다.

Q. 그런데 영화사 대표하곤 오랜 친분이 있었나 보다. 보통 초고가 됐던 완성된 시나리오로 제안하기 마련인데 단지 시놉시스만 가지고 이야기가 오갔으니 말이다.
이재규 감독 :
초이스컷(‘역린’ 제작사) 최낙권 대표님과 예전부터 연이 있었다. 영화를 하게 되면, 대표님과 첫 작품을 하고 싶다고 구두 상으로 얘길 하곤 했다. 실질적으로 해보고 싶은 원작 하나 말씀드렸고, 대표님도 긍정적이어서 원작을 샀다. ‘팔란티어’란 작품인데 이건 프리프로덕션만 몇 년 걸릴 작품이어서 ‘더킹 투하츠’를 먼저 하게 됐다. 그러고 나서 짜임새 있고 좋은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 싶었는데 대표님이 최성현 작가에게 시놉시스 달라고 해서 본 거다. 참 그리고 ‘팔란티어’는 지금도 ‘ing’다.

Q. 정유역변이란 역사적 토대 위에 허구의 인물이 더해진다. 이를 조화롭게 엮어내는 게 중요했을 것 같다. 광백, 갑수와 을수, 을수와 월혜, 복빙 등 가상의 인물이 여럿 등장하면서 각 인물의 분배와 균형에서 어려움을 겪었을 것 같다.
이재규 감독 :
시놉시스 단계에서 균형감은 정해져 있었다. 정조, 갑수, 을수 등 도구화된 세 인간형의 균형감이 당연히 필요했다. 정조는 집단의 억압 속에서 인간으로 존재 가치나 본성이 억눌린 상태다. 갑수와 을수도 다르지 않다. 이들이 도구화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타적인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데, 이처럼 타자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서로 부딪히는 그 하루로 운명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는 거다. 이 지점이 우리가 알고 있는 정조로 변하게 되는 단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왕으로서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내일을 생각하는 교과서적인 이야기일 수 있지만, ‘역린’의 근간 중에 하나다. 그 이야기를 잘 전달했느냐, 못 전달했느냐는 감독의 몫이지만, 이야기가 산만하다거나 한쪽 이야기에 집중해야 하지 않느냐는 아닌 것 같다. 또 모티브 적으로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드라이브’ 등의 영화들이다. 또 ‘리어왕’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서로서로 죽이게 되는 비극적 역사를 가지고 있다. 동일한 상황이라고 본다. 가족이 가족을 죽일 수밖에 없고, 인간이 무엇이냐는 물음을 내놓게 된다.

Q. 나름의 기대치는 분명 있었을 것 같다.
이재규 감독 :
반주인공이 명확하지 않은 이야기이다. 집단이 만들어낸 표피적인 반주인공 캐릭터만 나온다. 정순왕후 역시 절대 악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렇지 않다. 그런 상황 속에서 각성이나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다. 분명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했을 것이고, 이를 통해 원하는 리더 상이 나온다는 이야기가 들어 있다. 갑수와 을수의 희생이 정조를 각성시켰다고 볼 수 있다. 작은 것을 다하면 이뤄진다는 건 겉으로 드러나는 메시지다.

Q. 사실 많은 사람이 새로운 무언가를 많이 기대했던 것 같다. 드라마를 내놓을 때마다 그런 평가를 받았으니 말이다. 아마 본인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었을 텐데, ‘역린’을 통해 나름대로 뭔가 시도한 게 있나.
이재규 감독 :
성공이냐 아니냐는 내가 평가할 건 아니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 대부분이 감정 과잉이라 생각한다. 지나치게 조미료가 많기도 하고. 그래서 이야기 적으로는 직접 긴장을 유발하는 장치를 쓰지 않더라도 충분히 몰입하는 영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어떤 관객은 느끼고, 그렇지 못한 분도 있지만, 그런 시도를 했다고는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분들은 이 이야기가 영화적이지 않다는, 드라마 문법이나 화법에 가깝다는 평이 있었는데 오히려 ‘역린’은 반 드라마적이다. 드라마에선 할 수 없는 방식이다.

Q. 아마 본인도 드라마 스타 PD 출신이란 것 때문에 그런 평가를 듣지 않기 위해 더 많은 준비를 했을 거로 생각된다. 연출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게 무엇인가.
이재규 감독 :
그런 생각을 문득문득 했다.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자고 생각했고, 그에 충실했다. 지극히 드라마적인 이야기가 아니고, 드라마적이지 않은 호흡을 썼다. 그런데 그렇게 바라보니 내가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다. 무 자르듯 단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Q. 꼭 이 배우들이어야 했나. 그리고 직접 섭외를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가장 어려웠거나 쉬웠던 배우는 누구인가.
이재규 감독 :
지금까지 일하면서 글 또는 시나리오 만드는 게 가장 힘들다. 그리고 그다음이 캐스팅이다. 그런데 ‘역린’은 캐스팅 과정이 힘들지 않았다. 지금까지 했던 작품 중 가장 쉬웠다. 제안한 배우가 한 번도 거절하지 않았다. 모든 배우가 적극적으로 동의한 상태에서 시작했다. 시나리오가 좋았고, 본인 캐릭터의 존재 이유를 확실히 느껴서 시작한 것 아니겠나. 그리고 이들이 꼭 필요했느냐고 물어본다면, 당연히 그래서 제안한 거다.

