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은 한국에서 ‘록스타’라는 단어를 써도 민망하지 않은 정말 몇 안 되는 팀 중 하나다.

국내에 넬만큼 강한 팬덤을 가진 록밴드가 또 있을까? 록이 마니아음악 취급을 받는 이 땅에서 넬의 인기는 신기할 정도다. 넬처럼 자신들의 스타일이 확고한 밴드가 대형 공연장을 가득 채우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다. 넬이 페스티벌 무대에 오르면, 수많은 여성 팬들의 비명 때문에 그 장소가 단독콘서트로 변해버린다. 넬이기에 가능한 풍경. SM엔터테인먼트에 합병된 울림레이블이라는 주류 기획사에 소속돼 있으면서 인디뮤지션처럼 독자적으로 음악작업을 하는 희한한 풍경도 넬에게는 익숙하다.

넬은 27일 새 앨범 ‘뉴튼스 애플(Newton’s Apple)’을 발표한다. 넬이 중력을 주제로 한 3부작인 ‘그래비티 트릴로지(Gravity Trilogy)’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완결작이다. 넬은 이 시리즈의 일환으로 EP 규모의 ‘홀딩 온투 그래비티(Holding onto Gravity)’(2012)와 ‘이스케이핑 그래비티(Escaping Gravity)’(2013)을 연달아 내놨다. ‘뉴튼의 사과’란 앨범 제목 역시 중력을 표현한 것이다. 이 앨범은 인트로를 포함해 11곡이 담긴 정규앨범이다. ‘중력 3부작’을 통해 넬은 1년 반 사이에 총 21곡을 선보이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싱글, EP의 시대에 이런 3연작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터. 이는 넬의 음악에 대한 의욕을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13일 열린 신보감상회에서 김종완(보컬)은 “중력이라는 단어를 예전부터 좋아했다. 좋아하는 단어이기 때문에 아껴오다가 이번 프로젝트의 주제로 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력을 테마로 하다 보니 떠오르는 것이 너무 많았어요. 전 운명을 믿는 편인데 중력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과 같은 것이잖아요. 중력처럼 인생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꿈, 사랑, 절망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앨범에는 이 세 가지가 모두 담겼어요.”(김종완)

타이틀곡은 ‘지구가 태양을 네 번’으로 밴드의 사운드가 강조된 곡이다. 드럼이 엇박자로 나가고 일정한 피아노 리프가 반복되면서 멜로디가 귀에 각인이 되는 곡이다. 기존의 타이틀곡들처럼 김종완의 보컬이 중심이 아닌 밴드의 전체적인 사운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구가 태양을 네 번 돌면 4년이잖아요. 4년 동안 사랑하는 이를 수백 번 그리워한다는 가사가 나오는데 원래 수천 번이었던 것을 어감에 맞게 바꾼 거예요. 이 노래가 길거리에서 들려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김종완) “다른 노래에 비해 가사가 잘 들리는 곡이에요. 타이틀곡의 조건이 다 들어있는 곡이랄까요?”(이정훈)

‘타인의 기억’은 넬 특유의 감수성이 빛을 발하는 곡이다. “죽고 못 사는 사랑을 하면 굉장히 행복하고, 또 괴로운 기억이 남게 되잖아요. 제가 기억력이 나빠지는 것인지 언젠가부터 그런 것들이 생각이 잘 안 나요. 애써서 떠올리려고 해도 뚜렷하게 떠오르질 않는 거예요. 그런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서 만든 곡이예요. 당시에는 힘들어서 상처가 빨리 지나갔으면, 차라리 경험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나니 그게 아니더라고요.”(김종완)

‘침묵의 역사’는 여백을 살린 곡이다. “넬의 사운드는 밀도감을 중요시하거든요. 미니멀하고, 여백이 있는 곡은 앨범에 잘 안 넣게 되요. 하지만 이번에는 이렇게 심플한 곡을 넣어보고 싶었어요. 우리가 80년생인데 70년대 느낌의 사운드를 해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리버브도 거의 안 넣고, 드럼에도 단출하게 마이크 4개 정도를 써서 녹음을 했어요.”(김종완)



넬이 결성된 지도 이제 어느덧 약 15년이 흘렀다. 그간 넬은 초기 대표곡 ‘스테이(Stay)’와 같은 모던록으로 출발해 다양한 어법을 자신들의 사운드로 녹여냈다. 새 앨범에서는 다시 밴드의 기본에 충실해졌다. “무엇보다 밴드적인 사운드를 부각해보려 했어요. 전에는 일렉트로니카를 섞어보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밴드의 기본에 충실해보고 싶었어요. 이번에는 제 목소리가 강조되기보다 각 악기들의 소리가 더 잘 들렸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작업을 했죠.”(김종완)

록밴드의 입지가 작은 국내에서 넬은 고군분투 중이다. 이에 대해 김종완은 “밴드의 입지가 좁아졌다고요? 아예 없었다고 말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상당한 팬덤을 가진 팀으로써 대중성에 대한 고민은 없을까? “대중성이라는 것은 알 수 없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마음을 잃다’라는 곡을 만들었을 때 멜로디, 리듬, 코드가 대중성의 끝을 달리는 곡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결과는 그렇지 않더군요. 그 이후로 대중성은 생각 안 해요. 언더에서 처음 앨범이 나왔을 때 우리 음악이 대중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어둡다고 느끼더라고요.(웃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면 대중적인 곡이라고 하잖아요. 그런 것을 고민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우리 마음이 먼저 움직여야 듣는 분들의 마음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거니까요.”(김종완)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울림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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