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뜨거웠다. tvN ‘응답하라 1994’ 속 신촌하숙집의 이야기. 나정이(고아라)의 남편이 누구인가를 놓고 핏대를 세웠지만, 매회 우리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 것은 신촌하숙집 모든 이의 젊은 날을 통해 우리가 걸어온 1990년대를 추억할 수 있었던 바로 그 점이었다. 나정이의 대학생활을 통해 우리의 새내기 시절을 떠올렸고, 삼천포(김성균)와 윤진(도희)의 풋풋한 캠퍼스 사랑을 통해 그 시절 우리의 설익은 사랑을 돌이켰다. 해태(손호준)와 삼천포의 투닥거림을 통해 그 시절 얄팍했으나 뜨거웠던 우정을 기억해볼 수 있었다. 한 편의 드라마가 인생을 사는 법을 알지 못해 서툴렀으나 지금보다는 훨씬 더 용기 있었던 젊은 날의 나를 소환시켜 준 것이다. 오는 28일 막을 내리는 ‘응답하라 1994’, 그 뜨거운 여운 속에 우리는 2013년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 디테일에 응답하다

가장 먼저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던 것은 ‘응답하라 1994’의 디테일이다. 작품 곳곳에 숨은 시트콤 요소나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예능 포인트를 제외하더라도, ‘응답하라 1994’는 1994년의 음악, 소품 등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장치들을 충실히 재현함에 따라 동 시대를 경험한 이들에게는 향수를, 당대 문화를 처음 접하는 시청자에게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전했다.



작정하고 어느 한 시대를 작품의 배경으로 택한 만큼 이를 방송으로 구현하는 이들의 손길을 바빠질 수밖에 없을 터. ‘응답하라 1994’의 미술을 맡은 서명혜 미술감독은 “1990년대는 사극보다 더 힘들다”는 말로 소감을 대신했다. 영화 ‘접속’을 시작으로 ‘미술관 옆 동물원’, tvN 드라마 ‘이웃집 꽃미남’ 등의 작품을 통해 특유의 감각을 선보인 바 있는 서 감독은 ‘응답하라 1994’에 전격 투입되며 작품의 흥행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

드라마의 주된 무대가 되는 신촌 하숙집의 인테리어와 방 구석구석을 채운 소품, 페브릭 장식에서도 90년대 감성이 물씬 묻어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 서 감독은 “1990년대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는 시기라 그런지 자료가 많지 않았다”며 “기본적으로 머릿속 기억들을 돌이켜 비슷한 것을 찾아 변형하거나 눈속임을 살짝 했다. 페브릭의 경우, 패턴을 기억해 시장에서 비슷한 것을 찾아 변형시켰고, 음료수나 과자 등은 신문 광고나 잡지를 힘들게 구해 찾아서 일러스트, 라벨링 등을 새로 다 제작했다”는 후일담을 털어놓기도 했다.

# 1994년뿐만이 아닌, 1990년대 문화 복기에 응답하다

그러나 ‘응답하라 1994’가 당시 서울 일대에서 캠퍼스 생활을 즐긴 94학번을 넘어 전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던 데는 ‘응답하라 1994’가 ‘1994년’뿐만이 아니라 ‘1990년대 문화의 전반’을 다뤘기 때문이다.

tvN ‘응답하라 1997′ 스틸

이 부분은 ‘응답하라 1994’가 전작 ‘응답하라 1997’가 차별화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앞서 ‘응답하라 1997’은 소재의 신선함과 당대 문화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돌 팬덤 문화’를 드라마의 전면에 내세우며 흥행몰이를 주도했다. 하지만 ‘응답하라 1997’이 불러온 복고 바람은 ‘응답하라 1994’와는 온도 차가 있다. 이것은 ‘응답하라 1997’의 주된 배경이 ‘부산’이라는 한정된 지역이었으며, 주인공 모두가 고등학생이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즉, 전국 각지에서 모인 팔도청춘이 대학생활을 거쳐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다룬 ‘응답하라 1994’와는 확장할 수 있는 이야기 외연의 넓이가 근본적인 차이를 보이는 것.

또한, ‘응답하라 1994’는 전작과 달리 당대 문화를 추억할 수 있는 다양한 소재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캠퍼스 생활은 물론이고, 극 중 성나정의 오빠 이상민이 상징하는 농구 등의 스포츠 문화, 그리고 윤진이의 오빠 서태지가 상징한 대중음악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음악의 힘’을 적절히 활용한 극적 구성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연출을 맡은 신원호 PD가 직접 선곡하는 것으로도 알려진 ‘응답하라 1994’에 등장하는 모든 음악은 ‘한강의 기적’이 낳은 경기 호황의 바람을 타고 본격적으로 붐이 일기 시작한 대중문화의 태동기를 보여준다. 또 이것과 결합된 당대 문화는 1990년대의 문화상을 단적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팔도청춘이 처한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며 보는 이들의 감정을 극대화한다.

1994년은 1990년대 문화를 불렀고, 이것이 끌어낸 추억과 기억에 시청자는 응답했다. ‘현재와 과거’라는 시대극의 이분법적 구도에서 벗어나 ‘1990년대 문화’라는 또 다른 영역을 개척한 ‘응답하라 1994’는 아마도 오랫동안 두고두고 회자될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제공.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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