Q. 혹시 드라마 PD로서 배우를 캐스팅할 때와 다른 점이 있었나. 흔히 하는 말로 드라마에 어울리는 배우가 있기도 하고, 영화만 해온 배우들도 있지 않나.
이재규 감독 :
그런 선입견을 품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최대한 배역에 어울리는 적역이 누군가를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드라마 할 때 연출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있다. (배우들의) 이전 이미지나 명성이 스타트 하는 입장에서 필요할 경우가 있다. ‘역린’은 그게 필요한 경우는 없었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 캐스팅이 그런 경우였다. 성실하고, 진실성을 지닌 김명민 씨에게 강마에의 캐릭터를 주는 게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지민 씨에 관해서는 이야기하고 싶다. 전체 130장면 중 여섯 장면 나온다. 상징성을 가진 반주인공 중 하나가 정순왕후인데 표현에 있어 이전 모습과 다르니까 받아들이는 데서 불편함이 있는 것 같다. 지민 씨 연기 결과는 아주 만족했다. 모든 배우가 잘했지만, 그중 연기를 제일 잘해준 배우를 꼽으라고 하면 꼽을 수 있을 정도다. 내가 바라보는 관점과 달랐던 것 같다.

Q. 광고 홍보 영화긴 하지만 ‘언플루언스’를 감독하기도 했다. 그때와 달라진 게 있나.
이재규 감독 :
그땐 아무래도 광고 목적이 더 큰 영화였기 때문에 운신의 폭이 작았다. 광고적 테제를 던져줘야 했다. 하지만 거의 대다수가 영화 스태프였다. 그때 현장에서 의사소통하고, 촬영하는 거에 있어 방법적으로 도움 됐던 건 사실이다.

Q. 스스로 돌아봤을 때, 드라마와 영화 현장에서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본 게 있는지 궁금하다.
이재규 감독 :
로베르 브레송의 책을 읽다 보면, 구현 방법의 가짓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결과치는 확신에서 멀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제일 경계하는 것 중 하나고, 맞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영화 하면서 반대되는 경우가 많았다. 현장에서 의사소통하다 보니 바라보지 않았던 관점이나 생각지 못했던 지점을 보게 됐다. 부딪히기도 하지만, 그 시간이 좋았다. 그래서 공동의 창작물이란 느낌을 많이 받았다. 처음에는 혼란스럽기도 했는데 극이 깊어지고, 풍성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내 것이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의 것이기도 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해야 하나. 드라마 연출자는 영화보다 훨씬 더 독단적이다. 자신의 판단 그대로 실행하는 경우가 많다.

Q. 드라마 스타 PD 출신의 스크린 데뷔는 많지 않더라도 꾸준히 있었다. 그런데 평가적인 부분에선 그다지 높은 평가를 못 받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이유가 있을까.
이재규 감독 :
그건 잘 모르겠다. 그 시행착오는 개별적인 것 같다. 최근에 J.J. 에이브람스도 왔다 갔다 하고, 스티븐 스필버그도 TV를 먼저 하고 영화를 했다. 또 한지승 감독님도 드라마를 해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성공적이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성공적인 경우도 있다. 일반화시키려는 자체가 부담스럽다. 다만 그렇게 이타적인 인간은 아니지만, 드라마와 영화를 모두 할 수 있는 연출자가 돼서 그런 환경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드라마 하는 후배 중에서도 좋은 자질을 가진 친구들이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었으면 한다. 그런 욕구가 강한 것 같다.

Q. 앞으로 이재규 감독의 행보가 궁금하다.
이재규 감독 :
딱 소재를 말하긴 우습긴 한데 드라마를 하게 된다면, 기존 사회 체제가 붕괴한 상태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말하는지가 궁금하다. 미국 드라마 ‘배틀스타 갤럭티카’ 같은 느낌. 지구가 멸망한 상태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인간이 인간관계를 재편해가는 과정을 재밌게 그려보고 싶다. 그리고 8~10회 정도의 짧은 시리즈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다음에 영화를 한다면, 날 것 같은 이야기를 더 재미나게 하고 싶다. ‘역린’은 완전히 날 것의 이야기는 아니다. 감정 자체도 걸러진 상태에서 내보낸 거다. 다음엔 더 날 것 같은 상황, 날 것 같은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현재로선 드라마에 조금 더 중심을 두고 있다.

‘역린’ 돋보기①영화와 소설 사이, ‘역린’ 속 살수와 을혜는 같은 살막 출신인 걸 알았을까요?
‘역린’ 돋보기②최성현 작가가 전하는 영화와 소설 이야기(인터뷰)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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