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영화제는 개막식 입장권이 티켓오픈 2분 9초 만에 매진되는 등 시작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영화제 측은 기대를 안고 기다려준 관객들을 위해 참신하고 도전적인 시도를 보여준 한국영화 신작, 거장 감독들의 세계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했더나 화제를 모은 작품 등 다양한 추천작들을 공개했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세계 3대 영화제로 칭해지는 칸 영화제와 베를린 국제영화제, 베니스 국제영화제를 위시해 아카데미 시상식, 세계 최대규모 독립영화제인 선댄스국제영화제 등 해외 유수영화제에서 수상했거나 화제를 모았던 작품들이 소개된다. 영화 미디어, 저널 등을 통해 들어왔던 작품들을 영화제에서 스크린을 통해 직접 만나볼 수 있다.
2013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한 ‘경관의 아내’는 침묵과 금욕의 수도원을 엄정한 스타일로 묘사한 다큐멘터리 영화 ‘위대한 침묵’(2005)으로 국내에 알려진 필립 그로닝 감독의 신작이다. 59개의 장으로 구성된 짧은 삽화를 연결하는 독특한 구조를 가진 이 영화는 베니스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을 당시 완강한 형식미 때문에 거센 논쟁을 일으켰다.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오리종티 부문 대상을 수상한 로뱅 캉필로 감독의 ‘이스턴 보이즈’는 ‘호수의 이방인’(2013)과 더불어 최근 가장 주목할 만한 퀴어시네마 중 한 편이다. 로랑 캉테 감독의 협력 작가로 오랫동안 공동 작업한 로뱅 캉필로는 이 영화에서 유럽연합의 현실을 근심의 눈으로 응시한다.
독립영화, 예술영화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선댄스국제영화제, 칸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들도 눈길을 끈다. 알레한드로 페르난데스 알멘드라스 감독의 ‘투 킬 어 맨’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가족의 존엄을 지키려는 가장의 분투를 다룬 이야기로, 선댄스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2013년 칸영화제 프랑스극작가협회상을 수상한 세바스티앙 필로트 감독의 ‘해체’는 가족 해체와 전통적인 삶의 파괴를 묘사한 작품이다. 2014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포럼부문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한 사가모토 아유미 감독의 ‘포르마’는 치밀한 스토리텔링으로 우정의 본질을 발가벗기는 이야기이다. 2014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그레이트 뷰티’는 로마의 화려한 밤 거리를 헤매며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으려 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로,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원숙한 연출력이 빛을 발한다.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만들어온 감독들의 신작을 상영하는 ‘월드 시네마스케이프 : 마스터즈’에서는 나누크 레오폴드의 ‘모든 것이 적막한’, 아그네츠카 홀란드의 ‘타오르는 불씨’를 주목할 만 하다.
‘모든 것이 적막한’은 네덜란드 명감독인 레오폴드의 신작으로, 병든 아버지와 아들의 삶을 배경으로 인간의 절대적 고독을 조명하는 작품이다. 폴란드의 거장 감독인 아그네츠카 홀란드는 ‘토탈 이클립스’(1995), ‘카핑 베토벤’(2006) 등으로 국내 관객들에 이미 이름을 알렸다. 그녀의 신작 ‘타오르는 불씨’는 조밀화된 역사의 기록을 통해 하나의 불씨가 어떻게 ‘프라하의 봄’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이끌어냈는지를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복잡다단한 구성으로 구현해낸다.
두 작품은 유럽의 거장 감독들의 영화이자 여성 감독들의 영화. 해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중에는 경쟁부문을 포함해서 여성 감독들의 영화가 많다는 것도 눈여겨 볼 만 하다.
올해의 특별전 프로그램인 ‘스페셜 포커스’ 중 ‘영화, 감독을 말하다’에서는 참신한 발상의 작품들이 눈에 뛴다. 게이브 클링거 감독의 ‘더블 플레이: 제임스 베닝과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실험영화 작가인 제임스 베닝과 현재 할리우드 중심부에서 활동하는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우정과 영화적 교류를 흥미롭게 담고 있다. 이 영화는 베니스국제영화제 클래식 상-다큐멘터리 부문에서 수상했다.
80여 편의 작품을 연출한 일본의 원로 감독 야마다 요지의 ‘동경가족’은 일본의 거장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이야기’를 현재의 시점에서 해석해 낸 작품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배우 츠마부키 사토시, 아오이 유우 등의 젊은 배우와 니시무라 마사히코를 비롯한 중견 배우들의 조합을 통해, 더 이상은 과거와 연결될 수 없는 오늘날의 일본 도시의 가족상을 묘사한다.
지난해까지 한국영화 라인업이 기 개봉작과 대중상업영화까지를 포괄했다면, 올해부터는 참신하고 도전적인 시도를 보여준 신작 독립장편영화로 채워진다.
‘한국경쟁’ 작품들은 신인감독들의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작품으로 구성된다. 2013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할매-시멘트 정원’으로 한 차례 인연을 맺은 김지곤 감독의 신작 ‘악사들’은 60대에 접어든 혜광스님이 40여년 전에 나이트클럽에서 함께 음악을 했던 멤버들을 하나 둘씩 모으며 결성한 밴드 우담바라의 이야기이다. 모현신 감독의 첫 번째 장편영화인 ‘포항’은 실종된 아버지를 찾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남자의 삶을 다룬다.
13편의 작품이 모두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되는 ‘코리아 시네마스케이프’에는 다양한 주제와 스타일의 작품이 눈길을 끈다. ‘작별’(2001)로 야마가타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 우수상을 수상하면서 생태 다큐멘터리의 영역을 개척해 온 황윤 감독은 신작 ‘잡식가족의 딜레마’로 전주를 찾는다. 민병훈 감독과 이세영 감독의 공동 연출작 ‘너를 부르마’도 주목할 만 하다. 이 영화는 사진작가 김중만의 굴업도 방문 여정을 따라가면서 환경과 생명이라는 화두를 부각시킨다.
다큐멘터리 뿐 아니라 극영화에도 주목할 만 한 작품들이 있다. 내놓는 작품마다 논쟁을 낳는 이상우 감독의 신작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가 전주에서 첫 선을 보인다. 가난한 달동네에서 고등학교를 중퇴한 3명의 친구와 동네를 배회하는 간첩에게 벌어지는 사건을 담아낸 영화로, 독특한 시선으로 한국 사회를 해석한 작품이다. ‘여름이 가기 전에’(2007), ‘여덟 번의 감정’(2010)을 통해 섬세함을 표현력을 발휘한 성지혜 감독은 신작 ‘미국인친구’를 공개한다. 서울로 온 미국 정보원인 한국계 미국남자와 그의 앞에 나타난 한 여자의 이야기를 미스터리 수법으로 담아낸 로드무비로, 관객들에게 친숙한 배우 남성진, 황금희가 열연했다.
한편 이번 전주국제영화제는 1일부터 오는 10일까지 영화의 거리 일대에서 개최된다. 세월호 침몰사건에 대한 애도의 의미로 개막식, 시상식 레드카펫, 거리공연 ‘버스킹 인 지프’ 등을 취소했던 전주국제영화제는 사고의 수습이 지연되고, 참사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황을 고려해 남아있던 잔여 공연 일정을 모두 최소했다.
글. 최보란 orchid85a@tenasia.co.kr
사진제공. 전주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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