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드라마 종영 후 연기 변신에 대해 ‘최지우의 재발견’이라는 얘기도 종종 나왔다. 스스로는 만족스러운가?
“아, 이번만큼 힘들었던 작품은 처음이에요.” 드라마 종영 후에도 “서너 시간밖에 잠을 자지 못한다”며 후유증을 털어놓는 최지우의 얼굴에는 그러나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져 있다. SBS ‘수상한 가정부’를 마친 그는 극중 박복녀를 스스로도 ‘데뷔 이래 가장 도전적이었던 캐릭터’라고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무표정한 얼굴과 딱딱한 말투, 지극히 절제된 연기가 필요했던 만큼 최지우는 ‘수상한 가정부’에서 그간의 세련된 이미지를 모두 지워버렸다.
그래서일까. 오히려 용기있는 캐릭터 변신에 시청자들의 잔잔한 호응이 이어졌다. 시청률과 작품성 면에서 ‘성공작’이라고 하기엔 아쉬운 측면이 남아있지만 ‘수상한 가정부’는 리메이크 드라마로서 나름의 의미있는 족적을 남긴 작품으로 기억됐다.
최지우: 그렇게까지였는지는 모르겠다.(웃음) 오히려 ‘내가 그렇게 그동안 못 미더웠어?’하는 생각도 들더라. 시작할 땐 워낙 원작이 잘됐던 작품이라 비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상반기 ‘직장의 신’이나 ‘여왕의 교실’ 등 리메이크 작품이 이어졌는데 뒤늦게 시작했다는 우려도 들었고 배우 최지우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라는 점에서 팬들도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스스로는 ‘난 잘 할 수 있는데’란 자신감이 있었다. 극중 복녀의 딱딱한 모습은 지나가면서 풀어지고, 감동도 꽤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야기에 탄력이 붙으면 설득력이 생길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Q. 딱딱하고 복잡한 감정선을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가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최지우: 어려웠다. 말투나 눈빛 표정 목소리 톤 등 초반에 캐릭터 잡기가 힘들었다. 나는 평상시 딱딱한 말투도 쓰지 않고 특별히 발음이 좋은 배우도 아니다. 그야말로 약점이 바로 드러날 수 있는 작품이란 점에서 걱정이 많았다. 그래서 감독님과 이런 저런 시도를 많이 했다. 목소리를 올렸다가 내렸다가, 톤도 바꿔보고… 그렇게 실험을 통해 일단 캐릭터가 잡히니 쉽더라.
Q. 은상철(이성재)이 복녀를 업고 뛰었던 화재 장면에서는 꽤 고생이 많았을 것 같던데.
최지우: 그 날 마침 기온이 뚝 떨어졌는데 블라우스 한 장 입고 산중에서 이틀 동안 밤을 꼬박 새며 찍었다. 덕분에 엄청 꾀죄죄하게 나왔지.(웃음) 제작진의 예상보다 불이 너무 크게 나 조금 위험하기도 했다. 문을 여는 순간 시야 확보가 안 돼 넘어져 바지가 찢어지고 무릎도 깨졌다. 하지만 나보다는 이성재 씨가 나를 업고 뛰다 넘어지는 바람에 부상이 꽤 컸다.
Q. 촬영 내내 입었던 문제의 ‘회색 점퍼’에 대한 궁금증도 일었다. 설마 복녀처럼 한 벌을 계속 입은 건 아니겠지?
최지우: 열 벌 정도를 마련해 4,5벌을 돌려가며 입었다. 때가 타면 세탁도 하고 중간에 화재 장면이 있어 오래 입을 수 없었던 때도 있었고. 작품이 끝나고 나서 처음엔 점퍼를 다 돌려달라고 해서 섭섭하더라. 기념하려고 한 벌만 가져왔다.
Q. 사실 작품이 한국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평가도 있었다.
최지우: 극단적이었지. 복녀란 캐릭터는 ‘모 아니면 도’라는 느낌이 강했다. 그런데 그 자체가 복녀란 인물을 구성하는 것 같다. 한편으론 아쉽고 좀더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란 생각은 있었는데 대본에 충실하게 연기했다.
Q. 결말도 원작과는 다르게 표현됐다.
최지우: 한국 정서와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바뀐 것 같다. 원작은 복녀가 떠나면서 끝나는 설정인데 ‘수상한 가정부’에서는 밝게 웃으며 돌아와서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복녀에게 희망이 있다는 느낌이 좋았고, 드라마팀 내에서도 따뜻하고 좋은 결말이라고 생각했다.
Q. 작품이 일본에 역수출되기도 했다. ‘겨울연가’ 이후 벌써 10년인데 아직까지 일본 팬들의 반응이 좋은 것 같다.
최지우: 거의 내가 독보적이지.(웃음) 농담이다. 요즘엔 아이돌들이 훨씬 인기 많다. 아직까지 드라마 팬들이 꾸준히 좋아해주시는 정도지 어린 친구들처럼 열광적이진 않다. 일본 팬들은 굉장히 조용하면서 오래가는 느낌이 있다. ‘겨울연가’의 팬들이 아직까지도 이번 드라마에도 간식도 보내주시더라.
Q. 여전히 일부에서는 ‘배우 최지우’의 발음이나 연기력에 대해 우스갯소리처럼 얘기할 때가 있다.
최지우: 처음엔 기분이 좀 나빴는데 지금은 나도 거기에 농담으로 끼어들어서 할 정도가 된 것 같다.(웃음) 이번이야 말로 긴 대사가 많고 사전적인 지식을 줄줄 읊어야 해서 부담이 많았다. 조사 하나에 어감이 달라지는 캐릭터라 연습을 많이 했다. 누가 툭 치면 ‘다다다다…’하고 대사가 나올 정도로. 초반엔 잠도 못 잘 정도로 대사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았다.
Q. 30대가 된 후 연기를 바라보는 관점이 좀 달라졌나.
최지우: 20대 때는 항상 쫓기는 느낌도 들고 대본 리딩하는 데 급급한 마음이 있었다. 웃는 연기를 할때도 나도 모르게 표정이 얼고 위축이 되곤 했었다. 이제는 NG가 나도 심리적으로 가슴이 조이는 듯한 급한 마음은 없어졌다.
Q. 드라마 이후 육아에 대한 생각이 좀 바뀌었다고.
최지우: 극중 해결(강지우)이의 엄마가 실제로는 나와 동갑이다. 해결이 보면서 ‘이런 딸 있으면 살 만하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정말 애교가 많고 싹싹하더라다. 촬영장에서도 “복녀님 복녀님” 하면서 하루만 못 보면 “너무 보고 싶었어요”하면서 뽀뽀를 해 주는데 이런 기쁨에 애들을 키우는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더라.
Q. 사랑과 결혼에 대해 진지한 생각을 해 본 작품이었나보다.
최지우: 특히 이 작품은 매 회마다 메시지가 하나씩 있었다. 애들 위주로 하나씩 문제점을 해결하고, 사랑에는 책임이 따라야 한다는 점 같은. 기본적으로 나는 결혼과 사랑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굉장히 신중해야 할 것 같고. 내 선택에 있어 후회는 없어야 하니까. 처음 사랑하는 것보다 계속 유지해가는 게 가장 어려운 것 같다.
Q. ‘겨울연가’가 올해로 방송 10주년을 맞았다. 혹시 ‘지우 히메’란 꼬리표를 떼고 싶단 생각도 드나.
최지우: 그런 생각은 교만인 것 같다. 사실 예전엔 좀 이미지가 고착화되는 것 같아 잠시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는데 자만심이란 걸 깨달았다. 결코 쉽게 오는 행운도 아니고, 나의 대표작이 있다는 데 대해 굉장히 감사하고 자부심을 가져야 하는 부분인 것 같다.
Q. 40대의 최지우는 어떤 배우가 될까.
최지우: 연기력이나 눈빛에서 좀더 깊이가 있어졌으면 좋겠다. 어떤 배우가 그러더라. ‘왜 한국 사람들은 여배우의 주름에 그토록 심각하게 잣대를 들이대는지 모르겠다’고. 동의하는 바다. 여배우의 주름보다는 눈빛에 좀더 집중했으면 좋겠다.
글. 장서윤 ciel@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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